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는 끝났는데 삶이 시작됐다

의사는 병을 고쳤고 나는 나를 살렸다

by 미리나


환자로 끝나지 않게 해 준 치료


환자로 끝나지 않게 해 준 치료

나를 이상화하지 않겠다고 크게 결심한 적은 없다. 다만 방어가 내려가면 말은 덜 계산되고, 감정은 덜 숨겨진다. 애써 그러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주치의 선생님은 진심, 진심이었다. 과장 없이, 반복해서.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걸 여러 번 목격하며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삭삭 풀렸다.


잘 보이려던 마음이 해체되었고 감춰 두었던 감정들은 막힘 없이 흘러나왔다.


정제되지 않아도 그것은 허구가 아니었다.


간호사 선생님 몇 분이 원장님과 성향이 닮았다고 했다. 볼수록 닮고 싶어 졌고 어느새 말이 흡수되는 걸 느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받은 치료의 가장 깊은 흔적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흉내 낸 것은 아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관계와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성장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솔직히 인정하고 싶다. 이 마음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나에게만 허락한 작은 성취이기 때문이다. 원장님은 평생 모르시는 편이 좋겠다. 내가 살아낸 시간을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신 분께 일부러 자랑하지 않아도 되는 비밀 하나쯤은 남겨두고 싶다. ㅎ


아픈 줄도 모른 채 흘린 시간과 감정이 내게 남긴 건, 나를 고치기보다 나를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힘이었다.


그렇게 치료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완벽을 향해 애쓸수록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접촉은 허술함이 드리운 자리에서만 가능하다. 그 틈을 나는 한동안 퇴행이라 오해했지만 사실 그것은 관계를 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진심은 나를 유창하게 만들지 않았지만 숨기지 않게 했다. 방어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본다.


그 자리에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 머물러 있다.




치료를 종결했다. 공식적으로 이제 “끝났다”는 말이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병원에 갈 명분이 사라졌다고 해야 맞겠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자율신경은 지나치게 점잖다. 현실을 설명하기엔 말이 얌전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드디어 좋아졌냐고. 차트로 보자면 그렇다. 검사는 정상이고, 염증도 없고, 감염도 없다. 그러니 좋아진 게 맞다. 서류 위에서는.



병원에 갈 이유를 더는 붙잡지 않아도 될 만큼 그 필요는 확실히 옅어졌다. 삶이 조금씩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몸의 조절 담당자가 무단이탈이라도 한 듯, 기본 업무를 내려놓고 “덥자. 오늘은 그냥 덥자.” 하며 잠시 쉬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따금 판결을 내리려 하지만, 피고도 판사도 형량도 모두 나다.


사실, 열이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바라보고, 호흡하고, 혼돈이 지나가도록 둔다. 이 혼란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내 할 일은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살아내는 것이다.




2024년 12월 10일 화요일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출근 전, 동네 황토길을 맨발로 걷고 있었다.



띠링띠링~~ "사피엔스 김정훈 원장님"


최종 치료 이후 지금은 어떤지, 열이 나는 건 괜찮은지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잘 치료해 주신 덕분에 너무 잘 지내고 있고 지금은 맨발 걷기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핸드폰 너머로 웃음이 먼저 번진 목소리에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세상 밝은 음성으로 너무 다행이고 기분이 좋다고 하시더니 “셀프 치료 중이시네요.” 하고 썰렁한 농담을 건네셨다. 그 말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어서 SNS를 언급하시며 내가 남긴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보고 본인 역시 힐링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SNS 안에만 머물기엔 아깝다며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하셨다.


내가 겪은 경험과 글이, 아픔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주셨다. 나도 살아남았고, 나의 경험이 쓸모 있다는
작고 따스한 확신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확신 뒤에는 조심스러운 겸손과 작은 책임감이 함께 따라왔다.


카페를 만드는 건 처음이라 갑작스러운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네” 하고 한참 후 개설은 해두었다.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보라는 의미에 마음은 부담이 조금, 설렘이 더 많았다. 일기장처럼 치료 기록을 올렸고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을 열어주신 데 대해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병원 확장개원으로 얼마나 숨 돌릴 틈 없이 바쁘실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더 큰 용기와 힘이 함께하시길 기도했다.




치료만 끝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야


병원에 있을 때는 괜찮았다. 아프니까, 치료 중이니까, 나 자신에게 ‘아직은 아니야’ 하고 가슴 한편이 잠시 비워진 느낌이었다. 이제는 일상 속을 걸어 다녀야 한다. 병원이라는 보호막은 없고 시간은 멈춰 있지 않다. 그래도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나는 가끔 말끝에 조건을 달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처럼.

그 이후가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치료가 끝나야 안도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더 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모른 척하고 있었다.




원장님이 음성으로 보내주신 글과 노래를 힘들 때 다시 들었다. 곧 스스로 걸어야 할 시간이 올 것을 아셨기에, 힘과 용기를 미리 건네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혼자 서야 할 순간이 오기 전에 놓아주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참 다정한 배려였지만 나는 그 말을 붙잡고 단번에 멋지게 일어서기보다는 몇 번이나 “아직은 아닌데요” 하며 주저앉았다.


지금도 여전히 겁이 나고 자주 망설인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안다. 내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나의 어둠이 교만의 올가미에서 풀어주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감사'라는 빛줄기를 한 올 한 올 세공하듯 걸어가면 되리라."




오늘도 나는 용감하지 않다. 도망칠 힘이 없어 한 발짝을 옮기고 그렇게 움직인 다음에야 깨닫는다. 믿음은 나를 넘어지지 않게 붙드는 게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라는 걸.


그래서 주치의 선생님은 미리 안전바를 두셨나 보다.
내가 잘 걸을 거라는 기대보다, 넘어질 줄을 너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기 위해서.



안부로 남은 기록
아직 혼자 서지 않아도 되는 시간


5월부터 나의 상태를 보냈으니 이제는 충분히 관리해 주셨다는 걸 알기에 인사를 건네듯, 마지막으로 일주일치 기록을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안부로 받아들여주셨다. 그 덕분에 이 시간은 투병이라기보다는, 돌봄을 함께 걷는 동행에 가까웠다는 걸 매번 확인하고 있었다.




나에게 '발열 보고'는 삶의 호흡을 나누는 작은 통로였다. 작은 화면을 사이에 두고 오늘도 무사하다는 마음을 주고받는 일.


보고를 더 이어가야 한다는 말은, 내가 아직은 완전히 혼자 서지 않아도 된다는 뜻처럼 들렸고 그게 안부가 되었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창가에 손을 내밀며 마음은 느슨해지면서도 기대를 머뭇거린다. 온기마저 휘발될까, 나 자신을 향한 경계의 그물 속에서...




'참 나'의 자리에서 맛보는 공명




‘참나’의 자리에는 잘했다, 못했다, 강하다, 약하다, 이겨냈다, 실패했다 같은 판단이 없다. 증명도 필요 없고 버텨낼 이유도 없다. 책이나 영상에서 ‘참나’라는 단어를 본 적은 많았지만 늘 다른 나라 언어 같았다. 2년 전, 의사 선생님을 따라 학회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서 의미를 처음 들었지만 생각으로는 깊게 닿지 않았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멀어지고 더 어려워지는 그런 종류의 말이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참나의 자리에 서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잘 회복되지 않은 날도, 정리하지 못한 감정도 이제는 그 자체로 놓아둘 수 있게 되었다. 참나를 이해했기 때문도 아니고, 거기에 도달했기 때문도 아니다. 지금의 ‘나’가 어떤 상태이든 괜찮다고 여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지 않게 된 정도다.


‘참나’는 나에게 도착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기준도 아니다. 나를 다루는 태도라고 본다. 어쩌면 회복이라는 건 더 이상 나 자신을 심판석에 앉히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판단을 내려놓고, 같은 자리에서 나와 함께 서는 것.


그곳에서야 완벽히 고쳐지지 않아도, 다시 아픈 날이 오더라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압력과 열을 견딜 용기가 생깁니다



같은 압력선 위에 서주셨다. 그건 아마 가장 어려운 태도였을 것이다. 공명은 사람을 고치지는 못하지만, 사람을 살게 한다는 말이 있다면 우리의 치료 과정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압력을 견딜 용기가 생겼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말을 들으며 나는 멈췄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숭엄하게 다시 정의되는 것을 느꼈다.


그 시간은 사실 멈춘 것이 아니었다. 살아내느라 다른 것을 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멈춘 게 아니라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보내주신 카톡 메시지 창에 떠 있던 글자들이 평면을 깨고 불꽃처럼 튀어나와, 단숨에 마음과 몸, 시선까지 삼켜버렸다. 글은 더 이상 읽는 대상이 아니라 유체처럼 흐르는 세계가 되었고 나는 그 안으로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그 글자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라고 재촉하지도, 더 잘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거센 통증이나 발열이 나를 못 자게 할때마다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해 울분을 토한 적도 있었지만, 말이 생명을 얻는 경험은 그 모든 좌절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설득 없이도 그냥 울려버리는 순간이 있다. 말과 몸이 어긋난 채로 살아온 세계는 늘 내가 머물던 곳이었지만, 말과 몸이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 세계는 드물지만 분명 실존적으로 가능한 세계였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안도였는지, 나 자신을 향한 연민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혼자 책망하며 버텨왔는지...생각이 우수수 쏟아졌다. 정말 못났다고 생각했다. 정신줄을 놓칠 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닐 때마다, 나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을 깎아내렸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약해질까. 안도와 자기비판이라는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마음이 요동을 쳤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심판과 피고를 동시에 맡아왔다. 유죄는 재빨리 선고했고 집행유예는 허락하지 않았다.



말은 때로 사람을 설득하지만
어떤 말은 사람을 살게 한다.



‘판단 없는 시간을 지금 이대로 즐기는 연습’이라니. 애써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 들려 원장님의 그 한마디가 당장 세상을 바꿔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커피 한 잔을 들고 바닥에 흩어진 하루를 주워 담느라 정신없는데, 그 순간 문득 그 노래가 떠올랐다. 그까짓 거, 인생 즐기자고!


만약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었다면 어땠을까. ‘즐기다’라는 말과 달리, 긴장도가 높아져 또 하나의 과제가 되어 곧장 마음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말이 감정을 새롭게 배치하는 힘이 이렇게까지 크다는 사실에 늘 감탄한다.


원장님의 말은 종종, 내가 세상을 해석해 오던 태도를 처음부터 다시 짜게 만들었다.



아무 데도 닿지 않던 손끝에서
막연한 고통의 뿌리가 더듬어졌다




차분해진 제가 마음에 듭니다


차분해진 내가 '마음'에 들어 '마음'에 담았다.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지 않겠다는 선택에 한 발 가까워졌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소소하지만 확실한 이 순간이 지금의 나에게서 피어나는 가장 소심한 찬가였다. 나는 지금의 나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약해진 자리에서
말은 벗겨지고 몸만 남았다


지난 한 해는 나를 안쪽으로 가장 깊이 눌러놓은 해였다. 큰 사건은 그보다 앞선 해에 터졌지만, 그다음 해는 도망칠 여력도, 버틸 명분도 없이 몸과 마음이 바닥을 찍은 시간이었다. 매일 열이 나고, 잠을 못 자고, 겉은 멀쩡한데 속은 계속 가라앉던 나날들.


그러나 한 번 눌렸기 때문에 올해는 비로소 나와 화해할 수 있었다. 참고, 버티고, 더 잘해보려 애쓰던 힘이 사라졌다. 증명도, 경쟁도, 설명도 멎었다.


덕분에 오래 닿고 싶었던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을 몇 번이나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둘러싸던 말들이 벗겨지고 몸만 남았다.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 사실에 가까워졌다.



싸움이 멈춘 자리에서



나와의 내적 싸움은 늘 힘이 남아 있을 때 벌어졌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까지 아플까. 통증 나가라, 조금만 더 버티면 달라지지 않을까...


아직 나의 힘을 과신할 여지가 남아 있었기에 그런 질문들로 삶과 끝없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완전히 눌리고 나서야, 힘을 쓰는 방향이 달라졌다. 이건 피하거나 이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밀어붙이던 힘은 견디는 힘으로, 바꾸려던 의지는 받아들이는 힘으로 말이다.


그 전환의 지점에서 화해가 생겨났다. 삶이 나를 밀어내는 존재라는 설정을 내려놓자, 삶과 맺고 있던 적대는 더는 유지할 이유를 잃었다.


화해는 덜 아플 때 시작되지 않았다.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지 않을 때 가능해졌다.



"삶이 나를 밀어낸다는 설정”은 내가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내적 각본이고 화해는 그 각본을 더 이상 반복 상영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다.



오늘도 넘겼다


반추해 보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대개 요란하지 않았다. 뉴스거리가 될 만큼 극적이지도, 누가 알아봐 줄 만큼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그냥 "지나갈 만하게"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바뀌는 일은 드물었지만 이런 날들은 있었다. 고통스러워 더는 버티고 싶지 않다고 느꼈지만 그만두지는 않은 날, 나에게 상처 준 누군가를 미워해야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미워하지 않기로 한 날, 아픈 와중에 별 근거도 없이 “이 아픔이 전부는 아닐지도” 하고 다른 쪽을 바라본 날.


그때는 터닝포인트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오늘도 넘겼다” 정도였다. 이를 악물고 넘겼다기보다는 알람 끄듯, 귀찮음에 가까운 생존이었다.




인생을 바꾼 건 멈추지 않은 태도였다. 다이어트를 선언한 날이 아니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은 날,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날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단을 한 번 더 쳐다본 날,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고 나조차 대수롭지 않게 넘긴 그런 하루들.


“이 상태의 나도 같이 데리고 가자.” 그렇게 마음먹은 날이었다.


다음 장도 별일 없을 것이다. 별일 없는 하루가 지금의 나를 데리고 어디쯤 도착할지 차분히 바라본다.




나는 한동안 바뀌어야만, 회복의 기준을 세워야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도 온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주 조심스럽게 닿았다.
모든 규칙과 조건이 잠시 무효가 되는 바로 이 순간에.




많은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더 나아져야 사랑받고, 괜찮아져야 인정받고, 견뎌야 사람으로 여겨지는 삶에 우리는 익숙해져 왔으니까.


그래도 이제 이렇게 말해본다.


"부족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내가 나라고, 도착하지 않아도, 완전하지 않아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가도 된다고 그것만으로도 정말 잘 해냈다고..."


나 스스로를 더 사랑할 시간을 벌어주려 진짜 아픔은 아직 입을 닫은 듯하다.



지금의 평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모든 순간이 이어진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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