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뽁띵 현 미니구미는 2020년 늦가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태어난 지인들의 출산 경험을 들어보면
살짝, 나의 경험과는 다른 부분들이 있어, 그 당시에도 신기하다 싶은 모습들이었다.
- 입원수속. 내가 직접 요청한 병원복
나는 아침 7시반에 입원 수속을 밟았었다. 내 발로 걸어 들어간 병원이긴했는데
그날따라 새벽에 집히는 대로 입었던 옷은 목이 올라오는 까끌거리는 스웨터와
밴딩 고무줄의 롱 치마.
병원 입원 수속 밟으면 당연히 환자복부터 주겠지- 라는 생각과 다르게
오후까지도 나는 까끌거리는 목이 갑갑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ㅎㅎ
입고 온 옷 그대로 자궁 수축 연결선을 붙이고 누워있었다는.
"아니 언제 환자복 주는거야? 목이 갑갑해서 죽겠네. 헤바메(조산사)한테 병원 옷좀
달라고 해줘요."
남편이 두리번두리번 헤바메를 찾아서 겨우 받아가지고 온 환자복 덕에
갑갑증을 벗었다는.
- 무통 주사는 끝까지.
한국에서 들었던 많은 후기중에
'무통은 8센티 정도 열리면 더 안놔주더라고요'
'무통 놔달라고 했는데 무통 안받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등등의 후기들이 많아서, 진통 한참 할때마다 무통 타령을 했던 나였지만
나중에 무통 안놔줄까봐 정말 겁을 집어먹긴 했었다.
(병원 찾을때부터 가장 먼저 알아놨던 단어가 무통 PDA 였다 ㅎㅎㅎ 남편에게 내가 헛소리를 하게되면
세상없어도 저 단어만 알고있으라고 주입시킴.)
겨우겨우 3-4센티 정도 자궁문이 열려 무통을 맞을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PDA Bitte!!"를 외쳤고
무통 주사는 등 가운데 주사를 놓는 식이라... 마취과에서 사람이 오고 나를 케어해주던 헤바메가
반대편에서 나를 안고 토닥여주었지만...사실 주사 맞는게 아픈줄도 몰랐더랬다(정말!!!)
무통 마취제가 등 가운데로 들어가는 그 싸-한 느낌만 기억날 뿐,
그 뒤로 아주 편-안- 한 상태가 되어 진통때에 수축이 90,100을 치솟는 순간에도
아주 편안한-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더랬다.^^
남편은 등 가운데에 주사 꽂는 걸 정말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보고있었는데(으으)
막상 나는 주사고 뭐고 그저 무통 빨리 놔주세요- 라는 마음뿐이었다는...
출산 후 주사바늘 뺄 때서야 으악, 거렸더랬다.
보통 무통이 약 2-3시간 갈거라는 의사의 말에 안심하고 있던 남편과 달리
약 2시간 조금 지나자 뭔가 다시 욱신거리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나는 남편을 닦달하기에 이르렀고
아직 시간 남았는데..? 라며 갸웃거리던 남편은 서둘러 복도로 쫓겨 나가 여러번 헤바메를 호출했더랬다.
어느덧 자궁문이 거의 다 열렸다고 했는데도 여기는 막판까지 무통을 주사해줬고
그래서 사실 무통빨을 정말 톡톡히 봤다. 무통 만세.
(사실 중반부터 무통때문에 진통은 못느꼈지만 - 무통이 참 잘받았었나보다 - 수축 그래프에 맞춰
진통오는 시점에 힘을 주며 아기가 내려오게 돕고 있었는데, 후반부에 들어가서는 의사와 헤바메가
더이상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마 어느정도 아기 머리가 내려왔다 싶어 뽑아(?) 내려고 했던 모양.
그러나... 미니구미는 우리의 계획대로 나와주지 않았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