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로
희망은 삶을 사랑하는 감정이라기보다 아직 삶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아닐까. 사랑이라 부르기엔 조심스럽고 포기라 하기엔 남아 있는 마음.
밝은 의지일 필요도 없고 낙관이나 ‘그래도 살아보자’는 확신일 필요도 없다. 포기하려 했지만 끝내 손을 놓지 못한 마음, 아직 남아 있는 작은 미련,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어떤 연결 같은 것.
지치고 아픈 날에도 희망은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눈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라졌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희망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처럼 마음 한 자락에 내려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치료의 시간
반복되는 몸
나에게 있어 타인의 손을 빌려 생활한다는 건, 내 하루가 온전히 내 소유가 아님을 뜻한다. 병원 복도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던 순간, 움직임과 주변 풍경 사이에는 언제나 약간의 시차가 있었다.
세상에 소속되어 있으나 완전히 동기화되지는 않았고, 숨은 실처럼 늘어나 옆으로 흩어졌다. 화장실 천장 램프에서는 희미한 윙~하는 전기음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굳이 살아 있다는 티를 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미안함이 묽은 차 향처럼 퍼지며 간질였다.
올라오는 감정을 바라보면 나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을 배달하는 우체국 직원 같았다. 발신인도 수신인도 나라는 걸 알면서 늦은 편지들을 하나씩 건네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작은 손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손길을 받으며 분명해졌다.
“내가 여기까지 걸어온 건 혼자 힘이 아니었어.”
지난 치료는 생각보다 길었다. 등과 목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발열은 꺼진 줄 알았던 불씨처럼 잊을 만하면 나를 다시 그 시간 안으로 데려갔다.
“또 그분이 오셨군.”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이 공기 속에 가만히 부유했다.
“똑...똑...”
초침이 시간을 긋기 시작했다. 정적이 시계바늘을 타고 공기 위를 흔들었다. 시간과 무게가 서로를 끌어안고 깊게 숨을 골랐다.
“나는 왜 자꾸 이 숫자와 씨름하고 있는 걸까.”
체온계 위 숫자를 바라보며 참았던 한숨이 흘러나왔다.
“괜찮아...괜찮다고, 괜찮다고.”
브르릉~브르르르~드르릉~
"오늘은 좀 나아? 밥은? 안 먹었으면 기프티콘 보내줄게 먹고 싶은 거 말해줘."
날아온 몇 글자의 안부 메시지가 무거운 발걸음을 조금 밀어주었다.
복도의 얼굴들
지난 1년여의 시간, 병원을 오가며 가족보다 더 자주 마주한 얼굴들이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들, 늘 같은 복도, 형광등 빛. 매일이 똑같다고 느꼈지만 누군가의 말 한마디는 뜻밖에 귀에 눌러앉았다.
“오늘은 얼굴이 좋아 보여요.”
작은 순간들이 쌓이며 마치 멈춰 있다고 믿었던 시계가 똑딱거리는 것처럼 발걸음도 규칙적으로 울렸다.
“잃은 건 없고, 얻은 게 더 많네.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는 중일 것이다.”
기억은 몸속에 임시저장되어 있다가, 마지막 치료 후 한꺼번에 발화되듯 되감겨 올라왔다.
“이제 내 마음이 말하도록 놔둬도 된다.”
자율신경실조증과 불명열의 베일을 벗은 뒤, 평온하게 지내고 있었다. 밀린 일도 처리하고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연말이라는 명목아래 약속들이 이어졌다. 마지막 치료 때 열이 올랐던 기억이 떠올라 잠깐 속이 뒤집힌 것 외에는,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그때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는 내가 중심이지롱.”
절제된 결의와 다짐이 있었고 약간의 두려움과 익살 섞인 회의가 뒤섞여 있었다. 무대 위에서 우아하게 춤추는 무용사처럼 보였지만 뒤에서는 손을 꽉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을 달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좋아졌지만 여전히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취약함을 알고 그로 인해 타인의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최소한의 성실함이었다. 그 깨달음 덕분에 이전보다 조금 덜 무력한 상태로 오늘을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귀로만 듣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끝났음에도 주치의 선생님은 100% 안심하지는 못하셨는지 안부 전화가 왔고, 간간이 카톡으로도 근황을 주고받았다.
이 글을 읽고 전기에 감전되는 기분이었다.
그날 흘러나온 말은 고통이 먼저였고 말은 그 뒤를 따라 나왔어요. 생각보다 앞서 몸이 반응했고 견디는 쪽이 아니라
살아 있으려는 쪽에서 나온 소리였어요. 사실은 살고 싶어서 그래서 너무 아팠던 절규였어요. 당신은 그 말을 끝까지 받아주었어요. 앞서 판단하지도 다른 뜻으로 덮어 해석하지도 않았어요. 말의 모양보다 그 아래 깔린 '마음'을 대신 보아주었어요.
말로 다 드러나지 못한 감정까지, 구석에 묻어두었던 마음까지도 먼저 알아차려 안아주셨습니다. 그날 흘러나온 절박한 신호를 존중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삶은 이겨내야 할 전쟁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유한한 시간이라는 것을요. 그 배움 덕분에 나는 요즘, 그날의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하루를 건너고 있습니다. 당신은 귀로만 듣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함께 보았습니다. 나는 이제 나를 알고, 나를 지나치지 않고 살아갑니다.
포기처럼 들린 말의 반대편
그날은 치료를 받은 날이라기보다 느껴도 좋고, 힘들다고 말해도 좋고,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권리를 되찾은 날 같았다. 포기하지 못한 마음과 그 마음을 다루려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내 심장을 훔쳐본 듯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말 아래 숨어 있던 망설임을 그분은 ‘살려주세요’라는 말로 받아주셨다. 정보로 처리하지도, 분석해 분해하지도 않았다.
그 말은 새로운 시작점으로 건네졌고, 나는 입으로는 포기한 사람처럼 말했지만 속으로는 끝내 놓지 못하고 있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았다. 시간을 함께 쓰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 함께 버텨본 이에게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였다. ‘공감’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속을 충분히 적실 수 없었고 아픔 앞에서 의연해지는 법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다. 다만, 아픔을 서둘러 정리하지 않고 끝까지 곁에 두었을 때 말이 되지 못했던 마음이 ‘말’이 될 수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군가가 죽고 싶다고 했을 때 그 말이 향하는 끝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한 발 물러서곤 했다. 미안함을 이유로, 이해라는 이름으로... 그게 다였다.
이제 모든 기본적인 몫들이 제자리를 찾아 내게 돌아왔다.
온몸을 감싸는 해방의 기운이 길게 퍼진다. 삶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수많은 감정과 의미를 눌러 담고 절실함으로 꽉 채워 봉인했던 애처로운 ‘나’가 떠오른다. 보이진 않지만 나를 비우지 않고 지켜주며 자리를 잡는다. 스며들고, 느껴지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마음의 자리.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의 힘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
그 애처로움이, 연약하지만 확실한 빛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도 충분하다.
훨훨 날아가보겠습니다
2024년 12월의 나는 그해 4월로 자주 돌아가곤 했다. 자율신경 치료를 시작하던 바로 그날이었다.
병원 복도, 손에 쥔 과자 부스러기, 이름이 불리기 전 대기실에서 통증 때문에 꼼짝하지 못하던 내 몸, 마음,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던 순간까지.
그때의 나는 앞으로의 시간을 알지 못했고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날을 종종 그리워한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했던 가장 솔직하고 무방비했던 태도.
회복은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번번이 다시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 그것은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오늘이라는 날짜로 다시 데려오는 일이었다.
글로,
몸으로,
이 세계 안으로.
이 지구별 여행
“아이고, 저런. 너무 힘들겠다. 이제 여기 모니터 화면에 이름만 떠도 조마조마해. 오늘은 열이 안 나야 한다고 내가 어젯밤 기도했는데 또 나네.”
의사 선생님의 혼잣말이었는데 진료실로 걸어가며 다 들었다.
“혹시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서 얼굴이 빨간 건가?”
ㅋㅋㅋㅋㅋ 의자에 앉기도 전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열이 한계까지 오를 때 어떻게 버티느냐는 질문에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시원한 음료를 마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대기실에서 얼음을 우득우득 씹고 있던 어느 날, 치료실로 회진을 다녀오신 원장님이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그거라도 드시고 열이 좀 가라앉으면 좋겠네요.”
컵 바닥을 긁는 빨대 소리가 콰삭콰작, 마음을 다독이듯 이어졌다.
"그래, 이렇게라도 버티는 거지 뭐."
그날의 고통은 세 걸음쯤 뒤로 물러나 주었다.
주사가 한 대씩 슈~욱 하고 들어갈 때마다 의식 아래에 잠겨 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로운 증상이라기보다 그동안 “문제없다”라고 덮어두고 살아온 감정과 신체의 기억들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왔구나!"
힘들었다는 말조차 사치라고 여기던 내가, 내 편을 들어주며 대단하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버텨냈기 때문에 그제야 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투정을 견디었다고 스스로에게 박수를 치는 게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지금은 ‘오케이, 내가 그럴 만했다’ 하고 승인 중이다.
한때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나, 우왕좌왕하며 넘어지고, 아프고, 지쳐 있던 나를 지나 지금의 평온은 낯설면서도 은밀하게 달콤하다.
치유는 몸만의 일이 아니라 남겨진 마음의 조그만 모래알까지 주의 깊게 비추어보는 일이었다. 숨겨둔 나의 절박함까지 꺼내어 앉혀두고 그 자리에 스며들도록 내버려 두는 일.
마음이 가벼워지면, 발걸음도 자연스러워진다. 걸음을 내딛을 때 다리가 몸을 끌지 않고 마음과 함께 따라온다.
주치의 선생님은 늘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함께 이 지구별 여행을 가볍게 걸어가 봐요”
너무 깊은 절망 앞에서는 “힘내라”, “괜찮아질 거야” 같은 말이 도리어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고통을 건너뛰려는 말은 고통을 덮어버리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침대에서 비명을 지르던 날에도 읽었을 때 힘이 났다. 지금도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홀로가 아님을 체감하며 곁에 누군가 있음의 감각...그 힘이었을 것이다.
‘가볍게’보다 ‘함께’라는 말에 마음이 꽉 찼다.
절망 속에서 먼저 무너지는 것은 몸보다 고립감이었으니까.
오늘도 가볍게 걸어보자는 제안은 버티느라 뻐근해진 마음을 살짝 내려놓게 했다.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나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함께 걷는 존재로 불러주었다.
그것은 치료의 지침이자,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나누는 언어였다.
지금 당신의 절망도
이 여행의 일부입니다.
나는 그 길에서 함께 걷고 있어요.
아파서 무거워진 날에도, 괜찮지 않은 마음을 굳이 괜찮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기가 그 말 안에 있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가벼움은 기적처럼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가볍게, 가볍게. 수없이 반복되어 나에게 다가온 그분의 마음이 내 마음에도 빼곡히 쌓여 마침내 안도로 닿았던 것이다.
시간을 쓰는 치료
작년 12월 초, 대구에서 치료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있었다. 바로, 랜. 선. 치. 료.
내가 아는 김정훈 원장님은 환자를 병원 안에만 두지 않는다. 환자를 ‘진료실에 머무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집에 있든, 밖에 있든 치료를 특정 공간이나 시간에 가두지 않고 병원 밖의 일상까지 치료의 연장선에 두었다. 수면은 어떠한지, 식사는 건너뛰지 않았는지, 통증의 양상은 어제와 어떻게 다른지 빠뜨리는 법이 없다.
치료 중 한 번, 원장님께 이렇게 말했다.
“너무 배려해 주시고 신경 써주셔서... 원장님 때문에 다른 의사 선생님은 못 만날 것 같아요.”
원장님 때문에 라니, 나 원 참...아, 망했다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무례한 말이었지만 사실 몇 번이나 삼키고 접어두었던 말이었다. 마음을 꾹 눌러 담고, 여러 번 최악의 장면이 지나간 뒤에야 나온 말이었다.
함께하는 다정한 지구별 여행
마지막으로 맞은 주사 치료 효과는 늦게 나타났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날이다.
무발열이 가장 오래 유지가 되었다.
24년 12월 8일 일요일
이번엔 음성메시지가 도착했다.
두 번째 삶을 시작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는 치료점을 찾을 수 없는 곳까지 다다르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우리 앞에 또 어떤 일이 있을지 우리는 어떤 것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않습니다. 미리나님 본인은 언제나 현재를 사랑하고 지금을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나도 종종 흔들리는 감정의 미리나님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지금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그 지금이 바로 내가 섬기는 바로 신의 이름입니다. 지금 이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그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데 그것은 바로 지금을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는 뜻과도 같습니다. 미래를 불안하거나 걱정해서 지금을 버리는 것, 과거에 집착해서 후회하거나 누구를 원망하는 것, 그것은 모두 지금을 모독하는 일이고 이것은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누가 용서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 즉시 자기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미리나님, 1년 동안 험한 시간을 꿋꿋이 잘 견뎌주고 저를 믿고 이 먼 여정을 잘 따라와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많이 성장했고 미리나님을 통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저도 더 지금을 사랑하겠습니다.
지금을 더 깊이 누리고 불편하고 버거운 감정들, 그 모든 감정들을 고이 끌어안고 그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잠잠히 살펴볼 수 있는 지혜가 미리나님 덕분에 더 깊어졌습니다. 어설펐던 의사를 진짜 의사로 만들어주어서 참 감사합니다.
좋은 환자를 만나서 제가 좋은 의사로 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내일 하루하루가 아름다운 지금과 연애하는 그 순간이 지구별 여행하는 동안 끝까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앞에 또 어떤 일이 있을지 우리는 어떤 것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처음엔 온전히 와닿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었다.
"기대하는 게 왜 당연하지 않지? 예상하는 것도 당연한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은 신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을 붙잡고 있을 수 있게 되었기에 굳이 앞날을 끌어다 쓰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현재에 이미 충분히 닿아 있다는 증거였다.
또한 자신을 ‘어설펐던 의사’라고 말하셨다. 모든 치료에 최선을 다해주셨는데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출까, 마음이 찌르르했다.
‘왜 이렇게 겸손하실까’와 ‘아니에요, 나는 당신을 믿고 의지해왔어요’라는 말이 마음속에 달라붙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You are not alone
I am here with you
Though you're far away
I am here to stay
You are not alone.
직접 불러주신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는 모든 단어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온기와 아름다움이 흘렀다. 새로운 삶이 버거울 때마다 다시 돌아가 붙잡게 되는, 보이지 않는 좌표였다.
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망치고 나서 끝난 일에 다시 발을 담그는 데 부지런했다. 과거의 회한이 현재를 갉아먹는다는 건 늘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깨달았다고 바로 멈춘 것도 아니고.
'지금’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도 예전에는 그다지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선택의 결과는 전부 내 몫이고 변명할 대상도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나에게만 허락된 영역인데.
선택지가 없을 때의 ‘지금’은 내가 몸을 기대고 손을 얹을 수 있는 단단한 작업대가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을 선택하는 일
한동안 완전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아프지 않아야 했고 멘탈이 흔들리지 않아야 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조립가능한 인간처럼 감정과 생각을 재빨리 정리할 수 있어야 했다. 아프면 마음이 재촉했고, 마음이 흔들리면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늘 준비된 상태로 대기 중인 사람, 언제든 교체 가능한 시제품처럼 나 자신을 다뤘다.
성급하게 달리다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그 목표를 조금 내려놓았다. 일부는 가볍게 두고, 일부는 흘려보낸다. 그 사이 삶은 의외로 무심하게 관대했다. 완전해지지 않아도, 시간은 한 번도 제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고, 인생이 망한 적도 없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또 시작이다. 속도만 붙이고, 방향은 엉뚱하게. 마음은 뒤엉키고, 발걸음은 뒤처지고, 그래도 끝까지 달려야 한다고 나를 몰아붙이네. 또 이렇게 나를 흔들면서, 숨 가쁘게 하루를 태워버리면서, 끝에는 뭐가 남을까, 웃는 척, 허공에 묻어버리는 척, 하지만 알지. 그 모든 혼란과 과속과 비틀림이 나라는 사람의 일부였음을.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자주 가슴에 꽂힌다.
“지금 이 순간만이 유일하고 신성하다.”
병을 이겨냈다는 격려도, 종교적 의미를 덧붙이거나 믿음을 요구하는 말도 아니었다. 현실 속에서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순간을 가리켰을 뿐이었다.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아니면 입 밖으로, 그냥 끝까지 써먹어 보기로.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꽤 쓸 만했다. 아니 너무 좋았다. 병을 이겨냈다는 말보다 지금 이 순간 말고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다. 아마 자주!! 넘어지면 또 생각하겠지. 왜 이렇게 사나 싶다가도, 결국 다시 현재로 돌아올 것이다. 이 삶이 내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아무리 우겨도 바뀌지 않으니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오직 나만의 완전함인 내 자리, 흔들려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며 이 삶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다짐이 내겐 지금 가장 큰 위로다.
어설펐던 의사를 진짜 의사로
만들어주어서 참 감사합니다.
어설펐던 의사를 진짜 의사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먼저 죄송함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내가 감히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인가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아팠고, 흔들렸고, 매번 겨우 하루를 버텨낸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 시간이 누군가를 ‘진짜 의사’로 만들었다는 말은 너무 과분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벅차오르면서도, 무거운 돌 하나를 삼킨 것처럼 느껴졌다.
감사하다는 말보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내가 힘들어서 보낸 메시지들, 내가 불안해서 매달렸던 순간들, 내가 약해진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 시간들이 짐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두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태도에 더 작아졌다. 진심이라 더 벅찼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내가 떠안아도 되는지, 누군가의 진심을 이렇게 정면으로 받아도 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두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고 숨기지 않고 버텨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픈 그대로, 흔들리는 그대로, 도망치지 않고 시간을 버텨냈기 때문에 그 관계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그 말은 함께 지나온 시간에 대한 존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은 복잡했다.
가볍지 않은 고마움
고맙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죄송해지는 경험은 처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이 모든 게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줄이야.
다행히 나를 우쭐하게 만들지 않았고 조금 더 겸손하게, 어쩐지 더 진지하게 삶 앞에 세워두었다.
우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었을 뿐이라고, 그 길 위에서 서로가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갔을 뿐이라고.
그 생각에 이르자, 가슴을 누르던 벅참이 풀리며 속으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도 주치의 선생님의 언어를 떠올리면 마음이 흔들린다. 죄송함과 고마움,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 받아본, 너무 깊어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말이었다.
생명을 붙들고
떠날 준비를 하는 일
매일 아픈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버겁고 고독하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붙드는 자리이지만 무력감, 인간의 한계를 매일같이 확인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쉽게 낫지 않는 통증,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지점 앞에 서는 순간들도 많을 것이다.
의사가 필요 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을 만큼 완전히 회복하길 바란다는 말보다 뿌리 깊은 위로가 있을까.
언젠가는 자신이 필요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환자를 보내는 일, 다시는 찾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지기를 기도하며 뒤돌아서는 일, 누군가의 인생에서 사라질 준비를 하면서까지 온전함을 바라보는 마음.
누구에게나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 같은 주치의 선생님을 보며, 감히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짐했다. 죽음 뒤에 또 다른 생이 있다면 꼭 당신처럼 '지구에서 가장행복한 의사'가 되어 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고.
다시는 아프지 않기를, 더는 자신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주는 마음은 의사로서 건넬 수 있는
가장 크고도 넓은 축복이 아니었을까.
치료는 끝났고, 나는 서울에서 다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몸은 아직, 그 복도의 온도를 기억한다.
https://youtube.com/shorts/gWc9BRSosJA?si=fWZM11mJ7pRzhm7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