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이웃이여
오늘도 10시 좀 넘어서 커피 마시러 가자고 꼬드기는 남편을 따라 못이기는 척 하고 나왔다.
밖은 꼭 눈 올 것 같은 흐린 날이다.
어제 맞은 독감 예방주사로 몸이 욱씬 거리지만, 남편 말을 하늘같이 여기는 조신한 문부인은 대충 머리에 물칠만 하고 남편을 따라 나선다. 하늘같은 남편은 조신한 문부인의 눈꼽을 떼준다.
카페에선 영화 <Once>의 OST가 흐른다.
머리를 리듬에 따라 흔들기도 하고, 발을 까딱까딱..
몸으로 음악을 느끼면서 커피타임을 즐기는데 창 밖에서 왠 실랑이가, 아니, 일방적으로 왠 중년 남자가 푸드트럭의 젊은 아줌마를 다그치는 소리가 토요일 카페에서의 오전 평화로움을 깬다.
저 남자, 왜 자기 차에 푸드트럭을 바짝 붙여서 차가 잘 못 빠져 나오게 하느냐며 화를 낸다.
이미 차는 빠져 나와 있는 상태였는데 말이다.
남편과 나는 이 빨간 푸드트럭에서 몇 번 타코야키를 산 적이 있다.
카페 거리의 만남교 인근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이 자리는 주로 푸드트럭들이 선호하는 자리이다.
행인에게 시식을 권하는 중학생 아들이 우리 아들 또래라서 우리끼리 '아들내미 참 착하구나..'라며 칭찬도 했었다.
그런데 저 아저씨..푸드트럭 아들들 보는데서 막 화를 낸다.
작은 아이는 추워서 트럭 안에 있고, 큰 아이는 엄마 주변을 안떠나고 있다.
트럭 아줌마는 죄송하다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뭐, 저런 시베리아개 좌석같은 넘이!"
조신한 문부인 입에서 튀어 나오는 방언 타임..
나보다 못산다고 생각되면 누구든 무시하고 보는 사람들 때문에 점점 더 망할 넘의 나라꼴로 치닫는다며 나는 또 핏대를 세운다.
남편도 속이 상한지 한숨을 연신 내뱉는다.
우리의 평온한 커피 타임은 이렇게 끝났다.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하는 젊은 푸드트럭 아줌마와 그 옆에서 엄마를 어설프게 지키려는 중학생 아들을 보니 우리 부부가 지금 카페에서 모닝 커피를 즐기는 이 순간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다.
"우리 훈이도 시식 그릇 들고 다니면서 행인들에게 시식을 권할 수 있을까?"
남편이 묻는다.
어째 , 화살이 훈이에게로 돌아간다.
"수미도 짬뽕집에서 알바하는 것 보면 훈이도 뭐든 할 것 같기는 한데..모르지, 뭐. 제대로 잘 키워야지. 적어도 당신이 저런 안하무인한 아빠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아무튼 좀 잘 하란 말이야!"
조신한 문부인의 끝은 항상 남편 잡기이다.
어떤 상황으로도 엔딩이 늘 같은 신기의 문감독표 몰아가기에 남자주인공은 20년 째 어리둥절하다.
싸한 날씨, 아직 이른 주말 오전이라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 우리가 기분 좋은 첫 손님이 되어 주자며 카페를 일찍 나와 푸드트럭 앞으로 걸으니, 예의 잘 생긴 중학생 아들이 시식을 권한다.
"야, 진짜 맛있다. 고마워~"
그리고 제일 비싼 걸 주문했다.
고작 4천원..
많이 파시라고 일부러 더 밝게 인사를 건네고, 남편과 나는 코 끝 시린 추운 날씨에 치즈어묵볼을 나 하나~, 너 네개~먹으면서 만남교를 지나 예정에 없던 산책을 한다.
각박한 세상을 만드는 이는 바로 나, 그리고 당신일 수 있다.
응팔의 쌍문동 골목의 정을 그리워만 할 게 아니라, 우리는 못 살던 시절의 정을 함께 나누던 그 마음을 기억하고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응답하라, 이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