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76] <수연의 선율>
※ 영화 <수연의 선율>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겨진 13살 '수연'(김보민)은 보육시설행을 피하고자 스스로 보호자를 찾아 나선다. 친구네 가족, 교회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모두가 표면적인 동정만을 보일 뿐 진정한 울타리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연'은 또래 남자아이로부터 위협적인 상황에 노출되며 세상의 냉혹함을 체감한다.
그러던 중 '수연'은 유튜브에서 표현성 언어장애를 가진 7살 '선율'(최이랑)을 입양한 부부의 브이로그를 발견한다. 이들이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할 계획이 있다는 말에 희망을 품은 '수연'은 치밀하게 계산된 접근을 시작한다. 우연을 가장해 '선율'과 친해지고, '선율'의 엄마 '유리'(김현정)가 좋아한다는 갈치조림을 직접 만들어 가져가며 자신의 유용함을 어필한다. 13살 아이가 보여주는 이런 영악함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임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수연'이 꿈꾸던 완벽한 가족의 실체는 점차 드러난다. '선율'은 '수연' 앞에서는 똑똑하고 말을 잘하지만, 부모 앞에서는 의도적으로 언어장애 연기를 한다. "말 잘 듣고 착하게 굴어야 사랑받아"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선율'의 모습은 '수연'만큼이나 전략적이다. 결국 '유리'와 '태호'(진대연) 부부는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고, 두 아이는 진짜 가족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한 <수연의 선율>에서 섬뜩한 장면 중 하나는 '수연'이 '율율가족'의 일원이 된 후 함께 TV를 보는 몽타주다. 이때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푸어 리틀 리치 걸>(1917년)이다. 이 고전 영화는 부유하지만 부모의 '관심 없이' 하인들 손에 맡겨진 11살 소녀 '그웬돌린'(메리 픽포드)의 이야기를 그린다. 놀랍게도 100년 전 '그웬돌린'과 현재의 '수연', '선율'은 경제적 상황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서적으로 방치된 '그웬돌린', 가난 속에서 진정한 보호자를 찾아 헤매는 '수연'과 '선율'. 장편 데뷔에 나선 최종룡 감독이 이 레퍼런스를 삽입한 것은 오마주를 넘어,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무관심과 책임 회피가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문제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율율가족'이 이 영화를 보며 웃는 장면은 소름 끼치도록 계산된 연출이다. 자신들이 바로 영화 속 무관심한 어른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100년 전 아이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모습이 그들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최종룡 감독은 "기존의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아이를 "돌봐야 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스스로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성장하는 대상"으로 바라봤다고 했다. 이런 관점이 <수연의 선율>을 기존의 아동 영화와 차별화시키는 핵심이다. 방과 후 학교 강사로 수백 명의 아이들을 만난 경험을 가진 감독은 "학교에서 만났던 수백 명의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수연의 선율>은 쓰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현장 경험이 영화 속 아이들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강종수 촬영감독과 함께 만들어낸 이 영화의 시각적 언어도 주목할 만하다. 조명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연광만으로 촬영한 것은 아역 배우들이 최대한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점점 물이 차오르듯 선명해지는 블루톤 색감은 영화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수연'의 감정 변화에 따라 카메라 워크가 변화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초반 '수연의'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앵글을 비껴 찍고 핸드헬드로 위태로움을 표현했다가, '율율가족'의 집에서는 안정된 화면을 구성하고, 다시 아이들만 남았을 때는 핸드헬드로 돌아가는 식이다. 최 감독의 말처럼 "'수연'의 성장과 닮은" 촬영이었다.
한편, 영화는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된 '수연'이 보육원에 있는 '선율'을 멀리서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다가가지도, 부르지도 못하는 '수연'의 모습에서 우리는 '수연'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눈물 어린 시선 속에는 여전히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남아있다.
결국, <수연의 선율>이 남기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어른들의 보호와 돌봄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서부터가 전시인가? 1917년에도, 2025년에도 반복되는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
2025/08/06 메가박스 군자
※ 영화 리뷰
- 제목 : <수연의 선율> (Waterdrop, 2025)
- 개봉일 : 2025. 08. 06.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8분
- 장르 : 가족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최종룡
- 출연 : 김보민, 최이랑, 김현정, 진대연, 최승원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