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당신에게
흉터라는 화폭 위에 그려낸 세밀화
상처 입기 전, 매끄러운 피부.
아무 일도 없었던 태초의 무구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지우개를 찾았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면 내 아픔도 ‘무효’가 될 것 같았다.
종이가 해질 때까지 문질렀지만 지울수록 더 얇아졌다. 멈추지 못한 지우개질 위로 종이는 끝내 피를 흘렸다. 이건 지워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의 나를 버리는 일은 과거와의 비겁한 단절이었기 때문이다.
지우개를 창밖으로 던졌다. 종이와 실수들이 널브러진 책상을 내려다보자,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지우려 애썼던 자국들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남아 빛났다.
과거와의 단절이 ‘성형’이라면, 회복은 나만의 ‘커스텀’이다.
내 몸에 박힌 옹이의 무늬를 들여다보니,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하나뿐인 ‘원본’이었다.
공기가 민트처럼 상쾌하다. 비가 오면 맞고, 바람이 불면 몸을 맡긴다. 상처를 뿌리 삼으니 발걸음이 힘차다.
"완벽해질 필요가 없다는 게 이토록 짜릿할 줄이야."
관성처럼 입고 있던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졌다.
지우개 가루가 서린 손바닥을 털자, 백지가 눈에 들어왔다. 꽉 조여 맸던 신발 끈은 나 자신과 맺은 첫 번째 약속이다.
"이제는 나만의 지도를 그려 넣을 시간이다."
어제의 나를 안고 달리는 건 전혀 다른 장르의 모험이다.
내 몸의 옹이들이 나를 어떤 풍경으로 데려갈지 아직은 모른다.
그래서 더 가보고 싶다.
기적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보는 눈을 거두지 마라.
더 강해지라고, 더 믿으라고 다그치지 않는 손길이 있다. 일곱 번이나 바다를 살폈으나 아무런 징조도 없었던 사환의 하루는 얼마나 지루하고 보잘것없어 보였을까.
이것은 엘리야의 화려한 승전보보다, 바다를 응시하던 사환의 성실함에 닿아 있는 기도일 것이다.
“나는 아직 보는 사람이다”라는 자각으로 버티는 하루.
때로는 스스로 온전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자책하는 날이 와도 이 선한 진심을 마주하면 어두운 생각은 이내 사라진다.
평안할 때의 나는 늘 분주하여 나의 힘과 경험만 믿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본인의 기도라며 겸허히 건네주신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내게 닿자마자 길 잃은 영혼을 위한 안식처가 되었다.
엘리야처럼 대지를 가르며 달리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비록 지금은 이름 없는 사환의 자리일지라도 비바람을 견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병원 확장이라는 거대한 소란 속에서도, 숨 가쁨조차 돌볼 겨를 없으셨을 텐데, 환자의 작은 상처까지 살피는 모습에는 지극한 정성이 배어 있었다. 덕분에 메마른 나의 화폭 위에도 회복의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만찬
당신의 고독과 눈물로 갈고닦아 바짝 졸여 차려낸 사유의 만찬 앞에, 나는 염치없는 식객으로 앉아 있다. 평생 길어 올린 그 귀한 깨달음을 이렇게 무임승차하듯 받아도 되는지, 목구멍에는 뜨거운 가시가 걸린 듯 울컥해진다.
언젠가 주치의 선생님은 삶에 드라마틱한 고통은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고통을 대하는 감각이 이미 단련된 결과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갑판 위에서도 흔들림 없는 항해사 같았다. 상처를 예술의 문양으로 새기는 법을 터득한 사람처럼, 고통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는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라는 흰 가운 뒤에 숨겨둔 고독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기적이 올 때까지 일곱 번이나 지평선을 살피던 사환처럼, 당신 또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수많은 이들의 안녕을, 그리고 나의 열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내 아픔만 국가대표급이라며 고집부렸던 시간들이 부끄러워 목이 멘다. 타인의 짓물러진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이는, 자신의 고통을 끌어안고 ‘정면 돌파’를 해본 자만이 건넬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무엇일 테니까.
본인의 기도라며 겸허히 보내준 말씀은 내게 닿자마자 안식처가 되었다.
비로소 진심의 주파수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굳이 숨 가쁘게 달리지 않아도 좋다. 앞지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오늘은 꼭 달리지 않아도 좋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바라보려는 의지 사이에서, 나는 기꺼이 후자를 택한다.
지평선 끝,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손바닥만 한 구름 한 점을 기적으로 읽어내는 세밀한 눈을 갖는 것.
어쩌면 나를 이곳에 멈춰 세운 진짜 의도는 이토록 작고 무해한 기적들을 하나씩 공들여 목격하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척추를 거점으로 전용 고속도로라도 뚫린 듯 등판에 불이 붙었다. 목통증이 극심할 땐 차라리 내 목을 잠시 떼어 어딘가에 맡겨두고 싶을 정도였다.
병원에 갈 때마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처참한 꼴이 됐고, 주사를 맞고 나면 내장들이 단체로 항의라도 하는 듯 꺽꺽대며 트림이 터져 나왔다.
내 몸은 제멋대로 소음을 뱉어내는 고장 난 라디오였다.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참 쉽게도 고상한 말들을 얹었다. "애 같다", "어차피 해낼 거니 나 죽었소 하고 배워라." 고통 뒤에 배움이 온다는 걸 누가 모를까. 하지만 그 말은 당시 내게 전교 1등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는 말만큼이나 공허했다.
가능하다면 고통 따위, 인생이라는 장바구니에서 영영 품절되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특히 "너만 그런 거 아냐,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말은 쥐약 같았다. 내 통증은 오직 나만이 무대에 서는 단독 공연인데 사람들은 자꾸 나를 흔해 빠진 엑스트라로 만들어버렸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내 통증과 발열이 '정상 범위'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성숙해지려고 아픈 게 아니었는데, 타인의 값싼 위로를 떠올리니 급 열이 받는다. 쳇
자율신경실조증
이 진단명을 받고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말 그대로 '자율'이라 내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거다. 심장 보고 나대지 말라거나 혈압 보고 내려가라고 호통을 쳐봤자 소용없었다. 애쓰면 애쓸수록 몸은 더 어긋났다. 이 병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인간의 무력을 목격해야 했다.
다행히 주치의 선생님은 달랐다. 통증을 미숙함으로 치부하며 훈수를 두는 대신, 내가 버틸 수 있는 자리를 5분 대기조처럼 내어주었다. 직접적인 명령은 못 해도 환경과 태도를 바꾸면 내 몸을 '설득'할 수는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흡, 긴장, 수면, 그리고 생각의 전환 같은 기본 세팅을 바꾸자 몸이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다. 주사를 맞을 때 의식적으로 긴장을 푸는 사소한 경험이 내게는 구원이었다.
주도권을 잃고 낮게 엎드려 지낸 14개월. 맺혔던 응어리가 녹아내리자 메마른 마음의 틈새마다 새순 같은 진짜 '자율'이 돋아났다. 이제 나는 '아픔'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준비를 한다.
지하철에서 아기띠를 메고 꾀죄죄한 몰골로 아기와 눈을 맞추는 엄마들을 보았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저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들은 어떤 드레스를 입은 여자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밥풀이 묻은 수면바지에 세수조차 버거웠던 나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참 놀랍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그 후줄근한 모습이 지금에 와서는 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만약 누군가 내게 “누가 너를 지켜줬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 몸과 마음을 떠올릴 것이다.
나 자신이 가장 성실하게 나를 지켜왔고 이제 그 나에게 가장 고운 등불을 밝혀주고 싶다.
회복과 소화, 존중하며 버티는 시간
인내는 고통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이다. 요즘 사람들은 비속어를 섞어 무조건 버티는 것을 '존버'라 부르지만 내게 그것은 나 자신을 '존중하며 버티는 일'이 되었다. 힘겹게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아픈 나를 귀하게 여기며 그 시간을 존중하며 기다리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말 그대로 평온하다. 다만 자율신경 치료가 정점에 다다르니 기분 좋은 부작용이 찾아왔다. 속이 편안해지니 음식들이 망설임 없이 팍팍 들어간다. 한 입마다 살이 찔까 걱정해야 하는 사치스러운 고민이라니. 이쯤 되면 이 평온함이 달콤한 부작용이 아닐까 싶어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온다.
식탁 유리 밑에 소중히 끼워둔 글귀를 반찬 삼아, 오늘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어제 하루를 무사히 견뎌냈듯, 오늘도 그저 나를 조금만 더 세심히 살피면 된다. 이제 내 인생에 '소화제'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웬만한 삶의 체증쯤은 넉넉히 소화해 낼 수 있는 힘이 내 마음속에 돋아났으니까.
다정한 여행 동지에게
원장님께 화답하듯 메시지를 띄웠다.
원장님이 만들어주신 든든한 베이스캠프 덕분에 저는 다시 길을 떠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제 '환자'라는 무거운 외투는 이곳에 벗어두고 갈게요.
언젠가 이 긴 여행길 모퉁이 어디선가, 우리 웃으며 스쳐 지나가기로 해요. 고마웠습니다. 나의 가장 다정한 여행 동지여.
해산은 버거운 온기를 스스로에게 갖다 대는 용기가 아닐까. 상처 난 가슴을 꼭 끌어안고 추운 겨울을 홀로 버텨내던 내게, 주치의 선생님은 계절을 앞질러 온 봄 같은 희망을 건네주셨다. 그것은 나와 같은 통증의 계절을 지나고 있는 또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따뜻한 용기'라는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
내가 겪은 고통은 이제 더 이상 흉터로만 남지 않는다. 모진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밖으로 터져 나온 이 온기는, 이제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용기가 되었다. 나는 오늘 고통을 눈부신 희망으로 해산한다.
유튜브에서 보내주신 노래가 이렇게 다르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라는 흔한 위로의 말이 자율신경과 게임을 벌이던 내 고통을 함께 짊어져 준 사람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불량품이 아닌 주인공으로, 다시 거울 앞에 서다
몇 시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어느 정오, 나른하게 늘어져 있다가 깬 날이었다. 문득 마주한 거울 속의 내가 유난히 환해 보였다. 은은한 광택이 감도는 피부와, 마치 근사한 비밀이라도 숨겨둔 듯 반짝이는 눈동자.
그동안 내게 거울은 비참함을 실시간으로 인화해 내는 고성능 스캐너였다.
거울에 말라붙은 치약 얼룩을 내 삶의 지울 수 없는 낙인인 양 노려보며, 저 작은 얼룩조차 지우지 못하는 내가 무슨 삶을 경영하겠느냐고 스스로를 고문하곤 했다. 거울 속의 나는 늘 수선할 곳투성인 고물이었다.
그런데 오늘, 여전히 닦아내지 못한 오점들이 거울 속에 가득한데 담담한 배경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배경을 뒤로하고 내가 그 화면의 당당한 주인공처럼 서 있었다.
거울이 더럽든 말든, 내가 꽤 괜찮은 생명체라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동안 나 자신을 끊임없이 '불량품'이라 규정하며 살았다. 내가 나를 그렇게 대접하니, 삶도 나를 그에 걸맞게 함부로 대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고쳐 써야 할 물건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생명이었다.
지구별 입국세를 완납하다
피하지 않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 그 뻔뻔한 근육을 키우고 나니, 마음이 억만장자라도 된 것처럼 든든해졌다.
나는 평생 고쳐 써야 할 결함투성이 물건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뚜벅뚜벅 살아내야 할, 그 자체로 고귀한 생명체였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환자’라는 눅눅한 꼬리표를 떼어내고 ‘지구별 여행자’라는 찬란한 명함을 새로이 받아 든다.
어쩌면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 머물기 위해, 영문도 모른 채 ‘통증’이라는 아주 매운맛의 입국세를 치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이던 그 처참했던 시간들이 실은 이 별에서 당당히 걷기 위한 통행료였던 셈이다.
그렇게 나는, 이 별에 머물 자격을 증명받았다.
삶이 꺾여버렸거나, 그런 순간이 또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세우며 지나온 시간을 되짚지 않기를...
그때의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지금의 당신은 그 시간을 넘고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
호흡하고 있다면 회복은 아직 진행 중이다.
바다는 깊기에 흔들린다.
모두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가기를.
Earth traveler, my friend.
Your pain is not meaningless. It is a sign of your depth.
My small prayer. May it flow as you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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