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67]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시대를 상당히 많이 예견한 '마이 웨이(My Way)' 영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를 만나며 든 첫 번째 생각이다. 1996년 제작된 이 영화가 2025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깨닫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이와이 슌지가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의 세상을 보고 돌아와 만든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영화는 일본 엔화가 세계 기축통화가 된 가상의 미래를 그린다. 작품에 등장하는 '엔타운'이라는 명칭 자체가 갖는 이중성은 흥미롭다. 이민자들에게는 '엔을 벌 수 있는 희망의 땅'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엔을 훔쳐 가는 도둑들의 소굴'이라는 멸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현재 각국에서 벌어지는 이민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1996년 당시에는 다소 황당무계해 보였을 이 설정이 지금은 전혀 허황되지 않다. 미국 달러의 절대적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 위안화, 러시아의 루블, 그리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들의 등장까지. 특정 통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그 통화를 얻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은 이미 우리 시대의 현실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위조지폐를 만드는 방식이다. 영화 속 '엔타운'들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가 담긴 카세트테이프의 자기장을 이용해 1,000엔을 10,000엔으로 속인다. 이는 물리적 화폐 위조를 넘어 시스템 해킹에 가깝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각종 해킹 사건들,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 디지털 화폐의 등장을 예견한 듯한 설정이다. 음악(아날로그)을 통해 돈(디지털)을 조작한다는 아이디어는 현재의 NFT나 메타버스 경제를 연상시킨다.
언급한 것처럼, '엔타운'이라는 공간은 21세기 글로벌 도시들의 축소판이다. 중국어, 영어, 일본어가 뒤섞이고,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가상의 도시는 현재 뉴욕의 차이나타운, 런던의 브릭레인, 서울의 가리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엔타운은 일본 땅에 있으면서도 일본이 아닌, 역설적인 공간이다. 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게토화' 현상을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이민자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적 융합, 그리고 그에 대한 주류 사회의 배척과 혐오까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유럽의 난민 문제, 한국의 다문화 갈등까지 모든 것이 이 영화 속에 담겨있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서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언어 사용 방식이다. 일본 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중국어와 영어가 주요 소통 언어가 된다. 하지만 엔타운 사람들은 하나의 표준어를 만들지 않는다. 각자의 모국어를 유지하면서도 손짓과 표정, 때로는 서로를 오해하면서도 관계를 이어간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현재 소셜미디어 시대를 미리 보여준 것 같다. 완벽한 번역이 어려운 인터넷 밈들,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나누는 문화,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도 같은 콘텐츠를 즐기는 글로벌 세대의 모습과 겹친다. 감독이 보여준 '완전하지 않지만, 진심 어린' 관계야말로 진정한 소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는 배경음악을 넘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위조지폐의 코드이자, '그리코'(차라)와 '페이홍'(미카미 히로시)의 사랑을 잇는 매개체인 이 곡은, 기존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이는 현재 MZ세대의 가치관과 묘하게 연결된다. 기성세대가 만든 룰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젊은 세대들. N포 세대, 소확행, 파이어족 등 기존의 성공 공식을 거부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들. 영화 속 엔타운 사람들이 돈을 모아 라이브 클럽을 여는 소박한 꿈은, 현재 많은 젊은이가 추구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과 다르지 않다.
'그리코'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창녀에서 가수로 변신하는 과정은 사회적 신분 상승을 넘어, 몸을 파는 것에서 목소리를 파는 것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는 두 번째 판매가 첫 번째보다 더 고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타가 된 '그리코'가 더 큰 상처를 받는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지적한다. 결국 '그리코'는 창녀도 가수도 아닌,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돌아간다. 이는 현재 우리 시대의 화두인 '진정성'과 맞닿아 있다. 인플루언서, 유튜버, 각종 1인 미디어로 자신을 상품화하는 현실에서, 진짜 나 자신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이미 30년 전에 제시한 것이다.
제목인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호랑나비)'는 변태의 은유다.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듯, '아게하'(이토 아유미)와 '그리코'는 척박한 엔타운에서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난다. 이들의 변화는 개인적 성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유대감은 미래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암시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 팬데믹, 경제 불평등 등의 글로벌 문제들은 어느 한 국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국경과 언어, 문화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 속 엔타운이 보여주는 '어설프지만 따뜻한' 공동체의 모습은 그런 가능성에 대한 힌트를 준다. 결국,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예견한 것은 특정한 기술이나 사회 현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속감에 대한 갈망, 진정한 소통에 대한 열망,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의지. 그 모든 것이 'My Way'라는 세 글자에 담겨있다. ★★★☆
※ 영화 리뷰
- 제목 :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Swallowtail Butterfly, 1996)
- 재개봉일 : 2025. 07. 16.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110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이와이 슌지
- 출연 : 미카미 히로시, 차라, 이토 아유미, 에구치 요스케, 와타베 아츠로 등
- 화면비율 : 1.66: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