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사누르!

사누르에 반하다

by 달의 노래
새벽녘에 또 바르르 떨려 잠이 깼다.

벌써 며칠째다.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당기며 오늘은 거위털 이불을 꺼내야겠다 다짐했다. 겨울이 노크한다. 스미듯 느껴지는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은 훅 들어오는 불청객 같지만 이번 겨울은 설렌다. 갱년기 여자에게 뼈 시린 겨울이 어찌하여 설렌단 말인가.

꽃샘추위가 기세를 떨치던 3월에 혼자 발리로 떠났다. 나의 명퇴 1호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2주 동안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들 속에 있자니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으로 정녕 휴식이 이런 거겠구나 싶었다. 가족은 그립지 않았다.

운 좋게 찾은 사누르 지역의 저렴한 숙소엔 서양인 은퇴 생활자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주로 부부 여행자였는데 나처럼 혼자 온 여행자도 간혹 눈에 띄긴 했다. 소박한 조식 후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은 바로 야외 풀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엉성한 그물 가방 속에 책 한 권과 아이패드, 에어팟을 쑤셔 넣은 채 야외 풀로 내려가면 아쉽게도 큰 나무 그늘이 있는 명당자리들은 이미 누군가의 비치 타월로 선점되어 있었다. 첫 며칠은 나무 그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선베드만이 내 차지였다. 중년의 서양인 부부들 속 홀로 여행자인 나는 무언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뭐 어쩌겠는가. 꾸역꾸역 매일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점점 명당자리를 내 구역으로 만들며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구축했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볼 여유까지 생긴 내겐 그곳에서 거의 매일 만나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로웠으며 급기야 이것은 마치 내 여행의 이유 같았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초로의 한 백인 남자는 종이신문 속 낱말 퍼즐을 매일 진지하게 풀고 있었다. ‘저 신문은 대체 어디에서 구했을까, 혹시 지난 신문들을 집에서 한 뭉치 가져온 것은 아닐까 ’ 생각하고 있는 나도 참 한심한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론 나의 한심함에 묘한 안도감이 들어 좋았다. 호주 억양의 한 부부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깡마른 몸집의 아내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보기만 해도 더운 털실로 무언가를 짜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엉킨 실타래를 인내심 있게 풀며 실이 더 엉키지 않게 아내가 뜨개질하는 내내 털실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로맨틱하던지 말이다. 그리고 주로 내 옆 선베드에는 혼자 여행 온 흰머리 가득한 미국 여성이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었다. 두꺼운 노트에 가득한 손글씨를 보니 그녀가 작가이든 혹은 작가가 아니든 간에 그 집중력과 일상심이 대단해 보였다. 고백건대 나는 서양인들 흉내 낸답시고 선베드에 누워 책 읽는 시늉만 했다. 점심은 뭘 먹을지, 저녁은 또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들로 책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머릿속 먹을 걱정을 떨쳐내려는 듯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햇볕에 달구어진 몸을 식히곤 했다.

나는 사누르 여행 생활자들이 그러하듯 석양이 내릴 무렵부터 엉금엉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누르 비치 따라 길게 나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그날그날 마음 내키는 카페나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아 빈땅 맥주와 나시고랭을 주문해서 먹곤 했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빈땅 맥주를 시키거나 칵테일을 주문한 것은 그저 싼 맛에 부려보는 멋이었으며 이는 곧 ‘나 지금 여행 중’이란 네온사인과도 같았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만 챙겨주고 나만 밝혀주는 소중한 빛의 시간 혹은 시간의 빛 말이다

2주 후 돌아오는 비행기를 탄 내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학교를 떠나 처음 맞게 될 이 겨울엔 사누르에서 여행 생활자로 한 달을 살아보리라는 것이다. 아, 나의 세상 무해한 이 음모가 부디 성공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어느 날 어딘가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그 무용담을 써 내려갈 수 있기를.

기다려, 사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