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96]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체인소 맨>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악마'와 '인간'이 공존하는 현대 일본이다. 인간의 공포가 실체화되어 탄생한 악마들은 인간을 위협하고, 이에 맞서는 '데블 헌터'들이 존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계에서 사랑이나 유대감 같은 인간적 감정들이 종종 치명적인 약점이 되거나 파괴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바로 그런 위험한 감정의 이중성을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두 개의 상반된 언어로 이야기한다. 하나는 피와 폭발음으로 점철된 파괴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어색한 침묵과 설렘으로 가득한 청춘의 언어다. 이 두 언어가 만날 때 생기는 부조화야말로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자,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공안 특이 4과 소속 데블 헌터로 활동 중인 '덴지'(토야 키쿠노스케 목소리)의 일상은 여전히 소년답다. '마키마'(쿠스노키 토모리 목소리)에 대한 짝사랑에 빠져 있으면서도 가슴속 어딘가에는 평범한 행복에 대한 갈망을 숨기고 있다. 그런 그에게 소나기를 피하며 만난 '레제'(우에다 레이나 목소리)는 새로운 감정의 파장을 일으킨다.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소녀. 함께 수영장에 가고, 불꽃놀이를 보며,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들은 '덴지'에게 있어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평범함'의 달콤함이었다.
하지만 '레제'의 진짜 얼굴은 목 옆 안전핀 하나로 완전히 바뀐다. 폭탄의 악마의 심장을 가진 무기 인간으로서의 정체를 드러낸 '레제'는 신체 일부를 폭발물로 활용하며 도시 전체를 전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체인소 맨'으로 각성한 '덴지'와의 대결은 고층 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며 펼쳐지고, 연쇄 폭발과 전기톱 날의 마찰음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은 더욱 복잡하게 얽혀간다. 이것은 사랑을 위한 싸움인가, 아니면 파괴를 위한 사랑인가?
TV 시리즈에서 액션 감독을 맡았던 요시하라 타츠야가 연출을 맡은 이번 극장판은 확실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캐릭터 눈의 하이라이트를 제거하고 음영의 양을 줄였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꽤 과감한 선택이었다. "눈이 '생기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체인소 맨'이 가지고 있는 '매력'의 일부"라는 그의 설명처럼, 캐릭터들은 더욱 원작의 질감에 가까워졌다.
특히 '마키마'의 동심원 모양 눈동자는 영화 전체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덴지'와 '레제'의 로맨스가 주축이 됨에도 불구하고 '마키마'의 존재감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이는 요시하라 감독이 의도한 바일 터인데, 후지모토 타츠키의 예술적 감성을 스크린으로 옮기기 위해 "원작의 표현력을 그대로 이어가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액션 시퀀스에 있어서는 제작사 MAPPA의 기술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레제'가 구사하는 폭발 기술들의 다채로운 변주와 '체인소 맨'의 역동적인 근접 전투는 시각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음악적 완성도는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강점 중 하나다. 요네즈 켄시가 작업한 주제곡 'IRIS OUT'에 대한 그의 작업 과정 설명은 인상적이다. "원작에서 '레제'가 나오는 페이지를 펼쳐 두고 하루종일 보면서 곡을 만들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곡에는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스며있다. 다이내믹한 팝 멜로디와 강렬한 랩 비트가 만들어내는 대조는 '덴지'와 '레제'의 관계가 품고 있는 이중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원작자 후지모토 타츠키가 레제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언급한 배경에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인랑>(1999년)에서 받은 영감이 있다. <인랑>은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인간의 감정을 억제한 채 살아가는 특수부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작품 속 주인공 '케이'(무토 스미 목소리)가 보여주는 순수함과 동시에 체제의 도구로서 기능하는 이중적 존재감이 '레제' 캐릭터 창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터.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분명히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이다. 사랑과 파괴, 순수함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두 청소년이 만나 벌이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과 위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면, 100분이라는 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약간의 흔들림을 보인다. 그럼에도 <체인소 맨>이라는 IP가 가진 독특함과 잠재력만큼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
2025/09/22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Chainsaw Man - The Movie: Reze Arc, 2025)
- 개봉일 : 2025. 09. 24.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03분
- 장르 : 애니메이션, 액션, 모험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요시하라 타츠야
- 목소리 출연 : 토야 키쿠노스케, 우에다 레이나, 파이루즈 아이, 쿠스노키 토모리, 사카타 쇼고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