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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스위트룸에서 펼쳐지는 심리전의 명암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87] <살인자 리포트>

by 양미르 에디터
4635_4358_180.jpg 사진 = 영화 '살인자 리포트'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조영준 감독의 신작 <살인자 리포트>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실험을 감행한다. 연쇄살인범과 기자의 1:1 인터뷰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107분을 끌어가는 '밀착 인터뷰 스릴러'를 표방하며, 제한된 공간에서 오롯이 배우들의 연기력에 의존한 작품이다.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시도의 가치는 인정되지만,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베테랑 사회부 기자 '백선주'(조여정)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전화의 주인공은 자신이 11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 '이영훈'(정성일)이다. 그는 '선주'에게 독점 인터뷰를 제안하며, 조건을 내건다. "기자님께서 인터뷰에 응하면 피해자를 살릴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특종이 간절한 '선주'는 위험을 감수하고 '영훈'이 지정한 호텔 스위트룸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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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의 연인이자 강력계 형사인 '한상우'(김태한)는 연인의 안전을 위해 아래층에서 몰래 인터뷰 상황을 감시한다. 도청 장치를 통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으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그는 이 기괴한 인터뷰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호텔 스위트룸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훈'은 자신의 살인이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의료행위였다고 주장하며, '선주'를 혼란에 빠뜨린다.

<살인자 리포트>의 핵심은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심리전에 있다. 초반에는 '선주'가 인터뷰의 주도권을 잡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훈'이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는 '선주'가 방을 나가려 하면 "지금 인터뷰를 멈추면 또 한 명이 살해될 것"이라며 협박한다. 이로써 '선주'는 호텔 스위트룸에 발이 묶이게 되고, '영훈'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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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지하 주차장에서 성폭행당한 임신한 아내가 정신적 트라우마로 아기와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비극적인 사연이 그의 살인 동기라고 설명한다. 아내와 태아를 잃은 후 폐인이 되었던 그는, 자신처럼 파렴치한 범죄로 인해 가정이 파괴된 환자를 돕기 위해 첫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의사로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었다며 자신만의 논리를 펼친다.

조영준 감독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밀폐된 공간에 연쇄살인범과 함께 있다면 어떤 공포를 느끼게 될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기획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살인자 리포트>는 혀로 대결하는 칼싸움이라는 콘셉트"라며 "말과 논리로 서로를 공격하고, 또 말과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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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호텔 스위트룸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캐릭터처럼 활용하려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감독은 "호텔 스위트 룸이라는 공간이 스스로 변화해 가고, 만듦새가 달라지는 느낌으로 공간을 캐릭터화하자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 같은 공간임에도 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따라 조명의 색상과 분위기가 달라지며, 자연광과 인공조명의 대비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살인자 리포트>의 가장 큰 강점은 조여정과 정성일의 연기력이다.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이 만들어내는 심리전은 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조여정이 연기한 '선주'는 냉철한 기자로서의 면모와 점차 드러나는 인간적 불안감 사이를 오가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한다. 정성일의 '영훈'은 차분하고 논리적인 듯하면서도 그 이면에 깔린 광기를 절제된 연기로 표현한다. 질문과 답변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관객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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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리포트>가 완벽하지 않은 건 중간 부분에서 드러나는 템포의 문제다. 강렬한 설정으로 시작해 후반부 클라이맥스로 치달아가는 구조에서, 정작 중간 부분의 대화들이 예측할 수 있는 패턴으로 길어지면서 루즈한 느낌을 준다. '영훈'이 자신의 과거사와 살인 동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관객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1:1 인터뷰라는 형식 자체가 가진 한계도 명확하다. 아무리 뛰어난 두 배우가 열연을 펼쳐도, 같은 공간에서 앉아서 나누는 대화만으로 107분을 끌어가기에는 시각적 단조로움이 따른다.

또한, 후반부에 등장하는 반전들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는 점도 아쉽다. 관객들이 중반부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전개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서스펜스의 효과가 반감된다. 사적 복수와 정의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지만, 그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이나 성찰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

2025/08/28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살인자 리포트> (Murder Report, 2025)
- 개봉일 : 2025. 09. 05.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7분
- 장르 : 드라마, 스릴러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조영준
- 출연 : 조여정, 정성일, 김태한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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