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 고추에 고구마, 감자에 안입는 옷들까지...켜켜이 물건이 쌓여있는 어두침침하고 차가운 방이었다.
손을 안대서 그렇지, 어찌어찌 해보면 내 방이 생길수도 있을거 같았다.
당장 작은 방으로 달려갔다.
중구난방으로 질서없이 쌓여져 있던 물건들을 한쪽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몇몇은 방 앞 작은 쪽마루에 내놓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었다.
마침 한쪽 귀퉁이에 쳐박혀 있던 책상과 책꽂이가 나타났다.
책상을 닦고 새농민 이니 감자 농법이니 하는 아버지의 책들을 정리하고 한쪽에 내 책들도 꽂았다.
아싸!!!
이제 방을 뎁혀야지.
부엌으로 갔다.
그당시 우리집 부엌은 아궁이가 걸려있는 옛날 부엌.
작은방 쪽으로 큰 가마솥이 걸려있었는데, 그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것은 우리 자매들이 목욕을 해야해서 뜨거운 물이 필요할 때..그런 때 뿐이었다.
물을 팔팔 끓여도 방이 뜨거워지진 않으니 그 방에 군불을 넣는 것은 그냥 장작 낭비일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불을 충분히 때지 않아서 일거라고.
몇시간이고 불을 지피면 지까지것 방이 뎁혀지지않고 배기겠냐고.
가마솥 가득 물을 채웠다.
그 당시 우리집은 수도도 없어 옆집 수도에서 펌프질을 해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며 물을 채웠어야했는데...기꺼이 했다.
난 꼭 내 방을 만들어야했기에.
그리고 어차피 매일매일 물을 길어오는 것도 내 할 일 이었는데 뭐.
두살 위 언니, 세살 아래 여동생, 그 중간에 나, 이렇게 막내 그룹 세 자매 중 내가 키와 덩치가 제일 컸기 때문에 고런 잡다한 집안일은 언제나 내 차지였거덩.(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외 집안일도 왜 내가 거의 한거 같지? 흠...언니랑 동생..말 좀 해보시요들~~ㅎㅎ)
뒤꼍에서 장작도 잔뜩 가져다놓았다.(엄마가 아끼는 장작. 패기 힘드니까. 사실 그렇게 막 쓰면 안되는 것이었다.)
불을 때기 시작했다.
가마솥에 김이 솔솔 난다 싶더니 이내 물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장작을 더 넣었다.
방이 뎁혀져야했기에 부지깽이로 장작을 아궁이 깊숙이 밀어넣었다.
물이 끓어 줄어들면 더 가져다 부었다.
거짐 두시간쯤 불을 때었나.
곱게 바닥에 깔아둔 이불 밑으로 이쯤되면 온기가 돌겠지 하고 손을 넣어보았는데.. 왠걸.
여전히 냉골이었다.ㅠ
장작을 더 쓸순 없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밭에서 돌아온 엄마가 뒤꼍의 줄어든 장작을 금새 알아차릴 것이었다.
방이 따뜻해지면 같이 독립하려던 동생도 급기야는 말렸다.
"언니야... 이 방은 안되는갑다. 포기하자..."
으...
내 꿈이 여기서 좌절되다니..
고작 한나절도 못간 꿈이여...
그때 눈물이 살짝 맺힌건 장작불이 매워서 였을까, 마른 고추 자루에서 새 나오던 매운 고추 냄새 때문이었을까, 좌절된 꿈 때문이었을까...
또 하나 기억나는건..
티비에서 깔끔한 주방이 나오면 또 부엌으로 달려갔다.
냉장고도 가스렌지도 없는 어둡고 깊은 옛날 부엌.
있는거라곤 아궁이와 그 옆에 새로놓은 연탄아궁이, 곤로 하나, 그리고 나무 찬장 하나.
불 땐 그을음으로 부엌은 늘 시컴시컴.
그릇이며 찬장엔 나무 재가 하얗게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는 깔끔과는 거리가 먼 분.
티비에서 영감을 받은 날은 설거지통에 물을 받아와 행주를 적셔서는 솥뚜껑이며 찬장 칸칸이며 부뚜막이며 물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