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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Sep 21.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10

아기를 낳은  그 해 가을,

나와 동갑인 시동생이 결혼을 한다.


어느 집이나 막내들은 이러저러한 압박으로부터 좀 자유롭고 행동의 제재도 많이 안받는거 같다.

나의 시댁도 마찬가지.

시동생은 어려서부터

"나는 나중에 우리 집에 강아지 50 마리 키울거야. 엄마가 우리 집에 못오게" (시어머니가 애완동물 싫어하심)

 뭐 요런 말을 맹랑하게 하며 본인 어머니에게 당한 스트레스를 가감없이 발설하더니 역시나 본가에서  떨어진 곳에 (부모님 의견 전혀 고려 없이 전적으로 본인들만의 의견으로 )집을 구했다.


결혼할 여자는 딱 우리 엄마랑 성격 반대되는 사람이랑 할거라고 하더니, 눈도 밝지.

어디서 딱 그런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3남매중 외동딸. 가족끼리 싸워본 적이라곤 없다는 다정한 원가족에서 자란 구김살 없 명랑한 아가씨가 동서가 되었다.


나는 결혼할때 뭐든지 어머니 뜻대로 했다.

집 얻을 때 보탤 돈 없으면 들어와 살라고 해서 들어와 살았.

예물도, 둘다 백수니 (부자 시이모님이 조카 며느리 맞이할 때 마다 선물로 해 주시는) 다이아반지 하나만 받아라 하시기에 -그러고보니 시부니모님껜 따로 받은 예물이 없다. 시계는 시아버님이 외국 출장에서 돌아올 때 시어머니 주려고 사왔는데 사이즈가 작아  모셔뒀던 걸 받았으니. 물론 딱히 할 말이 없는게 남편도 달랑 5돈짜리 금반지 하나가 다다.- 네~~ 하고 다이아반지를 받았다.


그런데 시동생네 부부는 본인들의 생각을 똑부러지게 얘기했다.

예물은 본인들이 알아서  적당히 반지, 시계만 할 테니 그 다이아반지 살돈을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갓 취직한 시동생이나 동서도 돈이 없긴 마찬가지여서 어머님이 주시는 약간의 돈과 반지값 아낀 돈, 동서가 혼수비 아껴 갖고온 오백만원.

그 돈을 합해서 홍대 앞에 원룸을 구했다고 했다.


와~~나는 시어머니의 말에 반대표를 던지며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깜짝 놀랐다.

시동생이 어머니와 싸울 각오까지 하고 중간에 방패막이 되어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동안 방패막 하나 못되어주고 나를 옆에 세워 같이 화살을 맞던 남편아, 어떻게 된거냐? 혼자 화살 맞기 싫어 같이 맞을 사람 구한거냐?...ㅠ-


나는 어머니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우리 땐 딱 잘라 이천만원으로 분가할거면 들어와 살라던 시어머니가 고작 일 년 조금 지났는데 저렇게 변하신다고?

아니 뭐 딱히 대안이 있었던건 아니었다.

시동생네 까지 들어와 살순 없었을 테니까.

어머니도 반쯤 포기하셨나?

우째 아들들이 만나도 저리 가난한 집 딸들만 만나는지 속으로 한탄을 하시며 체념하셨을 수도 있겠다.

너희만 좋다면야...하시며.

그냥 막내에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관대하셨던 건지...


여기서 생각나는 또하나의 에피소드.

호칭!!

결혼 전에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었다.

나는 원래 이것 저것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라 누가 아무 말 안해도 시부모님 앞에서는 오빠라고 부르면 안될거 같은 느낌이 왔다.

어느날 시어머님도 딱 대놓고 말씀하신다.

결혼하고 나면 시부모 앞에서 남편 오빠라고 부르지 마라.

나는 그 소리 듣기 싫더라.

에구구..그럼 도대체 뭐라 불러야하나?

아기가 있면 **아빠라고 부를수 있을텐데 아기가 없을 땐?

그래서 시댁  때, 우리  끼리 있을 땐 오빠라고 불렀지만 시부모님이 계시면 부르질 못하고 직접 가서 옆구리를 찔러 말을 했다는...ㅎㅎ

그런데  우리 동서는 그런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사람이란 말이지. 맑고 밝고 눈치볼 줄 모르는 순수한 여인.

호칭을 시부모 앞에서 왜 바꿔야하는지 생각도 안하는 사람이었다.

시부모가 앞에 있던 없던 맑고 깨끗한 소리로

"오빠~~~오빠~~~~" 하는데...

시어머니가 아무런 제재를 안하더라는...

나중에 아기가 생긴 후에도, 결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ㅎㅎㅎ

나중에 동서에게 이러저러해서 난 남편을 부르지도 못했다 했더니 동서는 깔깔깔 명랑하게 웃으며

"어머~~저는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하하하!!! 어머님이 얼마나 기가 차셨을까요? 제 철없는 모습이~~~하하하하~~~"

한다.

다 생긴대로 사는 거지 뭐.

눈치보는 성격인 나는 눈치보며 좀 더 피곤하게, 눈치 따윈 보지 않는 직진형 인간은 좀 더 수월하게.

ㅡ혹시 오해하실까봐...전 동서를 아주 좋아합니다.

호탕하고 명랑한 그 성격 그대로 좋아하고 때론 그런 성격이 부럽기도 합니다. 둘 사이도 아주 좋구요. 비록 시동생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리는 바람에 나는 외며느리 아닌 외며느리가 되었지만...ㅠ...ㅡ


시동생이  집들이를 한다고 시댁 식구들을 초대했다.

홍대 앞 조그만 원룸.

페인트칠을 아기자기 해놓은 귀여운 집(방) 이었다.

비용을 아끼느라 혼수라야 냉장고에 세탁기, 침대.

티비는 집에서 큰형이랑 보던걸 갖고 갔고 옷장은 행거를 설치해 커튼으로 가려놓았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너무 부럽기만 했다.

이렇게 아기자기한 곳에서 둘이 산단 말이지?

단 둘만?

집이 작고 시댁식구 9명이  앉으면 꽉차는 공간이었지만 어머니는 가타부타 별 말씀이 없으셨다.

원래 성격대로 라면 이런 콩알만한데서 어찌 사냐  하실 분인데, 당신들이 돈을 많이 보태주지 못해서 미안해서 그런지 그냥 둘이 꽁냥꽁냥  사는 모습을 이쁘게만 보셨다.


집들이를 다녀오고 나는 더 좌절했다.

막내아들 결혼시키고 집 얻는데 돈 보태느라 시부모님은 돈이 더 없으실 텐데...우리도 결혼하고 애낳고 하느라 돈도 못모았는데..남편은  여전히 학습지 교사를 하며 수입도 작을 뿐더러 일정치도 않은데...도대체 분가는 언제한단 말이냐?

우리가 돈을 모아 분가한다는건 요원해 보이기만  하는데...정녕 여기서 계속 살아야만 한다는 말이냐?

남편에게 불평아닌 불평을 하며 상의를 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괜찮은 직장이면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겠지만 이 학습지 교사라는건 개인 사업자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대출을 받을 수도 없었다.


며칠이 흐르고 시어머니가 우릴 부르셨다.

"내가 막내네 집을 가보고 오니

둘이 사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

너희도 얼마나 나가 살고싶겠니?

엄마가 돈이 별로 없지만 조금 줄테니 살 집을 알아봐라!!"


네?????

뭐라구요????

정말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꿈도 못꾸는 새 분가가 눈 앞에 다가왔다.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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