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어린 시절, 골목 이야기, 사람 이야기
청학동 우리 옆 집엔 술쟁이 아줌마가 살았다. '술재이 영선네'로 불리는 이였다.
그 집 큰 딸 이름이 영선이었고 그 밑으로 둘째 딸 모개(못생겨서), 셋째 딸 딸고마이(딸 그만 낳자고), 막내딸 찌니까지 딸만 넷인 집이었다.
어쩌자고 그 시절의 우리는 저마다 별명을 갖고 있었을까.
훗날 다 커서야 그 집 둘째 딸부터 막내딸 이름이 옥선, 미선, 진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정해서 옆집을 소개하자면, 우리 옆 집은 '선'자 돌림의 딸만 넷이 있는 딸 부잣집이었다.
딸부자일 뿐 아니라 한때 우리 동네에서는 제일 부잣집이었고, 아저씨는 참 인자하신 분이었다.
그 집 막내 찌니는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내 꼬붕이었다.
아이가 참 순하고 여려서 내가 조금만 놀리거나 못되게 말하면 지 아부지한테 쪼르르 가서 울며 다 일러바치곤 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아저씨는 우는 찌니 손 잡고 골목으로 나와선 우리 집에 있는 나를 불렀다.
"미리야~ 찌니 잘 데리고 놀아야지. 머 사주꼬? 까자(과자) 사러 같이 가보자."
야단은커녕 되려 까자로 찌니 잘 데리고 놀아 달라고 와이로를 멕였다.
내 이름이 '미리애'라고 아무리 말한들 우리 동네에서 나는 그냥 '미리야'였고, 울 큰언니는 '미야'였다.
우리 아부지는 영선네 아저씨를 형님이라 부르며 친하게 지내셨다.
울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술재이 영선네' 아지매를 행님이라 부르며 그 집 일을 많이 도와주곤 했다.
왜냐하면 그 집 아지매는 그야말로 술재이인 까닭에 딸들을 전혀 건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옆 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그 집 딸들의 우는 소리가 너무 크고 시끄러워 엄마가 맨발로 황급히 뛰어갔다.
그날 밤 그 집 언니들의 우는 소리는 지금도 선명하다.
"아악! 아악! 아부지야! 아부지야!"
그 집 아저씨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 영선네 아줌마의 술 주정은 날로 더 심해졌다. 술재이 영선네는 점점 말라갔고, 뼈만 앙상한 몸이 되었다.
알코올에 다 삭았는지 치아도 한 두 개만 남아 실제 아지매 나이보다 스무 살은 더 늙어 보였다.
둘째 딸 모개는 성격이 굉장히 셌다.
술 주정뱅이에서 알코올 중독자로 변해버린 그녀의 엄마를 혼구녕내고 구박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어느 날은 뼈만 앙상한 엄마의 주정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냅다 제 엄마를 밀어버리니 술에 절은 술재이 영선네는 골목 구석까지 튕겨 나갔고 그녀의 무릎엔 피가 흘렀다.
모개의 악다구니는 자주 있었고, 예닐곱 살의 내겐 늘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술재이 영선네의 무릎에서 피가 철철 나던 날 울 엄마가 뛰쳐나가 모개를 혼냈는데 모개도 지 엄마의 피를 보곤 씩씩 거리며 펑펑 울었다.
이런 영상이 아직 내 기억 필름에 바래지도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 딸이 엄마를 밀어 버리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둘째 딸 모개의 분노의 눈동자 때문이다.
엄마를 원수같이 쳐다보던 그녀의 눈 말이다. 어쩜 자신들의 든든한 울타리였던 천하의 사람 좋은 아부지를 잃은 것에 대한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영선 언니는 당시 어린 내 눈엔 미스코리아였다.
하얀 '에리'에 허리 잘록한 검정 교복을 입고 옆 가르마 짧은 양 갈래 머리를 한 여고생 영선은 참 예뻤다.
진짜 진짜 예뻤다.
그러던 어느 날 웬일로 술이 안 취한 술재이 영선네가 영선 언니를 향해 욕을 퍼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정신 빠진 년아! 니가 미쳐도 단다이 미쳤고마! 우짤라꼬! 우짤라꼬! 이 문디같은 년! 니 죽고 내 죽자 고마!"
술재이 영선네가 예쁜 영선 언니한테 왜 욕을 하는지 엄마한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니는 몰라도 된다.'였다.
할 수 없이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저 아지매는 술 안 먹으면 고마 미치는구나..'
그리곤 희한하게도 그다음 날부터 영선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찌니 아부지도 돌아가시고, 동생들의 정신적 지주인 영선 언니도 집을 나갔으니 술재이 영선네는 울 엄마와 동네 아지매들이 아무리 챙겨준들 날로 쇠약해져 갔다.
그나마 그 집의 생계는 세 내어준 여인숙에서 들어오는 얼마되지 않는 월세가 전부였다.
"아지매! 아지매요!"
셋째 딸 딸고마이가 우리 집 문을 다급히 두드리며 울 엄마를 찾았다. 그 집에 또 비극이 찾아온 것이다.
찌니 아부지 돌아가시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초상이 나고 옆집 찌니네는 졸지에 고아들이 되어 버렸다.
찌니는 제 엄마가 죽었는데도 울지 않았다. 둘째 모개도 눈물 한 방울 없이 머리에 지푸라기 같은 것을 쓰고 누런 한복을 입고 상여를 따라 걸었다. 딸고마이만이 엉엉 울 뿐이었다.
여인숙도 빚에 넘어갔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렇게 영선네는 우리 골목에서 사라져 버렸다.
2~3년이 지나 내가 국민학교 3학년쯤이었나 모르겠다.
한참 자고 있는데 엄마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그날 밤의 기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검은색 깔깔이 블라우스를 입은 배우같이 생긴 여자가 담배 연기를 후~ 불고 있었다.
꿈인가 싶어 눈을 몇 번 끔뻑거렸다.
부엌의 백열등만 켜 놓은 채 엄마와 여자가 방에서 낮은 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 앉을까 말까..'
나는 앉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실눈을 떠서 자세히 보니 으아악.. 그녀는 나의 미스코리아 영선 언니였다.
당시엔 드라마도 볼만큼 본 나이여서 영선 언니가 시쳇말로 '술집 여자'란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영선 언니 앞엔 맥주병과 글라스도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와서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엄마와 얘기하고 있었을까..
그녀가 고개를 살짝 들며 담배 연기를 콧구멍으로 내뿜을 때 내 마음의 미스코리아는 연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나는 몹시 실망스럽고 마음이 안 좋았다.
'아, 씨.. 뭐꼬..'
엄마가 무어라 말을 하니 영선 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웃음 비슷한 입모양을 지었다.
그러다 나는 또 잠이 들었다.
이 이야기의 제목을 왜 '러브 스토리'라고 했는지 지금부터 말하려 한다.
'술재이 영선네'가 우리 동네 최고의 미녀인 딸에게 '미친년, 문디 같은 년'이라 욕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날은 그녀의 연애가 들켜버린 날이었다. 영선 언니는 우리 동네 황장군 집 아들과 연애를 하고 있었다.
황장군 집 아들은 누구냐.. 50자 이내로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황장군이라 불리는 윗동네 아저씨가 본처가 아닌 밖에서 아들을 봤다. 본처는 지극 정성으로 그 아들을 키웠다. 공부는 서울대 갈 실력이지만 집안 형편상 지방 국립대에 진학한 키 크고 잘 생긴 오빠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한참 후에 옛날 이야기 삼아 엄마한테 물어봤을 때 알게 된 사실은 당시 우리 동네에선 소위 킹카와 퀸카의 연애였음에도 술집 작부 소생의 황장군 집 아들은 절대 안 된다며 술재이 영선네는 그렇게 반대를 한 것이다.
절망한 영선은 집을 뛰쳐나가고, 술재이 영선네는 술 때문에 죽고, 동생들 공부시킨다고 영선은 술집에 나가고..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19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영화에도 이런 디테일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어째서 러브 스토리냐고 물으신다면 영선 언니는 황장군 집 아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과거 따위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그.. 정말 멋지지 않은가.
어느 드라마가 이들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있으랴.
딸고마이와 찌니는 영선 언니 덕에 대학을 갔다. 찌니는 스무 살 즈음 그 언니들과 우리 집에 한 번 왔었는데 우리는 너무도 어색해서 그저 방바닥만 조심스레 긁을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모개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몹쓸 병으로 죽었다.
영선 언니 부부는 아들을 둘 낳았는데 가끔씩 부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인사차 오곤 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영선 언니네 큰 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둘째는 공학 박사가 되었다고 한다.
진흙 속에 피는 고결한 연꽃처럼 고난을 뚫고 맺은 사랑의 결말은 '그들은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고 아들들은 의사와 박사가 되었다..'란 엄청난 결말이라니.
세월이 흐르고 흐른 어느 날, 젊었던 엄마가 팔순이 넘고 어린 계집아이였던 내가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옛날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엄마, 그날 밤 있잖아. 한밤중에 영선 언니 찾아온 날 말이야. 그날 밤에 무슨 얘기했노오?"
"니가 그날 밤 일을 우째 아노? 하이고.. 술집 다니는 거 그만두고 철이하고 다시 만나라 했다. 철이가 즈거 엄마한테 하도 조르고 사정사정 하이 철이 엄마가 결국 허락한기라. 아들이 바다에 빠져 죽겠다는데 우찌 할 거고. 영서이는 자격지심에 안 만난다고 도망도 몇 번이나 칬거든. 철이가 내한테 와서 하소연도 하고 참 마이 울었다."
아, 그래서 그날 밤, 희미한 불빛 속의 그녀는 울고 있으면서도 애써 웃는 입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pilogue
- 여보, 그런데 그 옆집 아주머니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대?
- 응, 그 집에 아들이 하나 있긴 있었는데 그 귀한 아들이 어려서 죽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