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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May 17. 2022

셀프 추앙하기

#제주도 여행, #또_남편과, #나를추앙하기

20220504

반일 연가 내고 온 지금 여기는

내 사랑 곽지 바다

살짝 어지럽고 두통이 있지만

들숨을 크게 마시며 바다를 오롯이 향유한다.

이유 없이 위축되고 삶에 자신이 없어지는 나이여서 그런가..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나를 토닥이고 싶다.

해서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그 단어로 나를 위무한다.

아, 나는 나를 추앙하기로 했다.

제주에서 셀프 추앙 중..

20220505

새벽 다섯 시에 잠을 깬 송&문은 시간이 남아돌아 애월에서 서귀포 대평리까지 가서 아침식사로 보말죽을 먹었다.

그리고 군산오름을 올랐다.

말로만 듣던 군산오름 정상의 화려한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왔으나 둘 다 폰을 차에 두고 와서 사진 한 장 없는 아픔이라니. 쳇.

아무튼 군산오름 만세!


다시 애월,

협재와 금능 사이 애매한 화이트비치 어딘가는 작년에 이어 올 해도 타프 치고 바다멍하기 너무 좋다.

네 시간쯤 앉아서 음악 듣고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이번 여행의 목적에 충실했다.


오후 세 시..

아무도 없는 숙소 루프탑 풀장에서 비양도를 마주하고 수영하는 행복한 순간을 만났다.

이래도 되나.

해 질 무렵 하나로 마트에서 한치회와 도다리회 한 접시씩 사서 다시 협재 바다에서 저녁 먹으며 노을 감상을 했다.

송사마는 연신 좋아서 이 평화롭고 '고요해야 할' 성스러운 순간에 오디오를 꽉 채운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점점 말이 많아지는 거시냐.

아들 군에 보내 놓고 웃을 일이 없었는데 두 달만에 처음 웃었던 오늘을 기억해야겠다.


훈아, 미안해.

엄빠는 오늘 좀 행복했다..


20220506

3월에 제주행 티켓을 마일리지로 예약할 땐 과연 내게 5월이 올까 의심했다.

이런 친절한 시간이 올 수 있기나 할까..

바쁜 일상 속에 제대로 산책할 여유 하나 없이 살다 보니 드디어 5월 연휴가 왔다.

계획대로 바다를 온종일 바라보았고, 즐겼고, 느꼈다.

송사마는 간지러운 말을 자꾸 했다.


'당신 덕분에, 당신이어서, 당신과 함께라서..어쩌구 저쩌구..'


나는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아래의 말들로 응답했다.


 '그 입 다물라'

'자꾸 그랄래?'

 '쓰읍!'


수험생처럼 공부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나름 신경을 좀 쓰긴 했지만 대놓고 표현하는 저 유들유들함은 왠지 거슬린다.

고도의 수법인 거신가..


아침엔 역시 아무도 없는 풀장에서 뭉친 근육을 풀었다.

수영 후 자쿠지 하는 시간 너무 좋다.

오늘은 하루 종일 곽지에서 바다멍 때리고, 저녁엔 새로운 숙소로 이동했다.

아, 숙소 근처에 송훈 파크가 있어 또 갔다. 오늘로써 세 번째 방문..

역시 고기의 질이 다르다.

고기도 맛있지만 진짜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넓은 초원 때문이다.

이 속에 있노라면 막 착해지는 느낌이다.

송사마한테도 상냥해지는 마법의 공간..


금오름에서 노을 볼 계획을 접고 달려간 곳은 고내리 포구..

석양을 눈앞에 두고 운전하며 감탄하다 애월 해안도로에 차를 세우고 해 떨어진 하늘을 한참 봤다.

아름답고도 쓸쓸한 분위기에 젖어 송사마에게 쓸데없이 친절을 베푼다.


여보~ 내일 아침은 당신 먹고 싶은 걸로 먹어~


내일 아침은 각자 따로 먹기로 했다.



20220507

어제 숙소는 정말 꽝이었다.

나는 숙소 예약에 실패한 적이 거의 없는데 제주의 마지막 날 숙소는 정말이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50대 부부인 우리가 가기엔, 아니 뭐 40대나 30대라도, 견디기 힘든 곳이지 않을까 싶다.

우선 애월 중산간에 있고, 밤에 별이 잘 보이며, 자연친화적인 곳에 있는 글램핑장이라는 설명에 마음이 홀딱 갔더랬다.

별과 글램핑.. 얼마나 혹하기 쉬운 조합인가 말이다.

숙소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타인의 생업에 해가 될 수도 있으니.

무튼 밤 10시까지 끊이지 않고 비행기 소음이 들렸다.

우리는 돔 형태의 텐트(?)에 묵었는데 바로 뒤에 있는 캐러반에 묵은 가족들의 소음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별은 또 어떤가.

별은 몇 개 보이지도 않았다.

남편과 나는 좁은 침대에서 본의 아니게 꼭 붙어 자야 했는데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더블 침대의 가장자리에 간당간당하게 모로 누웠다. 살이라도 닿으면 서로 격하게 놀라 다시 침대 끝을 찾았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둘 다 새벽에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남편은 단골 식당으로, 나는 식당 옆 스타벅스로 각자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8시에 오픈하는 스타벅스에 거의 첫 손님으로 들어갔나 했는데 2층엔 내 또래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요즘 참 두 갈래 마음이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설렁설렁 놀고 싶다.. vs 그동안 뭐하나 열심히 한 것도 없는데 이제부터라도 뭐 하나에 진지하게 빠져보자..

이런 양가적 심리는 왜 때문일까.

아무래도 자존감이 부족해서인가.

이런 사람 보면 이러고 싶고, 저런 사람 보면 저러고 싶다.


거하게 국밥을 먹고  남편과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아침을 먹은 나는 외도일동연대포구를 걸었다.

이 조용한 포구마을에 무언가 거대한 숙소가 들어서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의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가니 아주 오래된 제주 돌집들이 보인다.

예전 같으면 '여보, 우리도 이런 돌집 하나 지을까?'라는 시답잖은 말을 허공에 뱉었겠지만 이젠 그럴 마음이 없다.

우리는 제주에 있는 작은 우리 땅에 집 짓고 살기로 한 계획을 접었다.

제주를 자주 올수록 느끼는 것은 제주는 다녀갈 때야 좋은, 아름다운 섬이란 것이다.

우리가 살기에 좋거나 살아서 좋은 곳과는 좀 먼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도 제주는 역시 제주다.

제주바다, 제주 화산석, 제주 하늘, 그리고 제주의 구름과 바람은 여전히 사람들과 상관없이 늘 거기에 있다.

인간이 무엇을 허물고 짓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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