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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Oct 29. 2015

서울 주변 도시에서 살기

내가 서울을 떠나지 못한 이유

어렸을 때 서울은 그냥 머리속에서만 존재했다.

'우리 나라 수도'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야하는 읍내에도 나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옆에 지나가는 버스 기름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울렁 멀미를 하던 나는 읍내에 나가는 것도 공포스러웠다.

초등학교 합창단을 하며 일년에 두어 번 읍내나들이를 하게되면 토할 때를 대비한 비닐봉지를 몇개 들고 버스를 탔다.

버스 타기 전에 밥을 먹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런 내가 대학은 당연히 서울로 가야지 생각했다.

왜?

서울은 우리나라 수도니깐~~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으니깐~~

그리고 무엇보다 뽀대나니깐~~~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서울 주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심지어 멀리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서울로, 서울로 하며 몰려들고 또 떠나지 못한다.


앞서 썼듯이  운좋게 서울 남자를 만나 서울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되는 마음을 안고 결혼을 했지만 전세방 구할 돈이 없어  시부모님 집 문간방 (현관 옆 방을 말한다^^)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외출 한 번 못하고 감옥처럼 느껴지는(호된 시집살이를 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때 내 마음이~~^^) 시댁 생활을 할 때는 빽빽히 들어서 있는 아파트들을 보며, 창만 열면 남의 집 안방이 훤히 보일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빌라들을 보며 왜 저 많은 집들 중에  내집 하나 없을까 신세한탄을 했었더랬다.


그러다 시부모님이 어렵게 구해주신 천여만원의 돈을 들고 방 한칸짜리 월세방을 구해 분가를 했다. 2년 가까운 시집살이 후라 그때는 방 한칸이 문제가 아니요, 월세도 문제가 아니요, 그저 남편과 나, 갓 백일을 지난 첫딸이 누구 눈치 안보고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냥 설레고 행복했었다.


그래봐야 서울 북쪽 끝 동네.

시골 출신 우리 친구들도 내가 사는 동네를 말하면

그  동네가 어디 붙어 있니?

그런 변두리 동네에서 어떻게 사니?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그런 동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예 서울을 떠나 옆  경기도 동네에서 터를 잡았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주인집 바로 옆이라 아기 울음소리도 신경쓰이던 단칸방이 아니라 소형 아파트일지언정 번듯한 우리만의 월세집을 구할 수 있지 않았었을까...


하지만 그때까지도 감히 서울을 떠난다는 생각을 못했다.

비록 지금은 내가 단칸 월세방에 살지만 조금 더 지나면 나도 남들처럼, 같은 시골 출신인 내 친구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통의 서울 시민처럼 살아갈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내게 서울은 아직도 기회의  땅이요, 서울에서 자리잡고 사는 것이 가장 평범한 대한민국 소시민의 삶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감히 그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특별시 주소를 가지고 사는 삶을 포기하기 싫었다.

누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의 남루한 서울생활을 잘 알아차리진 못할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허세를 부리며 사는 생활이었다.


서울의 공해와 더불어 삶이 주는 퍽퍽함으로 몸과 마음이 시커멓게 되어 그 꿈과 희망의 도시 서울을 간절히 떠나고 싶어하게 되기까지 십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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