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68] <전지적 독자 시점>
평범한 직장인 '김독자'(안효섭)는 10년 넘게 연재된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유일한 독자다. 조회수 1에 그친 이 망작 소설이 완결되던 날, 주인공 '유중혁'만 혼자 살아남는 결말에 실망한 '김독자'는 작가에게 항의 메일을 보낸다. 그 순간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어버리고, 지하철에 갇힌 사람들은 괴물을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데스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소설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김독자'는 냉소적인 주인공 '유중혁'(이민호)과 만나 동료들과 함께 모두가 살아남는 새로운 결말을 써내려가려 한다. 김병우 감독의 <전지적 독자 시점>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기획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였다. 300억이라는 거대한 제작비, 침체한 한국 영화계를 살릴 텐트폴 영화라는 기대감, 그리고 누적 조회수 2억 뷰를 기록한 메가 히트 웹소설의 영화화.
모든 조건이 완벽해 보였지만, 결과물은 그 기대에 턱없이 부족했다. 김병우 감독은 "원작을 모르는 관객도 충분히 볼 수 있도록 했다"라며 "세계관과 캐릭터, 원작 작가가 생각했던 메시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주요 고민점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언들은 실제 영화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으로서 가장 큰 문제점은 캐릭터들의 동기와 관계성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독자'가 왜 이 세계에서 특별한 존재인지, '유중혁'과의 관계는 어떤 의미인지, 동료들이 왜 그를 따르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 안효섭은 분명 성실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김독자'라는 캐릭터가 지닌 내적 동력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소설을 많이 읽어서 상황을 아는 사람" 이상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다.
이민호 역시 강렬한 비주얼과 존재감은 있지만, '유중혁'이라는 인물의 복잡성이나 '김독자'와의 화학 반응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채수빈, 신승호, 나나 등이 연기한 동료 캐릭터들은 각자의 스킬과 과거사가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왜 함께 싸우는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감정적 연결고리가 취약하다. 이를테면, 나나의 액션 연기는 눈에 띄지만, '정희원'이라는 캐릭터 자체의 서사적 필연성은 부족하다.
김병우 감독이 강조한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은 영화에서 가장 실패한 부분 중 하나다. 지하철이라는 일상 공간에서 갑자기 펼쳐지는 판타지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시나리오, 코인, '배후성', '성좌' 등의 개념들이 '김독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빠르게 설명되지만, 이것이 어떤 논리로 작동하는 세계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관객들이 원작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전제로 시나리오를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너무 불친절하고, 원작 팬에게는 핵심 설정들이 생략되어 아쉬운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렀다.
전체 1,500여 컷 중 1,300여 컷이 VFX라는 수치가 보여주듯, 이 영화는 기술력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하지만 300억 제작비에 걸맞은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클라이맥스의 '화룡'과의 전투 시퀀스는 2025년 영화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의 CG 퀄리티를 보여준다. 과도한 CG 의존이 배우들의 연기나 서사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까지 한다.
이어 김 감독이 강조한 "평범한 사람들이 연대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라는 메시지는 표면적으로만 전달될 뿐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김독자'와 동료들의 연대가 왜 필요한지,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감정적 토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강조되는 "함께 살아남기"의 가치는 앞서 쌓인 서사적 맥락 없이 던져져 설득력을 잃는다. 이는 원작의 복잡한 관계성과 캐릭터 성장을 2시간에 압축하려다 생긴 필연적 한계로 보인다.
개봉 첫날 122,491명 동원으로, 2010년대 텐트폴 시장의 관객 수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는 <전지적 독자 시점>의 흥행 부진은 '한 작품'의 흥행 부진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웹소설/웹툰 IP 영화화 전반에 대한 불신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한국 영화계가 다시 안전한 소재로만 후퇴할 우려가 있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나 혼자만 레벨업>이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이런 장르는 극장이 아닌 OTT로 가야 한다"라는 인식이 더 강화될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좋은 의도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침체한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원작의 매력을 영화라는 매체에 맞게 재해석하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작품이 되었다. ★★
2025/07/23 CGV 왕십리 4DX
※ 영화 리뷰
- 제목 : <전지적 독자 시점> (Omniscient Reader, 2025)
- 개봉일 : 2025. 07. 23.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17분
- 장르 : 액션, 판타지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김병우
- 출연 : 안효섭, 이민호, 채수빈, 신승호, 나나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