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 생을 어떻게 얻은 것인지 알았으면서 그만둘 셈이냐?”
그만둘 셈이 아니다!
나는 이 생을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태어났고 이 생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강물에 몸을 던진 채 이대로 죽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지 말라고 나의 영혼이 모세를 소환했고 미리암을 소환한 것이 아닌가? 다만 다시 깨어났을 때, 이 모든 것을 다 까먹고 또 똑같이 살면서 좌절하고 죽음을 흠모하고 뛰어들까봐 그게 겁났던 것이다.
“깨어나면 다 까먹을까봐....”
“그건 너의 선택이다. 잊을지 잊지 않을 지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죽을 결심까지 하고 죽으려 몸도 던져봤는데 뭘 하든 안되면 죽기 밖에 더하겠어?
“네! 저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간절히 원한 나의 생으로..”
미리암은 또 반가사유상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대의 생을 축복하고,
그대의 선택을 경외하고,
그대 영혼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
그대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가거라.
가서 그대 안에 있는 미완의 생을 살리고 그대 또한 살아라,”
희미했다.
뿌연 천정이 보였다.
기계음이 들리고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론가 연락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윤나영 님 깨어나셨습니다. ..네네..”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불빛이 보이는지 등을 물었다. 나는 눈을 깜빡여 긍정의 대답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울먹이는 그들의 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살아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계속 우셨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생사를 선택할 수 있는 순간에 나는 살기로 하였다.
전생의 나, 아버지의 누나, 나의 고모의 이야기가 그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녀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로 살기 위해, 진정 나로 살아보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아. 모든 것이 기억난다.
‘꿈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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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외래 진료가 있다. 정신과와 호흡기 내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날이다. 엄마가 굳이 같이 가자고 하셔서 같이 가고는 있지만 미안하고 불편하다. 부모님은 내게 죽음으로 가려 했던 그 상황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궁금해서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물었다. 어떻게 구조되었냐고...
난 강에 뛰어들 때 뜨지 않으려고 옷 안쪽으로 운동용 모래 주머니를 꽁꽁 묶어 몸에 매달고 뛰었었다. 하지만 허리 쪽에 매달았던 모래 주머니가 좀 헐거웠는지 그게 풀렸었다 한다. 한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유속이 느렸던 탓에 실신한 상태의 내가 둥둥 떠다니던 것을 어떤 사람이 보고 신고했고 바로 구조했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가면 보통은 살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고무된 구조대원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며 병원으로 이동했었다 한다.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군.’
나는 구조되어 온 뒤 13시간 동안 의식이 없는 채로 있었다 했다.
몇 날 며칠은 병원에 누워 있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역시 이 세계의 시간과 꿈속의 시간은 전혀 다른 것 같다.
어젯밤에 오랜만에 꿈을 꿨다.
내 침대맡에서 셰퍼트 한 마리가 죽었다. 원래 알던 개가 아니다. 꿈에서 처음 보았다.
내 방에 성큼성큼 들어와 내 침대에 올라오더니 한참 나를 보고 어슬렁 거리다가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웅크리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셰퍼트를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꿈에서조차 나는 알고 있었다. 이 개가 내게서 떠났다는 것을.
꿈에서 처음 보았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나의 삶의 방식 중 하나-누군가의 장기 말이 되어 충직하게 살아온, 호구 같은 내 삶의 방식을 상징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보호견 셰퍼트는, 겉으로는 용맹하고 사납지만 결국 길들여진 늑대다.
내 안에 그런 면이 있었음을, 내가 그런 인간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모습을 나는 죽음으로 까지 거부해 버렸고 다시 만난 세계, 이곳에서 이젠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
호흡기 내과에서는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의사는 물에 빠졌던 사람치고,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 있었던 사람치고 예후도 좋고 예상외로 상한 곳도 없어 보인다 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다시 보자고 하였다.
정신과에서는 질문이 좀 많았다. 그리고 자살 충동이 있냐는 질문을 반복해서 했다. 나는 끊임없이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거의 다 끝나갈 즈음, 의사는 현재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제가 저지른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병원까지 오려면 한 시간 반이 걸리는데요, 혹시 지역 병원으로 연계해 주시면 매번 병원에 같이 오겠다는 저희 엄마도 좀 편하실 것 같아요. 그렇게 할 수는 없을까요?”
“자살 시도에 대한 죄책감인가요?”
“죄책감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죄책감이 저를 잡아먹고 있지는 않습니다.”
“흐음....”
의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의식을 잃었던 중에 꿈을 꾸거나 뭘 느끼신 게 있나요?”
나는 순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좀 망설였다.
잘못 말하면 미친 자로 오해받고 정신병원에 갇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적절히 사실을 말했다.
“실은.. 어떤 꿈 같은 걸 꾸긴 했어요.
다른 것은 잘 기억이 안나고..
누군가 내게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왜 살겠다 결심하셨나요?”
의사는 내 차트를 좀 살펴보더니 다시 물었다.
“직업이.. ?”
“그 일을 계속 할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는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곳에서 글을 썼습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난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욕망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 타인이 내게 주입시킨 것인지.. 지금은 알수 없다.
“사실 글 쓰는 걸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이건, 그림이건,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건..
저는 무엇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살면서 찾아보도록 하죠.”
“살면서요..”
의사는 내게 메모 하나를 적어 주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개인병원 주소였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주 상담도 받으며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 병원 쪽에는 연락을 넣어놓겠습니다.”
나의 집은 부모님의 집과 걸어서 15분 거리다.
엄마는 나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한지 내 집에서 나가지 않으려 했다. 부모님과 한 집에 사는 것이 불편해 10년 전에 독립을 했다. 결혼도 안한 딸이 집을 나간다고 한사코 반대하시던 부모님께 근처에 살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온 집이었다. 설득하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더랬다.
지금은 내 집에서 나가기 싫은 엄마를 이해하고 남는다만 그래도 역시 불편했다.
고민을 하다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걱정되면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근데 나 괜찮아. 그러니 같이 살진 않을거야.”
엄마는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다 보이는데 왜 뒤를 도실까? 휴우....
눈물이 묻은 손등을 허리 뒤로 돌리시며 다시 나를 보셨다.
“아니다, 내 갈끼다. 밥 먹을 거는 있나?”
그리고는 냉장고 쪽으로 퉁퉁 걸어가신다.
엄마를 얼른 잡아 세웠다.
“엄마, 나 먹을 거 많아. 죽으러 갈때도 먹을껀 냉장고에 있었다.”
난 좀 민망해서 웃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곧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이년아. 느그 엄마 아빠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니가 와 죽을라켔노?
힘들믄 힘들다 말을 하지, 말도 못하고..
부모가 있어봐야 니한테 아무 도움이 안되는거 아이가?
내가 니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그 차가운 물에 드가?
다시는 그카지 마라.
다시는 그카지 마라.
다시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땐 부모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진심을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부모에게도 이용당하는 것 같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엄마의 눈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슬픔을 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그 밤...,
결국 난 엄마를 집으로 보낼 수 없었다.
엄마 옆에서 엄마의 보드라운 팔을 잡고 잠이 들었다.
엄마가 잠에 들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실로 아주 오랜만에 엄마 옆에서 잠을 잤다.
꿈속.
고대의 궁전이다. 휘황찬란한 보석이 박힌 궁인 것을 보니 이 궁전의 주인은 엄청난 부자인 것 같다. 주변을 좀 더 둘러보니 느낌상.. 이곳은 솔로몬의 궁전인 것 같다. 나는 왕이 있는 곳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나의 행색은 초라하다.
“다음은...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기라 주장하는 사건입니다.”
나 어느쪽 엄마지? 진짜 엄마인가, 가짜 엄마인가?
나 또 어쩌다가 여길 온거냐?
눈앞에 솔로몬 왕이 보인다.
온몸에 보석을 둘렀군. 안 무겁나?
보석이 너무 번쩍 번쩍 해서 얼굴이 아예 안보인다.
거참.
“이 아기는 제 아기가 맞습니다!
그런데 저 여자가 내 아기를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여자가 앙칼진 소리로 솔로몬에게 소리쳤다.
나는 뭐라고 받아쳐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를 어쩐담?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