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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Nov 06. 2015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내 이야기

(소심한)젊은이에게 고함 1.

어렸을 땐 공부를 곧잘했다.

시골 중학교 였지만 약 200명 정도되는 학생 중에 전교 1등도 몇번 해봤고,  고등학교는 중학교 성적 덕분에 3년 장학생으로 다녔다.

공부 좀 하는 덩치 큰 학생이었기에 믿음직스러워 보였는지 반장, 부반장도 몇번 했다.


반장 이나 부반장 노릇은... 성격덕에 쉽지 않았다.

체육시간마다 "오늘 체육 운동장에서 하나요, 교실에서 하나요?"를 물어보기 위해 교무실로 가야했는데, 교무실 문 열기가 그렇게 망설여졌다.

드르륵..문이 열렸을 때 나를 쳐다볼 선생님들의 눈길이 약 1000톤의 무게로 다가와서 문을 열기도 전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허나 막상 문이 열려도 쳐다보는 선생님은 별로 없었건만...오버였지...ㅎ)


그렇다.

나는 무지무지 소심한 성격, 그 자체였다.

주목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러운...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대학을 선택해야했다.

그때는 선지원 후시험의 대입 방식이 있던 때였다.

고3  모의고사 성적을 바탕으로 내가 갈 학교를 먼저 정해서 원서는 딱 그 학교 하나만 쓸 수 있었다.

약간의 모험정신을 가지고, 아니면 운명에 맡기며 평소 성적보다 커트라인이 더 높은 학교에 원서를 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원서를 쓰고 다행히 점수도 평소보다 잘 나와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친구도 여럿 있었다) 나는 역시나 내 성격대로 가장 안정권인, 아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어 보이는 낮은 학교에 지원을 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여섯자녀중 다섯째였기에  학비를 벌면서 학교를 다녀야했고, 그래서 두살 위 언니가 먼저갔던 길대로, 낮에는 사무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밤에 공부할 수 있는 야간대학으로 원서를 썼다.

야간 대학은 선택할수 있는  과가 주간보다 적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가고싶은 도서관학과 (그때는 그렇게 불렀다) 대신 그나마 취직이 잘 될것같은 영문과로 지원을 했다.

영어를 잘 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데 이 '취직이 잘 될거 같아'  선택했다는 영문과 행이 얼마나 쓸데 없는 일이었는지  나중에  가서야 알게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지금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소신없이, 줏대없이, 남의 눈치나 보고 살아온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얘기하려고.


심한 하향지원을 한 내 대입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광진구에있는 s대(알만한 분은 다 아시리라~~ㅎㅎ) 야간 영어영문과  과수석 합격!!

입학금과 한학기 등록금 면제로 그나마 부모님께 효도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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