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03] <보스>
1999년 '용두시'를 주름잡던 조직 '식구파'는 중식당 '미미루'를 거점으로 세력을 키워왔다. 보스 '임대수'(이성민)를 정점으로, 조직의 2인자 '나순태'(조우진), 적통 후계자 '동강표'(정경호), 그리고 넘버3 '조판호'(박지환)는 한때 의기투합했던 형제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그들을 각자의 길로 이끌었다. '순태'는 아내 '지영'(황우슬혜)과 함께 '미미루'를 프랜차이즈화하려는 꿈을 키웠고, '강표'는 감옥에서 우연히 접한 탱고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각자 조직을 떠날 준비를 하던 중 보스 '대수'가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빚더미에 앉은 조직은 차기 보스를 선출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순태'와 '강표'를 후보로 지목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보스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 중식 프랜차이즈 계약서에 이미 도장을 찍은 '순태'는 위약금 5배를 물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탱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강표'는 조직보다 춤을 택한다.
반면, 유일하게 보스를 갈망하는 '판호'는 신용불량자라는 이유로 후보에서 탈락한다. 이렇게 보스가 되기 싫은 사람들의 양보 전쟁이 시작되고, 10년째 조직에 잠입 중인 언더커버 경찰 '태규'(이규형)가 이 혼란을 관찰한다. <보스>의 메가폰을 잡은 라희찬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코미디다. 액션 역시 코미디라는 포인트를 주면서 구사하려 했다." 이 발언이 역설적으로 영화의 문제를 정확히 보여준다.
'편하게 웃는다'는 것과 '재미있다'는 것은 다르다. 2025년 관객은 더 이상 "뭐 명절이니까"라는 이유로 극장에 가지 않는다. 라희찬 감독은 <바르게 살자>(2007년)로 데뷔했고, 이번에도 '조폭'이라는 소재를 비틀어 신선함을 꾀했다고 주장한다. 보스가 되기 싫어하는 조폭이라는 역발상, 요리사와 댄서를 꿈꾸는 본캐-부캐 설정. 기획서로는 그럴듯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기획서가 아니라 스크린에서 말해야 한다. 98분 내내 이 "신선한 설정"은 반복될 뿐, 발전하지 않는다.
'순태'가 보스를 거부하는 이유, '강표'가 탱고를 선택하는 이유는 이른 시간에 모두 제시되고, 나머지 시간은 같은 상황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혀 되풀이한다. 조우진은 '순태'를 위해 여경래 셰프에게 직접 요리를 배웠고, 정경호는 3개월간 매일 탱고 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배우들의 성실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 열정이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아무리 요리를 잘하고 춤을 잘 춰도, 그것이 웃음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코미디 영화로서는 실패다.
여기에 <보스>는 현실을 관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영화로 번역하는 데는 실패했다. "조폭이 무섭지 않고 창피한 존재"라는 설정은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다. 실제로 '순태'의 딸이 "아빠가 조폭이라서 친구들한테 창피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포착한다. 조폭은 이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고, 낭만이 아니라 민망함의 영역에 속한다.
문제는 이 인식을 다루는 방식이 여전히 2000년대 조폭 코미디의 문법을 따른다는 것이다. 조폭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 의리와 식구를 강조하는 방식, 과장된 액션으로 긴장을 푸는 방식. 모든 것이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시리즈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2025년의 눈으로 조폭을 바라보면서, 정작 영화를 만드는 손은 2000년의 도구를 쥐고 있는 셈이다.
캔의 '내 생애 봄날은'을 OST로 사용한 것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노래는 드라마 <피아노>의 테마곡으로, 한때 조폭물의 감성을 대표했다. "비겁하다 욕하지 마,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고 다녀도"라는 가사는 조폭을 낭만화하던 시대의 유물이다. 영화는 이 곡을 두 번이나 통으로 삽입하며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려 했지만, 역효과만 냈다. 관객은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하는 대신, "아, 옛날 조폭 영화들이 이랬지" 하고 과거를 떠올린다. 레트로가 아니라 올드함이다. 추억이 아니라 낡음이다.
2025년에 조폭을 다루려면, 2025년의 방식이 필요하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조폭을 응징의 대상으로, <신세계>(2013년)는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재해석했다. <보스>는 조폭을 "창피한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을 귀엽게 포장하려 든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렌즈는 그대로다. 이 어긋남이 영화 전체를 어색하게 만든다.
또한, 추석 코미디라는 공식 자체는 낡은 것이다. 공식을 비틀었다고 주장하지만, 비트는 방식마저 공식적이다. 2025년 극장가는 더 이상 "명절이니까"라는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관객은 웃고 싶어서 코미디를 보러 오는 것이지, 추석이라서 코미디를 보러 오는 게 아니다. <보스>는 그 근본적인 질문을 놓쳤다.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
2025/09/30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보스> (Boss, 2025)
- 개봉일 : 2025. 10. 03.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98분
- 장르 : 코미디, 액션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라희찬
- 출연 : 조우진, 정경호, 박지환, 이규형, 오달수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