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 배운 자유

해석에서 공명으로

by 미리나


고통의 현장



연말&신년 맞이 이벤트라는 명목의 통지가 도착했다. 마지막 상태 보고를 기준으로 되짚어보면 그 이전의 일주일은 간헐적 불편이 아니라 발열이 상시적으로 점거한 시간에 가까웠다.


체온이라는 단일 지표에 일상을 조건부로 위탁한 채 하루를 연명했다. 육체는 탈진의 문턱을 넘었고 멘탈은 어딘가에 임시 거처를 차린 채 맴돌았다.




물론 열이 없는 날도 있었고, 생각보다 덜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 짧은 틈이 작지만 분명한 휴식이 되어주었다. 그럼에도 회복도 결산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해는 바뀌었다. 강제 개시되는 연간 공고문처럼 말이다.



환희를 호출하기에는 체온이 과잉이었고 몸은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 과열된 세포의 소음과 관절에 축적된 피로의 침전물은 어떤 추상도 허락하지 않았다. 새해라는 단어가 요구하는 의지와 계획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이 시간을 “견뎌냈다”는 요약본으로 봉인하지 않기로 했다. 이 발열은 신체가 집요하게 발신해 온 경고의 누적값이었기 때문이다. 인내를 미담으로 환원하는 관행을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한다. 이 경험을 과장 없이 명명한다. 과열, 소모, 경계, 그리고 신호.


몸은 늘 선행지표였고 나는 그 지표를 해석하지 못했을 뿐이다. 2025년의 첫날은 다짐이 아니라 서약으로 시작된다. 이제는 경고를 경시하지 않겠다는.



저항이라는 이름의 생존 본능



한동안 내가 왜 그렇게 자주 저항하는지 몰랐다. 위협적이거나 통제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어김없이 몸이 수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의 선택지는 늘 비슷했다. 반항하거나, 물러서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버티는 식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저항을 결함처럼 여겼고 없애야 할 감정이자 미숙함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은 위협적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자연스럽게 저항한다. 그건 본능에 가까울 것이다. 문제는 저항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밀어붙일 때 생긴다. 나는 여러 번 그렇게 했다. 불편함을 애써 합리화하고, 괜찮은 척하고, 참고 넘어갔다.


소진과 탈진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었다. 내 신호를 내가 계속 무시한 결과였다.



몸이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했나 싶어
조금은 서글펐다.


발열로 몇 달을 주사를 맞다 보니 목이며 등이 주사 자국으로 가득했다. 거울을 보는데 정말로 몸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울긋불긋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컨디션도 떨어진 데다 우울했다.


힘겨운 일주일을 지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열은 병이 아니라 그동안 “컨디션이 좋아졌다”라고 애써 믿으며 무시해 온 마음이 몸을 빌려 외친 건 아닐까. 병이라는 것은 내가 외면하던 신호를 대신 폭로한, 유일한 내부 고발자 같았다.




덮어두려 했던 것들을 굳이 이렇게까지 들춰내야 했을까 싶으면서도, 이 정도가 아니었으면 나는 또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왜 지금 불편하지? 이 상황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신기하게도 질문을 하자 저항은 더 이상 나를 휘두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저항은 상황 그 자체에서 생기기보다 이해되지 않는 불편함을 위협으로 오해할 때 자동으로 나오는 방어 반사와 흡사해 보였다.



저항을 내려놓자
주도권이 돌아왔다



그때 나는 감정에 휩쓸려 몸과 마음이 도망치거나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빠르게 반응하고 지쳤지만 질문을 거듭하며 감정은 사라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항이 힘을 잃은 이유는 단순했다. 싸울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내가 나를 지키는 가치였다. 밀어낼 이유가 사라지니 저항도 자연스럽게 힘을 잃었고 통제를 내려놓은 질문은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




‘불편하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나’로 시점이 옮겨가면서 반응하던 나에서 '질문하는 나'로, 끌려가던 나에서 '해석하는 나'로 주도권이 이동했다. 이제 ‘괜찮다’는 말은 더 이상 ‘괜찮은 척’이 아니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은 감정의 주인을 나에게 돌려주는 일이었다. 메타인지는 이런 자리에서 시작되는 걸까?




감정과 반응을 구분하며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보았다. 상황이 좋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감정은 경험의 온실에 두고 행동과 해석은 내가 꺼낼 수 있는 진열대 위로 옮겼다.


자율신경실조증, 불명열도 이제는 다 사랑스럽다. 몸이 먼저 경고를 보내주었기에 멈추고 결정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 이게 자유라는 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머리 끄덕이며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어깨를 펴고 선택하는 힘!!


오늘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만큼만 움직여도 완전한 자유를 느낀다. 멈추지 않고는 선택이 없고 선택 없이는 자유가 경험되지 않는다.




그러니 자유를 느끼려거든, 앞으로만 가속 페달을 밟을 게 아니라 가끔은 깜빡이를 켜고 길가에 차를 세워야 한다. 몸과 마음은 비상등을 켜고 있는데 나는 늘 목적지만 보느라 계기판을 보지 않았다.



산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쥐고 있을수록 잃고, 놓을수록 남는다. 손을 꽉 쥔 채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걸 나는 늘 힘들게, 매번 다 쥐어보고 나서야 배운다. 아마 완벽하지 않음을 배우기 위해 이렇게까지 몸으로 겪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멈출 땐 멈춰야 한다. 멈춘다는 건 패배가 아니니까 엔진을 끄고 소음을 가라앉혀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가끔은 확인해봐야 한다.


자유라고 부르기엔 조금 소박한 상태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도 값진 이름이다.





2025년 1월 1일 수요일
의사 선생님께 마지막 숙제 드리는 날




기록은 하루를 견디게 해 준 손잡이이자, 감정이 흘러넘치지 않게 붙잡아 준 제방이었다.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나만은 알고 있게 해 준 증거이기도 했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잃었을 것 같다.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느낌, 내가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
주치의 선생님이 3주 더 보내달라는 말은 다치지 않게 놓아주려는 배려이자 확인 같아 참 따뜻했다.



충분히 돌봄 받았다는 안도와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신뢰를 얻었다. 누군가 끝을 정해주었고 그 판단을 믿을 수 있었던 경험이자, 내가 다시 나를 믿을 수 있을 때까지 함께 붙잡아 준 난간이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고 성장으로 남았다.


나는, 잘 견디지는 못했지만 참 잘 돌봄 받았다.




꽃과 잡초가 한 데
어우러진 것이 우리의 인생,
고치려 하면 모두가 하자이지만
곱게 보면 모두가 감사할 일이다


곱게 바라보면 감사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애써도 고쳐지지 않는 의학의 언어가 닿지 못하는 영역을 반복해서 마주한 뒤에야 나의 시선도 조금씩 방향을 바꾸었다. 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로 인해 삶이 무효화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서로를 지우지 않고 동시에 성립할 수 있었다.


나의 속도에 맞춰 건네진 말들은 이제 이 말을 받아도 더 이상 다치지 않겠다는 확신을 남겼다. 그 확신은 마치 내가 나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졌진 듯 다가왔다. 말이 읽히는 것보다 더 깊은 변화는 이제 내가 나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말들이 아프지 않게 닿았던 이유는.




그동안 수많은 병원을 다니면서 나는 환자로 분류되었지만 주치의 선생님께는 언제나 사례가 아니라 존재로 대우받았다.


누군가는 호전되고, 누군가는 정체하며, 누군가는 악화된다. 그 차이는 의사의 눈에는 분명 데이터일지 몰라도 결과만으로 한 사람의 삶의 가치를 재단하지 않겠다는 그분의 태도는 항상 깊은 존경심이 들었다.



나는 정말 행복한 환자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치료가 끝난 지금도 내 삶을 함께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 시선 덕분에 나는 날마다 무심히 지나치던 작은 순간들을 살아 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호흡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잠깐의 평온,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모두가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치료는 '몸'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분의 말과 태도는 '마음'을 위한 것이었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멈추고,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힘을 알게 해 주신 나의 주치의.




치료가 끝났다고 삶이 갑자기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고 병이 사라졌다고 불안과 불편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행복한 이유는 선택할 수 있는 주체가 조금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내 몸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자율신경 실조증은 묘한 병이다. 삶의 속도를 바꿔놓고 힘들게 만들지만 나를 깊이 사랑하게 해 준다. 무시하던 몸의 신호를 듣게 만들고 괜찮은 척 넘기던 감정 앞에 멈춰 서게 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싫을까?” 그 과정에서 늘 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날에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충분하다는 것, 쉬는 시간 역시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깊이 배우게 한다.




고통은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고통은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을 ‘기적’으로 바꾸는 렌즈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공허함이 아닌 충만함으로 다가올 때 아픔 속에서도 행복을 일궈낸다.


지금 겪는 이 증상들은 내 삶에 찾아온 다정한 축복이다. 육체는 잠시 잃었을지언정, 영혼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으므로.




꽃과 잡초가 구분 없이 한데 섞여 자라는 것이 인생이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낫는 사람만이 꽃이라는 판단은 철회된다. 견디는 나도, 남아 있는 사람도, 모두 같은 풍경 안에 어우러진 꽃과 잡초일 뿐이다.


아직 호흡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감사를 성립시키는 가장 낮은 기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최소 조건에 대한 경외를 자주 잊었다는 것을 안다.


이제 나의 기도는 그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완치라는 보상을 구걸하던 간절함은 끝이 났다. 이전에는 빨리 낫게 해 달라며 빌었으나 이제는 낫지 않음이 곧바로 삶의 부정으로 환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낫고 안 낫고의 결과가 내 존재의 가치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믿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그 본연의 사실이 가장 근원적인 감사임을 뼛속 깊이 새긴다.


열과 압력은 파괴의 힘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을 내면에서부터 거부할 때 그렇습니다




감사를 가르치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감사가 발원하는 그 깊은 샘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일러주는 이는 없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송하라"는 말은 어쩌면 믿음의 강요가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있음의 가장 근원적인 경이로움을 목격하라는 권유와도 같을 것이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폐에 공기가 몸 안을 유영하는 이 최소한의 기적을 알아차리는 이가 얼마나 될까. 휴대폰 자판을 두드려 마음을 전하고 화면 너머의 타인과 연결되는 일들...

이 모든 것이 '호흡'과 '배경자아'라는 기반이 버텨주었기에 가능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 힘이 없었다면 글자는 그저 무의미한 검은 점이었을 것이고 마음은 결코 서로에게 닿지 못했을 것이다.

원장님의 말씀은 글을 쓰고 마음을 나누는 이 평범한 순간들이 나를 지속하게 하는 깊은 뿌리로부터 길어 올린 소중한 결실임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주셨다.



우리는 얼마나 통제 밖의 영역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고 있을까.



의사로서 수없이 타인을 고치려 애썼고 환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끝내 고쳐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나 역시 쉽게 고쳐지지 않는 완고한 환자였기에 원장님의 글은 가볍게 읽히지 않았다. 글 사이사이마다 발을 멈추고, 읽고 또 읽으며 나의 삶을 되비춰 보았다. 호흡, 함께 마음을 나눌 사람, 오늘의 평온... 그 어느 것도 당연하게 주어진 적이 없었다.



건강과 성취라는 조건으로 삶의 가치를 매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의 호흡이 몸 안을 부드럽게 오가는 이 최소한의 경이로움이 모든 기적의 시작이었다.


낫고 나아지는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살아있음이라는 드넓은 배경 위에 나의 오늘을 평온히 놓아둔다. 모든 찰나가 기적임을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다시 하루를 살아낼 용기를 채워본다.



호흡도, 마음을 나눌 사람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만약 문득 없애려 하면 풀이 아닌 게 없고
좋게 취하려 돌아보면 그 모두 꽃이라네




비장시화인

약압진거수비초

고취조래통시화


지금 이만하면 충분하다. 오늘도 꽃은 피어 있으니...



그날 저녁, 원장님께 책 사진과 함께 톡이 왔다. 나에게 철학적 사고를 권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분명했다. 내면에 중심을 잡고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 타인의 말과 세상에 마음을 투사하지 말고 마음을 객관화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것, 약이나 물리적 처치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신적 자유와 자기 이해가 회복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


불안, 죄책감, 후회 같은 감정을 모두 내 탓으로 만들지 말고 남의 말과 감정에 마음이 흔들리는 습관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내 마음은 내가 돌봐야 한다. 외부 통제를 내려놓고 내면의 주체로서 살아가라."


"남들의 의견이 사실인지 의견인지 구분하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3년 전, 주사치료실로 기억한다. 타지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돌아온 내게, 원장님은 다정한 목소리와 글로 삶의 자리를 내어주셨다. 그때 건네주신 말씀들은 나를 일으켜 세운 생명의 언어였다.


지금도 그 말들을 아끼는 보물처럼 갈무리하여 늘 곁에 둔다. 삶의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꺼내어 나를 다독이는 힘으로 마음 깊은 곳을 환히 밝히고 있다.





차트 대신 펼쳐진
다정한 문장의 식탁



이렇게 나눠 주실 때면 거저 얻어먹어 좀 송구한 마음이 들면서도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려운 개념을 일상 언어로 내려놓아 주시니 숨이 더 잘 쉬어진다. 설사 예전에 읽었거나, 비슷한 책이 겹치더라도 그 해석은 늘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다.


내게는 투박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글들조차 부드럽게 매만져 주시는 배려 앞에서 아무 조건 없는 환대를 느낀다. 설명 없이 정성 어린 한 끼를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수직의 벽을 허물고 나란해지는 것. 이토록 드물기에 더없이 귀한 인연 안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기적처럼 느껴지곤 한다.




삶은 얼마나 찬란한 모순인가요



삶의 복잡함 속에서도 끝내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는 원장님의 시선은 치유와 이해, 그리고 그 찬란한 모순이야말로 삶이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임을 일깨워 주셨다. 나 역시 나의 속도로 걸어가야지... 다짐해 본다.


의학적 한계를 마주하며 느낀 고뇌를 노란 개나리에 투영하는 연민이라니. 그 소년 같은 감수성이 경이롭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던 내가, 도리어 주치의 선생님께 연민을 느꼈던 건 그만큼 진심이 투명하게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찬란함은 영원을 보장하지 않지만 모순이 있어야 빛이 완전하다.



저는 잘 있어요


약 20일이 지났다. 통증과 발열을 스스로 다독일 수 있게 되자,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번에는 내가 컨디션이 좋은 날을 골라 마음을 담아 원장님께 안부를 전했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내 편이 되어주고 있음을 느낀, 눈부신 순간이었다.




불안에 끌려가던 목소리의 주인공
나의 참모습이 아니다



외부 상황과 불안에 끌려 행동하는 ‘나’와 본래 중심을 지닌 진짜 ‘나’는 다르다. 불편하고 싫은 걸 알면서도 손이 가고 몸에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삼킨다. 짜증, 불안, 슬픔 그 모든 것이 달콤하게 속삭인다. 순간의 해소, 익숙한 자극...


나는 감정이 나를 통제한다고 믿었는데 눈을 뜨면 강물 위에 떠밀려 있었다. 통제는 착각이었고 익숙함은 편안함으로 가장했고 달콤함은 손길을 부추겼다.


어떤 감정은 중독 같다. 강렬하고, 달콤하고, 익숙해서 나 자신을 놓치곤 했다. 모래 위 발자국처럼, 내가 남겼다고 믿은 선택도 물살에 씻겨 사라졌다.




치료를 받을 때마다 원장님은 꼭 그 순간 필요한 말을 해주셨다. 전에는 말이 위에서 맴돌 뿐 크게 내려오지 않았고 자리가 비좁은 느낌이었다.


굳지 않은 땅에 씨앗을 던지는 것처럼 뿌려졌지만 깊이 닿지 못했다. 아픔을 지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인 뒤에야 말이 들어올 공간이 생겼다.


그때는 해석이었다면 지금은 공명에 가까워 왜 이 말이 이렇게 가벼이 들어오는지, 왜 예전에는 무거웠던 말들이 스르륵 풀리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고요했다. 이제 나는 말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조용히 감사했다.




내 속도를 닮은 말들이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나와 가장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내가 내 마음을 읽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어떤 상태의 나일지라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된 용기.


그 말들이 날카로운 통증 대신 아늑한 위로로 닿았던 이유는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에 쉽게 끌려가던
병아리 같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결코 나의 참모습이 아니죠.




병아리 같은 목소리의 정체에 중독된 것은 내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그 다정한 익숙함이었을까.


나는 이제 '다 나아야만 도달할 수 있는 미래의 보상'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런 보상은 무료로 준다 해도 갖지 않으련다. 더 무너지지 않고 버텨주는 오늘, 그 자체로도 삶은 충분한 천국임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격정적인 감정을 더 채우기보다 생경하고 낯선 평온을 견뎌내는 연습이 회복으로 가는 가장 정직한 지름길임을 몸소 배운다.


의사가 환자를 완벽히 고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실패라 부를 수는 없다. 환자의 삶을 망가뜨리지만 않았다면 그 치료는 환자의 존엄을 100% 지켜낸 것이다. 나의 증상은 여전히 조금 남아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나와 우리의 관계는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주치의 선생님은 ‘무조건 나아야만 해, 완전히 회복되어야만 온전한 인간이야’라는 가혹하고도 폭력적인 기준으로부터 나를 온전히 구원해 주셨다.


현대 의학은 종종 숫자나 완치에 집착하지만 내가 긴 치료를 통해 알게 된 진정한 치유는 내가 부정당하지 않고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온다.


이제 나는 완치라는 정점에 목매기보다 일상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적들을 발견하며 살아가려 한다. 병이 없어야만 행복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망가지지 않은 현재의 가치를 발견한 것은 내 생애 가장 큰 행복이다.


뜨거운 발열의 고통에서 서늘하고 맑은 정신의 자유를 얻었다. 앞으로도 나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고 온전히 지켜내며 그렇게 살고 싶다.


이 평온한 마음이 닿는 곳마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도한다.




➕️ 내 글을 보시고 톡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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