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리스 Oct 13. 2021

집구석 작가 시리즈

그 시절 찬장에는...

나는 어렸을 때 부터 그랬던거 같다.

뭔가 한가지 삘을 받으면 당장 해보고싶어서 안달 안달.

그래서 어설프게 나마 시작해보고는 결과가 좋지않으니 거기서 스탑.

그러곤 열정도 시들.


준비없이 뭔갈하니 끝까지 가기가 힘들지 않았나싶다.

지구력 부족도 한몫.

(어려서 부터 심했던 빈혈 때문에 뭘해도 체력이 딸려서 그렇게 됐다는 핑계 투척. ㅎ)


티비에서 사춘기 여학생이 자기 방을 이쁘게 꾸미는 내용이 나왔다.

아!! 나도 해보고싶어.

그런데 우리집은 할머니까지 계신 대식구.

식구에 비해 방도 모자라는걸.

누에 친다고 앞뒤를 늘여 길게 만들어 놓은 방에서 거의 모든 가족이 엉켜 살았는데 뭐.

그러다 그 큰 방과 부엌 사이에 끼인 작은 방이 생각났다.

구들이 잘못됐는지 아무리 군불을 때어도 따뜻해지지않던 방.

그래서 창고처럼 쓰이던 방.

말린 고추에 고구마, 감자에 안입는 옷들까지...켜켜이 물건이 쌓여있는 어두침침하고 차가운 방이었다.


손을 안대서 그렇지, 어찌어찌 해보면 내 방이 생길수도 있을거 같았다.

당장 작은 방으로 달려갔다.

중구난방으로 질서없이 쌓여져 있던  물건들을 한쪽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몇몇은 방 앞 작은 쪽마루에 내놓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었다.

마침 한쪽 귀퉁이에 쳐박혀 있던 책상과 책꽂이가 나타났다.

책상을 닦고 새농민 이니 감자 농법이니 하는 아버지의 책들을 정리하고 한쪽에 내 책들도 꽂았다.

아싸!!!

이제 방을 뎁혀야지.


부엌으로 갔다.

그당시 우리집 부엌은 아궁이가 걸려있는 옛날 부엌.

작은방 쪽으로 큰 가마솥이 걸려있었는데, 그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것은 우리 자매들이 목욕을 해야해서 뜨거운 물이 필요할 때..그런 때 뿐이었다.

물을 팔팔 끓여도 방이 뜨거워지진 않으니 그 방에 군불을 넣는 것은 그냥 장작 낭비일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불을 충분히 때지 않아서 일거라고.

몇시간이고 불을 지피면 지까지것 방이 뎁혀지지않고 배기겠냐고.


가마솥 가득 물을 채웠다.

그 당시 우리집은 수도도 없어 옆집 수도에서 펌프질을 해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며 물을 채웠어야했는데...기꺼이 했다.

난 꼭 내 방을 만들어야했기에.

그리고 어차피 매일매일 물을 길어오는 것도 내 할 일 이었는데 뭐.

두살 위 언니,  세살 아래 여동생, 그 중간에 나, 이렇게 막내 그룹 세 자매 중 내가 키와 덩치가 제일 컸기 때문에 고런 잡다한 집안일은 언제나 내 차지였거덩.(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외 집안일도 왜 내가 거의 한거 같지? 흠...언니랑 동생..말 좀  해보시요들~~ㅎㅎ)


뒤꼍에서 장작도 잔뜩 가져다놓았다.(엄마가 아끼는 장작. 패기 힘드니까. 사실 그렇게 막 쓰면 안되는 것이었다.)


불을 때기 시작했다.

가마솥에 김이 솔솔 난다 싶더니 이내 물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장작을 더 넣었다.

방이 뎁혀져야했기에 부지깽이로 장작을 아궁이 깊숙이 밀어넣었다.

물이 끓어 줄어들면 더 가져다 부었다.

거짐 두시간쯤  불을 때었나.

곱게 바닥에  깔아둔 이불 밑으로 이쯤되면 온기가 돌겠지 하고 손을 넣어보았는데.. 왠걸.

여전히 냉골이었다.ㅠ


장작을 더 쓸순 없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밭에서 돌아온 엄마가 뒤꼍의  줄어든 장작을 금새 알아차릴 것이었다.

방이 따뜻해지면 같이 독립하려던 동생도 급기야는 말렸다.

"언니야... 이 방은 안되는갑다. 포기하자..."

으...

내 꿈이 여기서 좌절되다니..

고작 한나절도 못간 꿈이여...

그때 눈물이 살짝 맺힌건 장작불이 매워서 였을까, 마른 고추 자루에서 새 나오던 매운 고추 냄새  때문이었을까, 좌절된 꿈 때문이었을까...


또 하나 기억나는건..


 티비에서 깔끔한  주방이 나오면 또 부엌으로 달려갔다.

냉장고도 가스렌지도 없는 어둡고 깊은 옛날 부엌.

있는거라곤 아궁이와 그 옆에 새로놓은 연탄아궁이,   곤로 하나, 그리고 나무 찬장 하나.

불 땐  그을음으로 부엌은 늘 시컴시컴.

그릇이며 찬장엔 나무 재가 하얗게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는 깔끔과는 거리가 먼 분.


티비에서 영감을 받은 날은 설거지통에 물을 받아와 행주를 적셔서는 솥뚜껑이며 찬장  칸칸이며 부뚜막이며 물질을 했다.

찬장정리도 했다.

맨 아래칸엔 양념류.

둘째칸엔 남은 반찬 정리.

제일 높은 세째칸엔  국수며 미역  같은 가끔 쓰는 재료들.


며칠 전,

옛날 찬장을 닮은 조그마한 수납장을 샀는데

그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옛날 우리집 부엌에  있던 찬장이 떠올랐다.

가지런히 몇개  없는 반찬을 정리하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지금에야

 남은 반찬은 모두 냉장고에 들어가니

그 조그만 수납장엔 반찬이 있을래야 있을 수도 없고

대신 원두를 넣어두었는데...

 원두를 꺼낼때 마다 옛  찬장이 생각나 글을 써본다는게 ....

이렇게  길어졌네...


후아;;;;;;; ㅎ


옛날 그 찬장을 닮은 수납장
컵도 요렇게 정리해보았다.

찬장 안 원두 ^^

작가의 이전글 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