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엘&솔로몬 - 극의 균형 그리고 조화

대화 3.4-1

by MIRIAM


라지엘과 솔로몬을 만나게 해주기로는 했는데,

문제는 내가 나의 거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비밀”인 존재라 같은 궁 안에 있어도 나는 거의 가택 연금 상태나 다름이 없다.

솔로몬이 내게 직접 찾아오지 않는 한, 라지엘과 솔로몬을 만나게 해줄 수가 없는 상황.


“천사님,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 있긴 한데 너한테 좀 위험하기도 해.”

“뭔데요?”

“나와 같이 솔로몬의 꿈속으로 들어가는거지.”

“네에?”


나는 이미 나의 꿈속인데..,

여기서 또 다른 사람의 꿈속,

그것도 시대가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간다고?


“그럴 수도 있어요?”

“나 라지엘이야. 지혜의 천사기도 하지만 시간과 꿈의 문을 여는 천사기도 하지.”

“우와~ 하는 일이 많네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피곤하기도 해.”

“그거 너무 잘 알죠, 제가.”


갑자기 현실의 내가 생각났다.

제대로 하는 건 없는데 은근히 할 줄 아는 게 많아서 매번 이 일 저 일에 불려 다니고 손발이 고생하며 남아나질 않았던 시간들.


‘앞으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고 해야지!’


“거참, 너는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마저 이리 튀고 저리 튀는구나!”

“아..또 그걸 읽고 그래요?

암튼 간!! 무슨 말 하려고 그랬죠?”

라지엘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꼼지락거린다고 해야 하나?

그러더니 얘기를 시작했다.

“너는 이미 꿈속에 있는 거라

또 다른 이의 꿈속으로 들어간다는 건 또 다른 차원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하게 차원을 두 개 건너뛴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서

차원 이동 중에 네 존재가 어딘가에서 파괴될지도 몰라.”


내 존재가 파괴된다고? 이제 겨우 제대로 살아보려고 맘먹었는데?


“에이. 그럼 안할래요.

내가 뭐 그렇게 꼭 해야 하는 일인 것도 아니고 겁나게 위험하구만!”


라지엘은 아주 급하게 사람 형상의, 내가 처음 보았던 라지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정말 사람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싫어요. 안할래요.”

뒤돌아서 가는 나의 옷자락을 잡더니, 내 앞으로 급 이동!

“깜짝이야!”

“미안 미안...

미리암 사제.. 윤나영 사제.. 이건 말이지, 엄.. 이런거야.

병원에서 간단한 시술할 때나..

아아! 왜 내시경 할 때도 의료사고 날 수 있다고 뭐 쓰잖아?

그런 거랑 비슷한 거라고.

확률은 아주 낮은데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꼭 네가 파괴된다는 건 아니야.”


그래도 천산데 설마 거짓말하겠어?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인데..?

내가 다시 살기로 결심하면서 했던 나와의 약속은《나로 살아보겠다》였다.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나의 의지대로, 나의 생각대로, 나의 욕망대로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 휘둘리고 있는건가?

아니면 정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건가?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걸려요?”

“뭐가?”

“시간이..?”

“얼마 안걸려.

천사가 움직이는 시간은 인간이 느끼는 시간과 다르니까.

네가 원한다면 선형적인 시간으로는 1분쯤 걸리게도 할 수 있어.”

“우와~~! 그건 진짜 좋다.

딸이 올 시간이 다 돼서 물어본거예요.

한 시간에 안에 끝내요.”


라지엘은 결기에 찬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주변이 차가워졌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멀미 같은 감각이라기엔 너무 낯설었다.

속이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안쪽에서부터 텅 빈 것 같았다.

주변도 텅 비어 있었다. 빛도, 어둠도 없었다.

공간이라고 하기엔 공간이 아니고 이걸 참, 뭐라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으나 뭔가 계속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엇이 바뀌는지도 알 수 없었다.

라지엘도 조용했다.

그의 존재가 아직 곁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시선도, 손끝도 닿지 않았다.

마치 지각의 구조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접혀버린 듯했다.


그러다가....

나라는 존재에 틈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이름, 기억, 감정이 천천히 흐려지고 있었다.


내가 누구였지?

‘윤…나영?’ 그 이름이 정말 내 거였나?

딸...이 있었지. 딸이 있었다구?


딸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르려다 사라졌다.

엄마 옆에서 자고 있는 내가 보였다. 저거.. 난데..?


어어어~~~~~


툭!

떨어졌다.

엄마 옆도 아니고 딸이 있는 곳도 아니고..

악령들이 출몰할 것만 같은 짙고 어두운 숲.


대체 어디로 온 것인가?

라지엘은 여기 어디 있긴 한거야?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짙은 안개 속에 있는 나, 그리고 발이 닿은 흙.


내 발 앞에 어떤 구조물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문(門)” 같이 보였다. 높이가 아주 높은 커다란 문이었다.

얼마나 큰 문일까? 하고 눈으로 높이를 따라가 보았다.


헉!


눈으로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이.

‘이건 열 수나 있는거야?’

손을 갖다 대 봤다. 묵직한 금속성 떨림.

보기엔 나무처럼 보이는데 금속성이라... 희한하다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이,

문 너비의 중앙, 내 키 높이에서 빛이 생겼다.


별.

처음 보는 별 모양.

칠각형의 별.

그리고 다시 펜탈파, 솔로몬의 별이 나타났다.

칠각별.png 칠각별 - *나무위키
펜탈파.png 펜탈파 - *책에서..


그리고 별의 교차점에서 히브리어 문자들이 홀로그램처럼 두둥실 새어 나왔다.

“저건.. 또 뭐야?!!”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말이 터져나왔다.


“솔로몬이 들어오지 말라고 잠금장치를 걸어둔 거야.”

어디선가 라지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희뿌연 안개를 걷어내며 물감이 번지듯 라지엘의 형상이 스르르 떠올랐다.

라지엘의 모습을 보자 좀 안심이 됐다. 여길 오다가 혹시나 라지엘을 잃은 것은 아닐까 은근히 불안했는데 같이 오긴 온 것 같아 다행이었다.


“여긴 솔로몬의 꿈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런데 이 문은 내가 처음 보는 문이야.”

“처음 보는데 솔로몬 꿈으로 들어가는 문인지는 어떻게 알아요?”

“문에 걸려있는 저 장치, 저건 천사들 말고는 솔로몬 밖에 만들 수 없어.”


“음... 그럼 천사님이 솔로몬과 데면데면해지고 나서!

서로 안 만나기 시작하면서!

솔로몬이 이 열쇠를 걸어놨다는 거네요?”

“그건 아니고 이건... 문의 높이나 구조로 봤을 때,

우리가 지금까지 본 젊은 솔로몬의 꿈속이 아니라

나이가 훨씬 많이 든, 미래의 솔로몬 꿈인 것 같아.”


뭐야? 시간대가 또 달라졌다고? 뭐가 이렇게 헷갈려?


“아니, 천사님, 저한테 왜 이래요?

타임머신 오작동으로 원하지 않는 시대에 떨어지는건

어릴때, 20세기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요,

그건 영화여도 인간이 하는 짓이고 천사님은 천사잖아요?

이런건 좌표도 없어요? 왜 이상한 데 저를 데리고 오신 겁니까?”

“솔로몬이 마법을 엄청나게 쓴거지.

나같은 존재를 차단하기 위해서 말이다.”


더 이상 라지엘에게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라지엘의 에너지가 커다란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꿈의 문에 있는 잠금장치의 빛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홀로그램처럼 튀어나와 움직이는 히브리 글자들은 마치 숨을 쉬듯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문 자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고 그 울림에 따라 내 심장도 박자를 바꾸었다.

내 심장은 두 번씩 뛰었다.


‘똑, 똑… 똑, 똑…’


두 겹의 심장이 동시에 뛰는 느낌.

꿈속에서 심장박동을 느끼는 것도 신기한데 심장이 두 겹, 두 개로 느껴진다니?

놀라서 가슴에 손을 갖다 댔다.


순간, 라지엘이 나를 강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열쇠는 너다.”


“열쇠?!”

“이 문을 열수 있는 열쇠, 너라고.

그리고 나는 들어갈 수 없다.”

“네?”


라지엘이 솔로몬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나만 들어갈 수 있다고?

“에이- 그러면 안돼죠.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요?”


두려웠다.

처음 보는 세계.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알지도 못하는 세계.

나로선 전혀 정보가 없는 곳.


이곳에서 내가 혼자 어디엔가를 들어가고 거기서 뭘 해야 한다니 어마 어마한 공포감이 밀려 들었다.

게다가 어쩌면 내 존재가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차원 이동"을 하고 온 곳이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왔는지조차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설마... 나 때문에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럼 아니예요?”

“선택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에이 씨...”


욕이 나왔다.

이 천사라는 놈이 나를 농락하는 모양새이지 않은가?

지가 꼬셔놓고는, 이제와서 선택은 네가 했으니 네가 끝까지 책임지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만났던 그간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냔 말이다.

내가 예상했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고 천사 네 놈이 예상했던 것도 이것이 아니었지 않은가?

함께 가자 했는데 목적지에 예상과 다른 것이 눈앞에 있다면,

내가 선택한 것이라 해도 함께 부딪혀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인지상정 아니냔 말이다.


“미안 미안. 이번엔 정말로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요? 또 내 생각 읽었죠?

그래서 상황을 그냥 모면해보려고 사과부터 한거죠?”


“아니야, 아니 맞아.

... 그러니까 반은 맞고 반은 아니야.”

“하.. 나참. 또 반은 맞고 반은 아니래.

여튼 나 혼자 가는 거라면 난 안가요!”


“미리암, 그러니까 내 말은..

네 생각을 읽은 건 맞는데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사과부터 한건 아니란 얘기야.

네 생각이 다 맞아.

천사란 놈이 네가 선택한거라고 덮어놓고 너한테 모든 책임을 던지는 말을 한 것 같아서 진짜 미안해.

이거 내가 잘못한거야. 미안해 정말로.


그런데 진짜로,

나도 너와 함께 이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지만 솔로몬이 못들어오게 해놨어.

저 잠금장치의 호흡과 네 심장이 같이 뛰잖아.

그게 열쇠인데

나는, 그렇게 뛰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못들어가.”


휴우.. 절절하네.


“하지만! 하지만 너무 무섭단 말예요. 나 혼자 어떻게 뭘 하란 말예요?”

“미리암, 이것만 기억해.

너는 지금 이 세계관에서는 뭐가 어찌 됐든

세상의 모든 진리를 통찰한 예언자이자 사제다.

그리고 솔로몬이 딱 걸어 잠근 자기 꿈의 문, 저 자물통을 열 수 있는 열쇠야.


지금 저 자식은 신의 지혜와 지식을 전달했던 나를 차단하고

너에게만, 오직 너에게만!

이 문을 열수 있게 한거야. 이건 엄청난 거라고!!”


“왜 나를?”

“이유는 모르겠지만

솔로몬이 말년에 자기 꿈에 들어올 수 있는 존재로 너만을 설정해 놓은 거야.

어쩌면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려는 솔로몬의 비책이었을 수 있어.

그런데 네가 지금 이 문 앞에 있는 거잖아?

그냥 가서 대체 솔로몬의 문제가 뭔지만 알아 와줘.

그걸 정확하게 알아야 내가 도와줄 수 있거든.”


《나만》이라는 특별함,


그것이 나의 공포감을 잠재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존재가 파괴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말년의 솔로몬,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대답을 하거나 라지엘이 어떤 주문을 외운 것도 아닌데

꿈의 문에 홀로그램으로 떠다니던 글자들이 더욱 크게 요동치더니 나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몸이 공중으로 뜨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더니 어떤 재질인지도 모를, 두껍고 높다란 그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 리. 고.

풍성한 하얀 수염을 가진 어느 멋진 노인,

열 두 개의 별자리를 패턴을 머리의 오라로 둔

어느 할아버지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아니 공중에 떠 있는

그 앞에 툭!

나는 커다란 성의 어느 방 안에 툭! 하고 떨어졌다.


너무 순간적이라 이건 뭐, 장면전환 느낌도 아니고

편집 잘못해서 뚝 끊긴 영상 같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렇게 툭!

당연히 눈앞에 있는 노인이 솔로몬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말년의 솔로몬.png 말년의 솔로몬 - 드로잉&콜라쥬 by MIRIAM


“저...기... 저 기억나요?”


“누구도 만나기 싫어 미래에서 온 자의 심장을 엮어놨거늘

굳이 들이 닥치시다니...”


역시.. 라지엘 예상이 맞았군.


“왜 하필 저의 심장이었나요?”


“글쎄다. 자네가 자네의 세계로 돌아가고는 다시 오지 않을거라 확신했을 뿐이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자네가 나의 시대로 온 것은 자네의 뜻이 아니고

뜻이 있다 한들 어느 곳이나 원하는데로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니

올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왔네요? 휴우..”


“이번엔 어쩌다 온 것인가? 이곳에 남은 자네 딸이 보내던가?”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음.. 자네 딸이 자네의 대를 이어 성전의 비밀 사제가 된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

“걔가 그 힘든 일을 평생 하게 되는 거란 말입니까?

궁전의 궁인으로 살게 될거라 했잖아요?”

“자신의 선택이었다.”


이 놈의 선택, 선택 선택 선택.. 선택!!!!

내가 직접 낳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이곳에 오는 첫날부터 그 아이는 내 딸이었다. 나의 품에서 꼬물대고 나의 살결을 스치며 나의 냄새로 키운 나의 딸. 나는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꿈속 세상이나 그 아이에겐 온전히 자신의 터이자 자신의 대지, 그리고 자신의 세상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 아이가 비밀 샤먼의 생을 택했다니, 그 모진 시간을 보내고 또한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살고 있다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너는 그 아이가 너의 대를 이은 것이 싫으냐?”

“그 자리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한없이 기다리고 한없이 고독한 자리입니다.

신과의 대화, 그리고 당신과의 대화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이 유일한 낙이었지만,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그 자리의 내 딸은, 당신마저 오지 않는 그 곳의 제 딸은 너무나 불쌍합니다.

어쩌면 누구나 어미가 되면 제 자식이

남들처럼 때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평범한 삶의 기쁨을 누리길 바랄 거예요.

그런데 그 아이가 제 바람과 너무도 다른 삶을 살게 되다니요!”

“훗! 그렇단 말이지? 현실의 네 어미도 그랬나 보구나!”


아! 우리 엄마. 내 옆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우리 엄마!

엄마도 그랬지. 엄마도 내가 엄마가 주변에서 보는 엄마 친구의 딸들처럼 평범하게, 때되면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남편과 아이와 오순도순 살길 바라셨지. 엄마가 생각하는, 예상했던 그 “때”라는 것을 훠얼씬 지나버리고 나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시지. 그러던 중에 내가 죽으려 했으니 그 누구보다 더 아프셨을거다.


정신차려, 이럴 때가 아냐!

내가 해야 할 일, 솔로몬이 왜 자꾸 엇나가고 라지엘도 만나지 않으려 드는가? 이것을 알아내야만 한다.


“근데.. 미리암 사제! 네 딸이 보낸 것이 아니라면, 여긴 어떻게, 왜 온 것인가?”

하아... 뭐라고 얘기하지? 라지엘이 보냈다고 하면 성내고 암말도 안 할것 같은데..?


“혹시, 라지엘이 보냈나?”

“아효~~ !! 그럴리가요! 라지엘 못 본 지 한 오년은 된 것 같은데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고개를 아주 심하게 흔들며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이게 화근이었나보다.

“흐음. 격한 부정의 몸동작.. 라지엘이군.

그래.., 라지엘이 자기를 왜 거부하는지 알아오라던가?

꿈의 문이 너의 심장이 엮인 것도 알고?”

“아니, 아니요!! 전혀 몰랐죠.

와보니 자기가 못들어간다며 저한테 들어가라 했을 뿐이예요.

저만 들어갈 수 있다고.”

“역시 라지엘이군.”


쫍. 내가 그렇지 뭐.

나는 그가 솔로몬이던 누구던 그다지 상관없는 사람이다.

그가 기분나빠 해보이, 꿈속에 온 미래의 인간일 뿐,

내가 대들던 막말을 하던 아무 상관이 없질 않은가?

그래서 그냥 막 들이대기로 했다.


“그니까 솔로몬 대왕님!

라지엘은 왜 안만나고, 나는 왜 안찾아온거예요?

나도 사실 알았어요, 당신이 나에게 미래의 일을 물어보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걸.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일주일 한번씩 결혼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인간의 고통이 일주일에 한번씩 결혼한다고 사라집니까?

쾌락으로 피하면 그게 없어져요? 그냥 묻는거지?”


“너... 네 맘대로 얘기해도 다른 시공간에 사는 사람이라 전혀 상관없다는 투로 말하는거냐?”

“귀—신!”

“아직 귀신은 아니다.”

“네 알아요, 알아! 그냥 관용어예요.

내 생각이 그렇다는걸 당신이 알아챘다는 것에 놀라서 하는 관용어!”


“네가 사는 그 시공간은 귀신이 인간의 생각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구나!

귀신과 악마는 다른데 말이다.”

“아. 그렇네요.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대충 그렇다 생각하세요.

암튼, 저 여기서 막말하면 어떻게 돼요? 저 어뜨케 때리기라고 할 작정이예요?”

“훗! 아니다.”


오호라! 그러고보니 솔로몬이 72악마를 다 때려잡아 봉인을 했다는 전승이 있기도 하지.

어쩌면 악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닌가?


“궁금한게 있는데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이 시점이 72위의 악마를 모두 봉인한 그 다음이예요,

아님 할 예정이예요, 하고 있는 중이예요?”

“너 그것도 아냐?”

“아유~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제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걸 가지고만 얼마나 많은 에니와 SF 창작물이 나왔는데요?

안하셨으면 클날뻔 하셨어요!”


“영화나 그런거 말고 내가 직접 쓴 기록으로 본 것도 있는 거냐?”

“음.. 『레메게톤』(Lemegeton) 혹은 『솔로몬의 열쇠』(The Lesser Key of Solomon) 중 ‘고에티아(Goetia)’ 파트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저는 『솔로몬의 비서』(Testament of Solomon)로 봤어요.

대왕님이 잡은 악마 이름이 겹치기도 하지만 암튼 좀 달라요. 내용은 물론 다르고요.”

“ 『솔로몬의 비서』 (Testament of Solomon)라... 저건가 보군. 내 유언..”


솔로몬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루마리들이 펼쳐져 있는 테이블 위로 갔다. 나도 솔로몬을 따라 테이블 쪽으로 갔다. 테이블 옆으로는 훨씬 많은 두루마리가 쌓여 있었다. 솔로몬의 저작물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많이 쓰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테이블 위에 펼쳐진 두루마리는 뭔가 쓰다만 느낌이었다.

난 히브리어를 아주 잘 읽을 줄은 몰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마지막 부분을 쓰지 못하고 있지.

네가 말한 그 악마들을 소환해 봉인하고 나서 쓰기 시작했는데

기록을 할수록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져서 완성을 할 수가 없었다.”

“왜요? 인류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하신건데...?”


“넌 악마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악마? 천사의 반대. 사람들을 현혹하여 나쁜 길로 인도하는 영. 그거 아니예요?”

“그럼 네 속에는 천사가 있냐, 악마가 있냐?”


이런 어려운 얘기를 꺼내다니! 역시 솔로몬이야.

하지만 내가 솔로몬에게 온 이유,

답을 들으러 온 것도 있지만 인간에게는 천사와 악마가 모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하는 것도 있었잖아?

난 내가 해야 할 얘기를 솔로몬이 먼저 꺼내줘서 기뻤다. 그래서 아주 명랑하고 쾌활하게 대답했다.


“안그래도 제가 대왕님께 하고 싶은 얘기 중 하나였는데요,

인간에게는 천사와 악마, 모두 살죠!

나에게도, 대왕님한테도 이 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같이 산다구요,

호호호호호호!”


“그으래! 인간에게도 이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

그런데 천사나 악마나 인간이나, 다 같은 신의 피조물인데

천사에게는 선만 있고 악마에게는 악만 있겠느냐?

천사에게 악은 없어? 악마에게 선은 없을까?”

“그게..... 글쎄요.....?”


천사가 인간 여자에게 욕망을 느껴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타락천사가 되었다는 얘기는 성서에 있는 얘기다. 천사와 인간의 자손이 거인이고 그 거인들이 마구잡이로 인간계를 훼손했다는건 이미 알고 있다. 만약 천사에게 선만 있었다면 애초에 그들이 인간 여자에게 욕망을 느낄 리 없다. 그렇다면, 천사에게도 악이 있는데 악마에게 선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분명히 이곳에 오기전 나는, 악마에게도 선함이 있을 것이라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질문을 받으니, "글쎄요"? 헛참.


“어.... 그러니까... 어.... 악마에게도 선함이 있긴 하겠네요...?”


솔로몬은 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거다. 바로 그 때문에 마지막 부분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나는 그 악마들을 소환하고 봉인하면서 내 안에 있는 악마를 계속 보아야 했다.

나의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악한 것들!


너무 참담해서 옷을 찢고 머리를 뜯고 가슴을 치며 보아야 했다.

내 욕망이 처음부터 그렇게 더러웠던가? 하고 보니,

그 악마들의 욕망도 처음부터 그렇게 악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이들을 봉인한 것이 옳은 일이었나?

나도 온전치 않은데 내가 뭐라고 이들을 가두었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솔로몬이 이 말을 하고 있는 사이, 두루마리의 글자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흩어지고 있었다.


“이거 보이지? 실컷 써놓으면 나의 죄책감에 글자들이 흩어진다.

이 기록은, 내가 죄책감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죄책감이 든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쓰면 이 글자들이 두루마리 속에 그냥 심어져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죄책감을 걷어낼 수 있을까?

이것이 현재 나의 가장 큰 숙제다.”


이건 마치...

원고 다 써놨는데 컴퉈 갑자기 다운되면서 써 놓은 것이 몽창 날아가는, 그 괴로움과도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컴퓨터 탓이라도 할 수 있지, 이건 자기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라니 미칠 노릇은 분명했다. 천사에게도 악함이 있고 악마에게도 선함이 있다는 짐작, 또는 지적인 예상을 온몸으로 체득한 자는 이런 식의 격한 일이 벌어지는구나.

하아.. 나같으면 그냥 안하고 말아.


“음... 이건 유언이고.. 전도서는 그럼 다 썼어요?”

“전도서? 그것도 쓰냐, 내가?”

“헐-! 전도서, 잠언.. 이런거 쓰셨는데..? 아가서도..? 안썼어요?”

“아가서? 그건 썼다. 아주 옛날에.

하지만 잠언, 전도서 이런건 안썼는데?”

“솔로몬 대왕님, 언제 죽어요? 본인이 아실거잖아?”

“나? 앞으로 얼마 못살긴 하지.”


엄훠~ 이거 정말 큰일일세! 솔로몬의 대표작 두 개를 아직 안썼다니 이걸 어쩐대? 유언은 정말 ‘비서’니 없어도 된다지만 전도서와 잠언은 좀 다른 문제다.


“유언을... 다 써야 다른 걸 쓰실 수 있으세요? 그럴 것 같아요?”

“다른 걸 쓸 생각을 안해봤는데...?”

“음....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봅시다.

72악마는 왜 잡으려고 했는지부터 생각해보고

신의 뜻이 무엇이었을까..를 유추해보는거예요.”


뭐든 하다가 잘 안될때는 처음을 생각해보면된다.


그냥 그게 내가 일하는 방식 중에 하나였다. 이걸 내가 왜 하려고 했을까?를 잘 생각해보면 늘 해답이 있었다. 이 방법은 중간에 다른 길로 새려고 할 때 중심을 잡아주는 기준이기도 했다.


“처음에? 시바 여왕이 권했었지.

모든 지혜를 갖고 있으니 악마도 부릴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들을 모두 가두면 세상이 평화로워지지 않겠냐고 했지.

그래서 시작했어.”


아하! 시바 여왕-!

그녀로부터 시작된 일이었군!


“대왕님은 온전한 선을 추구하신 거네요?

근데.. 온전한 선이란게... 인간의 세계에 없다면서요?

거기서부터 삐그덕.. 아니예요?”

“신께서 내게 시바를 보낸 이유가 그것이었군.”

“네?”


무슨, 질문을 하면 단계가 없어.

툭툭 뛰어넘어 그렇게 앞서가면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내가 한쪽에만 치우쳐있어서 다른 한쪽을 보내주신거라고, 신이.

균형을 위해.

신의 지혜는 조화와 균형이 핵심이거든.”


--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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