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1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임사체험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꿈이라기엔 너무 선명하고 꿈에서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사체험이나 꿈이나, 어차피 나의 무의식 속일 것이다. 죽기 위해 몸을 던졌는데 물속이 아니라 사막이라니, 너무나도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이라니. 나의 무의식은 참으로 유머러스한 면도 있군. 그러나 아무리 꿈을 인지하고 있다 해도 내 마음대로 장면을 바꾸거나 등장인물을 바꿀 수는 없었다. 등장인물의 대사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만난 게 내가 처음인가?”
그가 내게 물었다.
그는 내 꿈속의 등장인물이다. 그렇다면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은 만날 수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나도 물었다.
“네. 모세님은 다른 이들도 만나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있지.”
있다고? 진짜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유대인들의 영도자, 그 모세인가? 그 모세의 영혼이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평소 모세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진짜 모세의 영혼인지, 아니면 내 무의식이 만들어 낸 등장인물인지를 알기 위해.
“모세님은 유대인이 맞나요? 그냥 평소에 궁금했습니다.”
“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인가, 단순한 궁금증인가?”
“정말 단순한 궁금증입니다. 전 모세가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 이집트 왕족일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겁이 났다. 호기심 때문에 상자를 열어버린 판도라처럼 뭔가 잘못한 것 같았다.
“제가... 뭘 잘못...”
그가 내 말을 막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얘기해 줄 수 있겠나?”
“대단한 추론은 아니구요, 그냥 제 상상인데.....”
하고는 나의 상상을 풀어놓았다.
제 생각은 이래요.
모세는 람세스 2세와 배다른 형제인데 권력 싸움에서 실패하여 궁을 떠날 수 밖에 없었어요.
권력싸움까지 했던 왕자였으니 순순히 떠날 성품은 아니었어요. 세력을 만들어 훗날을 도모 하고 싶었어요.
왕가에 적대적인 무리를 찾던 중에 히브리인들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심지어 설득이 쉬웠던 거예요. 이 무리는 똘똘 뭉쳐 있는데다가 무리를 이끄는 족장만 잘 설득하면 될 것 같았어요. 또 이들은 심지어 왕가의 압제를 피해 자기들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어요. 그러니까 갈 곳도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나는 왕자였던 몸이오! 내가 당신들을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도록 돕겠소. 대신 나를 선두에 세우시오~!”
대충 이해관계가 맞았던 히브리인들과 모세는 이렇게 결합해서 이집트를 나갔다... 전 이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신의 부름을 받아 한 민족의 영도자가 되었다기 보다 권력욕이었다!
이게 맞지 않나.. 이렇게 생각해요.
그는 나의 가설을 들으며 가만히 차를 마셨다.
웃을 줄 알았다. 웃어줄 줄 알았다. 3500년쯤 뒤의 후대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재밌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심각했다.
내가 너무 했나? 유대인들의 영도자,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정신적 지주인 그의 면전에서 내가 지금, 적의 왕족이라는 막말을 내뱉은 건가? 꿈이건 현실이건, 상상이 불필요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어 불안을 자아내는 사고형 인간의 전형을 또 그대로 시전하고 있는 것인가? 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그의 눈치를 보며 움막 안의 기운을 살폈다. 그의 내면은 요동치고 있으나 화가 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주 천천히 그가 입을 열었다.
“간혹 광야에서, 사막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지.
그들은 대부분 내게 신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이유가 있지.
이곳에서 나를 만난다는 것은, 죽을 만큼 자기 자신의 바닥, 그 끝을 보고 있기 때문이지.
신을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대는 나의 역사를 물었네.
왜일까?”
그가 말을 끝내는 순간, 나는 알아버렸다.
그는 내 무의식이 만들어 낸 등장인물이 아니다. 진짜 모세다. 정말로 나는 모세 앞에서 모세가 권력욕에 쩐 인물이라고 나의 상상을 펼쳐놓은, 대단히 버릇없는 후손이 된 셈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사실대로 그에게 털어놓았다. 당신이 내 무의식이 만든 인물인지, 진짜 모세의 영혼인지 알고 싶었다고. 그리고 솔직한 나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당신처럼 신을 대면하는 사람은 모르는 게 있습니다.
나같은 평범한 인간은 신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그런데도..! 신을 알고 싶고 신께 다가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인지도 모르겠더군요.
당신같은 사람은 어떻게 신과 대면할 수 있었는지!
소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책에 써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탐구하고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네! 저는 신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래서! 당신도 궁금합니다!”
나는 그저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나의 이야기를, 어디에도 할 수 없었던 나의 진심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드디어 만나, 진심을 담아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말을 했다기 보다 절규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강물에 몸을 던질 때까지, 태어나 48년간 단 한 번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해본 적 없던 말들.
어쩌면 나는 모세가 부러웠던 것이다. 신과 대면할 수 있는 그가 부럽고 질투가 나서 권력욕이 가득한 남자로 상상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미안했다.
“그대의 상상은 놀랍다.
.... 그리고 ...... 고맙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얼굴을 대충 닦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응?
갑자기?
고맙다고?
왜?
“몇천 년 동안, 나는 한 민족의 영도자이자 종교의 아이콘이었다.
상징만 남고 나 자신은 사라졌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
나의 할아버지는 아크나톤.
둘째 아들이었기에 왕이 되지 못할 줄 알았다. 왕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내 아버지도 태어날 수 있었다. 내 아버지는 왕비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아니었다. 왕비가 사랑했고 왕이 사랑한 여인, 힉소스 왕조의 핏줄이자 왕비의 시녀에게서 태어났지.
들은 얘기로는 힉소스 왕조가 망하고 모든 왕족들이 추방당할 때, 미처 이집트를 빠져나가지 못한 무리가 있었다 한다. 당시 이집트 왕가에서는 힉소스 잔당들을 아주 싫어했지만 워낙 지혜롭고 현명한 여인이라 왕비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의지하여 궁에서 같이 지냈다 했다. 대왕은 왕비와 늘 함께 있던 셈족의 그 여인-나의 할머니를 정말 사랑했다. 어쩌면 왕비보다 훨씬 더 사랑했을 것이다.
아크나톤은 똑똑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형이 왕이 되면 자신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내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 그는 왕이 되어야만 했다. 왕위에 오른 형이 너무 빨리 죽어버렸거든.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자기 형을 죽였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 모든 상황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결정하게 된 것이 아몬신을 비롯한 모든 신을 내리고 아톤신을 올려 오직 아톤만을 섬기는 강력한 종교 개혁이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였다. 권력은 위대한 힘이지만 동시에 파괴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내 아버지는 왕의 핏줄이지만 당연히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부터 왕의 수업을 받는 대신 아크나톤의 제사장 수업을 받았지. 후대의 누군가가 나를 두고 아크나톤의 제사장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다.
나는 그대가 말한 대로 이집트 왕족이 맞다. 후대의 그대들에게 유명한 람세스 2세, 19왕조의 그들보다도 내가 더 이전의 이집트 왕족의 핏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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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가 있었던 것에 놀랐다. 너무나 오래전 이야기를 당사자에게서 듣는다는 경이로움에도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내 지식의 증명을, 증언을 통해 직접 듣고 있음에 소름이 끼치도록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아크나톤 유일신 사상이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뿌리지!
“디즈니가 괜한 제목을 지은 게 아니었어요, 당신은 ‘진짜’ [이집트 왕자]였던 거예요!”
“그대의 상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만 내게는 반가운 상상이었다.”
“그럼, 유대인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한 것은 맞아요?”
“그러긴 했네.”
“우와! 제가 상상한 대로 뭔가 권력 쟁탈전 같은 게 있었나요?”
“그 또한 반은 맞고 반은 사실과 다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찻물을 가지고 왔다. 차호에는 처음 보는 과육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옅은 사과향과 박하향이 있었고 사루비아꽃 같은 달콤한 맛이 났다.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대왕이 죽은 후에 사람들은 다시 아몬을 섬겼다. 그러니 누구도 아케트아텐, 그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모두 테베로 돌아갈때 내 아비는 아케트아텐에서 아크나톤의 제사장으로 남았다. 그가 진정으로 신을 섬겼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그는 테베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지. 폭력적인 개혁을 한 이가 죽었으니, 개혁은 지속되지 않았다. 개혁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선봉에 선 내 아비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아몬신을 섬기는 이들의 손에 내 아버지도, 내 형들과 누이도 죽었다. 아몬을 섬기는 이들이라 아그나톤의 제사장인 내 아비를 죽였다기보다 내 아비가 자신들의 핏줄을 죽인 왕의 아들이어서 죽인 것이다. 대를 이은 복수, 반복되는 미움일 뿐이었다. 그건, 내가 겨우 두 살 때 일이었다.
내 어머니는 현명한 분이셨다.
내게 단 한 번도 내 아비의 죽음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피의 복수가 나에게서 끊어질 것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면 장성해서라도 그들을 향해 칼을 들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것 같다.
어머니는 정말로 현명한 분이셨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걷고 걸어 아라비스로 갔다. 내 할머니가 힉소스 왕가 출신이었음을, 그래서 힉소스의 옛터로 가면 나라도 살려줄 것이라 희망을 품고 간 것이다.
어머니가 찾아간 곳은 파라메수의 집. 바로 람세스 2세의 할아버지이자 이집트 제19왕조의 문을 여는 람세스 1세의 집으로 간 것이었다. 그곳에 가서 내 어머니는 가족의 비극에 대해 말하고, 힉소스 왕가의 핏줄임을 고백했다. 그대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19왕조는 애초에 힉소스 잔류 세력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일강 동쪽에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음을, 아는 이들은 안다.
다행히 파라메수는 어머니와 나를 거두어 주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내가 6살이 될 때 돌아가셨다. 세티 1세는 힉소스 왕가의 피가 흐르는 나를 양자로 입적해 줬다. 그래서 그대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집트 궁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
전혀 몰랐던 사실.
그저 이집트 왕자로 행복하게 살다가 광야로 간 것이 아니라니. 차라리 미리암이 바구니에 띄운 아기인 편이 훨씬 인간적이다. 이건 너무 아프지 않은가? 가족이 모두 이웃들에게 죽임을 당한 아기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그 사실을 함구하고 살았다니.
후대의 성서 기자들은 모세의 일생이 너무 아파서 이것을 숨긴 것일까?
아니면 그가 아크나톤의 후예라서 숨긴 것일까?
후자일 확률이 크겠지. ‘모세’라는 이름조차도 히브리어에서 찾기도 하니 말이다.
“모세 (Moses/ ‘-mose’)”라는 이름은 이집트어로 ‘~의 아들(-ms, -mes, -mose)’ 이란 뜻이다. 정확히는 이집트 왕들의 이름에 자주 붙는 접미어였다. [투트모세 (Thutmose / Thutmosis)]는 “투트의 아들”이란 뜻이고 투트는 지혜의 신이니 지혜의 신 아들이란 말이 된다. 모세가 말하는, 또 우리가 잘 아는 [람세스 (Ramesses)]도 “라의 아들”, 그러니까 태양신 라의 아들이란 뜻이다.
[모세]는 본래, 앞에 신의 이름이 붙고 ‘~의 아들’로 완성되는 이집트식 신왕 이름이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이집트 왕가에 입양이 됐기 때문에 아비가 없어 신의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모세가 아주 중요한 유대인들은 모세의 이름의 기원을 히브리어에서 찾는다. 출애굽기 2:10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וַתִּקְרָ֤א שְׁמוֹ֙ מֹשֶׁ֔ה
וַתֹּאמֶר֙ כִּֽי־מִן־הַמַּ֖יִם מְשִׁיתִֽהוּ׃
“그녀가 그의 이름을 모세(מֹשֶׁ֔ה Mosheh)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냈다(מְשִׁיתִהוּ meshitihu)’고 말했기 때문이다.” 라고 적혀 있는데, 이건 너무 많이 “우기기”아닌가? 내가 지금은 모세에게 직접 들어 이것이 사실이 아닌 줄 알지만 듣기 전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어떻게 이집트 공주가 아기를 건져내고 히브리 말로 히브리 동사 “매쉬티후~”이렇게 발음할 줄 알아서 “모쉐~”라고 이름을 지을 수 있었겠는가? 차라리 물에서 건졌다 치더라도 아비 없는 자식이라 신의 이름을 뺀 [모세]라고 이집트식 이름을 지었어요~ 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납득이 되지 않나?
하지만 성서 기자들은 철저하게 모세를 히브리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 이해한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으냐?”
내가 딴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나도 참 대단하다. 지금 이곳이 얼마나 귀한 자리인데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하다니.
하긴..? 그렇게 딴 생각도 아니지.
“당신의 이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름?”
“네. ‘모세’라는 그 이름요. 누가 지어줬습니까?”
“세티 1세. 나의 원래 이름은 기억에 없다. 세티 1세가 나를 입양하고 나를 모세라 부르라 했다.”
“역시 그랬군요.”
모세도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재촉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도 자신의 살아생전 일생을 돌아보는 것이 오랜만 일테니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겠나?
나는 사루비아꽃 맛이 나는 향긋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움막의 표면에 모래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나 사막에 있었지.
****
람세스 2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였다. 내가 그보다 두 살이 더 많았지. 세티 대왕은 나와 람세스를 모두 공평하게 대했다. 공부도 함께 하고 검술도 함께 배웠다.
하지만 람세스가 열두 살이 되자, 모든 공부를 함께 하지는 못했다. 람세스는 그때부터 더욱 철저하게 왕이 되는 교육을 받게 된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람세스가 왕이 됐어. 람세스가 열네 살 때였다. 처음에는 내가 궁에서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점점 눈치를 주는 자들이 생겼다. 람세스도 처음엔 내 편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도 나를 내치라는 주변의 성화에 지칠 데로 지쳤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궁을 떠나는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
이유는 분명했다. 19왕조는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는 전 왕조의 사람이었으며 힉소스 왕가의 피도 있지만 당시 이집트의 모든 이들이 경멸하는 아크나톤의 핏줄이기도 했다. 나, 모세라는 존재는 왕조가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즈음, 나도 내 가족들이 어떻게 죽게 됐는지를 알게 됐다. 정확하게 내 가족들을 죽인 자들은 결국 람세스 1세를 세운 자들이었다. 람세스 2세에게 나를 멀리하라고 한 무리와 내게 내 가족의 죽음을, 그 진실을 말한 무리는 같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람세스에게 나를 전장으로 보내라고 했다.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으면 자신들의 손은 더럽히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람세스는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왕자였지만 또한 람세스의 신하였다. 나는 전장으로 나갔지.
하지만 람세스는 내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전쟁에서 이겨 돌아오면 상을 내릴 명분이 생기니 나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무리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는 전쟁에서 죽지 않았다. 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그대의 상상처럼 람세스를 배신할 생각도 왕조를 배신할 생각도 없었다. 권력을 가질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이집트에 남아 있으면 내 가족들처럼 나도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나를 죽일 자들은 차고 넘쳤다. 아크나톤에게 죽임을 당한 핏줄이건, 람세스 왕가 추종자이건 말이다. 그래서 이집트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던 중에 아론을 만났다. 아론은 그대의 상상처럼 이집트 왕가를 심하게 미워하고 있었고 내가 그들에게 죽을 처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내게 먼저 제안했다.
자신들의 일족이 원래 있던 땅으로 갈 것이라고. 가야만 한다고. 그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는 이집트 귀족들을 향해 봉기를 일으켰던 사람들이었다. 엘리트들의 압제에 당하고만 있던, 약한 이들이 아니었다. 이집트 병사들은 그들을 잡으려 혈안이 돼있었다. 그래서 탈출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론은 내게 이집트 병사들을 따돌릴 무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나를 탈출을 위한 용병으로 쓰려던 것이다.
****
순간, 마시던 찻물이 잘못 넘어갔다. 켁켁거리며 연신 기침을 해대는 바람에 이야기가 끊겼다.
“놀랐는가?”
“놀랐죠, 당연히. 이건 뭐, 상상을 초월합니다. 켁켁켁!
리더로 청빙한 줄 알았는데 용병이라니요? 켁켁!”
“나는 히브리인들의 리더가 아니었다.”
진짜로? 진짜 아니었다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몇천 년을,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를 민족의 리더, 믿음의 영도자, 신의 대리인으로 알고 있었건만, 그게 아니라는 말인가?
“모세 당신이 히브리인들의 탈출을 이끈 것이 아니란 말씀인가요?”
“결국 그렇게 되기는 하였지만 처음엔 그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휴우..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인류사 전체가 거짓이 될 뻔했다.
****
이집트 탈출, 그 사건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민족 대이동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소규모였지.
하지만 이동을 하는 이들의 구성원이 문제였다. 이집트 권력층 입장에서는 왕조의 확실한 기반을 위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이들이, 살아서 이집트 밖으로 나가는 모양새였다. 나를 비롯해서 말이다.
왕가나 귀족들 입장에서는 내가 제일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말이 계속해서 힘을 얻었고 나는 어느새 탈출자의 무리에서 리더가 됐다.
탈출을 도모할 당시에는 아론의 입김이 가장 강한 줄 알았다. 그러나 히브리인 무리에서 더 입김이 강한 이가 있었다. 그는 잘 나서지 않았기에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물을 건넌 뒤에야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
나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리암요? 내 이름 미리암!”
“그대가, 그대 이름이 미리암이라고?”
“네! 제 부모가 붙인 이름은 다른 것이지만,
제가 저에게 붙인 이름입니다. 미리암!”
그녀가 그 히브리인들의 리더였다니.
그래, 내 감은 틀리지 않았어.
내가 성서에서 가장 멋지다고 느낀 인물,
가장 내 마음에 와닿은 사람,
그래서 35년간 내 시그니처로 사용한 그 이름, 미리암.
“여기 어디서 미리암님도 볼 수 있나요?”
나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모세를 향해 물었다.
잠시, 아주 잠시 나를 빤히 보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뛰어든 곳은 어디인가?
물속인가, 모래 속인가?”
미리암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고 있던 나는, 그의 말에 나의 육신이 있는 곳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 맞다. 나 지금 꿈속이지?
그리고 나...
나....
.. 죽겠다고 물속에 뛰어들었었지?
.. 내가 보고 있는 모세가, 내가 뭘 하다가 여기에 왔는지 안다는 건가?
“그대는 이미 알고 있네.
미리암을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이름을 들여다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