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치앙마이로.. 쉰 넘은 세 여자 이야기
방콕에서 비엣젯을 타고 치앙마이로 향한다.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는 버스로 10시간,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나는 돈 주고 시간 사는 편이 낫다.
국내선 왕복 항공 요금은 7만 원이 채 되지 않으니 그대가 늙수그레하다면(아니 젊더라도) 부디 치앙마이까지 편안한 비행기 이동을 마다하지 마시라.
치앙마이 국제공항은 과연 이것이 공항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아담하다.
도시의 명성만큼 크고 복잡한 공항이 아니라 몹시 흡족하다.
경험상 공항의 얼굴과 도시의 얼굴은 닮았으니 말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은 공항 그랩 택시가 좋다. 200밧에 택시 티켓을 사서 편안하게 숙소까지 갈 수 있다.
공항 밖으로 나오면 택시가 보이고 줄 선 사람들이 보인다. 택시 탑승 줄과 티켓을 사는 줄은 다르다.
일행 중 한 명은 줄을 서 있고, 다른 한 명은 택시 대기줄 근처에서 티켓을 파는 사람에게 가서 인원과 목적지를 말하고 티켓을 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줄 선 곳에 따라서 줄 서 있으면 택시는 못 타고 줄만 서있게 된다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내 앞의 인도 가족과 내 뒤의 한국인 가족들이 티켓을 사지 않고 30분 넘게 줄만 서 있다 낭패 본 것을 나는 보. 았. 다..
그들이 당연히 티켓을 산 후 줄을 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아니었어..
저녁노을과 함께 올드타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다.
밖에서 보면 게스트하우스로 보이는 이 작은 호텔은 룸 인테리어를 감각적으로 아주 잘해 놓았다.
트리플 룸인데 의리에 금 가게 퀸 베드 1, 싱글베드 2개는 뭐람. 하루씩 퀸 베드에서 자기로 하고 각자 가방을 푼 후 저녁 먹으러 나간다. 드디어 그토록 오고 싶었던 치앙마이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길을 모르니 나이트 바자까지 어떻게 갈까 걱정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올드타운에 숙소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나이트 바자이다.
나이트 바자, 즉 야시장은 어디로든, 어떻게든 보이게 되어 있다.
인파에 밀려 둥둥 떠다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걷다 배 고파 식당 고를 생각도 하지 않고 대충 들어간다.
방콕이든 치앙마이든 들어가는 곳 어디든 맛집이니 안심하시라. (아님 나와 친구들 입맛이 너무 보편적 인지도 모르겠다..)
뭐든 맛있고 저렴한 밥과 똠얌꿍을 먹고 밥보다 비싼 커피도 마시고 힘을 얻어 또 걷는다.
사람이 물결 같다.
"당신의 소지품을 잘 챙기세요, 여기는 소매치기가 많습니다."
친절하게 안내 방송을 하는데 좀 우습다.
굳이 소매치기가 많다고 알리다니 말이다.
괜히 나랑 눈 마주치는 사람들을 의심하게 된다.
혹시 너.. 엉?
숙소 1층에는 공용 키친이 있는데 간단한 조식 거리들이 잘 준비되어 있다.
우유, 주스, 과일, 토스트, 계란, 시리얼, 커피를 골고루 먹고 든든히 배를 채운 후 올드타운을 훑어보기로 한다.
우선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왓 프라싱부터 간다. '왓'은 '사원'으로 프라싱 불상이 있는 사원이라는 의미이다.
프라싱 불상은 태국의 3대 불상 중 하나라고 하는데 무언가 중요한 역사가 있겠거니.. 하자.
전날 밤에는 모르고 지나친 왓 프라싱의 우아한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신발을 벗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황금만능주의자인 나는 눈에 보이는 황금들에 애정을 듬뿍 담으며 사진을 찍는다.
전날 방콕 시장에서 산 몸빼 바지는 걷기에 아주 딱이다. 사원에 들어가기에도 아주 맞춤이다.
잘 샀어. 잘 샀어.. (10개나 샀다)
다음 목적지를 모른 채 그냥 또 걷는다.
지나가다 문이 은으로 된 곳에 잠시 머물러 사진을 찍었는데 뒤에 알고 보니 이 곳은 세계 최초의 은 사원인 왓 수리스판이라나 뭐라나 사원이다. 여성은 출입 불가라니 어차피 우리는 알아도 못 들어가는 곳이어서 미련은 없다.
여자는 노우! 인 곳은 우리도 노우..!
그리고 향한 곳은 삼왕상이 있는 중앙광장이다.
중앙광장이란 무엇인가.. 그냥 넓~~ 은 곳이라는 거다. 그늘이 있을까? 없다.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라서 습기는 없는데 역시 태국이니까 덥다.
그늘 없는 중앙광장은 그냥 더운 광장이다.
태국인 관광객들은 삼왕상을 향해 절을 올리는데 우리는 삼왕상을 두고 셀카봉을 올린다.
어느새 시간은 점심 먹으라 알려주고, 걷고 걷던 우리는 어느 바빠 보이는 식당에 들어간다.
아저씨들이 장사를 하는 곳인데 맛집인지 엄청 바삐 돌아간다.
우리가 태국말을 아나, 글을 아나.. 그저 사진들을 보고 디스 원(손가락 하나 올리며), 디스 원..한다.
영어를 잘해도 영어를 못해도 손가락 언어 하나면 충분하다.
셋은 다 다른 것을 시킨다. 다 맛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뭘 시켜도 맛있는 이 곳은 행복한 치앙마이다.
그렇게 여자 셋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고 먹고 걷고 먹고.. 하다 너무 지친다.
야시장에서 발 마사지를 받을까 하다 숙소 근처에서 발 마사지를 받기로 한다.
그 시원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치앙마이의 마사지는 정말 다르다.
내일도 올 수밖에 없는 마약 마사지라고 하면 뻥쟁이라고 욕먹으려나.
우리는 다음 날 또 갔다.
같은 가격에 전신 마사지받고 몸살 난 건 마약 마사지의 부작용이라 치자.
치앙마이의 뉴타운은 '님만해민'이라는 곳이고 '마야'라는 꽤 큰 쇼핑몰이 있다.
우리는 치앙마이 대학교에 들러볼 요량으로 님만해민으로 향한다.
툭툭 타고 마야 쇼핑몰에서 내려 특별할 것도 없는 쇼핑몰 구경을 한 뒤 치앙마이 대학교를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배가 무지 아팠다. 이런 신호.. 여행할 때 제일 겁나는 신호다.
치앙마이 대학교까지 남은 거리는 1.5킬로미터..
지나가는 툭툭도 없고, 나는 공포가 턱 밑까지 올라온다.
친구들을 불러 세워 '나 배 아픈데.. 어쩌지?' 하니 함께 당황해주며 가까운 카페 어디라도 들어가자고 한다.
그러나 친구들이여, 그 걸음으로 어찌 내 신호를 감당할 수 있으리..
나는 그들보다 속도를 내어 저만치 앞으로 걸어 나간다. 마음이 급해 상체가 다리보다 반 보 앞선다.
머리에 진땀이 가득 차고, 배도 극악한 아우성을 칠 때 다행히.. 아, 저기 쇼핑센터 같은 건물이 보인다.
긴박했던 얘기는 여기까지..
아침에 무엇을 먹었나 복기해보니, 여행 나오면 절대 먹지 않는 요거트를 숙소 키친 냉장고에서 꺼내 먹었다.
역시 내게 여행 중 유제품 섭취는 재앙이다.
내 여행 메이트는 주로 친구와 남편이다. 각기 장점이 많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할 말도 끊이지 않고, 많이 웃게 되고, 경비도 절감되어 좋다. 반면 남편과의 여행은 무엇보다 편하다. 말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고, 짜증 날 때 팍팍 짜증 내도 전혀 죄책감이 없다. 배 아플 때면 뛰어가서 화장실을 먼저 찾아주고, 다시 전속력으로 뛰어 와서 전방 몇 미터 앞에 화장실이 있노라 전령처럼 전해주며 안심시킨다. 다만 재미는 그다지 없다. 맨날 눈 뜨면 보는 사람이랑 재미지면 얼마나 재미지겠는가. 그래도 그늘 큰 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 든든한 버팀목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남편과의 여행도 사흘 후면 시작되니 배 아파서 아쉬웠던 남편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치앙마이 여행에 집중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야간 도이수텝 사원 탐방이다.
다국적 투어라 영어로 진행된다.
도이수텝은 툭툭을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워낙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아 가야 하기 때문에 먼저 경험했던 남편이 절대 툭툭은 타지 말라는 팁을 주어 미리 투어 예약을 해두었다.
야간 투어는 먼저 '왓우몽 사원' 탐방부터 시작된다.
숲 속 사원의 숨겨진 터널은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미로 여기저기에 불상들과 함께 벽화를 볼 수 있다.
나는 왠지 이 곳이 안타깝다.
이렇게 아무런 제재 없이 사람들에게 오픈된다면 이 동굴 사원의 벽화는 곧 훼손되어 사라질 것이다.
괜히 미안해진다. 최대한 이산화탄소를 덜 내뿜으며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닌다.
캄캄한 사원에 개들이 참 많다. 치앙마이를 걷다 보면 떠돌이 개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하나같이 순한 녀석들인데 사람들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니네들 관광객이구나.. 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자거나 쉬는데 밤에 적막한 사원에서 마주치는 개들은 약간 무섭다.
지난 가을에 혼자 치앙마이를 여행 한 남편의 가장 큰 불만은 '개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웠어)였다.
도이수텝은 14세기에 세워진 곳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한 사원이라 불교신도에게는 대단한 성지이다.
들은 대로 금빛 찬란한 산 중 사원이다.
해발 1000미터 높은 산에 이런 사원을 어떻게 세웠을까 신기했다.
여기서는 신발을 벗고 다녀야 하는데 까만 밤 맨 발로 사원을 걷는 것도 특별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야경도 어마어마하게 멋지다.
이 높은 사원에도 포인트마다 개들이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늦은 밤이라 개님들 수면에 방해될까 아주 조용히 맨발로 걸었다.
사원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의식으로 스님이 방문객들을 축원하며 하얀 실을 손목에 매어 주신다.
사흘 뒤에 빼서 불태우라고 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라이터도 없고, 성냥도 없어서 사흘 뒤에 그냥 버렸다.
나무아미타불..이라도 한 번 하고 버렸어야 했나.. 후회 중이다.
치앙마이에서의 4일이 손가락 사이로 물 빠지듯 흘렀다.
매력이 넘치는 도시라 좀 더 느긋하게 있으며 이 곳의 생활을 엿봐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짧고 빨랐다.
다행히 밤 비행기라 아침에 핑강 주변을 산책하고, 올드타운에서 점심을 먹은 후 타페 게이트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오전부터 비가 오락가락했고, 오후엔 갑자기 폭우가 내려 카페에 한참 앉아 있었다.
올드타운에는 개성 있는 카페가 많다. 커피값은 우리가 매일 먹은 쌀국수 가격의 몇 배로 비싸지만 원두의 질이 좋아 커피는 대체로 다 맛있다. 비가 어느새 그치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타페 게이트를 걸었다.
성곽을 둘러싼 인공 '해저드(hazard)'와 타페 게이트의 어우러짐이 참 좋다.
해저드 나무 위에는 새들이 무수히 많고 그 시끄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자연의 소리, 물, 오래된 성벽, 늙어 빛바랜 사원들, 서서히 사라지는 낮..
이 평화로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더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