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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Jul 19. 2020

일상 속 작은 여행 #3 - 남해

일상 속 작은 행복 찾기


50년 넘게 살다 보니 슴슴한 평양냉면 같은 삶이 좋다. 이젠 크게 들뜰 일도 별로 없다. 감정 곡선도 그다지 출렁이지 않는다. 긴장감 없는 느슨한 일상은 늘 원하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늘어진 고무줄처럼 사는 건 노화의 지름길이다. 사소한 일상에서 찾는 작은 재미, 작은 행복은 중년의 삶에서는 비타민과 같을 것이다. 이런 작은 자극조차 없으면 갱년기의 공격에 중년의 우리는 무참히 패배하고 말테지. 해서 남편과 나는 슴슴한 일상 속 작은 재미와 행복을 찾기 위해 코로나 19가 다소 진정된 5월부터 한 달에 한 번 1박 2일 여행을 하기로 했다.


5월엔 보성-벌교-순천을 여행하며 그림 같은 보성 녹차밭에 탄성을 내뱉었고, 말로만 듣던 벌교 꼬막정식을 먹어 보았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본 아름다운 초원 풍경은 마음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 안방 벽에 큰 사진 액자로 걸려있다. 찰나의 감동은 내가 바로 그 순간 거기에서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서 온다.

벅차오르는 감동은 이내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찰나적 시공간의 인연에 감사함을 가지지 않는다면 감동은 곧 잊힐 것이었다.


6월 여수 여행은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했다. 어쩌면 장범준 노래 <여수 밤바다>의 그 바다를 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수 밤바다의 불빛들은 젊음을 끌어들이기 좋은 곳이었다. 밤공기, 웃음소리,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 여자 친구 사진 찍어주느라 바쁜 남자들.. 모든 '젊은것'을 살짝 부러워하며 여수 밤바다 속에 실컷 있어 보았다.


그리고 7월 여행지는 남해이다.

손위 시누이 가족이 사는 곳이라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남편과 둘이서 오롯이 남해 여행을 위해 가기는 처음이다.
숙소는 독일마을로 정했다. 운이 좋으면 좋은 숙소를 만날 것이고,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을 위한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고 숙소도 당일에 예약했다. '뮌헨 하우스'란 이름의 예쁜 집에 들어가니 진짜 독일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뮌헨 하우스의 마당에선 넓은 바다와 예쁜 오렌지색 지붕들을 볼 수 있다. 밤 늦게까지 집 밑의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독일 족발(?) 학센과 부어..뭐..라는 수제 소시지와 남편은 독일 맥주를, 나는 남해 유자에이드를 앞에 두고 남해의 밤을 즐겼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니 길냥이가 먼저 와 인사를 한다. 주인아주머니가 테라스 테이블에 놓고 가신 달마이어 커피를 마시면서 길냥이와 한참을 놀았다. 녀석에게 삶은 옥수수 한 알을 주었더니 씹지 못하고 뱉어냈다. 옥수수를 씹어서 다시 주니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비쩍 마른 것이 아직 어려 먹이 경쟁에서 밀리는 모양이다. 길냥이와 놀기, 독일마을 천천히 걷기, 바다를 바라보며 독일식 아침식사 하기, 아랫마을 물건리 산책로 걷기, 친절한 관리인 아저씨가 특별히 허락해주신 죽방 멸치가두리 작업장 구경과 남해 형님 부부와 함께 한 남해 멸치쌈밥 등..
동선이나 숙소, 일정 계획 없이 흐르는 물처럼 하루를 여행했다.

아, 뮌헨 하우스 주인장 부부는 뮌헨에서 6개월, 남해에서 6개월을 산다고 한다. 나도 우리나라 소도시를 다니며 마음에 들어오는 마을에서 두어 달씩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비집고 들어온다.
앞에 바다가 있고 골목의 집들이 따뜻한 불빛을 내비치는 조용한 마을이면 좋겠다.
창문으로 산이 보이고, 소박한 지붕들이 내려다 보이는 집이면 좋겠다.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살아갈 날들의 이미지를 그려보니 뭉게구름 같은 부드러움이 내 마음을 채운다.


해지기 전에 집에 도착해서 다시 주말 일상으로 돌아와 밖에 나간 적 없던 사람처럼 티비를 켜고, 과일을 깎아 먹고 <놀면 뭐하니?>를 보며 큰 소리로 웃는다.
작은 여행이 준 영혼의 자유가 웃음소리를 더 크게 만들었나 보다.


2020.7.18~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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