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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Aug 26. 2020

쉰이 되어보니..

짧은 나의 히스토리 1

가끔..아니 자주 생각했더랬다.

내 인생이 왜 이런 식으로 흘러 왔을까?

어디서부터 꼬였지?

태생부터?

태생은 그냥저냥인데 성격적 결함 때문에?

노력을 안 해서?

치열하지 못해서?

인생을 너무 물렁물렁하게 봐서?


딱히 막 실패한 인생이랄 것도 없지만

아쉬움이 많은 생이라..

하지만 그 인생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쉰 기념 흘러간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일단 결혼 즈음부터..


소심하고 별 특기도 없던 나의 꿈은 쭈욱 현모양처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하지도 않았고 반장 부반장도 여러 번 했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왜 그리 힘겹던지.

내 성격상 사람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걸 일찍부터 깨닫고 그냥  집에서 남편 출근시키고 애 키우고 살림하며.. 호젓이 느긋하게 그러고 살고 싶었다.

한마디로 남편 경제력에 힘입어  출퇴근 따로 없는 전업주부로 살고 싶었다 뭐 그런 거였지. 솔직히.


그렇게 될 줄 알고 남편을 선택했다.

(아, 물론 사랑했습니다..ㅎㅎ)

소위 명문이라고 하는 Y대, 무려 석사까지 하신 분. 당연히 번듯한 곳에 취직 잘하고 돈 안정적으로 벌어와 나를 전업주부로 살게  해 줄 줄 알았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남편이 집에 와서는 손 하나 꼼짝 안 하게 보필할 맘이 충만했다.


그 당시는 괜찮은 대학, 그것도 경제 관련 과를 나왔다고 하면 대기업을 골라 가던 때.

(이런 사람 실제로 많이 봤다. 내 친구 남편 포함..)



그런데.. 때는 1997년.

바로바로  전설적인 이름을 남긴 IMF가 막 시작되던  시기.

우린 그때 몰랐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풀릴 줄.

98년 2월 졸업예정이었기 때문에 당연 97년 하반기 공채에 지원을 했어야 했다.

더구나 98년 봄에 결혼 날짜를 잡아놨으니 더더욱..

근데.. 왜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았나?

IMF가 터지고 98년에는 공채가 싹 사라졌지만 97년 후반만 해도 아직 신입사원을 모집하던 시절.


근데 근데.. 인생 생 초짜인 그와 나(한마디로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바리 두 남녀였던 거시다...)는 너무나 나이브했다.


논문 마무리가 덜 되었다고 취업을 내년으로 미루겠다는 그에게 나는 쿨한 척 그러라고 했다. 내가 많이는 못 벌어도 남편이 취직할 때까지 두식구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울면서라도 설득했어야  했다.

이제 곧 한 가정의 가장이 될 것인데 직업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 좋은 소리로 압력을 넣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왜?

왠지 그러면 너무 현실만 밝히는 천박한 여자로 보일까 봐, 또는 내년에도 당연히 이곳저곳 중에서 골라서 갈 줄로 믿고 있어서,  또는 현실감이 너무 없어서... 아무튼..


97년 겨울 그가 취업을 좀 미룬다고 했을 때 나는 그때 다니고 있던 영어학원 강사 일 계속하고 그는 금세 취업하고 그러면 어찌어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뿔싸...

결혼을 한 달쯤 앞두고 학원에 결혼을 한다고 했더니 IMF의 직격탄을 맞아 학생이 반쯤 떨어져 나갔던 원장 왈, 잘 됐다.. 너 나가!!!

이렇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졸지에 두 백수가 결혼을 하게 된 것.


부모님 걱정하시니까 일단 비밀.

그래도 여전히 세상 물정 모르고

상대에게 첫 남자, 첫 여자라 두근두근 하며 결혼식만을 기다리던 우리는 현실도 잊고 히히 호호 좋아만 하며 결혼  준비를 여유 있게(둘 다 백수라..ㅎㅎ) 했다.


그러다... 일이 꼬일라고 그랬는지..

시어머님이 처음엔 신혼집 구하도록 삼천만 원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얼마 후 말을 바꾸시더니 이천 밖에 없다고 하시다가 이천으로 방 두 칸짜리나 구하겠냐고.. 네가 보탤  돈 없으면 돈 모을 때까지만이라도 시댁에 들어와 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도 이천이라도  주세요~하며 집을 구했었어야 하는데.. 이 멍충이는 또 그러지요~오빠랑 같이 있을  수 있으면 어딘들 마다하리오~~ 하며 덥석 어머니의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 머저리.. 멍청이..

생각이란 걸 좀 하지..

그때  시댁의 구성은

34평 방 3개짜리 아파트에 시부모님, 이혼한 시아주버니, 그의 5살짜리 딸, 거기다 나랑 동갑인 시동생까지 있었는데... 거길  들어간다고?

거기로  들어오라고 한다고?


하하;;;;

정신이 어떻게 된 거였지..


박차고 나왔어야 했는데..

거부하고 독립을 쟁취했어야 했는데..


어머니의 카리스마에 눌린 두 어린양 은 그리하야 시댁 문간방(진짜루..현관 바로 옆에 있는 방)에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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