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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도시 이야기 #1 - 방콕의 재미난 현지 투어

매끌렁 위험한 기찻길 시장, 미드나잇 스트리트 푸드 투어

by 달의 노래


<방콕은 교통이 소화불량입니다>


방콕 도착 이튿날 아침에 매끌렁 기찻길 시장과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7시까지 아속 역 맥도널드 앞으로 가야 한다.

다국적 여행객들의 투어라 영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황급하게 씻고 6시 30분쯤 그랩 택시를 불렀다. 구글맵상으로는 겨우 4.5킬로 떨어져 있다. 아파트 로비에 약간 늦게 도착한 그랩 택시를 타고 아속 역을 향하여 달렸지만, 달렸지만.. 우리의 마음만 달릴 뿐 택시는 못 달렸다. 방콕은 교통체증의 천국 아니 지옥이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우리의 조급함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느새 시간은 6시 50분을 넘어간다. 신호를 하나 건널 때마다 족히 5분은 지나가는 것 같다.

영어 소통이 되지 않으니 그와 우린 번역 앱을 사용한다. 태국어와 한국어가 만나는 시간이다.


"7시까지 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요?"

"방콕은 교통이 소화불량입니다."

"몇 시까지 갈 수 있나요?"

"방콕은 교통이 체해서 늦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기사 아저씨와 우리는 웃음이 빵빵 터진다.

내 머릿속에선 투어 버스를 놓쳤을 경우를 대비해 오늘 어디를 가야 하나 생각이 복잡하지만 상황이 웃겨서 키득키득거리기를 반복하며 그와의 번역 앱 대화를 즐겼다.


"우린 망했어요."


지나가 친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기사 아저씨는 숨이 넘어가도록 웃는다.

으하하하하하..

망하면 뭐 어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속 역에 내리니 시간은 7시 25분이다.

흰색 밴에서 웬 아저씨가 내리더니 "매끌렁?" 한다.


"예에스~~ 매끌렁!"

"아 유 무운?"

"예스 예스, 아 엠 문!"


결국 우리는 마지막 멤버가 되어 하얀 밴에 탔다.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지만 밴 안에 탄 사람들은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우리보다 1분 먼저 온 브라질 커플도 있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소화불량의 길을 통과한 것이다.


방콕은 교통이 소화불량입니다..



<매끌렁 위험한 기찻길 시장>


방콕의 교통 소화불량 구간을 지나니 도로는 한적하다.

매끌렁 시장은 방콕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방콕 근교이다.

여러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곳이라 꼭 한 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마침내 오게 되어 기분이 무척 좋다.

시장 상인들은 정작 이 수많은 관광객 혹은 여행객에는 관심이 그다지 없어 보인다.

그들에겐 물건을 사는 '손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대로 살뿐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지는 관광객들로 인해 방해받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관광객 입장에서도 여기 시장의 물건은 호기롭게 막 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생과일이나 말린 열매류는 살 수 있어도 TV 여행 프로그램처럼 '말린 개구리'나 '얼린 과일물'을 사 먹으면 배탈이 날 확률이 아주 높으니 시장에서 바트를 좀 쓰고 싶어도 만만하게 써지지 않는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인 기차 통과는 11시쯤이다.

시장 상인들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막을 걷고, 좌판을 밀어 넣은 후 무심히 앉아 있다.

매일 수차례씩 지나다니는 기차가 뭐 대수겠는가.

기차가 통과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고.. 는 오히려 기차 안에 있는 관광객들의 몫이다.

기차 창문을 통해 보면 더 아슬아슬 부딪힐 것 같아 보이긴 하겠다.

기차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지나가고, 기차 안의 이방인들과 기차 밖의 이방인들끼리 손을 흔들고 순간의 재미를 교환한다.

기차가 완전히 빠져나간 후 상인들은 재빠르게 좌판을 내어 놓는다.

우리는 말린 과일(이름이 뭐더라..)을 한 봉지 샀는데 맛이 꼭 말린 포도알 같다.

돌아오는 밴 안에서 배가 고파 아주 달게 먹었다. 진짜 맛도 달았지만.


다음 목적지는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볼 것이 별로 없다.

방콕 수상시장을 봤다면 담넌사두악은 그냥 그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전 현지 투어는 <매끌렁 기찻길 시장 +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세트로 묶였기 때문에 큰 기대 없이 담넌 사두억에 간다면 잔재미 정도는 느낄 수 있다.

이 투어의 핵심은 "매끌렁 위험한 기찻길 시장"이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오후 1시에 돌아오는 투어 참가비가 단돈 17,000원이라니!




< 강추! MIdnight Street Food Tour >


미드나잇 스트리트 푸드 투어..

너무너무 신나고 재밌고 맛있었던 가성비 갑의 알찬 투어였음을 서두에서 미리 밝힌다.

<뭉쳐야 뜬다 2>에서 방콕 여행 편을 찍을 때 이 투어를 보여 준 적이 있다.

방송에서도 너무 재미있게 진행되던 투어여서 booking.com에서 투어를 찾아보았다.

현지인 가이드가 진행하고 세계 각 국의 여행객들이 모여 함께 푸드 투어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부킹닷컴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정확한 예약 과정 없이 QR코드만 준다. 현장으로 가서 코드를 보여주면 자동 결재가 되는 방식을 하고 있다.

투어는 저녁 7시, 8시, 9시 타임이 있고, 각 투어는 4~5시간 진행이 된다.

우리는 기력 딸리는 50대 아줌마들이니 저녁 7시 투어에 참여해서 숙소에 돌아오면 밤 12시쯤 되는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실제 투어는 거의 5시간 걸렸으며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방콕은 교통이 소화불량인 곳이라 일찌감치 나서서 메트로를 타고 집결장소로 갔다.

형광 초록 티셔츠를 입은 가이드들이 보인다.

오.. '뭉쳐야 뜬다'에 출연했던 재미있는 가이드 Mod(못)이 저기 보인다.

투어 예약자들을 체크하는 직원에게 부킹닷컴의 QR코드를 보여 주며 7시 투어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니 난색을 보인다.

" Sorry, we are fully booked for 7pm & 8 pm tour. How about joining for 9 pm tour?"

밤 9시에 투어를 시작하면 끝나는 시간이 새벽 1시인데.. 쉰 아줌마들은 못한다. 못한다..

게다가 나는 TV에 나온 '못' 가이드를 따라다니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녀는 가장 인기 있는 대장 가이드라 그런지 아주 바삐 움직이고 있다.

슬며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오, 당신은 분명 '못'이겠군요. 당신 명찰을 안 봐도 당신이 누구인지 알겠어요. 왜냐하면 TV에서 당신을 봤거든요. 솔직히 그 프로그램을 보고 이 투어를 신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저녁 7시, 8시 투어는 예약이 꽉 찼다고 하네요."를 한국말로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서양식 과장된 제스처와 얼굴 표정을 더 하여..


"Oh, hi! You must be Mod, I can tell your name without seeing your name tag, because I saw you on TV, I really liked it, which is why I came here with my two friends. But the tour for 7 & 8 pm is already booked. "


라 해본들 돌아오는 대답은 9시 투어를 신청하라는 거..

해서 다시 비굴과 아부 모드로 말을 이어갔다.


"Mod, there are always 'changes' in life, right? I know that out of my experiences. So, if there is a cancellation of this tour for 7 pm, could you put us in here, please, please, please? "

내 경험으로 볼 때 인생엔 언제나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7시 예약을 취소한다면 우리 좀 넣어주라, 응? 응? 응?


Mod은 7 시대 투어가 가장 인기가 있어서 취소하는 예는 별로 없지만 기다리고 싶으면 기다려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내 촉은 누군가 예약을 취소할 거라는 것.. 이 똥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른 예약 하지 않고 7시까지 기다리니 내 예감대로 어느 팀이 예약을 취소하였고, 우리는 7시.. 그 황금 시간대의 투어에 " Moon and friends!, you can join here!"라 부름을 받았다. 하하.


앞서 결론부터 말했듯이 이 투어는 정말 재미있다.

단점이라면 다국적 투어이기 때문에 영어로 진행된다는 것이고, 툭툭이를 타고 달릴 때 오토바이 기름 냄새와 매연부터 애피타이저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5만 5천 원의 투어비가 전혀 아깝지 않다.

왜냐..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못 찾아갈 골목 안 노포 이 곳 저곳에서 파는 쏨땀, 팟타이, 톰얌쿵, 얌, 볶음밥 등 배 불러도 희한하게 다 먹어지는 9가지 음식과 고요한 밤의 '왓포'를 산책하는 경험, 365일 24시간 내내 문을 여는 야간 꽃시장 구경, 예약조차 어려운 루프탑 바에서의 음료와 야경을 보며 추억을 담아가는 행복한 시간 등이 다 포함된 가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툭툭을 타고 내리고 걷고 먹고 타고 내리고 걷고 먹고.. 의 반복도 참 재미있다. 물론 가이드의 역량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두 명이 짝이 되어 툭툭을 타는데 처음에 배정받은 툭툭의 기사 얼굴과 번호를 잘 외워둬야 한다.

지나와 지니가 짝이 되어 같은 툭툭을 타고, 나는 가이드 'Mod'과 툭툭을 탄다. 툭툭을 타고 이동할 때마다 Mod과 짤막짤막 대화를 나누었는데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이 대단한 것 같다.

'뭉쳐야 뜬다'가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고 출연한 연예인 중 아주 유명한 아이돌도 있었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그녀는 한국 TV 출연 자체에 관심이 별로 없다.

자기에겐 그저 똑같은 게스트들이었다며 더 신경 써 준 것도 없다고 말한다.

괜히 머쓱해진다.


함께 투어 한 우리 그룹 멤버들은 미국, 헝가리, 독일, 중국 등에서 온 여행객들이다.

공용어가 영어일 수밖에 없다.

그깟 영어, 못 해도 충분히 알아.. 들을 순 없다. 그래도 괜찮다. 툭툭이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고, 가이드 따라 식당에서 주는 음식 먹고, 감탄하고.. 이런 경험의 사이즈는 다 똑같은 것이니까.

그저 걷고, 먹고, 보고, 감탄하며 한밤의 방콕 시내를 경험하겠다는 열린 마음만 있다면, 아.. 그리고 탄력 좋은 위장과 약 2천 바트(6만 원)만 있다면 Why not!


*드레스 코드에 주의하시라! 샌들이나 슬리퍼, 민소매, 짧은 바지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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