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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Jan 04. 2021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19

그 무렵,

동네 작은  학원에서 별 비전없이 살아가는 남편을 보는 것이 답답해서 한가지 제안을 한적이 있다.

이제라도 좀 큰 학원에 강사로 지원을 해서 그곳 시스템과 수업 방식을 배워보는건 어떻겠냐고.

남편은 자기같은 경력없는 사람을 누가 받아주겠냐고 하며 단칼에 묵살해버렸다.

자기는 이미 그런 곳에 초보 강사로 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경력이라곤 학습지 교사 몇년에 동네 보습학원 경력 몇년이 전부인데 누가 자길 써주겠냐고.


첨부터 경력자가 어디있냐.

나이 같은거 상관하지 않고 어린 사람에게라도 배울게 있으면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겠다고 하면서

 학벌과 인물과(?...^^) 딱 봐도 [성실]이라고 써있는 인상을 들이밀면 그래도 써주는 곳이 있지않겠냐고 했지만 남편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있다.

지금 학원을 키워 그런 대형학원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믿음이 안갔다. 솔직히.

특출나게 실력있는 선생님도 없는데 무슨 수로.

더구나  4명이 동업인 사업이 그렇게 커지면 나중에 이일 저일 오히려 복잡한 일들이 더 많이 생기지 않을지.

내 남편 개인이라도 경쟁력을 키워 혼자 독립해서도 충분히 할수 있도록 내공을 키워놓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남편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십여년이 지난 후 이때를 떠올리며 그때 내가 와이프 말을 들을 걸, 후회하게 될줄도 모르고 말이야!!!


삼십대 중후반.

뭔가를 새로이 도전해도, 그러다 혹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뛸 수 있는 그런 나이인데..

그때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쫌 잘못들어선 길에 서 있는거 같은(느낌은 있는)

그렇다고

다시 되돌리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쉰이 되어보니 그때 그 시간들이 얼마나 푸르르고 무한 가능성으로 가득찼었는지...이제야 좀 알겠다.

육십이 되어, 칠십이 되어 지금을 돌아봐도 그렇겠지?

누구말대로, 지금이 내 남은 생 중 가장 젊은 날인 것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좀 더 넓은 학원에서 세번째 둥지를 틀었는데,

인생생각로 굴러가지 않았다.

때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우리나라 경제 위축되며 그것이 개인 가정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쳤었는지...(잘은 모르지만 남편의 분석은 그랬다. 나는 뭐 별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선생님들 실력이 그닥 이거나 또는 뭔가 확 끄는 매리트가 없었겠지...라고 ... 말은 못했다.)


더 넓은 곳으로 옮겼음에도 오히려 학생들은 하나 둘  빠지고 있었다.

네 명의 가장들이 에누리 없이 네모난 떡을 똑같은 형태로 4등분  한 모습으로 애처로이 쥐고 있는데, 떡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뭔가 특단의 조치를, 대 변혁이 일어나야되는 시기가 마침내 온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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