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라고?
말도 안된다.
삶은 고통이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이기에 결국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던 “나”다.
그런 내가 어떻게! <삶>을, <태어남>을! ‘간절히 원했다’는 말인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태어나기를 원한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실체가 없는데 <태어남>을 원할 수 있는가?
*
“잠깐만요, 미리암님!”
어디론가 가려는 미리암을 불러 세웠다.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없지 않나요?
내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태어남을 원할 수 있다는 거죠?”
미리암이 이번에는 선 채로 또 반가사유상 표정을 지었다. 이젠 저 표정을 하면 좀 무섭다. 인자하고 감사하긴 한데 나의 무지가 온통 까발려져서 창피해지는 예고편이기 때문이다.
“나와 말하는 너는 누구냐?”
“네?”
“너는 지금 병원에 누워 갖은 기계에 연결되어 있는데 나와 만나고 있질 않느냐?
나와 만나는 너는 네가 아니냐?”
그렇다. 태어난 나는, 병원에 누워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도 있다.
여기에 있는 나는 “태어난 나”, 내가 아닌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어 다른 차원 어느 곳에 와있는 것인가?
어쩌면 이곳은 나의 예상과는 달리,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곳은 영혼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저는... 접니다.”
“그래? 그럼 너는, 육신이 나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글쎄요???”
“긴말이 뭐가 필요하겠느냐?
네가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볼 준비가 됐느냐?”
그걸 본다고? 전생같은거... 그런 건가?
준비? 준비.. 준비가 된거.. 맞겠지?
“..... 네에....? ,,,,네...에...”
나는 자신없게,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미리암은 준비 같은 건 하나도 안된 나를 보며 안심해도 된다는 듯 웃었다. 물론 안심 같은 것은 되지 않았다. 예상이 돼야 준비도 하고 안심도 하지, 전혀 알 수 없는 것 앞에서는 불안 뿐이다. 아! 손톱만큼의 설렘도 있었다.
*
미리암은 소매 끝에서 작은 피리 같은 것을 꺼냈다. 아이리시 휘슬처럼 생겼는데 입으로 갖다 댈 때는 플루트처럼 옆으로 댔다. 악기 안으로 바람을 불어넣자 맑은 물결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피리의 끝에서 피아노 현 인지, 하프 현 인지 모를 현들이 한 올씩 쏟아져 나와 허공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현들이 스스로 떨리며 소리를 냈다. 미리암의 입가에서 나오는 피리 사운드와 겹쳐져 다양한 악기 소리와 함께 풍성한 화성이 만들어졌다.
음악은 놀라웠다. 화성을 처음 만들었다는 피타고라스는 분명히 이 세계에서 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다시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 겨우 재현해낸 것이 삼화음이었으리라. 지금 미리암이 내고 있는 화성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것이다. 음계 자체가 다른 느낌인데 그것이 무엇이라도 나는 표현할 수 없다.
악기 소리도 모두 처음 들어본 소리였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소리라고 한다면 피아노와 하프, 목관악기가 어우러진 느낌인데 숲속 요정들과 바다의 여신들이 스르르 움직이고 말하고 웃으면 대충 이런 소리이지 않을까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악기와 선율,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음악에 취해 있는 사이,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눈을 돌려 둘러보았다.
완전히 순백색의 밝은 공간. - 이곳을 공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곳을 묘사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우주’라고 표현하는 곳은 주로 검은 바탕색을 갖고 있다. 그리고 뻥 뚫린 무한의 공간. 그 끝이 어디일지 몰라 무한하다고 말하는 어두운 공간에 항성의 빛을 받아 행성들이 빛을 뿜어내는, 그러나 그 빛이 우주에서는 점일 뿐, 어쨌든 검정, 검은, 누와르.
지금 이곳은 그것과 정반대로 완전히, 순전히, 온전히 하아얗다. 너무 하얘서 처음엔 눈이 살짝 부셨다. 다행히 금세 익숙해졌지만 하아얀, 그래서 너무나 움직이기도, 숨쉬기도 미안한 곳이었다. 온도와 습도, 압력... 모든 것이 적당해서 무엇 하나도 부딪힘이 없는, 그러나 가끔 살결에 스치는 어떤 느낌은 아주 보드라웠다.
미리암은 연주를 멈췄다. 하지만 그 선율은 어딘가에서 계속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
“이곳이다. 네가 태어나기 전 있었던 곳.”
“여기가요?”
나의 등 뒤에서 미리암이 내 눈을 가렸다가 떼었다. 그러자 어떤 형체들이 보였다.
스르르르르르-
처음부터 잘 보이는 형체들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선명하게 그 형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체였다.
“무엇이 보이느냐?”
“인간의 형체가 보입니다.. 근데 반투명 느낌이네요? 인간인가요?”
“영혼이다.”
“인간의 영혼인가요?”
“아니다. 그냥 [영혼]이다.
네가 저들을 인간의 형체로 보는 이유는 지금 네가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인간밖에 없어서 그렇다.”
“왜 저는 인간밖에 느낄 수 없나요?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도 볼 수 있나요?”
“너와 같은 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너처럼 이들을 모두 인간의 형체로 볼 것이다.
네가 사는 차원보다 높은 차원에도,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너는 그 차원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지.”
“3차원, 4차원 그런거요? 학자들이 11차원까지 발견했다는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것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개념과 맞닿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3차원에 살았던 너는 4차원을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니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이고.
하지만 지금 이곳은, 이미 네가 살았던 차원보다 높은 차원이다.”
차원 이동을 했다니! 그것도 더 높은 차원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나머지, 진심으로, 너무 큰 소리로 탄성을 내질러버렸다. 순간, 반투명 인간의 형체, 영혼들이 나를 쳐다 볼까봐 입을 틀어 막았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말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내 귀에는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글와글, 쫑알쫑알, 하하호호, 속닥속닥.....
모두들 한꺼번에 말하고 있었지만 명확하게 한마디 한마디의 말들이 들렸다. 신기했다. 어쩜 이들 중에 단 하나도 나에 대해 편견 없이 궁금해하고 있다니. 그리고 하나 같이 모두가 기대와 설렘에 가득차 있는 느낌이었다.
“어떠냐? 이 영혼들..?”
“참.. 즐거운 분들이네요. 뭔가 신나 있는 느낌이예요.”
“너도 태어나기 직전에 이들과 같았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는 미리암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미리암은 나를 만난 후 처음으로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곧 가슴에서 작은 북을 꺼냈다. 그리고는 북을 살짝 흔들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강바닥 그곳에서 보았던 것처럼, 작은 북 주변으로 물방울이 모였다. 작은 물방울들은 점점 커지더니 내 키 만한 지름의 물방울로 변했다.
“네가 그렇게 칼같이 잘라 말하니, 그 이유부터 직접 보거라.”
큰 물방울은 커다란 마법 구슬이 되어 나의 영혼을 보여줬다.
태어나기 직전, 하아얀 이곳의 입구에 있던 나.
내가 주인공인 트루먼 쇼 필름 같았다. 아니, 나만 보이는 CCTV 같았다.
**
하아얀 곳의 입구에 도착한 나의 영혼은 어디가 어딘지 두리번 거린다. 아마도 이곳은 문을 찾아 열어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나의 눈에는 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영혼들은 입구에 와서 금세 문을 찾아 들어가는 것 같다. 다들 좀 전에 내가 본 영혼들처럼 문밖에서부터 기대와 설렘에 가득차 뿅뿅 하아얀 곳으로 들어간다.
나는 나만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 쪼그려 앉았다. 그런데 보아하니 나의 영혼은 자기가 왜 못들어 가는지 아는 것 같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간다.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 마법 구슬 CCTV는 나를 따라간다.
내가 간 곳은 작은 옹달샘.
나의 영혼은 그곳에서 목놓아 울고 있다. 왜 울지? 다른 영혼들은 다들 행복한데 나는 왜 울지?
하아얀 곳에 못들어가서? 하긴 다들 들어가는데 나만 못들어가면 서럽지.
아니, 그런데 왜 저기 가서 울지?
옹달샘에서 울고 있던 내게 누군가 다가간다. 이제까지 봤던 인간들의 영혼과는 형체가 좀 다르다. 어떤 존재, 따뜻한 느낌의 누군가. 그가 말한다.
“왜 울고 있는가?”
“저는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라반에 들어가지지 않아요.”
아. 하아얀 곳이 라반이구나.
근데 내가 지금,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울고 있다.
태어나는 것을 원한 것도 모자라, 그 전에도 어디선가 살았다고?
내가 전생이 있었단 말인가?
내 영혼의 과거를 보며 충격에 휩싸였다.
대체 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저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인가?
“라반이 처음인가?”
“아니요.”
처음이 아니라고? 그럼 그 전생도 있었단 말인가?!
“그때는 잘 들어갔었나?”
“아뇨. 그때도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다음엔 꼭 혼자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라반의 입구에 선 순간에 알았어요. 이번에도 안될거란걸.
하지만 다음에는 정말 잘해볼거라구요!”
나의 영혼은 너무나 서럽게, 미치도록 서럽게 운다. 나도 살면서 저렇게까지 운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처절하게 울고 있다. 옆에 있는 저 존재가 누군지는 몰라도 이 차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때는 어디에 가서 도움을 받았었나?”
“저기 숲속 큰 나무 아래에서요.”
“그대는 벌써 두 번째,
스스로 원한 생을 완수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가?”
“너무 힘들었어요.”
커다란 마법 구슬 속의 나의 영혼이 고백하길,
지난 생도, 그 지난 생도 스스로 생을 완수하지 않았음을,
너무 힘들어서 그리하지 않았다 한다.
그러고도 다시 태어나려 한다.
왜? 도대체 왜?
힘들다면서!
나의 영혼 옆의 존재가 나를 안아준다. 도닥도닥. 아무 말도 없이.
하지만 그들의 모든 말이 들린다.
“이전 생에서 내가 생을 완수하지 못한 이유가 재능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어요.
라반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숲에서 기도했어요, 재능을 달라고.
신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저는 재능을 갖고 다시 태어날 수 있었어요.
제게 어미를 선택하라 하셨을 때 그저 얼굴이 예쁜 어미면 나도 수려한 외모를 갖고 태어날 것이라 믿어
그런 胎를 택했습니다. 설마하니 어여쁜 여인이 그렇게까지 가난한 집에 살 줄은 절대로 몰랐어요.”
“그래. 너는 재능이 많고 똑똑한 여인으로 태어났지. 게다가 어미를 닮아 참으로 어여쁘게 자랐구나.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구나. 너의 타고난 재능을 펼칠 장도 못 만들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니
이를 어쩐다니? 가슴이 아프다.”
“글을 배우고 싶었어요.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가면 나는 물을 긷고 집안 일을 해야 했어요.
오빠들과 남동생들은 학교에 가는데 나는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도망쳤어요, 집에서..”
“서울에 갔구나. 공장에 다니며 공부도 하고 검정고시도 보고 참 열심히 살았구나.
대견하고 아름답고 멋지다. 그대는 신이 주신 재능을 스스로 펼치기 위해 애쓰며 살아내고 있었구나.”
“언젠가는 나도 여고 교복을 입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입지도 먹지도 않고 월급을 모았어요. 학교에 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돈을 도둑맞았어요.”
“불쌍하다, 불쌍하다. 하늘도 무심하지. 이토록 열심히 사는 소녀에게 날벼락 같은 고통을 주시다니.
그래도 그대는 꿋꿋하게 살아내는구나. 다시 일어나 일을 하고 공부를 하는구나.
신께서 상을 내려야 마땅하지.”
“나는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연극을 하는 재능이 있었어요.
공장 동기들에게 나 혼자 연극을 써서 좁은 쪽방에서 조금씩 보여줬는데 그럼 박수를 받았어요.
그게 참 기분이 좋았어요. 누군가에게 박수를 받는다는 게 행복했어요. 그래서 꿈이 생겼어요.”
“참 많이도 썼구나. 노트가 백권은 족히 넘겠어. 부지런하기도 해라.
글을 쓸 때도 그대는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구나.
공장일도 하루 온종일 하는데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정말로 좋아했구나, 이 모든 것들을.”
“너무 사랑한 순간들이죠. 잠을 못자도 좋았어요. 못먹어도 되고 다 헤진 옷을 입어도 상관없었어요.
그냥 그 시간들이 좋았어요. 그런데 공장에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집 나간 나를 찾아내서는 나를 끌고 나왔어요.”
“비극이구나. 그대의 아버지는 그대를 시집보내려는 것이구나. 나이 많은 어느 홀애비에게.
그대의 재능과, 그대의 꿈도 모두 짓밟고.”
나의 영혼은 그 옆의 존재에게 안겨 말없이 그렇게 지난 생을 고백하고 있었다. 옆의 존재는 나의 영혼의 생을 온전히 이해하며 품어주었다.
**
커다란 마법 구슬 앞에서 나는 주저앉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쨍!하고 찢어지는 느낌이 났다.
눈앞이 흐려졌다.
--
아무런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눈물은 이제야 아무런 통제없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쥐어 뜯어냈다. 뜯어내고 뜯어내도 아픈 응어리가, 꽉 막힌 응어리가 박혀있었다.
숨을 가쁘게 내쉬며 속에 박힌 응어리를 뱉어내고 싶었지만 나오지 않았다.
......
큰 물방울 마법 구슬 속의 나의 영혼이 라반으로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옆에 있던 존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다음 생은 잘 살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미리암님.”
나는 미리암을 올려다보았다. 미리암은 눈물로 뒤범벅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은가?”
“죄송해요.”
그제서야 폭풍처럼 울음이 터져나왔다.
지난 생에서 이번 생을 연결시켜 준 이가 미리암이었기에
내가 그녀의 이름을 무의식에 각인시켰음을,
이번 생도 또다시 죽으려 한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미리암을 소환 했음을,
동시에 그녀도 나의 생에 상관하기 위해 찾아 왔음을..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모든 것이 온전히 신의 섭리였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찮다.”
*
“이번 생의 저는 지난 생의 저에 비하면 천국에서 살았는데 그걸 모르고 사는게 고통이라 했네요.
근데.. 미리암님.. 지난 생에 제가 죽은 철길요, 너무 익숙합니다.
환영이 아니라 이번 생에서의 기억인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지난 생의 그대와 이번 생의 그대는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네?”
“벌써 두 번이나 생을 완수하지 않고 돌아온 영혼이었다.
원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힘든 상황이었지만
상황이 너무 딱하여 다음 생에서 전생의 업까지 완수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네가 태어날 태(胎)는 선택의 폭이 좁아졌지.
반드시 이전 생의 혈연관계에서 나야 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네가 선택했다.
이전 생에서 너의 동생이었던 이가 너의 아비다.”
이건 또 무슨...?
그럼 이전 생의 나는 나의 고모? 그럴 리가? 그런 얘긴 들은 적이 없는데? 우리 고모들 두 분, 나는 잘 아는데...?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때 큰아버지가 하신 말씀. 방학 때 큰아버지 댁에 놀러 갔을 때, 저녁 밥상에서 반주 한잔 드시고는 하셨던 말씀이었다.
“너는 참.. 죽은 내 여동생하고 비슷해.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지나가는 말씀이었고, 그 한 마디가 끝이었지만 아주 가끔 그 말이 생각이 났었다. 죽은 그 고모가 누군지, 아빠와는 어떤 관계인지 물어본 적도 없었다. 아무도 그분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그 후에는 아무도 내게 닮았다고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사진 같은 것은 없었다.
“저희 아버지는 형제들이 많은데 왜 하필 저희 아버지를 택했을까요?”
“그때 그대가 그런 얘기를 했지. 남동생은 자기만큼 똑똑한데 자기는 딸이어서 학교를 못다녔지만 남동생은 학교를 다녔고 적어도 형제들 중에서는 가장 믿을만하다고 했어.”
나는 나의 아버지를 믿었구나. 내 아버지가 나를 가장 잘 돌봐줄것이라 생각했던 것이구나.
“21세기 미리암! 영혼은 말이다, 자신이 가장 잘 성장할 수 있는 태를 찾아서 거기서 태어난다.
영혼의 선택은 분명한 이유가 있어.”
“네... ”
“그대가 간절히 원해서 태어난 생이다.
이제 그 생으로 다시 돌아갈지 말지 결정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벌써요?”
“네가 이 생을 어떻게 얻은 것인지 알았으면서 그만둘 셈이냐?”
“아니, 그만둔다는 게 아니라,
미리암님과 헤어지기 싫어서 그렇죠.
그리고 깨어나면 다 까먹을까봐....”
“그건 너의 선택이다. 잊을지 잊지 않을 지는...”
신은 인간에게 뭐든 선택하는 자유 의지를 줬다고 했지. 정말 뭐든 선택이구나. 무슨 게임도 아니고.
아몰랑! 일단. 돌아간다!
나의 영혼이 간절히 원한 나의 생으로.
뭐 어떻게든 되겠지.
죽을 결심까지 하고 죽으려 몸도 던져봤는데 뭘 하든 안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