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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Aug 27. 2020

쉰이 되어보니

짧은 나의 히스토리 2

결혼 전에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나는 모아놓은 돈이 없었고, 군 제대 후 석사 마지막 학기를  다녔던 그도 당연히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대단하다!! 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둘 다 무뇌, 그 수준이었구먼.. 허허..


돈도 없는 데다 직업도 없는데

결혼을 한다고?


왜 꼭 그때?


나는

그 당시 여자 나이 28 살을 넘으면 완전 노처녀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었다.(세기말 감성)

그래서 내 목표는 28 살에 시집가기.

마침 남자도 생겼고 그가 결혼도 하자고 하는데..

이 남자가 그동안 기다려온 운명의 남자인 것 같고 막 그런데...어떻게 결혼을 안 하냐고...


그는..

자기를 지극히 사랑해주는 온유(또는 온순)한 여자를 만나 불같고 냉정한 엄마 곁을 탈출해 따뜻하고 편안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었다.

ㅡ아니 그런데 왜 거기로 나까지 데려가냐고..나야 자기 엄마를 잘 모르니 엉겁결에 어머니 뜻대로 한다고 했어도 자기가 절대 안 된다고.. 나를 데리고 같이 도망(?)쳤어야지 ...거길 왜 손잡고 같이 걸어 들어가냐고...ㅠ


돈이 없으니 일단 생략할 건 다 생략.

그 당시 완전 유행하던 야외  웨딩촬영 생략.(10년 쯤 후 리마인드 웨딩 뭐 이런 거 하며 찍자~고 했었는데...꽝!!!)

예식은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서 무료 결혼.

(교회가 커서 다행히 예식부 서비스는 괜찮았다. 다들 무료  봉사였는데...쌩큐 갓!!  쌩큐  에블 바디!!)

드레스도 교회서 무료로 대여.

(드레스 샵 투어 뭐 이런 거 못해봤다.

 수요예배 끝나고 교회 옥상 밑 어느 작은 방에서 나름 어울릴 만한 거 몇 개 입어보고 적당한 거 픽.

어쩌다보니(드레스 수량이 많지 않았거나 이쁜 드레스가 별로 없었거나..라는 생각이..ㅎ)내 결혼식 바로 전 주에 결혼식을 하는 청년부 동생도 그 드레스를 골랐다네.. 2주 연속 같은 드레스라니..ㅠ 가만 보면 그때는 그렇게 소박하게 결혼을 한 청년들도 많았던 듯.. 너무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는 말자...ㅎㅎ)


메이크업은 교회 바로 옆 미용실에서 교회 집사님께 맡기기로.

(요긴 돈을 나름 꽤 썼던 거 같은데.. 화장 완전 맘에 안 들었음..ㅠ 찐한 화장. 다음날 내 손으로 화장하고 교회 가니 교회 동생들이 어제보다 더 예쁘다고 했었으니까..ㅠ)


교회였으니 예식장 대여비 이런 거 하나 없이  식대로 갈비탕 1인분 8,000 원씩만 계산해서 내면 되는 구조였다.

이건 친정아버지께서 내기로.

어차피 축의금 아버지가 갖고 가실 테니까.


신혼여행은 제주도 2박 3일.

3박 4일도 아니고 2박 3일 이라니..ㅠ

해외도 못 가는데..

그 몇 년  전부터 신혼여행으로 괌 이런 곳으로 가는 게 완전 유행이었었는데 97년 IMF후 환율이 너무 올라 너도 나도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던 시절이었다. 제주도가 신혼부부로 꽉꽉 찼으니 별 서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일단 기간이 무지 짧았고, (일요일 오후 비행기로 들어가 화요일 저녁 비행기로 나오는 일정. 관광은 딱 이틀. 이틀!!)

숙소도 돈이 없으니 신혼여행 때나 갈 수 있을까 말까 한   특급호텔  뭐 이런덴 당연 못 갔다.

일급 호텔이라고 하는 (난 그때 일급 호텔도 엄청 좋은 덴 줄 알았다. '일급'이잖아~) 자그마한 호텔, 뷰도 도시 뷰.

한마디로 호텔 뒤쪽으로 보이는 주택 뷰였다.


여행은 렌터카도 아니요

택시 관광도 아니요

무려 버스 관광.

버스 한 대에 신혼부부 스무 쌍쯤 태워서 가이드 한 분이 여기저기 데리고 가는 여행.


지금에 와서야 되돌아보니

진짜 꾸질꾸질한 여행 다녀왔구나..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신혼여행을 왜 그리 초라하게 다녀왔을까 싶기도 한데..

그때는 그냥 다 좋았다.

같이 있을 수 있다면야..

거기가 침대만 있는 여관방이던

호랑이 시어머니가 있는 시댁 문간방이던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었다.


  얘기하지만..

서로에게 첫 남자, 첫 여자였던 우리는 어서 속히 같이 있고 싶었다.

오직 그것만이 목표인 양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결혼식만 기다렸다.


ㅡ후아.. 원래 하고 싶던 이야기가 있어 글을 시작했는데... 이게 이렇게  힘들 일이야?ㅎㅎ

긴 여정이 되겠군.

뭐 시간 여행도 하고.. 천천히 가보자~~


다음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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