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문턱에 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

by Miriam

정말 거짓말처럼 가셨다. 예고도 없이.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던 분이다. 버스를 예매했다. 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 남았지만 집 안에 있을 수 없었다. 터미널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내가 일하는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일주일 정도 못 나갈 것 같다고. 전화를 거는 손은 떨리고 있었다. 버스는 더디게 굴러갔다. 누가 살짝 건드려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 아빠 생각이 났다. 장남이자 독자인 우리 아빠는 울지도 못하고 있을 터였다. 장례식장에선 울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힘들게 도착한 집에는 어두운 적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내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만은 집이 아늑하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엄마도 울고, 누나도 울고, 고모들도 울고 있었다. 아빠는 그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아빠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아야 했다. 할머니의 사진에서 애써 눈을 돌렸다. 영정사진을 보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잿빛으로 변하며 죽어가는 향 냄새를 맡으며 비로소 실감했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할머니는 인기가 많았다. 훌륭한 삶을 사셨는지, 자식들을 잘 키워냈는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찾아오셨다. 절을 하느라 내 두 무릎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아빠는 같은 말을 수백 번 반복해야 했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빈소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할머니의 사진을 마주하였다. 그 앞에 놓인 과일들을 보며 생각했다. ‘할머니가 계셨으면 저 과일들을 벌써 내게 다 주셨을 거다.’


나는 할머니의 자랑거리였다. 할머니 주변 사람들은 내 이름을 적어도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오죽하면 처음 보는 사람이 “네가 그 애구나.”라는 말을 했을까. 할머니의 사랑은 그 크기만큼이나 무거웠다. 화장터로 이동할 때, 내가 할머니의 영정을 들어야 했다. 너무 무거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물은 차마 매달려있지 못하고,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제일 앞이어서 다행이었다. 뒷모습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니. 앞만 보고 걸었다. 아니, 땅만 보고 걸었다. 그것도 아니, 할머니의 사진을 보며 걸었다.


더디게 걸었지만 어느새 화장터 앞이었다. 그곳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화장을 하고 나면 더 이상은 할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가족들의 미련을 담은 관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할머니를 데려가는 손을 붙잡고 부탁을 드렸다. 곧이어 저승사자 같은 불길이 할머니를 집어삼켰다. 풍채가 좋으시던 할머니는 한 줌이 되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창문 밖을 보았다. 봄의 문턱에 서 있었다. 길가의 나무들은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꽃이 필 텐데. 뭐가 급하다고, 이렇게 빨리 떠나버린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나를 부르지 않고 떠나버린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할머니를 병원에 두고 안산에 올라와버린 내가 원망스러웠다. 뭐가 급하다고, 정말 뭐가 급하다고 이렇게 빨리 와버렸을까. 하루라도 더 있어야 했다. 전화라도 한 통 더 했어야 했다. 차에서 내려 애꿎은 땅을 발로 차며 중얼거렸다. ‘아직은 흙이 찬데……’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눕기로 했다. 나는 본 적도 없는 할아버지이니, 할머니도 20년이 넘게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반겨주었을까? 오랜만에 다시 만났으니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나는 두 분을 위해 자리를 피해드렸다. 아마도 할머니는 첫 번째로 내 얘기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얼굴로.

할머니 집은 허전했다. 온 가족이 모여있었지만, 공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가족이 모일 때면 항상 할머니는 뒤에 앉아 조용히 웃기만 하셨다. 말씀 없으시던 할머니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 몰랐다. 항상 당연하게 존재하던 분이었기에.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이 나에겐 떠오르지 않았다. 할머니 집 찬장엔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쌀과자가 들어있었다. 이젠 과자를 즐겨먹지 않지만, 할머니에겐 내가 좋아하는 과자로 남아있었다. 이 과자는 맛이 없다는 고모의 말을 뒤로하고, 찬장에서 과자를 꺼내 천천히 씹어 삼켰다. 옛날 그 맛이었다.


삼우제를 지낸다고 했다. 오늘이 그 마지막 절차이다.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서 할머니가 사용하시던 물건들을 태우는 일이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입고 계시던 옷과 신발, 평소에 자주 사용하던 물건들을 이것저것 꾸려서 산소를 찾았다.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절을 하고, 물건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옷 꾸러미에는 내가 사준 내복이 들어있었다. 선물을 받고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병원에 가기 전에, 일부러 선물 받은 내복을 꺼내 입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차마 불에 넣지 못하고, 품 속에 묻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할머니 가시는 길에 입고 가도록 보내주라는 고모의 말이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내복을 태워 보냈다. 할머니를 보내드려야만 했다.




“할머니, 꽃 피는 것만 보고 가자.”

“미련이 남아서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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