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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Sep 26.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11

어머니의 분가 결정!

땅땅땅!!!!


어머니는 천오백만 원을 융통해 줄 수 있다고 하셨다.

천오백이라?

99년 그때도 방 두 칸짜리 빌라라도 얻으려면 삼천은 있어야 했다.

천오백으로 어디에 집을 구하지?

동서네 처럼 집이 아니라 방을 구하는 수준이 될 거 같은데...

 

하면서도 어머님이 뜻을 거두실까 얼른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시동생네처럼 시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구할 생각을 못했다.

다니는 교회가 그  동네에 있었고 남편 일터도 근처였기 때문에 당연히 시댁 근처로 알아보아야 한다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시댁이 있는 아파트 뒤쪽은 주택가.

고만 고만한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이 모여있고 물가 싼 재래시장도 있는 동네였다.


그런 곳에도 천오백을 들고 구할만한 곳은 별로 없었지만... 아기를 들러  멘 어깨가 빠질 것 같아도 실실 웃으며 다녔다.

얼른 구하지 않으면 시어머니가 "그걸로 못 구하지? 그냥 몇 년 더 살아라~" 하실까 봐 하루 라도 빨리 구해야 했다.


천오백으로 전세는 도저히 구할 수 없어 월세를 알아보 시작했다.

수입이 적었기에 월세가 비싸도  됨!!

이것저것 고려하낙심이 되어갈 무렵

적당한 집이 나타났다.

3층짜리 연립 한 동.

지하, 1층, 2층은 자그마한 방 두 칸이 있는 집이 각각 3채씩 있었다.

3층은 통째로 주인인 노부부가 넓게 살고 있었는데 세를 하나라도 더 놓고자 벽을 치고는 방 한 칸에 주방과 화장실을 만들어놓은 (그야말로) 원룸 같은 집(방)이었다.

여기도 문간방 신세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일단 방이 꽤 넓었고 한 벽에 커다랗게 나있는  창으로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뭐야?

멀쩡히 대학씩이나 나온 젊은 부부가 방한칸짜리 월세 신세라니?...라는 자괴감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것도 세기말 감성(20세기 말엔 흔한 일)이었는지,

아님 얼른 분가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건지,

아님 현실감각이 너무 없었던 건지.


가만 보니..

이럴 거였으면 결혼할 때 2천이라도  받아 어떻게든 분가했어야 했는데.. 1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나 더 나쁜 조건으로 분가하게 되다니...

살다 보니 이런 일은 쎄고도 쎘다.(사투린가?ㅎ)

아끼다 똥 된다.. 뭐 이런 비슷한 뉘앙스가 아닐까?

아니... 공든 탑이 무너졌네.. 뭐 이런 건가?

하여튼 내 말은, 인고의 세월이 무색하게 결과가 그닥!!! 이라는 뜻이었지만... 아이구!! 그 정도만 해도 감사합니다~~~ 라는 게 현실적인 분위기였다.


보증금 천이백에 월세 십이만 원.

바닥 뜨끈하고 하루 종일 볕 잘 드는 한 칸짜리 월세방이 드디어 우리 집이 되었다.


오히려 잘 됐구나~하며 보증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갔다.

여전히 아기는 앞으로 맨 채 낑낑대고 였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샬랄라~~~~.

장롱을 사고,  2인용 식탁을 사고, 500리터짜리 냉장고를 사고, 세탁기를 사고~~~

아기를 위해 티비를 안 산다고 했더니

친척분이 돈이 없어서인 줄 알고

"요즘 테레비 없는 집이 어디 있니?" 하며 티비를 사주셔서 티비 장식장도 하나 샀다.

결혼할 때 혼수를 하나도 못해줘서 미안해하시던 친정아버지는 그릇세트를 사주셨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근처 재래시장에 가서

후라이팬도 사고 국자도 사고 칼도 사고 뒤집개도 사고  휴지통도 사고... 등등등.

아~~~ 신나라~~~~!!!!!!

소꿉놀이하듯 물건을 하나 둘 마련했다.


아 참참!!!!

 이젠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내 맘대로 메뉴를 정할 수 있었기에 요리책도 한 질(그땐 요리 대백과 뭐 이런 세뚜 세뚜 요리책들이 있었다) 샀다.

시부모님이랑 살 때 아침은 당연히 밥, 국의 한식이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 없지.

씨리얼이나 토스트 ~OK!!

마트에서 씨리얼을 사고 토스터기를 장만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999년 11월의 어느 날,

드디어 17층의 탑에서 내려와 소박한 우리들만의 궁전(엘베 없는 3층 연립. 유모차를 끙차 힘으로 올렸다 내렸다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지만.. 난 괜찮아~~ 난 힘이 세니까~~~ 아하하하하~~~;;;;;;)으로 들어갔다.

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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