[별세개반이상만 #41] <씨너스: 죄인들>
<씨너스: 죄인들>은 혈흔과 상처투성이로 교회에 나타난 '새미'(마일스 케이턴)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의 손에 들린 부서진 기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게 하죠. 하지만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성급하게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하루 전으로 돌아가 천국과 지옥을 오간 24시간의 여정을 차근차근 보여주죠. 시카고 갱단에서 손을 씻고 고향으로 돌아온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 1인 2역)은 훔친 돈으로 제재소를 사들여 '주크 조인트'를 엽니다.
이곳은 억압받는 흑인 공동체가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해방구이자, 백인 사회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성역인데요. 천재적 블루스 연주자인 사촌 '새미'를 비롯해 전설적인 연주자 '델타 슬림'(델로이 린도), 후두교 치유사 '애니'(운미 모사쿠) 등이 모여듭니다. 개업 파티 밤, '새미'의 기타 연주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마법 같은 순간을 연출하는데요.
그의 블루스는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의 아프리카 부족 춤꾼들부터, 미래의 힙합 댄서들까지 한 무대에 불러 모으죠. 이 장면에서 블루스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흑인 문화의 DNA 같은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이자 억압된 영혼들의 해방구인 셈이죠. 하지만 이 아름다운 해방의 순간이 바로 파멸의 시작이 됩니다.
'새미'의 음악에 이끌린 아일랜드계 뱀파이어 '렘믹'(잭 오코넬)과 그의 무리가 나타나죠. 흥미롭게도 이들은 '영원한 자유'를 약속하며 공동체 안으로 스며들려 합니다. '렘믹'이 주크 조인트 밖에서 부르는 아일랜드 민요는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지만, 그 이면에는 흑인 문화를 흡수하고 변질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죠. 이것은 <씨너스: 죄인들>의 핵심인데요. 뱀파이어들은 KKK처럼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대신, 매혹적인 제안으로 공동체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죠.
'스택'의 연인 '메리'(헤일리 스타인펠드)가 뱀파이어로 변하면서 '스택'을 죽이는 장면은 이런 내부 침식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적이 되는 순간, 공동체는 속절없이 무너지죠. 여기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노골적인 차별보다 더 교묘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억압들. 자유를 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더 깊은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스템들. 뱀파이어의 '영생'이라는 달콤한 제안이 얼마나 현실적인 은유인지 깨닫게 됩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에게 이 영화는 특별한 의미를 갖죠. 그의 외할아버지가 나고 자란 1930년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한 가장 개인적인 작품인데요.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가 보편적 메시지로 확장되는 것이 감독의 진가죠.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역사와 만나면서 더 큰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영화의 제작 과정도 이런 진정성을 뒷받침하죠. 음악 감독인 루드비히 고란손은 미시시피를 직접 답사하며 현지 뮤지션들과 교류했고, 멤피스의 로열 스튜디오에서 실제 블루스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했죠. 마일스 케이턴이 영화를 위해 처음 기타를 배워 몇 달 만에 완벽한 연주를 선보인 것도, 캐스트들이 촬영 중 실제 음악을 들으며 연기한 것도 모두 작품에 생생함을 더합니다.
마이클 B. 조던의 1인 2역도 기술적 도전을 넘어서죠. '스모크'와 '스택'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인데요. '스모크'는 현실적이고 냉정한 사업가이고, '스택'은 낭만적이고 충동적인 감성가죠. 이들의 대립은 흑인 남성이 백인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택해야 하는 서로 다른 전략을 상징합니다. 두 형제는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존재들이죠. 마이클 B. 조던은 말투와 몸짓, 표정까지 완전히 달리하며 이 복합적인 정체성을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특히 형제가 서로 담배를 주고받는 초반 장면에서는 한 사람이 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자연스럽죠.
<씨너스: 죄인들>의 진정한 힘은 뱀파이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통해 현실의 억압 구조를 드러내는 데 있죠. 대공황을 겪던 1932년, 미시시피는 흑백 분리를 법제화한 인종차별법인 '짐 크로우 법', 백인 우월주의 테러 단체인 'KKK' 활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인데요. 하지만 쿠글러 감독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무서운 건 뱀파이어의 치아가 아니라, 문화적 침탈인데요. 문화는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렘믹'이 '새미'에게 "너의 음악으로 내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살리겠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죠.
이는 비슷한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우리의 아리랑을 금지하고, 황국신민 찬양가를 부르게 했던 것과 유사한데요. 억압받는 민족의 정신적 지주를 '불온한 저항 문화'라 탄압하고, 민족 정체성의 뿌리를 뽑아버리려 한 것이죠. '새미'의 블루스가 흑인 공동체의 한과 저항 정신을 담고 있듯, '아리랑' 역시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고 극복하려는 우리 민족의 의지였죠. 두 노래가 겉으로는 슬픈 노래이지만, 실제로는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이 있던 것입니다.
블루스는 <씨너스: 죄인들>에서 양면성을 갖는데요. '새미'의 아버지(사울 윌리엄스)는 블루스를 '악마의 음악'이라 부르며 경계하지만, 동시에 그 음악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죠. 음악 자체가 선과 악을 모두 불러올 수 있는 초월적 존재로 그려지는데요. 하지만 결국 '새미'는 이 음악적 유산을 포기하지 않았죠. 영화의 말미에서, '새미'는 진정한 자유란 외부의 유혹이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새미'가 "그 밤이 내 인생 최고의 밤이었다"고 말하는 이유도, 폭력과 죽음으로 끝났지만, 진정한 자유를 맛본 그 순간만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볼 수 있죠.
그렇게 영화를 보며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누가 진짜 죄인인가? 자유를 추구하는 자들인가? 아니면 그 자유를 갈라놓으려는 자들인가? 감독은 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블루스 선율처럼 깊고 복잡한 질문을 관객의 마음에 남겨두죠. 자유를 갈라놓으려는 죄인들이 세상에 많아지고 있다는 걸 장르물로 만드는 재주, 이것이야말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천재성이죠.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물을 넘어서 하나의 예술이 되는 이유입니다. ★★★★☆
2025/05/20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 영화 리뷰
- 제목 : <씨너스: 죄인들> (Sinners, 2025)
- 개봉일 : 2025. 05. 28.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37분
- 장르 : 액션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라이언 쿠글러
- 출연 : 마이클 B. 조던, 헤일리 스테인펠드, 마일스 케이턴, 잭 오코넬, 운미 모사쿠 등
- 화면비율 : 2.76:1/1.43:1(IMAX 일부 장면)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