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2-1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
나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곧 휴거가 있을 거라던 세기말의 그즈음, 교회에서는 내가 즐겨듣던 어지간한 음악들은 모두 사탄의 음악이라며 듣지 말라고 했다. 나름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나는, 교회에서 하지 말라고 했으니 Rock도 Metal도 듣지 않았고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하는 조지 윈스턴도 듣지 않았다. 열심히 복음성가만 듣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바다의 노래>라는 기가 막힌 승전가를 불러 재낀 그녀를 알게 되었다. 성서의 내용을 기억해 보자면 [미리암이 북을 들고 나서면 다른 여인들도 북을 들고 나와 그녀를 따라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그녀의 노래는 탈출자들에게 신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그들을 쫓는 이집트 군대에게는 두려움을 심어주었다]고 했다.
미리암의 악기는 탈출자 무리를 압제하던 적들의 악기였고 노래의 리듬도, 선율도 그들의 것이었을 것이다. 세기말 소녀 시절 내가 만난 미리암은, 말하자면 일종의 “사탄의 음악”으로 신을 찬양한 혁명적인 예술가였다.
나의 꿈속, 사막에서.. 그런 미리암을 만날 수 있을까?
모세도 만났는데 미리암을 만나지 못할 건 또 뭔가? 소녀 시절부터 내가 평생을 두고 “나 자신”이라고 명명하고 살았는데 말이다. 이름까지 붙여가며.
“그대는 이미 알고 있네.
미리암을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이름을 들여다보게.”
이름.
מִרְיָם, Miriam
מרי (מרה / מרי) – marah / meri = “반역”, “반항”
“모세님, 미리암.이란 뜻은 <반역> <반항>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음에 안듭니다!”
“그럴 줄 알았다.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모세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모래가루가 되어 스르르, 마이클 잭슨 뮤직비디오의 마이클 잭슨처럼.
(휴우. 꿈 아니랄까봐 별 희한한 시퀀스가 다 나온다. 좀 더 과감하고 희뜩한 퇴장 씬은 없었을까? 내 꿈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참나. 아, 이럴 줄 알았으면 SF영화, 만화, 소설을 좀 더 많이 볼걸, 쫍.)
*
움막에 혼자 남은 나는, <미리암> 그 이름을 묵상했다.
언어의 의미란 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마음대로 달라질 리 없건만, 출발지가 “마음에 들지 않음”이라니 막막했다.
‘음....’
- “그대가 뛰어든 곳은 어디인가? 물속인가, 모래 속인가?”
아! 수수께끼는 이 말부터 시작이었지?
내가 뛰어든 곳, 물이다.
- 물 : מַיִם Mayim
- 강 : נָהָר Nahar
- 바다 : יָם Yam
찻물을 찍어 탁자에 “물”과 관련된 단어를 써보았다.
‘음... ‘미리암’과 연관시켜보면 ‘나하르’는 빼도 될 것 같고...’
하는데 그때!
탁자에 찻물로 쓴 글자들이, 그 찻물이, 방울방울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소용돌이가 치더니 점점 물이 커졌다.
탁자는 물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빙빙 돌다가 움막 아래로 쑤욱 밀려 내려가 버렸다. 점점 물 소용돌이는 지름을 넓혀갔다. 나는 물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움막 전체가 씽크홀 같은 물의 소용돌이로 삼켜졌다.
아, 이곳은.., 내가 몸을 던진 물속.
내 몸이 강 아래로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발버둥 치지 않아야 죽는다.’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물에 놓았다.
회색빛 탁한 강물의 바닥.
분명히 이쯤이면 죽었어야 했을 시간.
왜 물속에서 숨이 쉬어질까?
왜지?
다시... 이것이 나의 꿈속임을, 이것이 그 순간의 회상임을 직감하면서..도, 그때를 복기했다. 내가 몸을 던진 이유, 내가 죽겠다 결심한 이유에 대하여.
어릴 때, 나는 무대 위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의 재능은 스타가 된 사람들에 비해 보잘 것 없다고 판단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능은 재화이자 돈이다. 무대 위의 직업은 도박과도 같고 나의 재능은 도박에 걸 만큼 뛰어나지 않으니 포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난을 원치 않으니. 그래서 무대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무대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그 순간의 기억이 삶의 전부인 이들은, 타고난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피나는 노력과 진심을 다한 정성으로 빈 곳을 채웠다. 사람들은 그런 그들의 재능과 서사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얻었다.
그러나 세상의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모든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트랜드에 맞지 않아서, 학연과 지연을 따지며, 작품 자체에 대한 편견, 아티스트에 대한 편견.. 무대는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은 조건을 만들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무대가 없어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결국 무대를 포기한 내가, 무대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애절함과 진심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잘해 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이 일이 내 삶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래, 나는 열심히 살았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열심히 산 죄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 사는 자’는 ‘욕망이 거센 자’들의 좋은 장기 말이다. 그들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를 도구로만 사용하려 들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의 장기 말로 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그들은 곧 다른 장기 말을 찾았고 나는 버려졌다.
장기 말이 되지 않겠다 선언하고 마음먹으면 주체적으로 나의 일을 해내고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잔인했다. 잔혹했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 믿었던 평생의 신뢰가 깡그리 무너졌다. 나의 진심을 알아 줄거라 믿었던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진심”은 오독 당하였다.
내가 의지했던 어른들은 잡소리만 늘어놓았다. 심지어는 그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나로 실현시키기 위해, 나를 장기 말로 쓰려고 했다. 그 중엔 내 부모도 있었다. 그때부터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엔 분노했다.
화가 나서 소리치고 울다 보니 거대한 바위산이 나를 향해 우박처럼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장기 말이 아니라 홀로 서려 했던 나는, 그냥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됐다는 뜻이었다.
쓸모가 없어지니 가난해졌다.
마이너스 마이너스... 돈을 내라는, 돈을 갚으라는 메시지와 전화..
그 나이가 되도록 그 돈도 없냐, 뭐했냐..
돈도 물질도 없고..
사람도, 사명도, 꿈도, 신념도, 진심도 사라지고 없었다.
살아있을 가치가 없었다.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면, 죽어야지.
강으로 몸을 던지던 그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토록 처절하게 쓸데없는 존재가 감히 고귀한 눈물을 흘릴 수 있겠는가? 이 세상 누구에게도, 미안하다 느끼지 않았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열심히 살았는데 그 결과가 배신과 상실, 외로움과 무기력, 가치 없음과 쓸모 없음이라니..
그렇게 유서 한 장, 남기는 글자 하나 없이 강물에 몸을 던졌다.
신이 잘못한거다, 이건.
어떻게 이토록 가치 없는 삶을 살라 태어나게 했는가, 이 병신같은 신아!
회색빛 탁한 강물의 바닥.
분명히 이쯤이면 죽었어야 했을 시간.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회색빛 강물 깊숙이 내려앉은 나의 몸에 에메랄드빛 광채가 보인다.
“태어나기 싫었다 하였느냐?
네게 세상에 나오라 명한 이가 있더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빛깔, 투명하면서도 푸른 목소리, 아니 ‘푸르다’가 아니라 파랗고 하얗고 보랏빛도 있는, 투명하고 샤라락한 느낌의 그 목소리가 팔이 되어 나의 허리를 받쳤다. 물속, 분명히 물속이지만 편하게 숨을 쉬었다.
스르르르르르.. 그녀가, 나를 일으켰다.
“고통의 물, 쓰고 쓴 심연의 바닥으로 뛰어든 이유가 그것인가?”
아. 미리암.
מר (mar) = 쓰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מרי (מרה / מרי) – (marah / meri) = "반역, 반항" or 고통
ים (yam) = 바다
==> [Miriam] or [Miryam] = “쓴 바다”, “슬픔의 바다”, “고통의 바다”, “심연”
열여섯 살, 태어나 14년 몇 개월 때쯤부터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그녀,
성서 최초의 여 예언자 미리암을 내 눈으로 보다니!
세상에!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느낌이 강했기에 전사 스타일의 인상이 풍길 것이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여리여리했다. 키는 큰 편이었지만 약간 마른 듯했다. 그래도 옷 사이로 비치는 잔근육이 만만치 않게 단련됐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마치 발레리나의 몸 같달까? 그리고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 타로카드의 여사제와 좀 많이 닮은 인상이었다. 물론 카드의 여사제보다는 연륜이 있는 얼굴이었지만.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게 당신 때문이었나요?”
벌떡 일어나 강 바닥에 발을 대고 서서 정색하며 물었다.
“난 네게 태어나라 한 적도, 살라 한 적도, 죽으라 한 적도 없다.
아마도 네가 죽을지 말지 결정을 못한 모양이지.”
아. 내가 결심이 안 섰다고? 그럴 리가?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인데, 그 고통의 시간을 끝내겠다 결심하여 실행까지 했는데 지금에 와서 무엇 때문에?
‘하아...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죽기 직전까지도 하는구나..’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또 언제 마음이 바뀌어 꿈에서 깰지 모르잖아? 장소가 훅~! 바뀌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난 지금 평생 꿈꾸던 나의 우상, 미리암을 만난거다. 방금 전까지 사막에서 수다 떨던 모세가 말하길, 그녀가 히브리인의 리더였다고 했지. 죽기 전에 그걸 물어봐야겠다!
“미리암님! 아까 모세님이 말하길,
이집트를 탈출할 때 히브리인들의 리더는,
모세도, 아론도 아니고 미리암 당신이었다고 했어요.
놀라긴 했지만 그 얘기가 너무 기쁘고 좋았어요.
어떻게 된 일 이예요?”
미리암은 스르르 유영하여 자신의 얼굴을 내 얼굴 앞에 마주 댔다.
“어쩌다가 그 얘기가 나왔을까?
네가 무슨 얘기를 했기에 그 얘기가 나왔을까?”
그리고는 강바닥에 섰다.
“그냥 모세님의 살아온 얘기를 좀 들었어요.”
그녀는 가슴 품에서 작은 북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주변의 물방울들이 스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 동동도로로롱 동동도로로로로로로롱-
물방울들이 북소리를 만들더니 이내 나와 미리암의 주변을 둘러쌌다. 그리고는 우리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물기둥을 세웠다.
“대애박!”
물기둥 사이로 길이 보였다. 길은 강바닥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미리암은 먼저 기둥 사이, 길로 들어갔다.
“들어오렴.”
미리암을 따라 강 바닥 쪽으로 난 터널로 들어갔다. 더 아래로, 깊이 더 깊이 내려가고 있었지만 하강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어딘지 알 수 없으나 왠지 안전할 것만 같은 긴 터널을 계속 걸으니 터널의 끝에 투명한 파란빛이 보였다. 그리고... 빛을 통과하자 SF 에니메이션에서 본것 같은 미래 도시가 나왔다. 흡사 블랙 팬서의 와칸다 왕국의 바다 버전이랄까?
강바닥에 이런 게 있다고?
“우와~ 여긴 어딘가요?”
“나의 품이자, 너의 마음이자, 별천지지.”
여기서 가장 이질감이 있는 것은 “나의 마음”.
하지만 이 또한 나의 꿈속이니, 그래 ‘나의 마음’도 맞겠지. 나의 무의식.
강 바닥보다 더 내려온 이 도시에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막판에 내가 너무 외로웠나? 그래서 내 무의식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건가?’
죽기 직전, 정말 사람이라곤 거울 속 나 자신도 보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이곳엔 남녀노소, 인종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지구인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더 특이한 것은 패션 스타일이었는데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선사시대 나무껍질 옷부터 한 번도 보지 못한 소재와 디자인의 옷도 있었다. 헤어스타일도 제각각이었는데 콘헤드나 민머리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좀 놀랐다.
미리암이 데려간 방에서는 도시 전체가 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커다랗고 둥근 푸른색 소파에 앉아 손짓했다. 그 손짓에 그녀가 앉은 소파와 비슷한 의자가 하나 더 생겼다. 내가 앉을 곳을 마련해준 것 같았다. 소파에 앉으며 미리암에게 물었다.
“당신이 히브리인들의 리더였는데 왜 성서는 그렇게 안 적혀있는 거예요?”
“그땐 그래야 했으니까.”
“억울하지 않아요? 힘들게 일은 다하고 공은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갔는데?”
미리암은 나의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무릎 위로 올리고 팔로 턱을 괴더니 나를 빤히 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반가사유상 같았다.
“그런 일들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했으면 된 것이다.”
“어려운 일을 했는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너무 서럽지 않나요?”
“아무도 라니? 신이 아시는데...
그리고 모세도 안다 하지 않았느냐?”
“아....”
신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인간이 어떻게 일을 하면서 인정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미리암은, 성서에 의하면 신과 소통하는 모세에게 시비를 걸고 대들었다는 이유로 한센병까지 벌로 받았다고 기록돼 있단 말이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를 할 때 미리암 만을 주제로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도 못했지만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은) “모세에 대한 반항”에 대해서다. - 모세에 대한 반항, 또는 저항은 신에 대한 반역이라고 한다. 성서도 물론 이 사건에 대해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불러 직접 불로 나타나 말씀하시는데 ‘니들(아론과 미리암)과 달리 모세는 나와 직접 대면하는 자’라며 특별함을 강조한다. 모세가 구스 여인과 혼인한 것을 두고 한마디씩 한 것은 (모세에게 반항한 것은) 아론도 같이 했고 신에게 불려간 것도 같이 불려갔는데 미리암만 벌을 받았다. 이를 두고 미리암이 주동자여서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미리암이 더 역정을 내서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해석은 주로 다음과 같다.
1. 미리암이 리더 모세에게 반기를 들어 신이 벌을 내렸다.
2. 미리암이 모세에게 반기를 든 이유는 모세의 위치를 질투해서다.
3. 때문에 신이 미리암의 권력욕을 단번에 봉쇄하기 위해 큰 병을 내렸다.
4. 그러나 모세가 하해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 미리암의 병이 나았다.
5. 미리암은 7일 후, 탈출자 무리에 다시 들어간다.
6. 욕심냈던 미리암은 약속의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죽는다.
성서에 써있는 미리암 서사의 약 70%가 이 내용이다.
성서의 최초 여성 예언자 치고는 정말이지 너무 짧은 내용인데다가 너무 네거티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6세 소녀였을 시절에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를 하려던 그때는,
예술가 미리암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 되지도 않는 미리암 서사가 부정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민족을 위해, 신이 명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험한 일은 다 하고 벌까지 받은 미리암이 난 늘 불쌍했다.
“미리암님, 모세한테 화낸 건 진짜였어요? 그래서 신이 벌을 주신 거였어요??”
“모세에게 화를 냈긴 냈지. 하지만 신은 내게 벌을 주신 게 아니야.”
모세도 그렇도 미리암도 그렇고...
다들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대.
반은 맞고 반은 다르대.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내가 모세에게 화가 난 이유 중 하나는, 혼인한다는 말을 사전에 하지도 않고 해버렸기 때문이야. 미리 말해줬더라도 말렸을 테지만.
그땐 이미 모세가 대외적으로 탈출자 무리의 리더였기 때문에 그의 혼인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우리 무리에는 히브리인들도 있었지만 아톤을 섬기던 이들도 있었어. 뭐 그 밖에도 19왕조와 대척점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지. 그랬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충돌하기도 했고 그걸 조정하고 조절하는 것은 꽤나 어려웠어.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이집트를 탈출해서 약속의 땅에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렵지만 서로 조심스럽게 맞춰 가고 있었어.
모세가 구스 여인과 혼인을 하고 나타났을때 이미 그는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 상태였어.
십보라와의 결혼은 나와 아론이 찬성했었다. 우리가 이집트를 나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치고 굶주린 우리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내어준 게 이드로였고 모세는 이드로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어. 그러면서 십보라와 결혼한거거든.
무리의 리더로 보인 모세가 십보라와 결혼한다는 얘기는 그냥 한 인간의 관혼상제 잔치가 아니야. 너희들이 보기엔 정치적이겠구나.. 싶을 수도 있는데 여기에는 대단히 상징적인 면이 숨어있지. 그건 바로 - 모세가, 우리 무리가, 미디안의 문화를 흡수한다는 의미였지. 더 중요한 건 이드로가 섬기던 신 <야훼>를 받아들인다는 선언이었어.
그러니까 모세의 혼인은, 상대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흡수한다, 상대의 신도 받아들인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안그래도 무리 안에서의 충돌을 막는 것에 힘들었는데 십보라도 있는 모세가 구스 여인과 또 혼인을 했으니 내가 화가 안 나면 이상하지 않겠느냐?
“잠깐만요!
자초지종은 알겠는데요..,
미리암님.. 원래 야훼를 안 믿던 분이었어요?”
“응.
지금도 딱히..!”
이건 좀 많이 센데? 유대인은 태생적으로 야훼를 섬기는 족속 아니었어?
미리암은 성서에서나 서사가 미흡하지 유대인들의 다른 문헌에서는 엄청 큰 예언자로 취급되기도 한다. 바빌로니안 탈무드에서는 7명의 유명한 여성 예언자 중에 으뜸을 미리암으로 꼽는다. (*<바빌로니안 탈무드- 메길라Megillah(14a)> "7명의 여성 예언자는 미리암, 드보라, 한나, 아비가일, 훌다, 에스더, 사라이다. .... 미리암은 이미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그의 운명을 예언한 자였다.”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지금, 그 미리암이, 유태인들의 조상 중에 첫 여성 예언자라 씌여진 미리암이 야훼를 안 믿었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안 믿는대!
나는 말을 잃었다. 벙찐 표정으로 멍하게,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반가사유상 표정을 하고 있는 미리암을 보고 있었다.
‘아니 지금... 저런 미소가 나올 타이밍이야?’
“말이 생각나지 않느냐?”
“네...에...”
“모세가 말하지 않더냐? 내 동생이 아니라고?”
“네, 그건 뭐... 저도 이미 의심했던 거여서...”
미리암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 그걸 이미 의심했다? 내 이름을 오랫동안 쓸만한 이유가 있었군.”
“네?”
“네가 나의 이름을 너의 이름처럼 써온 것을 안다.
나를 흠모하고 나를 존경해 온 것을 안다.
그 진동이 지금 너와 나를 만나게 한 것이다.”
“아.. ”
그럴 수 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김춘수 시인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였고 성서에서도 신은 인간을 창조한 후, 모든 동물과 식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다스리라 했다. 이름을 붙이고 다스리라는 것은 신의 창조물을 인간 스스로 의미화하여 품으라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미리암]이란 이름을 붙일 때는 잘 몰랐지만 – 그때는 성서 속 당찬 예술가일 뿐이었지만, 자라면서 그녀의 이름의 뜻 “반항”으로 똘똘 뭉쳐 제도권 안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자들에게 늘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자가 됐다. 물론 그때는 그녀의 이름에 “반항”이란 뜻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인생의 쓴맛을 알고 그 물로 뛰어드니 그녀의 이름이 “고통의 바다”, “쓰디쓴 내면의 바다-심연”이란 뜻도 갖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게 됐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그래... 그런데....!
그런 그녀가 지금, 야훼란 신에 대한 신앙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아아아아. 머리 아파.
“저기...신이 있긴 해요?”
“오호라! 좋다.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얘기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은 존재하고 나는 신을 믿는다.”
“성서에는 당신이 예언자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아시죠?”
“예언자라...
나를 축소해서 쓸 수밖에 없어 그랬지만,
“우와아아아..!!!
지인짜.... 고위 여사제...”
머릿속에 메이저 2번 카드가 다시 떠올랐다.
더욱 명확하게.
요즘 사람들은 신이 있다, 없다 가지고 많이 싸우더라만, 내가 사람으로 살 때는 온 땅이 신들의 땅이었다. 곳곳에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이 있었지만 모두 이름이 달랐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김새와 사는 모양을 신들에게 갖다 붙였다. 신들은 인간들의 생각에서 나왔기 때문에 남자 여자도 있었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어. 실제로 이런 신들이 있기도 해. 다만 신도 레벨이 있을 뿐이지.
왜 사람들이 신을 생각하게 됐냐 하면 말이지, 우리가 그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우주를 창조하고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창조한 창조주는, 그 신은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이 차원에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기에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명명하는 것이 어려워.
하지만 그에게 지음받은 우리는 태곳적부터 그 존재를 느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만든 이를 찬양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 왜냐하면 내 존재의 “있음-존재함”이 너무나 경이롭거든! 신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있는 땅에서 가장 감동적인 우주의 섭리, 또는 가장 두려운 자연의 모습을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 이름 붙였다. 시간이 흘러, 그 이름에 상상의 이야기와 사실의 이야기가 붙어 어떤 신은 전설이 되고 어떤 신은 신화가 되고 어떤 신은 여전히 신으로 남았지.
그러니까 신은, 네가 얘기하는 이 우주 전체를 창조한 창조주를 얘기하는 것이라면, 어떤 이름이 붙어 있건 한 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야훼나, 알라, 라, 이시스, 엘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편의다. 알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이름을 이미 인간이 알고 부를 수 있다면, 그는 창조주가 아니다.
내가 아까 신에게 벌 받지 않았다 하지 않았느냐? 창조주는 인간을 벌하지 않으신다. 그는 노하지 않으신다. 온전히 아름다우시고 온전히 귀하시며 온전히 온유하시다. 그는 우리의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온전함을 갖고 확장하신다. 그 온전함 안에 인간은, 신이 - '노한다', '벌을 내렸다', '질투한다', '공허하다', '통제한다', '파괴적이다', '잔인하다', '아프다'고 표현할 만한 것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인간이 신처럼 온전하지 않아 느낄 뿐이다.
충격적인데 감동적인 이 느낌은 뭐지?
내가 그동안 알고 싶었던 신의 존재가 이런 것이었다면, 어쩌면, 좀 다르게 살았을 수도 있었을까?
하긴, 여전히 이해가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가슴에 닿아오는 것은 있다.
내가, 나의 삶이, 무엇을 잘못해 벌 받은 것이 아니었음을, 그저 지금은 그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미리암이 야훼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이해가 되었다.
사실 [야훼(יהוה)]는 고대 가나안 지역 신 중 하나였다. 전쟁의 신이자 사막의 신이었으며 주로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 가나안 남쪽 지역의 신이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여기서 “엘”이 가나안 만신전의 아버지 신 [엘 ( אֵל)]이고 야훼는 엘의 아들이라는 전승이 있다. 성서학의 학설로는 모세의 이집트 탈출 사건 때 이 두 신이 야훼로 통합됐다고 한다.
성서에도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한 부분이 있다. 성서에는 그 이름이 히브리어 자음 네 개[יהוה]로 써있는데 그것을 어떻게든 발음해보면 “야훼”다. 미리암이 설명해 준 것처럼 설명되어 있진 않고 너어무 신성하니 인간은 입에 담지 말라는 경고처럼 써있다. (아직도 유대인들 중엔 이를 읽지도 발음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미리암이 “나는 야훼를 믿지 않아”라고 말한 것은, 인간들이 “편의상” 신에게 붙인 이름에 개의치 않겠다는 의미고, 또한 “편의상”,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교리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역시 미리암이다!
“지금은 당신이 인간으로 살지 않잖아요? 신을 보셨나요?”
“나는 인간으로 살 때도 신을 보았다.
그리고 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였다.”
아무도 부를 수 없다면서?
그리고 아무도 못 본다면서?!!!!
미리암은, 그 어디에도 없는 자신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