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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Sep 12.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8

토요일에 출산을 하고

이튿날 일요일,

한 달 만에 만난 (나의 사랑하는) 남편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한 달 뒤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여기서 또 확 열 오르는 일  하나.

6월 19일에 아기를 낳고 한 달 뒤면 7월 19일.

그런데 7월엔 17일 제헌절 공휴일이 있었다.

(그때 제헌절은 빨간 날)

마침 그 날이 토요일이기도 했지만

한 달은 채 안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내 생각엔 17일보다는

일주일 정도 후에 있을 남편 여름휴가에 맞춰 올라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계획을 시어머니께 말씀드리자

뭘 그리 오래 있냐고, 한 달 가까이했으면 조리는 거의 다 끝난 거 아니냐고 17일에 올라오라는 어머니의 명령 아닌 명령.


왜?

왜였을까?

사돈인 울 친정엄마에게 산모와 아기 수발들게 하는 게 죄송해서?

아님 그동안 밥하고 설거지하던 며느리가 없어 다시 당신 차지가 된 집안 살림하고

장가까지 간 아들 뒷바라지까지 하는 게 성가셔서?

암튼.. 어머니의 단호한 결정에 두 숙맥은 힘없이 네... 하고 17일에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아니., 남편아..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난 올라오면 그 길로 다시 설거지 통에 손 담가야 하는데 ㅡ며칠 더 있다 휴가 때 여유 있게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왜 못 하니???


가만 보면 내 남편은 나의 방패막이 별로 안되었었다는 기억.

시어머니껜 내가 직접 뭔갈 얘기하거나, 어떤 땐  옆구리 찔러 얘길 하게 시켜도 직진으로 얘기하는 바람에 막아준다고 꺼냈던 말이 더 큰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는 기억.

머리 굴릴 줄 모르고 센스 떨어지는 남편, 어디 가르쳐주는 학원 없나?

허긴.. 그런 게 가르친다고 잘 될리야..

이럴 때 하는 말 ㅡ아이구...내 팔자야!!!!!


7월 17일 남편이 내려와 나와 아가를 태우고 이튿날 일요일에 올라가게 되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는데 4시간여 거리를 내가 아기를 안고 가기엔 무리가 있어서 친정엄마도 같이 가기로 했다.


여기서,

내가 겪은 시어머니 vs. 친정엄마.


내가 나의 시어머니를 만났을 때, 또는 남편에게 본인 엄마의 성정이나 엄마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었을 때

 엥? 진짜 그런 엄마가  있다고?

설마?

내가 아는 엄마들의 모습은 그게 아닌데?

내가 아는 엄마들이라고 하면 다 울 엄마처럼 본인 몸은 전혀  돌보지 않고 희생만 하는.. 그런 모습이 '엄마'라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인데..

하는 생각을 했었었다.


자연분만을 했으니 병원비는 많이 나오지 않아 큰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산후조리를 친정엄마가 해주셨단 말이지.

그 시절 어디선가 듣기로 친정엄마가 조리를 해주시면 옷 한벌쯤은  해 드려야 한다고들 했었다.

옷 한 벌 가격이라 함은 백여만 원부터 수십만 원 까지 그렇게나 다양한데...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넉넉히 드릴 돈도 없었다.


아님, 이럴 때 시부모님이 병원비나 또는 산후조리해주신 사돈에 대한 성의 표시를  좀 해야 되는 거 아닌가?(아님 말고..ㅎ)

그런데.. 그런 건 없었다.

병원비 우리가 내고 엄마께 감사의 표시를 하려니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아 20 만원을 겨우 드렸다.

당연히 엄마는 필요 없다고, 너희들 아기 키우는데  보태라고 하시며 안 받으려고 하셨지만 차마 입을 쓱 닦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방을 정리하던 나는 기저귀 가방 속에 들어있는 십만 원을 발견하게  된다.

친정엄마가 아까 휴게소에서 남편과 내가 손잡고 바람 쐬러 갔을 때 본인이 받으신 돈 중 반을 우리 가방에 다시 몰래 넣어놓으신 거다.

다시 받아라.. 하면 우리가 안 받을걸 아셨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시어머니 요구에 따라 며칠 더 친정에 있지 못하고 일찍 올라온 것도 속상한데... 시어머니는 저렇게나 당신 속 편한 대로만 하시는데... 착해빠진 울 엄마는 온통  퍼주는 것  밖에 모르시니..


염치없지만 엄마가 그렇게 주신 돈을 돌려드리지 못했다.

내 코가 석자니..


꽉 채운 한 달을 보내지 못하고 시댁으로 돌아와

이튿날부터 설거지에 아기 목욕

ㅡ남편은 학습지 교사라 퇴근이 늦어 첫째 때도 둘째 때도 아기 목욕을 도와준 적이 없다. 주말에? 남편은(앞에서 말한 것처럼) 말머리가 없을뿐더러 일머리도 없는  (전형적인 공부만 하는 선비 스타일 ) 유형이라 주말에도 내가 딱히 도와달라 요청을 하지 않았고... 이런 일이 쌓이다 보니 남편은 내 요청이 없으면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주 수동적인 남편이 되었다.ㅡ

청소... 뭐 여타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당연히 내 차지가 되었다.


아기 낳기 전부터 "니 애 안 봐줄 거다"라는 시어머니의 선언을 마음에 새긴 쫄보인 나는 시장에 잠깐 다녀올 때도 "애기 삼십 분만 봐주세요~"라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아기띠를 하고는 끙차.. 시장으로 갔다.

그리곤 가슴엔 아기, 양손에 물건을 들고 돌아오고..


바보!!!  바보!!!!

아주 사서 고생을 하는 스타일이다.

나... 어쩌랴!!!

내 깜냥이 그것밖에 안되었었는데...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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