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 사막에 있었다

프롤로그

by MIRIAM

끝도 없어 보였다. 바닥을 밟고 밟아 앞으로 나아가면 저 앞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하염없이 이어지는 모래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걷다 보면, 그래도 끝은 있으리라 생각했다. 몇 날 며칠을 걸어도 사막의 끝은 없었다.


가끔 모래가 폭풍처럼 일어나 나를 덮칠 때도 있었다. 폭풍 속의 모래알은 거칠었다. 까끌거리는 모래알이 세차게 몰아쳐 드러난 피부 속을 파고 틀어박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편이 나았다. 모래알이 피부를 스치면 영락없이 상처가 났다. 다행히 건조한 사막이라 덧나지는 않았지만 쓰라리긴 매한가지였다.


어쩌다 나는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혹시 지구가 완전히 사막이 된 것은 아닐까?

그래도 누군가 이곳에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이곳에는 인간이 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다른 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왜 살아있는 것인가?


외로웠다.

불안했다.

무서웠다.

끝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 생명체라고는 나밖에 없어서 외로웠다. 외로움을 나눌 대상도 없고 고통을 나눌 대상도 없어 외로웠다. 말을 잃고 생각만 돌고 있다가 생각마저 잃었다. 남은 것은 불안하다는 감정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함.. 그래서 결국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공포감.. 인간은 결국 감정을 남기는 것인가?


아니다. 나를 온통 에워싼 공포감을 갖고도 걷고 있는 나의 육신이 있지 않은가? 이상하게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끝이 없다’는 것은 없다!]는 유한함이 희망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희망이고 소망이며 목적지다. 그래서 걷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사막그림.jpg


밤.

미치도록 추운 사막의 밤.

선명하게 보이는 달빛과 별빛이 위로가 되는 사막의 밤하늘.

빛을 보며 마지막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이젠 물도 없다. 이 밤이 지나면 나의 생은 끝날지도 모른다. 물도 없이 사막의 태양을 맞서가며 걷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기에.


‘나의 육신은 이렇게 죽겠구나..’


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외롭게 혼자 죽을 생각을 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희망을 품고 걸었던 나의 육신도, 죽고 나면 이곳에서 모래가 될 것이다. 희망이건 공포건 내게 있던 감정도,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태어나 무엇을 했나?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났던 것일까?

태어날 이유는 있었나?

이렇게 허무한 삶을 살 것이었다면 차라리 나지 않았던 것이 좋지 않았던가?


고작 물 한 모금이다. 마실 물이 “없다”는 [상실감]과 [공허감]으로 ‘죽음의 허무’라는 늪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고작 물 한 모금’이라고 해도, 현실은 현실이지 않나? 물 없이 인간이 살 수 있던가?


그 때 였 다!

그 무엇도 없는 사막에서, 달빛에 비친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저 멀리, 모래 더미가 언덕을 이룬 그 꼭대기에서부터 그림자가 움직였다.


사막의 태양과 모래를 막아내는 품 넓은 긴 망토,

그 사이로 꺼낸 긴 지팡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긴 수염...

흡사 고대 사막의 은자 같았다.


그는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이다.

인간이다.

이곳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저 사람은 근처에 거처가 있을 수도 있고 물을 가졌을 수도 있다. 지금 저 사람은 내게 구세주다. 모래 더미에 반쯤 묻혀 있던 나는, 모래를 해치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요! 저 보이시나요?!”


그는 말없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게로 오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더 이상 소리를 치지도 요동을 치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그의 발소리를 들으며.

그의 망토가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숨소리가 들릴 즈음,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존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는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시게.”


그의 목소리는 장엄했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사막을 온통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의 기다시피, 남은 에너지를 몽땅 써서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많이 지쳐 보이네.

내 움막이 저 앞에 있으니 요기도 하고 쉬다가 가게.”


지구가 온통 사막이 되었다고 해도 그 끝은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지금, 죽음의 문턱에서 “삶”이라는 문이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이 은자의 움막이다.


*


그의 움막은 철저하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 갖추어진 느낌이었다. 내게 내어준 따뜻한 차도, 낯설지만 짙은 버터향이 나는 빵도 소박하지만 꽉차 있었다. 불을 뗀 흔적은 없으나 사람의 온기가 제대로 돌고 있는 곳.


아. 누군지도 모르는구나.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누구신지요?

기회가 되면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대체 얼마나 굶었는지, 얼마나 사막에서 헤맸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었던지라 먹고 마신 후에야 겨우 은자의 정체를 여쭈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는 모세다.”


그 목소리엔 바람과 모래, 피와 기도가 섞여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어떻게 3500년, 4000년 전의 인간이, 어쩌면 역사적 인물이 아닐 수도 있는 이가 내 눈앞에 있단 말인가? 아니다. 분명히 나를 느끼고 그를 보았으며 이 순간을 알고 있다. 이것은 진실이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맑아졌다.


“모세, 모세님. 이곳은 어디인가요?”

“광야, 사막, 심연.. 그 어느 곳이나 그대의 공간이자 내가 있는 곳. 그리고 신이 만든 곳이지.”


이게 무슨 말일까? 알 듯 모를 듯..

어쨌거나 그는 내 앞에 있다. 사막에서 죽을 뻔한 내게 먹을 것을 내어주었고 쉴 공간을 주었다. 그리고 나와 말하고 있다.

이 공간은, 이 곳은, <나의 공간>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가 “있는” 곳이며 “신이 만든 곳”이라 했다.

사막도, 움막도.., <나의 공간>이라고, 그가, 말했다.


‘어쩌면 이곳은 [나]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먹으니 에너지가 생긴 것일까?

사막으로 오기 전, 내가 생각났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분노와 무기력을 오가며 미쳐가고 있다가..

죽으려 했구나.

나, 죽으려고 했구나.


*


지금 나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여전히 발을 걸치고 있다.

실제 나의 육신은 누워있는 상태, 말하고 있는 나는,

꿈속이다. 그러니 저 사람은 모세가 맞다. 나는 꿈속에서 모세를 만난 것이다.



나의 영혼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거봐. 너, 죽고 싶었던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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