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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Oct 10.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13

제일 먼저 초대한 이는 나의 언니와 동생.

그때까지 미혼이었던 바로 위 언니와 6남매 중 막내였던 동생은 서울 모처에서 같이 자취를 하고 있었다.

세명이 살다 내가 결혼으로 쏙 빠져나왔는데

한번도 우리집에 온적이 없었다.

아니 못왔지.

어떻게 사돈 어른들이 있는 집에 올 수가...

가끔씩 눈물 흩뿌리며 시집살이의 고됨을 토로하는 전화를 하면 같이 마음 아파하며, 같이 욕도 하며 나의 분가만을 기다린 울 언니와 동생.

한달음에 달려왔다.

조카 선물을 잔뜩 들고.


또 초대한 분들은 교회 식구들.

새댁인 나의 공식적인 나들이는 주일 날 교회 가기 외에 금요일에 모이는 구역예배가 전부였다.

이것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어머니도 어떻게 태클을 걸수 없는 나의 유일하고도 당당한 외출 거리.-지금 생각해도 외출하는데 왜그리 눈치를 봤는지..스물아홉의 내가 이해가 안되네..

INFP라서 그런가?...ㅎㅎ


그런데 이것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구역예배 시간이 되면 시부모님과 같이 사는 나의 처지를 안스럽게 생각한 구역장 집사님이 전라도 분 특유의 솜씨를 한껏 발휘해 밥상을 거하게 차려주셨다.

그러곤 천천히, 많이, 느긋하게 먹고 쉬다 가라며 아기도 봐주시고, 어떤 땐 한숨 자고 가라고 하기도 하셨.

정성 가득한 밥을 먹으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은 훌쩍 흘러갔다.

11시에 모여 예배드리고 밥 먹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2시 정도는 가볍게 넘을 수 밖에 없는데, 내 맘같아선 저녁 준비 시간에만 늦지않으면 될거 같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단 말이지.


어느날 3시쯤 들어갔더니

"뭔 예배를 이렇게 오래 드리냐? 바깥에 나가서 너무 오래 있지 말어." 하신다.

그 뒤부턴 2시쯤 만 되면 가슴이 콩닥콩닥.

구역장 집사님이 더 있다가 가라고 해도 어머니한테 혼나서 안된다고 했더니 다들 한 마음으로 얼른 분가해야할텐데... 하며 기도해주셨었다.

이런 분들을 어찌 초대를 안할소냐?

살림에 보태라고 (우리 집에 없는)전골냄비며 휴지며 세재를 한아름 안고 몇분이 오셨다.

방이 크고 베란다가 넓어 왠만한 방 두개 있는 집보다 쓰임새가 좋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셨다.ㅎ


또 그 다음으론 결혼 전 다니던 교회 언니들.

결혼 초반엔 주말마다 부지런히 예전 교회 친구들 결혼식에 갔었는데 그것도 잦아지다보니 눈치가 보였다.

어머님이 딱히 뭐라 하지 않으셨는데도 스스로 눈치를 보다 잔소리가 나올 것 같다 할 즈음부터 발길을 끊었다.

그렇게 미혼시절의 인연들이 슬그머니 끊어져 가고  있었는데, 그래도 내가 사랑해마지 않던 이 언니들과는 연락을 계속하고 있었고 드디어 인고의 시간을 지나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강동구에서 도봉구까지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주었다.


남편은 직장 동료들을 초대했다.

단칸방에 집들이라니...ㅎ

무려 스무명 가까이 왔다.

자리가 협소해 베란다로 나가는 창틀에 걸터앉아서도 축복의 말들을 건네며 웃고 떠들던

따뜻했던 시간들이었다.


3층, 주인집 대문  옆 자그맣고 하지만 온기 가득했던 내 소중한 첫 집은...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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