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리스크 기업 VS 편법 투자사, 평범한 사람은?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48] <소주전쟁>

by 양미르 에디터
4394_3552_646.jpg 사진 = 영화 '소주전쟁' ⓒ (주)쇼박스

"룸싸롱 장면 한 번 안 나오는데 5~6회 다녀온 거 같은 내용으로, 대중에게 어떤 어필을 할 수 있을까?" <소주전쟁>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겉으로는 품격 있는 경제 드라마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뻔하고 진부한 배신과 탐욕의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정작 일반 관객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독보적인 맛으로 전국을 평정했던 '국보소주'가 자금난에 휘청거린다. 이 타이밍을 눈여겨보던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 '인범'(이제훈)은 '국보소주' 매각을 위해 회사에 접근하고, '국보소주'가 곧 자신의 인생인 '국보그룹'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은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스마트한 '인범'에게 오롯이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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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몸바친 회사를 지키려는 '종록'과 회사를 삼키려는 목표를 숨기고 '종록'에게 접근한 '인범'. 서로 다른 목적의 두 사람은 소주 하나로 점차 가까워지지만, 결국 '인범'의 배신이 드러나면서 '종록'은 절망에 빠진다. '국보그룹' 회장 '석진우'(손현주)는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 하고, 법무법인 대표 '구영모'(최영준)와 '솔퀸' 홍콩 본부장 '고든'(바이런 만)은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린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미 결말이 보인다. 선량한 직장인은 배신당하고,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은 서로를 이용하며,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진다. 룸싸롱에서 벌어질 법한 뻔한 거래와 배신의 패턴을 고급스러운 포장지로 감싼 것뿐이다. 제작진은 이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동반자 소주"를 중심으로 한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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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김보미 미술감독은 "실제 '탑 소주'는 보해양조와 협업해 만든 새로운 레시피로 완성했다"며 소주에 대한 진심을 강조했다. 김성안 촬영감독도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주류인 만큼 여러 소주들의 종류에 대해 많이 알고자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진심 어린 준비가 정작 영화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소주는 단순히 두 남자를 가깝게 만드는 도구일 뿐, 한국인의 정서나 문화와 깊이 연결되지 못한다. 유해진과 이제훈의 "술맛 나는 케미스트리"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예측 가능한 관계 변화를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원제목이 '모럴해저드'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작품 속 인물들의 도덕적 해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영화 자체의 '모럴해저드'다. <빅쇼트>(2015년)나 <국가부도의 날>(2018년) 같은 경제 영화들은 서민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구조를 보여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을 잃는 사람들, IMF로 인해 전 국민이 겪는 경제적 고통 등 일반인들과의 연결고리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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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주전쟁>은 다르다. 오너 리스크를 안고 있는 기업과 투자사가 싸우는 이야기에서 일반 서민들은 구경꾼일 뿐이다. "기업이랑 투자 쪽이랑 싸우는데 서민들은 뭐" 하는 상황이다. '종록'이 아무리 선량한 직장인을 대변한다고 해도, 그는 이미 '재무이사'라는 고위직에 있는 기득권층이다. 가관인 것은 영화 말미에 갑자기 등장하는 "회사를 위해 살지 말라"는 메시지다. 이미 충분히 벌어둔 상태에서 던지는 이런 조언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매달 월세(혹은 대출 이자)와 생활비에 쪼들리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와닿을 리 없다.

<소주전쟁>은 개봉 전부터 잡음이 일었다. 연출을 맡은 최윤진 감독이 각본 탈취 논란으로 해촉되면서 '감독' 대신 '현장연출'로만 언급된 것.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의 감정 결과 박현우 작가가 원작자 및 제1각본작가로 판정되었고,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제작사의 감독 계약 해지가 부적법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이런 제작 과정의 도덕적 해이는 영화의 내용과 오묘하게 겹친다. 작품 속에서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는데, 현실에서는 감독이 신인 작가의 각본을 탈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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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전쟁>이 비판하려던 '모럴해저드'가 정작 영화 제작 과정에서 벌어진 셈이다. 감독 없는 영화로 개봉하게 된 상황은 어쩌면 이 작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명확한 메시지도, 일관된 관점도 없이 떠도는 작품. 마치 방향을 잃은 배처럼 말이다. 그렇게 <소주전쟁>은 여러 면에서 어정쩡한 영화다. IMF 세대를 겨냥했다면서도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현재 세대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했지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경제 영화를 표방했으나 전문성은 부족하고, 휴먼 드라마를 지향했으나 감동은 적었다. ★★☆

2025/05/29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소주전쟁> (Big Deal, 2025)
- 개봉일 : 2025. 05. 30.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4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관람가
- 출연 : 유해진, 이제훈, 손현주, 최영준, 바이런 만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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