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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재미보다는 기저에 깔린 메시지가 더 큰 영화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92] <얼굴>

by 양미르 에디터
4663_4448_2258.jpg 사진 = 영화 '얼굴'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연상호 감독이 2억 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완성한 <얼굴>은 미스터리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본질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을 파헤치는 사회 고발 드라마다. 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해외에서도 주목받은 <얼굴>은 외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그로 인한 사회적 배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영화는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전각(도장 조각) 분야의 최고 장인으로 인정받는 '임영규'(권해효)의 삶에서 시작된다.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그는 아들 '임동환'(박정민)과 함께 '청풍전각'이라는 공방을 운영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큐멘터리 PD '김수진'(한지현)이 '임영규'를 취재하던 중, '동환'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40년 전 가출한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백골 시신이 야산에서 발견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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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 나타난 외가 친척들은 '정영희'에 대해 "못생겼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영정사진조차 없다는 사실에 '동환'은 당황한다.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들과 시각장애인인 아버지, 그리고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여인의 미스터리한 죽음. '수진'은 이 이야기에서 '대박' 소재의 가능성을 직감하고 '동환'을 설득해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5개의 인터뷰 챕터로 구성된 영화는 점진적으로 '정영희'의 삶을 복원해 나간다. '영희'가 일했던 의류공장의 동료들, 재봉사, 그리고 공장 사장 '백주상'(임성재)까지, 모든 증언자는 한결같이 '정영희'를 '괴물', '똥걸레' 같은 극단적 표현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들의 증언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영희'가 외모로 인해 받았던 차별뿐만 아니라, 불의에 맞서는 '영희'의 용기와 선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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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얼굴>에 대해 "'성장 중심'의 시대를 겪어온 근현대사에 대한 우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임에도 시각예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임영규'는 한국의 성장 중심 시대의 역경을 이겨낸 인재이며, 그 반대편에는 성장과 성취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가려진 혐오를 온몸으로 겪은 '정영희'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얼굴>의 핵심은 '보는 것'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임영규'가 "못 보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이 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오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그는 "우리 같이 못 보는 사람일수록 아름다운 게 뭘까 정말 많이 생각해"라며 진정한 아름다움의 의미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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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가 '임영규'에게 던지는 "나쁜 사람이 착한 척을 하면 착한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라는 질문 역시 이 작품의 메시지를 집약한다. 외모라는 겉모습에 가려진 인간의 진정한 얼굴,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얼굴>을 관람하며 느낀 아쉬움도 존재한다. 먼저, 5개의 인터뷰 챕터로 이루어진 구성의 반복성이다. 인터뷰마다 "'정영희'는 못생겼다"라는 동일한 증언이 반복되면서, 중반 이후부터는 새로운 정보보다는 기존 내용의 변주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플래시백 장면들 역시 인터뷰 내용을 시각화하는 수준에 머물러, 독립적인 서사로서의 힘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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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의 얼굴을 끝까지 숨기는 연출 역시 양날의 검이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동시에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원초적 궁금증에 의존하는 측면도 있다. 이는 작품이 비판하고자 하는 외모 지상주의와 묘하게 맞닿아 있어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캐릭터들의 선악 구분 역시 지나치게 명확하다. '정영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이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면서, 현실의 복잡함보다는 도식적인 구조에 갇힌 느낌이다. 미스터리 장르로서의 긴장감보다는 사회적 메시지 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장르적 재미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다.

<얼굴>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메시지는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SNS 시대의 외모 지상주의, 채용 과정에서의 이미지 평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등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들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장르적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사회적 성찰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오래도록 남을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되겠다. ★★★

2025/09/10 메가박스 코엑스

※ 영화 리뷰
- 제목 : <얼굴> (The Ugly, 2025)
- 개봉일 : 2025. 09. 11.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3분
- 장르 : 미스터리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연상호
- 출연 :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한지현, 임성재 등
- 화면비율 : 2.3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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