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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장면은 압도적, 이야기는 스킵하고 싶은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73] <발레리나>

by 양미르 에디터
4564_4107_5123.jpg 사진 = 영화 '발레리나' ⓒ 판씨네마(주)

<존 윅> 유니버스의 첫 번째 스핀오프 영화, <발레리나>는 마치 훌륭한 액션 게임을 영화관에서 보는 경험 같았다. 액션 시퀀스만큼은 압도적이지만, 그 사이사이 끼워진 스토리 파트에서는 언제 다시 '플레이'가 시작될지 기다리게 되는 묘한 구조로 되어 있다. <발레리나>의 줄거리는 전형적인 복수극의 클리셰를 따른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는 암살자 조직 '루스카 로마'에서 발레리나이자 킬러로 성장한다.


'이브'는 아버지를 죽인 '컬트 조직'의 표식을 발견하고, '디렉터'(안젤리카 휴스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수의 여정을 시작한다. 프라하 '콘티넨탈'에서 '다니엘 파인'(노만 리더스)을 만나고, 그의 딸 '엘라'(아바 맥카시)를 구하려 하지만 '컬트'에게 납치당한다. '이브'의 여정은 마침내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의 '컬트' 본거지까지 이어진다. 그곳에서 '이브'는 놀라운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존 윅'(키아누 리브스)까지 '이브'를 막기 위해 할슈타트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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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것은 액션 시퀀스다. 렌 와이즈먼 감독이 <다이하드 4.0>(2007년)과 <언더월드> 시리즈에서 보여준 액션 연출 경험과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존 윅> 스타일이 결합되어 독특한 화학작용을 만들어낸다. 일례로, 무기상에서 벌어지는 수류탄 시퀀스는 가히 압권이다. 총을 하나도 구하지 못한 '이브'가 수류탄만으로 수십 명의 적을 상대하는 장면은 게임에서나 볼 법한 창의적 전투다.

할슈타트에서의 최종 대결은 문자 그대로 '보스 스테이지'다. 모든 주민이 킬러인 이 동화 같은 마을에서 '이브'는 혼자 수백 명을 상대해야 한다. 화염방사기와 소방호스의 대결, 스케이트를 무기로 활용하는 장면, 접시를 깨뜨리며 벌이는 근접전 등은 <존 윅> 시리즈가 추구해온 '창의적 살인술'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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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액션 스타일은 '존 윅'과 명확히 구별된다. 스승 '노기'(샤론 던컨 브루스터)가 말하는 "여자처럼 싸워라"라는 조언은 '성별 구분'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의 전환을 의미한다. 힘으로 압도할 수 없다면 지혜로 상황을 지배하라는 것. '이브'는 주변의 모든 사물을 무기화하고,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며, 예측 불가능한 각도에서 공격한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이런 콘셉트를 몸짓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007 노 타임 투 다이>(2021년)에서 보여준 10분의 액션이 예고편이었다면, <발레리나>는 진짜에 가깝다. 스턴트 팀과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체득한 아나 데 아르마스의 움직임은 발레의 우아함과 킬러의 잔혹함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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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액션이 멈춘 순간, 영화는 급격히 평범해진다. '이브'의 복수 동기는 뻔하고, 캐릭터의 내면 탐구는 표면적이다. "그 분노를 퍼부을 곳을 주마", "내 아버지를 죽인 놈이에요" 같은 대사들은 게임 NPC의 퀘스트 설명 같은 어색함을 드러낸다. '존 윅'이 "개 한 마리" 때문에 복수에 나선다는 설정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그 동기 자체보다 키아누 리브스라는 배우의 아우라와 액션의 스타일리시함 때문이었다. <발레리나>는 더 정당한 복수 동기를 제시하지만, 정작 그것을 뒷받침할 감정적 무게는 부족하다.

<발레리나>는 분명 '게임 같은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 액션 시퀀스가 하나의 스테이지처럼 설계되어 있고, '이브'의 성장은 레벨업과 닮아있다. 새로운 무기를 습득하고, 더 강한 적과 싸우며, 마침내 최종 보스를 물리치는 구조는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영화는 게임이 아니다. 관객은 스크린을 조작할 수 없고,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차기작에서는 '로딩 타임' 없이 계속 '플레이'하고 싶게 만드는 완성도를 기대해 본다. ★★★

2025/07/28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발레리나> (Ballerina, 2025)
- 개봉일 : 2025. 08. 06.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25분
- 장르 : 액션, 스릴러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렌 와이즈먼
- 출연 : 아나 데 아르마스, 키아누 리브스, 안젤리카 휴스턴, 가브리엘 번, 노만 리더스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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