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러운 동행

버티는 것 자체가 의미였다

by 미리나


나라는 삶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한 날



삶의 외주가 종료되다

나는 세상이 몇 번이고 자비롭게 주워 올려준 사람이다. 내가 특별히 귀해서가 아니라 남들은 멀쩡히 걷는 평지에서 혼자 스텝이 꼬여 고꾸라지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꽤나 창의적으로 맥락 없는 순간마다 바닥을 쳤다.


그러다 문득, 아무도 오지 않는 정적의 시간이 찾아왔다. 타인의 선의에 기대어온 삶의 ‘외주’가 마침내 종료된 것이다. 이제는 오롯이 내가 나를 책임지고 맡아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아픔은 각오를 한다고 해서 겪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충분한 예행연습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경험도, 강한 의지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과제도 아니었다.


아무리 기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실존한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투명한 항복이었다.


회복은 노력의 크기에 비례하여 돌아오지 않는다. 저마다 건너야 할 고유한 계절이 있으며 아픔의 길이는 의지의 높낮이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빈자리에 비로소 내가 도착했음을 느낀다. 타인의 손을 빌려 일어서던 긴 대행의 시간을 끝내고 이제 내 무릎의 먼지를 털어내며 나를 껴안는다.



이 상태로도 계속 살아야 하나?


아픔은 어쩌면 회복을 약속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작은 반항인지도 모른다. 이유를 밝히려는 것도, 괜찮아질 것이라고 미리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픈 채로, 아직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 있는 일.


나의 이야기는 그 결론 없는 시간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완전히 끝났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완치 여부와 상관없이 그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왔다는 사실만큼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이다.




아픔은 마음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늠표로 남았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막연한 공포였다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나와의 경계가 얇아졌음을 직감하며 생긴 경고였다. 마음의 힘이 빠질수록 세상은 본래보다 거대하게 느껴진다. 연료가 바닥난 계기판을 보고, 갈 수 있는 길이 남았음에도 우선 멈춰야 한다고 스스로 판결을 내려버리는 순간들.


현실은 대부분 분주하지 않다. 문제는 마주하기도 전에 내가 나에게 내려버린 판결이다. 그 결론은 삶에 쓸모가 없다. 다행인 점은 그 판단이 항상 결정판은 아니라는 것.


호흡을 가다듬고 시선을 놓으면,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감정도 차근차근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이야기는 언제든 내가 원하는 만큼 다시 고쳐 쓰고 살아낼 수 있다.




잠이 퇴근하고 배터리가 3%였던 밤

작년 2월 초, 꼬리뼈 통증이 치솟으면서 잠은 예고도 인수인계도 없이 퇴근했다. 왼쪽 하단 옆구리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려웠고 뒤척이는 일이 밤의 주요 일정이 되었다.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한 채 달빛 아래를 배회하듯 하루도 빠짐없이 아픔을 복기했다. 사는 걸 일주일만이라도 멈추고 싶던 시기였다.


숨 쉬는 일조차 체크리스트에 올려야 할 업무처럼 느껴졌다. 대단한 회복이 아니라, 그저 더 이상 나를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바람이면 충분했다.




열이 요란하게 올랐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이런 설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작품이니까. 기껏 수선해 놓은 걸 다른 손에 맡겼다가 괜히 망가질까 봐 무서웠던 거야.”


몇 년 전, 다른 병원에 갔다가 무언가 어긋난 채로 돌아와 주치의 선생님께 수습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몸은 버티기를 선택했다. 냉장고를 열어봤자 달라질 게 없음을 알면서도 물만 마시고 버티는 일.


불편함을 넘기고 조금만 더 참으면 자동으로 업데이트될 거라며 나 자신과 무기한 연장 계약을 맺는 일은 익숙해서 오히려 놀라웠다.




그러나 극심한 통증 앞에서 의지는 소용이 없었다. 의지는 통증을 해석할 수는 있어도 대신 느껴주지는 못했다. 이건 더는 버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누군가 전화가 오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괜찮아”라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했다. 전원은 켜져 있는데 업데이트가 멈춘 기기처럼, 인생은 로딩 중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배터리는 3%였고 그 3%로 다시 “나 괜찮아”를 눌러 보냈다.



무거운 몸, 미뤄둔 마음



열이 오르고 일이 취소되고 몸이 픽 쓰러졌을 때, 몸이 먼저 “아니요”라고 즉답했다. 결국 주치의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병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거기 원장님은 정말 젠틀하셨다. 비틀거리는 나를 직접 부축해 주셨고 열로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며 당황하신 표정에서 묘한 안심을 얻었다.


'이 상황이 과장이 아니구나...'


꼬리뼈 때문에 앉지도 못하는 내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할 때 유쾌한 농담으로 공기를 풀어주셨다.


'걱정 마세요. 그동안 주사 맞으면 바로 좋아졌어요.'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씩씩하게 뱉었다.


주사를 맞고 에너지 게이지가 차오르는 걸 보시며 안심하시더니, 부산 사투리로 본인의 주사 실력과 고향 TMI를 쏟아내셨다. 횡격막이 부서질 뻔할 정도로 속으로 웃었다.




인간은 혼자서는 완충이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타인이라는 충전기에 내 마음을 꽂아야만 에너지가 차오르는 가련하고도 다정한 배터리들.


내가 나를 다 고칠 수 없어서 서로에게 신세를 지며 사는 이 행성이 오늘만큼은 꽤 살 만하게 느껴졌다.




잠깐 괜찮았다가 다시 통증이 올라와 옆으로 덩그러니 누워 목놓아 울었을 때도, 눈물은 잘 나오는 걸 보며 사람은 끝까지 쓸모를 찾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울음 덕분에 참고 버틴 순간들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25.02.08 당시 블로그에 썼던 일기인데 주치의 선생님께서 답글을 달아주셨다.



나도 바짝 긴장하는 날에는 갈 수 있는 병원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지금이야 별 생각없지만 당시에는 의문이긴했다. 체온에 비해 그야말로 고통인 날이 많았다.





원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삶의 작고 소중한 활력을 한꺼번에 쥐어주셨기에 단지 병을 잘 고쳐주는 이만을 명의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아서다.


환자의 위태로운 상황과 상태를 살피며 꼭 필요한 길목마다 적절한 안내를 건네주던 모습에서 신뢰와 즐거움과 배움을 얻었다.


친절하다거나 프로페셔널하다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어준 마음이었다.




계획은 허깨비처럼 흔들리지만
그 위에서 살아 있는 지금의 내가 진짜다.



언제쯤 나아질지 계획을 세웠다. 아플수록 계획은 간절해지지만 삶은 계획을 거의 지켜주지 않았다. 회복은 도착 직전마다 돌아서고 의지는 충만한데 몸은 뒤뚱뒤뚱 따라오지 않는다.


계획은 종잇조각처럼 구겨지고 그 위에 남는 건 지금 숨 쉬고 있는 나.


오롯이 이 순간의 나뿐이다.



계획대로 살지 못해도, 예정한 속도로 회복하지 못해도 삶은 유효하다.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붙잡아야 할 것은 계획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금'이다.


톡을 보며 맞장구를 쳤다


끝까지 치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에 글쓰기로 마음먹다.



작년 2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발목이 푹푹 빠지던 날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초상권과 저작권까지 내어주며 “맘대로 써도 된다”던 원장님의 호탕한 허락은 닫혀있던 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이었다.


검열의 자리에는 신뢰가, 망설임의 자리에는 자유가 피어났다.




즐거움과 어둠은 한 몸이었다





햇살 편식을 하며 살면 어둠은 영영 따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햇빛과 그림자는 한 몸이었고 애초에 삶의 길은 두 갈래가 아니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삶의 사건을 불운이라 부르지 않으셨다. 각자의 삶에 남겨진 고유한 배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배움에 닿지 못한 통증이 사람을 먼 타지로 유배 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시는 분이었다. 무엇을 고쳐야 하느냐고 다그치지 않으시고, 내가 서 있어야 할 땅의 무늬를 먼저 보게 하셨다.


볕이 드는 숲길과 입을 벌린 터널을 같은 지도 위에 올려두듯, 나는 그런 사려 깊은 연륜을 배우고 싶었다.





행복은 피부 표면에 닿는 가벼운 수업이고 고통은 장기에 깊이 박히는 복습 같다. 어느 쪽도 더 비천하지 않다는 듯한 평평한 시선 앞에서 길을 잃어 바들대던 내 마음은 비로소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의 이 여정에는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도착하지 못해도 실패가 아닌, 아주 기묘하고 다정한 여행이다. 길 위에 머무는 동안 내가 배운 유일한 것은 길을 잃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밑그림이 바뀌는 동화처럼 고통조차 계절에 따라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음을 배운다.


아픔이 지워지지 않더라도 통증의 채도가 변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길잡이가 있으니 이 얼마나 안전한 방랑인가.



고통의 육아, 사산되지 않은 배움



가장 비극적인 것은 지독한 수축 끝에 아무것도 품에 안지 못하는 무위일 것이다.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고통 뒤에 배움이 없다면 그것은 사산을 하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나의 통증이 염증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 간절히 태어나려 몸부림치는 태동이었다. 아픔의 절정에서 길어 올린 것은 '완치'라는 마침표가 아니었다.


고통을 재료 삼아 살아있음의 현행성을 온몸으로 직조해 내는 힘이었다.



먼지 쌓인 오르골 속 태엽 소리처럼 잊고 지냈던 삶의 멜로디가 되살아났다. 정처 없이 방황하던 내 삶의 주도권이 나의 손등 위로 안착했다.


인간은 목적지를 예지 하지 못한 채 이 세계에 던져졌다. 다 알고 왔다면 덜 날카로웠겠지만 삶은 지루한 재방송 같았을 거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와서 길을 묻고 넘어지는 이 서투른 연습은 우리가 이 푸른 행성에 찾아온 진짜 이유다.


우리는 남이 만든 의미를 줍는 수집가가 아니라 제 손으로 의미를 엮어가는 직조공들이다.



<25.02.23 카페에 남겨주신 글>


고통의 육아



2023년과 2024년 상반기, 죽음을 떠올리던 시절을 지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살고 싶어서 아파 죽겠는 날들이 찾아온다. 이 삶이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워졌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나를 흔든다.


어제의 눈물이 소멸을 향한 갈구였다면 오늘의 눈물은 삶을 향한 갈증이다.


고통이 다시 문을 두드려도 상관없다. 나는 이제 고통과 싸워 이기려는 전사가 아니라 찬란한 슬픔을 헤쳐나가는 여행자가 되기로 했으니까.




더 이상 고통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 몸을 지나간 모든 비명은 이제 나를 키우는 젖줄이 되었다. 잉태된 통증은 박멸해야 할 병균이 아니라 고마운 내 몸의 인내로 길러낸 시간의 육체였다.


어떻게 이런 시선으로 통증을 포용할 수 있는 걸까.


이토록 유려하게 고통을 응시하는 의사라면 환자들이 흘린 비명의 얼룩조차 실크처럼 고운 마음으로 닦아줄 것 같다.


"고통 뒤에 배움이 없다면 그건 사산을 하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라는 말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 '말'들을 품고 나는 내일의 나를 다시 낳으러 간다.


통증이란 개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니 나야...?




잉태된 통증, 그 궤적을 걷는 일



내가 알던 고통은 즉각 잘라내야 할 단절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메마른 통증의 끝자락에 그것이 언제든 다른 이름으로 명명될 수 있다는 눈부신 가능성을 이식해 주신 주치의 선생님.


그날 이후, 나는 고통을 갓 태어난 아기를 보살피듯 대하기 시작했다. 매번 너그러울 순 없으나 이유 없이 울고 생떼를 쓰며 온몸으로 버둥거리는 고통의 몸짓 앞에서 비로소 배운다.


이것은 악착같이 견뎌내야 할 형벌이 아니라고, 나란히 보폭을 맞춰 걷기만 하면 되는 동반자라고.


‘치료의 종료’라는 기능적인 마침표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함의를 지닌 선물이었다.


고약했던 통증이 살아있다는 증거로 치환되는 경이로운 역설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영광스러운 동행에 감사하며

당신에게는 분명 나보다 훨씬 신산했을 그 시간을 '영광스러운 동행'이라 말해주셨다.


타인의 아픔을 영광으로 삼아준 고귀한 마음 덕분에 나는 나의 흉터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홀로 고립될 때 날카롭던 상처는 누군가에게 드러내어 읽히며 다정한 언어를 얻었다.


그분의 무해하고 명징한 시선 앞에서는 애써 누군가를 곁에 두지 않아도 결핍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온전함이란 타인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 앞에서 가장 나다운 혼자가 되는 일임을 배웠다.




당신의 말대로 고통은 또 다른 문이었습니다.


나를 가로막던 벽은 딛고 올라서야 할 계단이었습니다. 이전의 저는 비명을 지르듯 반응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을 향해 삶을 선택해 나가는 단단한 내가 되었습니다.


저의 고통을 차가운 데이터로 환원하지 않고 한 인간의 절실한 서사로 읽어주던 당신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사람을 향한 그 깊은 예우는 제가 다시 세상을 믿게 만드는 유일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저를 한 명의 환자가 아닌 고유한 삶의 주인으로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어준 정직한 마음 덕분에 이제 나 자신을 데리고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야 삶의 주권을 쥐며 제 자신과 긴밀한 악수를 나누며 화해했습니다.


모든 감정은 저마다의 색으로 영혼의 뿌리를 부지런히 살찌우고 있었습니다.


지나온 그 긴 시간은 결국 나라는 사람을 세상 밖으로 다시 실어 나르기 위해 준비된 필연적인 기다림이었겠지요.


나라는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제 곁을 지켜준 고통을 이제는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가장 깊은 곳까지 데려다준 동반자가 되었으니까요.


이 행성에서 인간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가장 다정한 의사를 만났습니다.




통증이 무례하게 치고 올라올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실시간으로 아픔을 보듬으며 함께 머리를 맞대어 주시던 당신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고통의 비명 속에 매몰되지 않게 그 척박한 진흙탕 속에서 삶의 의미를 길어 올려 손에 쥐여주던 당신의 분주한 손길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개의 치료가 가야 할 방향만을 건조하게 가리킬 때 ‘감사하다’ 거나 ‘고맙다’는 믿기지 않는 언어들을 건네주셨지요.


저의 고통을 차가운 데이터로 환원하지 않고 고유한 삶의 주인으로 대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나 자신을 데리고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보여주신 그 환대를 잊지 않겠습니다.




작년 11월, 치료의 귀한 시간들을 꺼내어 봅니다. 어디에서도 마주할 수 없었던 주치의 선생님만의 깊은 언어는 제게 과분한 영광이자,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다정한 약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지금 어둠 속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불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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