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Journey, and a New Beginning
후드득 무너져 내리던 시절의 내가 있었다.
평온 속에서는 끝내 만나지 못했던 얼굴이, 산산이 흩어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아파 봐야 나를 알아챌 수 있었을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짠하면서도 고맙다. 너무 작고 여렸던 나는 누군가에게서가 아닌, 바로 나에게 손 한 번 잡아달라며 기다리고 있던 존재였으니까.
24년 11월 7일 그날의 치료 일기
교감신경과 몸의 반응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 몸의 교감신경은 두 가지 선택지만 준다고 하셨다. 싸우든지, 도망가든지.
듣고 보니 마치 오늘 뭐 먹지 하다가 정작 고를 건 김치볶음밥 아니면 제육뿐인 식당과 같았다.
딱 두 칸짜리 메뉴판처럼.
둘 다 에너지가 필요하니 몸은 근육을 꽉 죄며 외쳤다.
“지금 당장 나가 싸워라!”
그 반응을 억눌러 멀쩡한 척, 괜찮은 척했으니, 그동안 버티던 긴장은 고무줄이 끝까지 당겨져 툭 끊어진 것이다.
주사 후 가끔 힘이 쭉 빠지고 졸음이 쏟아진 것도 어쩌면 몸이 질서 있게 항복한 결과일지 모른다.
의사 선생님은 졸음이 올 때 억지로 버티지 말라고 하셨다.
자칫하면 오래 힘들어질 수 있으니 그럴 땐 누워 쉬는 것이 좋다고. 잠이 쏟아지는 것은 몸이 회복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설명도 덧붙이셨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혈액은 생존을 위해 근육으로 집중되고 뇌는 상대적으로 혈류가 줄어드는 상태가 된다.
그럴 땐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파충류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참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딱 보고 느낌이 안 좋으면 물거나 도망가는 기계처럼 단순한 생존 모드. 하루살이처럼 긴장한 몸으로 잠깐 인간성을 내려놓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내 몸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날도 일시적으로 발열과 등 통증이 있었지만 주사를 맞고 잠깐 눈을 감았더니 몸이 종을 울리듯 외쳤다.
“지금이야! 지금 자!”
순식간에 잠이 쏟아져 어느새 한 시간이나 잠들어버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몸은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곯아떨어진 것.
몸이 “오늘은 세상과 단절하고 재부팅하겠습니다” 모드였다.
퇴근 직전 파충류였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과도기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 상태를 이해하고 나면 요즘 내가 하는 이상한 행동도 조금 이해되고 용서가 된다.
자율신경 치료가 안정되면서 예전 같았으면 사소한 반응에도 과도하게 신경을 쓰곤 했다. 그럴 때면 불안감이 자율신경계를 더 자극하곤 했다.
과각성 상태로 흔들리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회복 전략으로 해석하는 법을 익히며 그 길 위에 서 있다.
치료를 통해 내 몸이 스스로 항상성을 회복하는 힘을 경험하면서 변동을 이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적 반응의 범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지식을 얻은셈이다.
“미리나, 요즘 많이 힘들지? 걱정돼서... 내가 다 들어줄게.”
자율신경 치료가 안정되기 2년 전, 나는 내가 화를 잘 내는 사람인 줄 몰랐다. 절친이 조심스럽게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 말이 틀렸다고 반박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곧바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일을 하고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늘 재난문자가 울렸다. 멈추는 법을 잊은 핑퐁 게임처럼 몸과 마음이 서로를 더 세게 쳤다.
자율신경 검사 결과를 들으며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한지 모르겠다고 하자, 원장님은 치료를 잘 받으면 좋아진다며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은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기보다 "많이 힘들었겠다"에 더 가까웠다.
요즘은 검사 결과 앞에서도 비교적 담담하다. 좋고 나쁨을 단번에 단정하지 않고 몸을 조금 더 믿어보게 됐다. 내가 갑자기 성숙해졌기 때문도, 의지가 강해졌기 때문도 아니다. 몸이 덜 흥분해졌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경보가 울리던 시기를 이제야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다.
혹시 지금의 나처럼 사소한 일에도 유난히 예민해졌다면
그게 당신의 본모습은 아닐지도 모른다. 몸이 너무 오래 긴장해 있었을 뿐,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더 평온한 사람일 수 있다.
<좌:240621 우:240910 자율신경 검사지>
6월의 몸은 늘 긴급 상황에 놓여 있었다. 회복과 휴식의 기능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고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곤 해졌으며 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쉬는 법을 잊은 몸이었다.
9월이 되자, 6월과 비교하면 분명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부교감신경은 올라갔고 스트레스는 크게 감소했다.
회복은 여전히 둔화된 상태였다. 자율신경 변동성은 낮았고
잘 회복되는 몸이라기보다 오랜 긴장 끝에 반응이 둔해진 것 같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고 감정 기복도 크지 않아 한결 편안해졌다. 활력과 생동감은 아직 조금씩 회복되는 중이었고 무기력하거나 멍한 느낌도 가라앉고 있었다.
살아남기 모드에서 버티고 난 뒤, 몸은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무너질 만큼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6월의 몸은 분명 SOS를 보내고 있었고 9월의 몸은 멈추는 대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친절한 내 몸은 나에게 두 번이나 말해주었다. 한 번은 너무 힘들다고, 또 한 번은 너무 오래 참았다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치료 후 원장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톡이 날아오곤 했다.
내 통증은 몸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폭죽 같았다. 행복과 통증은 동거인이었고 감정과 생각은 붙잡을수록 더 요란해지는 소용돌이쳤다.
형체는 거창하지만 손에 쥘 수 있는 무게는 없다. 그래서 몸이 갑자기 재난인 줄 알고 소리를 질러도 겁먹을 필요도 없었다. 과하게 성실한 경보 시스템이 확성기 볼륨을 혼자서 최대로 올려버린 해프닝에 가까웠다.
나는 요즘 이 모든 반응을 진압하려 들지 않고 옆에 앉혀두고 관찰하며 지나가게 둔다. 도망치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딱 버틸 만큼만 버틴다.
삶은 드라마를 기대하지만 몸은 연출 욕심이 없다. 쇼를 만들지 않고 살아남는 방향만 고른다. 자율신경계는 의미, 서사, 드라마에는 관심 없고 위험 감소와 에너지 보존만 선택한다. 대반전 대신 작은 기적들을 연속 재생 모드로 틀어놓는다.
매일 조금씩 축적되는 작지만 확실한 기적이 적립금처럼 쌓이다가 어느 날 문득 사용 기한 없이 나타난다. 신경도, 마음도 누적형이다.
한 번의 좋은 날(기분), 반복되는 안전 경험(안정감).
기적은 폭발하지 않는다.
폭죽 대신 한가운데서 정렬되는 공기.
환호 대신 척추가 제자리를 기억해 내는 감각.
소란은 없고 박수도 없지만 시계 초침이 한 번 더 또렷해지는 정도의 안도랄까.
그 행복은 번쩍였다 사라지는 불꽃처럼 보이지만
주머니 안에서 체온을 나누는 작은 돌멩이에 가깝다.
크게 자랑할 수는 없지만 걸을 때마다 존재를 알리고
버릴 생각은 들지 않는 무게.
크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의식하지 않아도 반복해서 확인되는 그런 안정감이었다.
‘전 직원 워크샵’이라는 바쁜 일정 속에서 다정한 말과 응원을 건네주시는 원장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선의 치료를 준비하는 다정한 사피엔스의 시작”이라는 표현에서 사람과 관계, 마음을 배려하며 준비하는 마음,
자신에게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존중과 애정을 담는 태도라 더욱 따뜻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때 거의 회복에 이르러, 의사 선생님께 의존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신뢰가 생겼다.
무엇보다 바쁘신 모습을 보며 증상 보고 숙제를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 중이었다.
다음 날, 내 상태를 보고하며 생신 톡을 보냈다.
마음을 담은 글 속에, 걱정과 안부, 그리고 조금의 행복을 실어 보냈다.
더 노력해 주시겠다는 과분한 말씀에 치료와 신뢰, 존중과 감사를 아우르는, 함께 협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황 전달이지만 불안과 기대, 자부심, 감사가 섞인 복합적인 내 마음.
행동과 선택에 대한 불안과 의문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확신이 서지 않아 마음이 흔들릴 때 누군가의 확인을 통해 잠시나마 안정과 숨통을 찾고자 하는 마음.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지만 조금의 여유를 허락하려는 노력.
불안과 충동일지라도 나를 지키려는 마음과 흔들림을 이해하려는 의식.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려는 보호본능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마음이 요동쳐도 부드럽게 돌아올 길을 살짝 열어두는 것이다.
내일은 환자 하기 싫어서요
응당 지금까지는 늘 환자였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이번만큼은 그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주치의 선생님께 다가가고 싶었다. 증상과 통증의 목록이 아닌 내 이름으로만 맞아들여지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잠시라도 몸이 아닌 '나'로 들어가고 싶었던 마음.
그 작은 바람이 간절해 고민 끝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예상과 달리?? 하지 않고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놀랐다. 그리고 마음 깊이 감사했다.
공짜로 진료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ㅎㅎ 그런데 환자 목록에 등록되지 않은 반가운 환자로 맞이해 주신다는 말에 따뜻함이 전해졌다.
사람의 마음은 작은 배려와 열린 태도에서 가장 깊이 느껴진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절대적인 치료 행위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하는 태도와 존중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원장님, 오늘 만큼은 조금 쉬셔도 괜찮아요. 저는 오늘 고마움을 전하러 온 거예요.”
나 이제 당신의 치료가 충분하다고, 이제 괜찮다고
그러니 이대로 서울 가도 좋으니 마음을 놓으시라고.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단 하루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나를 정성스레 돌봐주셨으니 작은 정신적 보약이라도 드리고 싶었다.
김정훈 원장님, 치료를 마치 놀이처럼 느껴지게 해 주신 덕분에, 즐겁게 치료받고 갑니다. 치료 과정에서 수많은 기적 같은 날들을 경험하며 오늘의 회복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곧 행복한H병원 확장으로 더 바쁘시겠지만, 원장님이라면 이 또한 새 출발의 지구별 여행이라 여기실 것 같아요.
새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원장님의 지구별 여행길에 축복과 힘이 함께할 것이라 믿습니다. 고통을 행복으로, 사랑과 믿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따뜻한 치유자, 사피엔스 원장님, 늘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오늘이 그 길고 길었던 병원 생활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만으로도 벅차올랐다.
의사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몸을 숙이셨다. ‘다시는 아프지 말라’는 걱정 어린 한숨이 흘러나왔고 이어진 악수로 마음을 건네주셨다.
"이렇게 멋지게 이겨내 주어 참 대견합니다. 미리나님의 용기가 다른 환자분들께도 도움이 될 거예요. 긴 시간 부족한 저를 믿고 여기까지 와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오늘은 정말 울지 않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는데 원장님의 말과 손짓들이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다시는 아프지 말라는 한숨, 악수, 그리고 대견하다는 진심 어린 칭찬은 그동안 눌러왔던 불안과 두려움, 좌절감, 무력감을 폭포처럼 터져 나오게 했다. 원장님이 시선을 잠깐 떨구고 안경 안쪽을 손으로 비비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연민과 공감이 느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견뎌낸 시간들이 맑은 빛을 일으키고 있었다. 작은 기념비가 그 자리에 세워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견뎌낸 용기들과, 끝내 꺾이지 않은 마음들이 화답하듯 오래오래 남을 은은한 축복의 기념비.
“앞으로도 괜찮을 거예요”라는 말을 서로의 방식으로 건네며 인증샷을 남겼다.
치료 초반 선언했었다.
“느리더라도 반드시 나아 ‘행보칸 환자’로 보답하겠다.”
두 번째 약속은 조금 더 내밀했다.
“원장님을 진심으로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
작지만 나의 다짐이 그날부터 내 걸음을 이끌었다.
새로운 나, 새로운 시작
나를 여러 번 구해낸 사람. 꺼져가던 등불 앞에 다시 불씨를 올려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주신 은인.
나는 이날, 병을 견뎌낸 사람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준비를 마친 사람이었다. 아픈 몸을 가진 내가 아니고 사랑을 배우는 사람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다시는 아프고 싶지 않으니 이곳을 찾고 싶지 않지만 그리울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라도 놀러 오라던 원장님의 진심 어린 말이 마음을 끌어 언젠가 꼭 다시 찾아뵙겠다고 생각했다.
의료적 공간의 차가움 대신 ‘따뜻함’이라는 온도를 지닌 이곳은 나의 삶에서 은신처이자 다시 태어나는 방이었다.
삶에 대한 태도와 의지, 가치관까지 다시 배우게 된 전환점이었고 내 인생을 재설계하게 만든 결정적 모멘트였다.
그 모든 것이 그날따라 가슴을 저미는 듯 아름답게 떠올랐다.
도공이 거친 흙덩이를 손끝으로 다듬어 새로운 매무새를 만들어내듯, 나는 병이라는 망가진 흙덩어리였을지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은 나를 건지고, 반죽하고, 다듬어
인생의 궤도를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빚어내 주셨다.
다음 날,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맡겼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어제 찍어둔 사진 위에 손끝을 댔다. 숨죽이며 버티던 나의 과거가 진동처럼 손끝을 타고 아름답게 전해왔다.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창 밖으로는 도시 풍경이 흘러가지만 내 시간은 멈춘 듯했다.
그 순간의 감정, 긴장과 안도, 고통과 희열이 한꺼번에 폭발하며 별빛처럼 반짝였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음을 온몸으로 뼛속 깊이 느꼈다.
기차가 달리면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몸의 진동조차 마음의 파동과 공명하는 듯했다. 기억과 사랑, 두려움과 감사가 한꺼번에 떠올라 말로 할 수 없는 폭발적 감정이 서울 도착할 때까지 울렸다.
창밖이 흐려질 만큼 눈물이 고였다. 함께 지나온 고통에 울고 행복해서 웃던 순간들이 은은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를 살아있게 한 힘, 나를 견디게 한 기억,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에너지의 표상이 되었다.
창밖 풍경은 오랜 장막을 걷어내듯, 붙잡을 틈도 주지 않은 채 흘러가는 물결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마음이 지칠 때마다 몸까지 굳어버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기가 참 길었다. 하고 싶은 건 많고 그만큼 움직여주지 않는 몸이 미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흩어질 것 같았던 마음들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서로를 이어주며 붙잡기 시작했다.
깨진 줄만 알았던 조각들은 다시 이어졌고, 한 사람의 손길을 담아 새로운 그릇이 되어 숨을 쉬며 서로를 붙드는 힘이 되었다.
한 인간을 끝까지 지켜보고, 기다리며,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원장님께 쏟아냈던 말들은
내가 보아도 다소 미성숙하고 과잉된 표현처럼 보인다.
원장님은 그것마저 생존의 증거이자 생명의 언어라고 받아들여 주셨다.
나의 간절함을 짐이나 부담으로 보지 않고 아직 꺼지지 않은 생명의 불빛으로 알아봐 주고 존중해 주신 그 마음을 두고두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의미 없다고 여겼던 고통을 의미로 바꿔 주신 덕분에
나는 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만났다.
“고통은 다 놓고 가라” 하시듯 세상의 고통까지 함께 짊어지려는 그 헌신 앞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마음으로 새겼다.
"나보다 행복한 의사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행복한 의사가 많아져서 언젠가 누군가가 내가 가장 행복한 의사라고 말하면 좋겠다.”라고.
나 역시 행복한 환자가 되어, 행복한 환자들이 많아지길.
하지만 나도, 나보다 행복한 환자는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그 꿈도 언젠가는 현실이 되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입으로 내쉬는 숨도, 몸도 ‘거의 완치’라는 말을 되뇌었다. 며칠 전까지 오르내리던 불명열이 아직 남아있어 앞으로 열이 다시 오르지 않을 거라 100%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거운 이불을 한 겹씩 벗겨내듯, 몸은 조금씩 느슨해졌다. 천천히 퍼지는 온기가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잔잔한 기운이 일상의 작은 움직임에도 생기를 불어넣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불안이 있어도 이제 나는 그것을 껴안으며 웃을 수 있다.
부족한 저를 믿고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정성이 없는 치료자는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 치료가 잘 되고 있고 늘 최선을 다해 주시는 걸 온몸으로 느끼지만 원장님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아서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의사는 부족함을 담았지만 회복을 위해 모든 힘을 쏟는 사람의 진심을 느끼게 한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회복의 힘을 배워가게 남겨둔 여백처럼, 그 시간은 나를 더 의연하게 만들었고 몸과 마음의 미묘한 변화에 깊이 집중하게 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모든 고통을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특히 나 같은 자율신경, 통증, 만성 질환처럼 상태가 서서히 드러나는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의사는 길을 안내하고 치료를 돕는 사람일 뿐, 치유의 과정과 결실은 환자 자신이다.
의사가 마음을 다해 환자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여린 고백 같은 “부족하다”라는 말은 태어날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의학은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사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머리로 아는 것과 눈앞에서 고통이 계속되는 사람을
매일 마주하는 일은 다르다. 그건 직업의 한계와 과학의 경계를 이론이 아닌, 몸으로 통과하는 일이니까.
“부족한 저를 믿고 치료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은
자신에게 부과한 책임의 언어로 들렸다.
"더 편하게 해주고 싶은데
더 안 아프게 해주고 싶은데
더 빨리 회복돼서 환한 얼굴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든 나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배어 있는 주치의 선생님의 표정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늘 한 걸음 물러서며 나의 회복 속도를 존중해 주었고 자리 잡아가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늘 믿어주셨다.
부족하다는 말은 환자를 향한 가장 깊은 애정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치유는 그런 자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완벽함이 아닌, 누군가의 따뜻한 부족함에서.
사람이 하는 일에 완전함은 없고 100% 실수 없는 의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료는 그 실수를 디딤돌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그 무게를 환자는 묵묵히 함께 감내해야 한다.
지금 내가 만나는 뛰어난 의사 역시, 나보다 앞서 치료받던 누군가에게는 지금보다 미숙한 손길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반성하고 배우며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들이 지금의 탁월함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 이전의 환자분들께도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그분들이 겪어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로,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 선생님께 가장 최상의 의료적 돌봄을 받을 수 없었을 테니까.
환자를 향한 따스한 잔소리와 세심한 돌봄 뒤에 원장님 자신을 위한 시간과 건강도 남아 있기를 바란다. 의사도 돌봄이 필요하다.
완결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받아들인 뒤, 고통과의 거리를 배웠다. 이제 그 흔적이 나를 해치지 못한다.
2023년 9월~2024년 12월, 치료를 마친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세 가지뿐이다.
안도, 감사,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의사 선생님도, 나도, 아직 여린 첫걸음을 떼던 시작이었다.
251202 친구와 주고받은 메시지
나의 고통을 직업적 과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몸으로 느끼고, 함께 견디며 도와주신 김정훈 원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The Healing Journey Concludes A Happy Ending
원장님께서 1년 전 쓰신 글이다.
https://brunch.co.kr/@nothing8/238
나의 치료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고달프지만, 매번 나를 버리지 않고 다시 선택하는 길이기에 멈출 수 없다. 아픔은 동행하지만 이 여정이 나를 살아 있게 붙들어주는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고통 속에서 만난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또렷하게 존재한, 오랫동안 기다려온 ‘진짜 나’였다.
그 만남은 결코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