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가져다준 오해

고민 끝에 낙이 옴

by Pia

긴 시간이 지나갔다. 직장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어진 무기력함이 부쩍 더워진 날씨 때문 일거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온전히 계절의 변화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석연치 않았다. 마음속 한 구석에서 무언가가 꽁꽁 싸맨 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사회생활 10년 차, 처음엔 슬럼프나 번아웃이 올 때가 되었다는 주변의 위로에 솔깃했다. '나도 이렇게 직장생활에 권태기를 느끼는 것인가.. ' 하지만 되뇌어봐도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뭘까.. 대체 뭐가 힘든 건지..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한 건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고 발버둥 치듯 휴직 중인 친구에게 연락했다.

"잘 지내냐, 요즘은 별일 없고?" 5살 된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이미 나보다도 더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같지. 그냥 아무 일 없이 살다가 좀 우울하다가 또 그냥 살고, 기뻤다가 노잼이었다가.. 왔다 갔다 해 ㅋㅋ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네"

이런저런 실없는 얘기가 오간 지 5분쯤 지났을까? 문득 무언가 다가왔다.

"너랑 얘기하다 갑자기 느껴지는 건데, 생각해보면 내 안에 문제가 있는데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건가 싶네. 자꾸 밖으로 도는 것 같다."

"그거 내가 어제 남편한테 들은 소리네!"

절친한 동갑친구 아니랄까 봐 같은 고민을 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얻는 공감대도 비슷해 대화는 한참 더 이어졌다.

"우리 나이가 이런 걸 느낄 시점인 건가?"

"그러게 지금 내 주변 상황을 바꿀 수가 없어서 더 답답한 것 같아"

그간 각자 느꼈던 일상의 지루함을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뱉어 내기 바빴고 덕분에 산 정상 메아리처럼 묵었던 고민들이 흩어져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모든 게 너무 다 익숙해져서.."

"그거다!"

갑자기 친구는 '익숙'이라는 단어에 꽂혀 긴 대화 끝에 답을 찾은 듯 좋아했고, 나도 '그런가 보다'라며 익숙함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긴 시간의 고민이 무력할 만큼 그간 철없이 배부른 소리를 하고 다닌 것 같아 창피했고 한편으론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찾은 듯 해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세상 맑게 보이는 이 기분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일단 오해에 쉼표는 찍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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