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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감성과 가족애로 포장한 아쉬운 블록버스터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69]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by 양미르 에디터
4545_4037_5832.jpg 사진 = 영화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지금 명백한 위기다. 올해 개봉한 <썬더볼츠*>는 '뉴 어벤져스'라는 수정 표시까지 하며 관객을 부르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적자를 기록했고,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혹평 속에 턱걸이 흥행을 했다. MCU의 수장, 케빈 파이기가 직접 "관객들이 제목이나 등장인물들을 잘 몰랐다"라며 반성한 것처럼, 복잡한 멀티버스와 끝없는 TV 시리즈 연결고리가 만든 피로감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마블이 꺼내 든 카드가 바로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이다. 1960년대 원작 만화의 정신으로 돌아가 "사전 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 명확한 이야기. 복잡한 멀티버스 대신 따뜻한 가족애. 그리고 무엇보다 "마블 최초의 슈퍼히어로 패밀리"라는 상징성까지. 케빈 파이기가 "마블 역사에 이보다 더 중요한 캐릭터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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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샤크먼 감독이 설계한 '지구-828'은 분명 매력적이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레트로 퓨처리즘'은 시각적으로 충분히 신선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모노레일이 있는 미래적 뉴욕, 그러면서도 LP 턴테이블과 브라운관 TV가 공존하는 공간. <완다비전>(2021년)에서 1950년대 시트콤 감성을 완벽하게 재현했던 샤크먼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이 레트로 감성은 미적 장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1960년대는 달 착륙과 과학만능주의가 꽃피던 낙관의 시대였다. 모든 문제가 기술과 선의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정신을, 맷 샤크먼 감독은 의도적으로 2020년대로 소환했다. 냉소와 분열이 일상이 된 지금, "연대와 희망"이라는 가치를 다시 한번 제시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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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영화 속 '판타스틱 4'는 정치적 대립이나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선다. 그들의 행동 원리는 단순명쾌하다. 가족을 지키고, 나아가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 '갤럭투스'(랄프 이네슨 목소리)가 "아이를 내놓으면 지구를 살려주겠다"라고 제안할 때, 이들이 단호히 거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 하나의 희생으로 다수를 구원하는 것을 부정하고, 모두가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려 한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이 가족 영화로서는 분명 성공작이다. 페드로 파스칼과 바네사 커비가 연기한 '리드'와 '수잔' 부부의 케미스트리는 자연스럽고, 조셉 퀸과 에본 모스-바크라크가 보여주는 형제 같은 유대감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특히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적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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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것이 여름 블록버스터의 전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맷 샤크먼 감독이 "강강강으로 벌어지는 액션의 전시는 지양했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스펙터클을 절제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블록버스터 장르가 추구해야 할 핵심 요소들의 부재로 이어졌다.

'갤럭투스'라는 우주급 빌런을 상대하면서도 긴장감이 부족하고, 각 캐릭터의 고유한 능력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미스터 판타스틱'의 신체 변형 능력이나 '씽'의 압도적인 파워는 거의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 오히려 '갤럭투스'의 손가락에 잡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리드의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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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영화가 추구하는 가치관 자체의 현실적 괴리에 있다. 1960년대 미국의 낙관주의와 가족 중심주의는 분명 따뜻하고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2025년의 전 세계 관객들에게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올까? 영화 속에서 '수잔'이 전 세계에 호소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우리는 가족이고, 가족은 서로를 지켜야 한다"라는 메시지로 인류를 하나로 묶으려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1960년대적 배경 설정 덕분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TV 방송을 보고, 같은 정보를 공유하며, 팩트에 대한 합의가 가능했던 그 시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2020년대는 정반대다. 분열한 미디어, 팩트 체크가 무의미해진 포스트 트루스 시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라는 개념 자체가 파편화된 세상. 영화가 제시하는 해법이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오히려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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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제목 그대로 '첫걸음'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닥터 둠'으로 복귀하는 <어벤져스: 둠스데이>(2026년)로 가기 위한 브리지 역할이다. 하지만 징검다리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이 곧 단독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포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관객들은 다음 영화에 대한 예고편이 아니라, 지금 당장 만족할 만한 이야기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아쉬움이 크다.

10년 전 <판타스틱 4>가 어둡고 진부한 리부트로 실패했다면, 이번 작품은 너무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이전 <판타스틱 4> 프랜차이즈 작품들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것만으로는 위기의 마블을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

2025/07/23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 영화 리뷰
- 제목 :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The Fantastic Four: First Steps, 2025)
- 개봉일 : 2025. 07. 23.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14분
- 장르 : 액션, 판타지, SF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맷 샤크먼
- 출연 : 페드로 파스칼, 바네사 커비, 조셉 퀸, 에본 모스-바크라크, 랄프 이네슨 등
- 화면비율 : 2.39:1/1.90:1(IMAX)/1.43:1(IMAX 일부 장면)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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