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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Dec 30. 2020

우중 밤 산책

이유없는 불안vs도처에 깔린 감사함

비가 반가워 오랜만에 밤 산책을 했다.
인색해진 여유와 게으름이 묘하게 어울린 날들이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그저 끝까지 바닥으로 내려가게 내버려 둔다.
침잠하는 동안 생각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이 생각을 잠식하기도 하지만,  애써 불안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왜 불안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원인은 내면에 있지 않을 때가 많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갈 수 없거나 누군가와 비교해서 부족함을 느낄 때 불안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스스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유가.. 없다.
불안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찾고서야, ('없음을 찾는 아이러니'라니) 나는 다시 솟아오를 준비를 한다.
준비는 '감사함'에서 시작된다.
애써 찾아도 없는 불안에 대한 이유와 달리 감사함의 이유는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처럼 즉각적으로 느껴진다.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에 대한 감사,
연로하시지만 여전히 큰 힘이 되어주시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존재 자체,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내 일,
아, 모닥불 같은.. 내 친구들..

이유 없는 불안함과 무기력함으로 바닥까지 내려가서 다시 솟아오를 때의 힘은 바로 이런 감사한 이유들이 엔진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산책의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어 또한 감사한 밤이다.
싱어게인 63호의 '휘파람'을 들으며 우산 쓰고 걷는데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것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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