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00] <미러 넘버 3>
※ 영화 '미러 넘버 3'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펫졸드의 신작 <미러 넘버 3>는 8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두 여성의 만남을 통해 상실이 어떻게 또 다른 상실을 위로하고, 동시에 서로를 속이는지를 보여준다. '라우라'(폴라 비어)는 교통사고로 남자친구를 잃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잃었다기보다는 해방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영화는 사고 직전 '라우라'의 표정에서, 이미 '라우라'가 이 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음을 암시한다.
사고 현장 근처에 살던 중년 여성 '베티'(바바라 오어)는 '라우라'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돌본다. 구급대원이 병원 이송을 권유하지만, '라우라'는 거부한다. '라우라'는 베를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던 것. '베티'의 집은 곳곳이 고장 나 있다. 수도꼭지는 새고, 식기세척기는 작동하지 않으며, 피아노는 조율이 필요하다. 그리고 '베티'의 남편 '리하르트'(매티아스 브랜트)와 아들 '맥스'(엔노 트렙스)는 따로 살면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한다.
'라우라'가 요리를 하겠다고 제안하자 '베티'는 쾨니히스베르크 만두(과거 동프로이센 지역의 음식으로, 현재는 러시아의 영토다. 이 음식 역시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은유가 된다)가 남편과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그리고 부엌에서 '라우라'가 나타나는 순간, 두 남자는 유령을 본 듯 얼어붙는다.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은 <미러 넘버 3>의 첫 영감이 난파 이미지였다고 밝혔다. 바다 위에서 여러 사람이 뗏목에 올라타려 애쓰는 장면. 영화 속 모든 인물과 사물이 난파되어 있고, 부서져 있는 것인데, 감독이 흥미로워하는 건 '어떻게 사람들이 부서진 것을 다시 고치기 시작하는가'였다. '리하르트'와 '맥스'는 정비공이지만 그들이 고치는 건 자동차만이 아니다. '베티'는 원래 오프닝에서 '라우라'에게 더 많은 배경 이야기를 부여하는 장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 있는 모습,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장면 등 5~7분 분량이었으나 모두 잘라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작품에서 우리는 '앨리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지 않느냐"라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라우라'의 전사는 짐처럼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가족과의 접촉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 '베티'는 '라우라'를 보살피면서 가끔 실수로 죽은 딸 이름인 '옐레나'라고 부른다. '라우라'에게 건네는 옷은 '옐레나'누군가의 것이고, 피아노 연주를 요청할 때 '베티'의 눈빛은 무언가를 간절히 되돌리려는 사람의 것이다.
영화는 '베티'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서히 드러내지만, 그 반전은 펫졸드 감독이 의도적으로 일찍 노출시킨다. 중요한 건 비밀 자체가 아니라 그 비밀이 네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이기 때문이다. 폴라 비어는 이 새로운 시작이 펫졸드 감독의 전작인 <운디네>(2020년)에서 무언가를 가져온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라우라'는 물에서 온 존재이지만 이 땅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미러 넘버 3>의 제목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모음곡 '거울(Miroirs)'의 세 번째 곡 '바다 위의 조각배'에서 왔다. '라우라'가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은 영화의 중심축이다. '베티'는 환희에 차지만 '리하르트'와 '맥스'는 불편해한다. 음악은 펫졸드 감독 영화에서 외부에서 오는 신적 화자가 아니다. 인물들이 직접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세상의 소리를 듣고,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을 보고 듣는다. 그들이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영화의 결말에 대한 고민은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이 문학과 영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문학에서는 낭만적인 마지막 문장을 쓸 수 있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하루 24시간 내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거짓말을 시작하는 순간 바로 들통난다"라는 감독의 말은 <미러 넘버 3>가 작동하는 방식을 정확히 설명한다. '베티'와 '라우라'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베티'는 '라우라'를 죽은 딸 '옐레나'의 대리인으로 대하고, '라우라'는 베를린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거짓말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짓말이 일시적으로 네 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개의 빈 공간이 우연히 만나 서로를 채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충족은 착시에 가깝다. '베티'의 시골집은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라우라'에게 피난처가 되고, '라우라'의 존재는 '옐레나'가 없는 집을 다시 예전처럼 작동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균형은 애초에 거짓 위에 세워진 것이라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영화가 흥미로운 건 그 무너짐을 파국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우라'가 진실을 알고 분노할 때, 그 분노는 배신당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머물던 환상이 깨진 데서 오는 상실감에 더 가깝다. <미러 넘버 3>가 펫졸드의 대표작들 만큼 강렬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심리적 깊이도 얕고, 반전도 너무 일찍 예측된다.
그래도 86분 동안 독일 시골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네 사람이 서로의 상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라우라'는 결국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 '베티' 가족도 '옐레나' 없는 삶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다르다. 부서진 것을 버리지 않고 고치려 애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때로는 고치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
2025/09/26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미러 넘버 3> (Mirrors No. 3, 2025)
- 개봉일 : 2025. 10. 01.
- 제작국 : 독일
- 러닝타임 : 86분
-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크리스티안 펫졸드
- 출연 : 폴라 비어, 바바라 오어, 엔노 트렙스, 매티아스 브랜트, 필리프 프루아상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