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엘 - 모든 피조물은 양면성이 있다, 천사라 해도

대화 4-1

by MIRIAM

나는 솔로몬의 《시크릿 샤먼(이렇게 쓰고 보니 ‘비밀 요원’ 같고 좋구만!)》이 되어 솔로몬 궁 안쪽 작은 별채에서 지내게 되었다. 꿈속 시간이 현실의 시간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반쪽으로 갈라질 뻔한 나의 딸은 벌써 열 살.. 나는 10년이나 이곳에 있었다. - 현실의 내가 얼마나 자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처음 3년은 딸을 키우며 라지엘에게 이곳 풍습과 예언자로서의 기본 상식을 배웠다. 꿈속에서 내가 낳은 것 같은 아기는, 융 학파의 의견을 빌리면 나의 <내면 아이(Inner Child)>일 것이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출산 경험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꿈에서 아기를 낳아 키우게 됐다면 그건 내면적으로 엄청난 성장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다. 때문에 딸을 키우는 일에 소홀할 수 없었다. 젖을 떼면 내 품에서 아기를 떼어내 궁전의 일꾼으로 길러질 것이라 했지만 나는 솔로몬에게 ‘적어도 내가 이곳에 있을 때까지는 내 손으로 키우게 해달라’ 청하였다. 궁정인들은 아들도 아니고 딸을, 굳이 품 안에 두겠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솔로몬은 나의 상황을 고려해 허락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당시 이곳의 여성은 그저 생산의 도구였던 것 같다. -물론 신분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긴 했지만- 보호해줄 남자-가장이 없는 여성은 천대받는 것이 당연했고 내가 솔로몬 앞에서 재판을 받을 당시, 나와 내 옆의 여자를 성서에서 “창녀”라 표현한 것은 “그만큼 천대받고 신분이 낮은 계급의 사람”이라는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니 아비가 없는 딸을 품에서 놓지 않으려는 어미가, 이상한 곳에 팔려는 것도 아니고 궁에서 길러 궁인으로 키워주겠다는데 떼어놓지 않으려는 어미가 이상해 보였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간간히 솔로몬에게 앞으로 있을 일들을 알렸다. 라지엘은 내가 말해야 할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주기도 했는데 내가 솔로몬에게 “예언”이라는 것을 할 때 그의 심복 둘이 항상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솔로몬과 달리 신의 지혜를 받지 못했기에 내가 하는 말을 걸러 들을 수 없다 하였다. 분별없이 미래에 대한 신탁을 들으면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알기 위해 점쟁이를 찾아가곤 하던데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이 공포와 불안이 될 수도 있을까? 되려 미래를 알면 그것에 대비하여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은 라지엘이 하라는 대로 했다. 행여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잘못되어 지금 이곳이, 앞으로의 역사가 뒤틀리면 안되니까.


솔로몬은 지금 한창 성전을 짓고 있다. 아마도 이 성전은 앞으로 5년쯤 지나면 완성될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 낼 것이라 말했다. 그는 희한하게도 자신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내가 예언자 행세를 하며 미래에 대한 말을 할 때도 솔로몬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자신의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다 알고 있음에도 내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일종의 확인, 인증인가?


아. 솔로몬은 신에게 지혜를 선물로 받은 인간이지?

게다가 지혜의 천사를 끼고 다니는 인간이니 뭔들 모르겠어?


나는 솔로몬이 내게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나의 거처에 마련된 모처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했다. 내가 앉아있는 곳은 참 희한하게도 타로카드의 고위 여사제 카드의 여사제가 앉은 그곳과 비슷했다. 하긴 고위 여사제 카드에 있는 양 기둥은 솔로몬 성전의 양 기둥 야킨과 보아즈 이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내가 쓰고 있는 왕관 같은 것도 고위 여사제 것과 비슷하군.

어어라? 나 혹시... 지금 타로카드 안에 들어와 있는거야?

타로카드속 여자 - Drawing by MIRIAM

꿈속에서 샤먼의 역할을 한지 10년이 되어서야 인지했다니, 은근히 이 생활에 완전히 젖어 있었나보다.


미리암을 만났을 때도 타로의 고위 여사제가 생각났었다. 그때와 지금의 느낌이 조금 다른데 미리암이 “고위 여사제”라는 타이틀의 *대가大家*란 느낌이라면 지금 나의 모습은 타로카드에서 내가 느낀 그대로다. “고위 여사제”라는 타이틀은 갖고 있으나 아직 어리고, 덜 여물었다는 느낌.


처음 타로카드에서 고위 여사제를 봤을 때는 차가워 보여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서 그녀가 외로워 보였는데 이유인즉!




- 여사제는 흑발이다. 아마도 북부 아프리카 출신인 듯하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신을 비롯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신들도 함께 있었던, 아마도 콥트 지역의 알렉산드리아 쪽의 여사제인가 싶었다. 토라를 들고 있지만 더욱 동쪽에 있는 인도 신들의 진리까지 담고 있을 법한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차갑게, 앉아만 있다.


- 여사제의 의자는 대단히 불편해 보인다. 그녀가 앉아있는 모양은 허리 디스크 걸리기 딱 좋고 왕관은 어쩐지 무거워 보인다.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미동도 없이 9-6의 시간을 꼬박 앉아있다. 여사제의 일은 “기다림”이다. 신의 신탁을 기다리거나 누군가 신탁을 물어오는 것을 기다리거나. 그러나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다. 그러니 외롭다.


- 그녀에게는 상처가 있다.

그녀의 지식은, 그녀가 알고 있는 진리는 엄청나게 크고 위대하다. 하지만 이 엄청난 진리를 알기에는 너무 어려 보인다. 그녀는 이것들을 받아들이는 자로 키워졌고 어떤 의식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흡수했을 것이다. 그녀는 사제가 되기 위해 가족을 떠나야 했다. 부모와 형제들을 떠나 따로 성장해야 했을 것이다. 결핍의 상태에서 진리를 받들라는 소명만을 들고 앉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타로카드에서 본 고위 여사제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딱 그 꼴로 앉아있다. 심지어 나를 찾는 이는 오직 솔로몬 뿐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요즘 거의 매주 결혼을 한다. 한 주 건너뛰었다 싶으면 그 다음 주에 두 번 결혼을 한다. 당연히 내게 와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줄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을 지켜 이 곳에 앉아 있어야 한다. 하아...


‘그냥 돌아갈까? 슬슬 지겨운데?’


“시크릿 에이전트, 시크릿 샤먼! 이런 걸 언제 해보겠어?” 같은 맘으로, 역동적이고 비밀스러운 역할놀이를 꿈꿨던 나로서는 조각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당연히 지겨울 수 밖에.

그때였다.

지난 몇 년간 내 앞에는 나타나지 않던 라지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려구?”

“그걸 알아요?”

“모를 수 없지.”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라지엘이 먼산을 보며 말했다.

“넌 솔로몬이 왜 저러는지 궁금하지 않아?”

“뭐요? 결혼요? 아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거요? 사실 전 솔로몬한테 별 관심이 없어가지고요.. 근데 왜 오셨어요?”

라지엘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더니 나의 눈을 지그시 보며 조금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돌아갈까 고민 중이라 사제에게 상담 좀 하러 왔지.”

“????”


천사가,

그것도 지혜의 천사가,

신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는 지혜의 천사 라지엘이,

나 같은 사람 - 여러 번의 생을 자살로 끝내고 이제 겨우 좀 살아보겠다, 이제 좀 버티겠다 작정한 유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일개 인간인 나한테 상담을 한다고?

이게 지금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어디 가서 꿈 얘기도 당연히 못하겠지만 이 일은 꿈속 어느 세상에 가더라도 못할, 거짓말 같은 일이다.


“정말, 아무도 안 믿을거야.”

나는 너무 기가 막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들어 ... 줄거야?”

라지엘은 고개를 숙이고 눈만 올려 보며 나를 빼꼼히 바라보고 말했다.

아주 간절하다는 듯이.


‘하긴. 시크릿 샤먼도 애시당초 어이없긴 매한가지 아니었어?

마지막으로 천사 상담 좀 해보지 뭐!’


나는 솔로몬에게 신탁을 전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전 앞 계단에 툭 걸터앉았다.

“천사님, 이리와 앉아요.

제가 예언자가 아니고 상담가도 아니라는건 천사님도 알잖아요?

이 동네에서 솔로몬 아니면 천사님 볼 수 있는 인간도 나밖에 없을텐데

걍 내 얘기 들을 수 있는 사람한테 얘기하는거다아--- 일케 생각하시고 풀어보셔요.”

“역쉬~! 니가 보통 인간은 아닌 게 확실해!”

순간 정면에 서있던 라지엘이 내 옆에 딱 붙어 앉아 나타났다.

“아이쿠야!”

라지엘이 여기 저기로 순간 이동 하는 모습은 볼 때 마다 적응이 안된다. 쫍.


라지엘은 곧 내 눈앞에 거다란 비누방을 같은 스크린을 만들었다.

얘기를 들어달라더니 말을 하는게 아니라 그냥 보여주는 거였어, 참나!


“넌 솔로몬이 어떤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니?”

“글쎄요... 생각안해봤는데요.”


정말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신께서 주신 지혜라는 것 밖에...

비누방울 스크린에는 청년 솔로몬이 자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솔로몬의 지혜는 말이지, 정말 인간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지혜야.

지금 솔로몬은 자는 것처럼 보이지?

쟤 지금 하루 종일 공부하고 나서 꿈에서도 공부하는 중이야.”

“공부를 꿈에서도 해요?

지혜가 그냥 뿅! 하고 장착된 게 아니라 저렇게 공부를 해서 얻어진 것이었어요?”

“하하! 뿅~!하고 장착된 것이 물론 있지.

신이 솔로몬에게 줬다는 지혜는《지혜의 그릇》이다.

신이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과 시스템을 뿅~!하고 줬고

솔로몬은 그 다음에 지식을 습득했어.

그리고 다시 신에게 받은 지혜의 그릇에서 지식을 지혜로 만들었지.

신이 지혜를 주신다 했지 지식을 주신다고는 안했거든.

솔로몬도 지혜를 달라했지 지식을 달라고는 안했고.”


“무슨 말장난도 아니고 지식이나 지혜나?! 지식이 체득되면 지혜가 되는 거지!”

“그렇지~! 너 말 잘했다.

지혜라는 건 체득이지.

알게 된 지식을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지혜가 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체현해낼 수 있어야 그게 지혜다.

솔로몬은 지식을 체현해 낼 수 있는 시스템, 그 자체를 받은 거야.”


라지엘의 말을 들어도 그게 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솔로몬이 가졌다는 지혜를 반도 못가진 평범한 인간인데다가

대충 그가 얘기하는 게-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식’일텐데 그 지식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벅차니

앞으로 ‘지혜’로 거듭나지도 않을 것이었다.


“뭔 얘긴지 한 개도 모르겠어요...”

“그럴 수 있어. 그럼 이렇게 해보자. 솔로몬 꿈속을 같이 보자. 훨씬 이해가 될거다.”


스크린 속 화면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솔로몬의 꿈속은 좀 오묘했다. 말로는 표현하기가 애매한데 그 이유는 꿈속의 서사가 선형적이면서도 비선형적이었고 공간도 여러 개였기 때문이다. 뭐랄까, 여러 개의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느껴지는데 실은 하나의 사건인 어떤 느낌적인 느낌?


“이게...... 뭐예요?”

“솔로몬은 이 나이쯤 시공간과 다른 차원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네에?”


얘기를 듣고 자세히 보니 솔로몬의 지금, 현재의 모습이 있다.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저 당시 솔로몬은 자신이 왕으로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후대 사가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할지도 궁금했던 것 같다. 지금 솔로몬이 한 눈에 보고 있는 모습은 자신의 미래와 더 미래의 지구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도 있지만 더 미래의 세계도 있다. 그리고 인간의 세계가 아닌 곳도 있다.


“근데요.. 이게 「이 땅의 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 지혜라구요?

시공간을 이동하고 차원을 이동하는게?

여기보다 삼천년쯤 미래에도 아직 할 수 없는 일인데요?”

“아마도 말이다,

현재의 솔로몬보다 미래의 솔로몬이 자신이 알게 된 것 중에 많은 것들을

후대의 인간들이 습득하는 것을 막는 것 같다.”

“왜요?”

“지식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됐는데

후대 사람들이 그걸 느끼지 않길 바라는 것 같아.

지금 솔로몬이 매주 결혼만 하고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거든?

솔로몬은 지금 고통을 회피하고 있는 중인듯 하다.”


라지엘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스크린도 사라지게 했다.

한동안 신전의 마당에는 침묵이 흘렀다.

잠깐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렸고 나와 라지엘이 앉아있는 계단으로 작고 뱀 한 마리가 넘어왔다.

나는 뱀을 보고 놀란 나머지 소리를 치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악! 뱀이다아아아아아아!”


소리를 치고서는 오돌오돌 떨면서 선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라지엘을 보았다.

라지엘이 앉았던 자리에 라지엘은 없었다.

나는 거의 환장할 즈음에 이르렀다.

지금 이 곳에서 저 뱀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하아...

망연자실...


흠. 하지만! 꿈에서 뱀을 보는 것은 좋은 거랬는데???

우리 엄마도 나를 낳을 때 태몽으로 뱀꿈을 꿨고 미리암 태몽도 뱀꿈이고..

뱀은 좋은거 아냐??????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 나는 대박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아니지, 아니지. 상징으로 해석을 해보자.

뱀의 상징은 긍정적으로는 지혜, 부정적으로는 현혹.

여기서는? 지금 여기서는?

뭐지?


머리가 복잡해지려는 찰나, 눈앞의 작은 뱀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고무호스만하던 뱀의 둘레는 내 허리 굵기 만큼 커졌고 그러는 동안 탈피하고 탈피를 하더니 너무나 아름다운 청보라 빛 비늘을 뽐내며, 심지어 머리를 쳐들고 계단 위로 피신한 내 키만큼 쭈욱 길이를 늘였다.


“헉!”



압도적이었다.

21세기 서울에서 살다 온 내가 뱀을 직접 본 것은 동물원에서 뿐이었다. 그것도 내 눈에 뱀이 딱히 예뻐 보이는 동물이 아니었기에 유심히 본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 여기서,

굳이,

라지엘도 사라진 마당에,

저렇게 커진 뱀을 봐야 하는 것인가?


“두려운가?”


갑자기 그 뱀이 말을 한다..

세상에...


“누구세요?”

“내가 누구라면 두렵고 누구라면 두렵지 않겠는가?”


그러게. 왜 정체를 물어봤지?

“아아아아아.. 몰라요! 그냥.. 반사적이었어요.

근데 왜요? 갑자기 막 커지고 말도 하고..

누구예요??!!”


“지금껏 너와 얘기하던 이.”

“라지엘?”

“이건 내 모습 중 하나다.”


그러고 보니 뱀의 주변에 어떤 오라 같은 것도 있다.

비늘이 청보라색이어선지 자수정 느낌의 영롱하고 투명한 오라.

두려워하니 오라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근데요, 라지엘님. 뱀 모습 말고 다른 모습으로 계시면 안돼요? 아무래도 제가 좀 적응하기가 힘들어서...”

사실 정말이지 보기도 힘들고 뭔가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영~ 힘들었었다. 나는 구역질이 나는 것을 참으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라지엘은 또 다른 모습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이건 뭐 통통귀신도 아니고 인간의 얼굴처럼 보이는 머리는 가운데 있으나 커다란 날개가 겁나게 많이 달린 동그란 공 모양의 물체가 되어있었다.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참나...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 하자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나는 네가 뭔 생각을 하는지 안다. 아니 처음처럼 인간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면 되지 왜 또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냐? 이렇게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나도 내 모습을 바꿀 때는 순서가 있어. 뱀 모양에서 인간 모양으로 바로 갈 수는 없다. 그러니 그냥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해라.”

변신로봇처럼 단계가 있다는 얘기네? 크크크크크 그건 좀 재밌긴 하다.


“내가 아까 어디까지 얘기하다가 갔는지는 기억나?”

어디까지 얘기했지? 너무 놀라서 다 까먹었는데...

“아아... 솔로몬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 중에 문제가 생겼는데 아마 고통을 피하고 있는 중이라고요.”

“그래. 맞다. 내가 한 가지 물어보마.

너는 신이 지은 모든 것에 양면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냐?”

“엄...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해라기 보다는 그냥 그렇다고 하면 그런갑다~ 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거참 솔직해서 좋구나.

이제 내가 너를 좀 가르쳐보마.”

오오! 이런 훌륭한 기회가 찾아오다니! 지혜의 천사 라지엘에게 일대일 과외를 받는 기회!


“신이 지은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그 어떤 것도 완벽한 선함, 완벽한 악함이 있을 수 없지.

‘온전하다’는 것은 양면이 모두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좀 전에 네가 뱀을 보고서도 양면을 생각하지 않았으냐? 상징으로서 지혜와 현혹 말이다.”

그래, 어차피 이 존재는 천사고, 심지어 지혜의 천사고, 내가 뭔 생각하는지 다 알고...


“지구에서의 뱀은 어떤가? 생태계에서의 뱀 말이다.

뱀의 역할을 선함과 악함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가?”

“아닌 것 같은데요?

잘은 모르지만 뱀도 생태계의 먹이 사슬의 어느 포지션이 있을테고

뱀이 하는 역할로 봤을 때는 땅을 기어다니면서 무슨 역할을 한다고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암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동물에게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악이지만 어떤 동물에게는 식량일 수 있죠.

사람에게는 둘 다 이구요.”


“그렇지. 지식도 마찬가지다.

지식에도 양면성이 있어.

네가 알만한 것으로는... 그래! 핵물리학이 그렇겠구나.

엄청난 파워의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에너지가 될 수도 있고.

그런데 솔로몬이 습득한 지식은 그런 것들을 훨씬 넘어섰지.

아까 본 것처럼 시공간이나 차원을 넘나들고

내가 있는 세계나 네가 다녀온 라반처럼

인간의 생사를 관할하는 차원의 지식까지 알게 된 것이다.”


“그냥 왔다갔다 하는게 아니라 그곳의 지식을 안다구요?”


“응. 솔로몬은 그 차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아.

그런건 사실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와 그것을 도왔던 몇몇 천사들밖에 모른다.

알고 싶어도 그릇이 되지 않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런데 인간인 솔로몬이 그걸 다 받아버린거야.”


“근데 받아서 지혜가 됐으면 됐지... 문제가 왜 생겨요?

신의 지혜라면, 그걸 다 받을 수 있는 그릇일텐데..?”


“너 똑똑하구나! 뭔가 이해하기 시작했어!”

“그럴리가요? 뭐 암튼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지엘은 다시 비누방울 같은 스크린을 만들었다.

그리고 솔로몬의 모습을 보여줬다. 스크린 속의 솔로몬은 즐거운 모습으로 공부하고 경이롭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과거에서 야곱을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임종도 지켰다. 요셉의 감옥에서 요셉의 꿈속에 함께 했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만났고 그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다윗과 처음 만나던 날을 보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여 울었다.

우주로 날아가 태양계를 보고 지구가 구체라는 것을 목격했다. 해와 지구와 태양계의 행성이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별들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것도 보았다. 솔로몬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별을 보고 별을 읽었다.

또 불 안에 직접 뛰어 들어가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 지를 보았다. 그리고 먼 훗날로 가서 미래의 과학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보관하는지도 보았다. 물의 힘과 바람의 힘과 땅의 힘도 느꼈다. 온몸으로, 마음으로.


그는 지식을 책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 느끼고 이해하며

머리에 담고 가슴에 담았던 것이다.


라지엘은 뿌듯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스크린의 솔로몬을 보며 말했다.

“솔로몬이 처음 지식을 받아들일때야.

자신이 신의 지혜 그릇을 받았다는 것에 감사해 하면서

세상의 지식을 하나 하나 소중하게 받아들일때지.

그 마음이 맑고 깨끗해서 전하는 나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솔로몬은 지혜의 그릇에서 그 모든 지식을 선함으로 연마했지.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신이 났겠냐?”


스크린의 솔로몬이 라지엘에게 어떤 책을 받는다.

나는 대번에 저 책이 그 유명한 『라지엘의 서』라는 것을 알았다.


“저거 진짜 준거예요?”

“응. 인간 중에서는 솔로몬만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담한테도 줬다고 들었는데.... 아니예요?”

“아담한테는 내가 읽어줬지.

근데 걔는 다 이해를 못했어.

본인이 이해하는 것만 써먹었어.”


“아. 그래서 그 담에 또 천사들이 와서 인간에게 천사의 지식들을 알려준거였구나!

그들이 타락천사가 된거고.

“그게! 그게 잘못된거라고!!!!

걔들이 그릇이 안되는 인간들한테 막 알려주고 그래가지고!!!

오만 차원에 구멍이 얼마나 크게 났는지 몰라!

아휴.. 내가 아주 그때만 생각하면 그냥 몸서리가 쳐진다구!”


라지엘의 반응에 좀 놀랐다.

아니 이럴 일이야? 어차피 지난 일인데?

그리고 그때문에 피해를 본건 인간들이지, 대홍수 막 나고..응?

이라고 생각하니 라지엘이 분노하는게 좀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나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니 천사님! 나는 늘 그 부분이 좀 맘에 안 들었는데..

천사들이 일방적으로 인간 세계에 와가지고 놀아났으면서

나중에 그거 대홍수.. 아주 쓸어버리신거!

그게 뭐 인간 잘못인가요?

천사들의 욕망에 인간이 당한건데 천사들만 벌을 주면 될 일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천사들이 내려와서, 지들이 좀 편하게 살려고

자기들 지식을 인간들에게 준거잖아요?!

뭘 선의가 있는 척을 하고, 인간이 그릇이 되니 안되니...

천사들도 가만보면 못됐어 아주!”


라지엘이 내 말을 듣다가 가만히..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놔.. 이거 또 반가사유상 미소 같은건데...?

불안하다....


“그거다 윤나영!

천사도 완벽하게 선하지 않다!

우리도 신이 지으신 피조물이니 우리 안에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네에?????”


천사한테도 악한 면이 있다고?

그러면 악마에게도 선한 면이 있어? 이게 뭔말이야?

인간의 내면에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건 상징적이니까.

하지만 천사에게 양면성이 있다는 것은,

이건 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너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건 실제로 곧 보게 될거니까 그때 보면 알거고..”

“실제로 본다구요? 라지엘 천사님, 악마가 될 예정입니까?????”

“아니 아니.. 얘는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그럼 됐어요. 휴우...”


스크린의 솔로몬이 『라지엘의 서』를 받아들고 보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표정이 안좋아졌다.


“왜 저러는거예요?”

“내가 잘못한거지. 저 책을 괜히 준거야.

솔로몬은 지식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 외에도 알고 싶어 했어.

그래서 내가 책을 준것이고.

저 책에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지식도 있거든.

근데... 솔로몬 안에서 저 책의 지식이 이해되면서

지식의 이면을 계속 발견하게 됐지.

그리고 지금은 자신 안에 악마 같은 지식이 있다는 게

수치스럽고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흠...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악마가 살아요.

악마가 있는걸 모르는 사람도 있고,

있는데 외면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로몬이 가진 지혜라면 자기 안에 사는 악마를 그렇게 외면할 리가 없을텐데요?”


“그치. 나도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말이다, 솔로몬이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는게 문제더라고.

언젠가는 그 육신이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거든.

솔로몬이 알게 된 것은,

그 지식의 악마성을 모두 통합하기에 육신의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을 알아서,

그래서 애초에 몰랐던 것처럼, 모르는 척 하는 걸로 보여.”


“보인다구요? 서로 얘기 안했어요?”

“내가 안보이는 척을 해. 요즘...”

“대애박!”


라지엘이 날 찾아온 이유는,

솔로몬과 자신의 사이에 다리를 좀 놔달라는 것이었군. 거참.


그래. 그것까지만 하고 나는 갈란다.

에효.. 힘들어 죽겠네.

이 지식인들과 얘기하는 것도 힘들고 뭔말인지 알아듣는것도 힘들고.


휴우.. 엄마가 보고 싶다.

...

응? 엄마가 보고 싶다고? 내가?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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