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미안했던 날들을 위로하며
자율신경이 고장 나면 나는 낡은 자전거 같았다. 겉보기엔 굴러가지만 안쪽에서는 제각기 다른 박자에 맞춰 따로 논다.
기어는 “속도를 올리자” 하고 기세 좋게 외치다가도 힘이 빠져 헛돌고 체인은 비에 젖은 줄처럼 축 늘어진다.
브레이크는 상황 판단 능력을 잃어 멈춰야 할 때는 감감무소식이고 멈추지 않아도 될 때만 기습적으로 잡아챈다.
진정해야 때는 들끓고 흥분해야 할 타이밍엔 늘어지는 자율신경의 전형적인 엇박자.
달리다 보면 한 리듬으로 움직여야 할 기계가 박자를 어지럽히며 ‘우리 지금 같은 흐름에 있지 않아’라고
쇳소리 섞인 음색을 흘려보낸다. 페달은 발끝에 묵직한 예감을 숨기며 밀어 넣고 긴장과 이완은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엉뚱한 타이밍에 튀어나온다. 마치 두 사람이 같은 춤을 추기로 해놓고 각자 다른 음악을 듣고 있는 장면 같다.
그런데도 ‘나’라는 자전거는 뼈대를 삐걱거리며 기어코 앞으로 간다. 넘어질 듯 비틀거리다가도 적절한 치료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낡은 부품들이 하나둘 호흡을 맞추며 몸에 남아 있던 잔여 에너지를 모아 기적처럼 균형을 잡는다.
언젠가부터 “이건 내 탓인가?” 하고 찌르던 자책도 조금씩 가라앉는다. 정말 더는 못 가겠다 싶을 땐? 괜찮다.
그건 고장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정직한 요청일 뿐이니까.
그럴 땐 내려서 끌고 가도 되고 잠시 세워두어도 된다.
쉬었다가 다시 움직여도 길은 어질러지지 않고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치료는 낡은 자전거를 억지로 몰아세워 다시 달리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나의 길을 더듬어 찾을 수 있게
곁에서 차분히 물러서 지켜주는 일이다.
몸은, 돌아갈 길을 기억한다.
2024년 11월 16일 토요일
주말이라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건 왠지 억울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아플 때는 오전이라도 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저 오늘은 참을 만해요." 진료실 들어가자마자 쏜살같이 말했다. 오늘만큼은 그냥 스치듯 ‘예! 다음 환자’ 같은 속도로 대충 훑고 지나갔으면 했다. 주말까지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온 통증이 얄밉기도 했고 또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달려 나간 것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밝게 웃으면서도 눈빛은 곧장 의심 모드로 기울었다. 얼굴에서 상체까지 스캔하듯 살피더니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내 뒷목을 살폈다.
“목을 바르게 세우고, 허리도 한번 펴볼까요?”
악!! 똑바로 펴지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대충 넘어가신 적이 없다. 숨은 증상들을 정확히 찾아내신다. 그래서인지 병원 오는 것이 가끔은 귀찮고 억울하면서도 나는 또 이렇게 걸어 들어온다.
조금씩 기대면서.
"얼굴색은 좋아지는 중인가... 지나가려고 하는 건가... 지금 점수로 치면 10점 중 몇 점 정도 되는 것 같으세요?"
“아침 여섯 시 반부터 여덟 시까지 났다가 잠잠해지더니 또 올라왔어요. 아까보단 좀 나아져서 지금 힘든 정도는 5점이에요. 저 대단하죠ㅋㅋ 금방 지나가겠죠?"
“마음의 생각이 정말 많이 좋아지셨어요. 대단해요.”
원장님은 늘 그렇듯 따뜻하게 말했지만 바로 이어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그런데 지금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버틸 수 있는 거죠? 아휴, 속상해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한동안 걸렸던 ‘대단해 병’을 떠올렸다.
내가 스스로 대단하다고 말하면 정말 이 모든 몸과 마음의 통증들을 대단하게 물리칠 것만 같았고 죽을 만큼 힘든 날들이 있었음에도 그 모든 걸 꾹 눌러 삼키며 ‘그래도 버티는 사람’이라는 얼굴을 하고 웃어 보이곤 했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대단하다”라고 말하면 나는 내가 이만큼 좋아졌다는 생각에, 그리고 내가 정말 대단한 뭐라도 된 줄 알고 기분이 들떴었기 때문이다.
"대단하다"는 말에는 진심과 위로가 있었지만 대단한 사람이라는 껍데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작은 압박도 늘 반박 불가능한 선행 조건처럼 따라붙었다.
주변사람들은 나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나랑 있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그 말이 고맙다가도 내가 무슨 이동식 비타민 디스펜서라도 된 것처럼 느껴져 묘한 책임감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버티는 중일 수 있다는, 그리고 내게 너무 늦게 도착하는 사실을...
"자율신경실조증"의 세계는 그런 역할과 무관하게 움직인다. 신경들이 박자를 놓치면 행복과 슬픔, 여유와 불안이 제각각 타이밍에 튀어나온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날조차 엇박자들이 서로 부딪히며 나를 끌어내린다.
그래서 주치의 선생님의 대단하다는 말 뒤에 이어진 정말 괜찮냐는 말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보았다는 느낌이었다. 버티는 얼굴 뒤에 숨어 있던 것을 놓치지 않고 읽어내주셨다.
어쩌면 대단하다는 말은 내가 견디고 있는 고통을 누군가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그러니 더 웃었다.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 이 고통을 남들에게 이해시키는 대신, "대단하다”는 말을 뒤집어쓰고 마음속으로는 울었다.
사람들은 내가 넘어질 것 같아 보이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견디고, 버티고, 더 웃었지만 웃을수록 더 외로웠고 버틸수록 더 비어갔다. 진심으로 행복해서 웃는 날이 훨씬 많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대단해서 버틴 게 아니고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버텼다.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되었는데..
감정 기복이 있다고 해서 망가진 게 아니었는데...
자율신경이 흔들리는 날엔 그 흔들림을 인정하는 것도 치료의 한 과정이었는데...
내가 나에게 솔직해질 때 숨을 더 크게 쉴 수 있었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치료의 막바지에서야 배웠다.
"내일이 평일이라면 주사를 건너뛰고 경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일요일이라 걱정되네요."
원장님은 팔이 조금 붉어지긴 했어도 평소보다 훨씬 괜찮아 보인다고도 하셨다. 목은 원래 쉽게 빨개지는 편인데 오늘은 상태가 괜찮은 걸 보니 그냥 지나가는 과정 같다고도 하시면서.
어제는 소둔근과 대둔근 치료를 했는데 좀 어떠냐며 걔네들이 친구들(?)인데 한번 더 체크해 보자고 하신다.
“목이 많이 빨갛네요.” 주사실에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 목을 보며 바로 원장님을 부르셨다.
“어? 정말 빨개졌네? 내일이 일요일이라 안 되겠네요. 주사를 맞는 게 낫겠어요.”
결국 주사였다. 주말에 병원 온 김에 뭐라도 한 개는 하고 가야 하는 건가! 몸이 참 알아서도 잘 챙긴다.
"원장님, 주사 맞고 나니까 정신이 돌아왔어요!!"
주사를 맞기 전 내 얼굴은 늘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열이 오르고, 어떤 날엔 손끝까지 작은 불씨가 톡톡 타오르는 느낌이 든다. 나도 알고, 의사 선생님도 안다. 아무 말이 없어도 지금 꽤 힘들다는 미세한 기척 하나로 상태를 단번에 알아본다.
그러다 주사를 맞으면 마치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로 다시 진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매일 몸이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랬었다.
주사를 받아들이게 되면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과 몸이 가라앉고 긴장으로 굳어 있던 온몸이 풀리기 시작한다. 의사 선생님이 “지금 등도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왔어요.”라고 말해주실 때면 큰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그 변화는 드라마틱하게 폭발하는 게 아니다. 그저 순식간이다. 방금 전까지 나를 붙잡고 있던 열기가 누군가 재빠르게 스위치를 내려버리기라도 한 듯 사그라진다.
방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데도 전혀 다른 생명력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의사 선생님과 나는 동시에 안도와 약간의 허탈함이 섞인 표정을 띠다가도 살 것 같다는 그 찰나의 변화에 결국 웃음이 난다.
그 ‘순식간’을 매번 경험하면서 말없이도 늘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몸과 기능의학은 참 신기하다.”
한편으로는 누가 날 갖고 장난치고 속이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좋다. 몸이 어느 방향으로 날 속이든 또 이렇게 나아지기만 한다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속아줄 생각이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분명히 괜찮아지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은 날은 통증도 덜하다. 몸이 조금 가벼워지고, 통증마저 잠시 눈치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통증이 덜해도 내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 하루는 고단하다.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볼 때 어디에 발을 디딜지 몰라 휘청거린다.
힘들었지만 웃었다. 행복해서 웃은 것이 아니라 고통과 행복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늘 완벽한 순간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잠시 흠집 난 나에게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으니.
치료실에서 누워 핸드폰을 보며 그동안 써둔 일기와 기록들을 쓱 훑어보았다. 불명열 발열치료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일곱 달이 넘었다.
게다가 11월 16일 이후로는 전신통증, 등통증, 발열, 가끔은 이유 모를 악몽까지 겹치며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걸 다시 확인하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조금은 지쳐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연말이 다가오는데 다들 한 해 마무리라고 들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치료 중이었으니 좀 우울했다. 이제 나도 치료 좀 내려놓고 놀고 싶은데... 며칠이라도 ‘환자’ 말고 ‘나’로 살고 싶은데... 몸이 그걸 자주 좀 허락해 주면 좋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병원 문을 나섰다.
내가 뱉은 그 말 때문인지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병원 근처의 한 가게에 들러 간식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샀다.
조금 더 걷다 배고파져서 초밥집에 들어가 초밥 몇 점과 뜨끈한 우동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따뜻한 국물과 든든하게 채워진 배가 마음을 들어 올려주는 것 같았다. 오늘 치료의 진짜 효과는 이런 평범하고 소소한 회복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24년 11월 28일 목요일
감정이 요동치는 날이면 무의식은 꼭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먼저 반응한다. 턱은 혼자서 결의에 찬 병사처럼 꽉 다물리고 어깨는 날벼락이라도 떨어질까 봐 혼자 떠받치는 기둥인 양 힘을 잔뜩 먹는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나면 쌓인 긴장들은 슬그머니 뒤통수를 친다. “네가 버틴다길래 나도 좀 얹어봤어.”
통증은 꼭 빚 독촉이라도 하듯 내가 숨겨둔 부담을 하루 늦게 받아내라며 돌아온다. 마음이 긁히면 그곳으로 몸이 제일 먼저 피를 흘리며 오버한다. 턱은 독립선언을 하고 어깨는 총대를 메고 통증은 그들의 뒤처리를 나에게 떠넘긴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늘 같은 방법으로 버티고, 버틴 대가를 통증이란 이름으로 청구받는 것이다.
치료 종료를 거의 앞둔 지금, 또다시 발열이 나를 괴롭혔으니 그럴 만도 하다며 나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지난 7개월, 거의 매일,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의 발열을 견디며 병원을 오갔던 시간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영혼을 태우듯 지극정성으로 치료를 베푼 한 의사와, 혼신을 다해 몸과 마음을 맡긴 한 환자의 마음마저 헤아려주지 않다니."
간호선생님들도 요즘 컨디션 보고 안심했는데 당황한 모습이었다.
"걱정 마세요, 또 좋아질 거예요."
거울 효과(mirror effect)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밝은 얼굴과 밝은 언어를 쓰시는 주치의 선생님을 보면 방어가 풀려 감정이 변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잠시 옆에 두고 긍정의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 낮게 깔려 있던 목소리가 힘을 되찾아 나조차 놀랄 만큼 크게 올라왔다.
불안! 그래도 예전에는 불안이라는 파도가 날 통째로 휩쓸어갔지만 멈출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했는데!
허사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오늘은 주사를 맞지 말아 볼까요?"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네,라고 대답하고 진료실을 빠져나와 수납을 하려는데 그냥 가란다. 갑자기 가슴이 턱 막혔다. 히터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돼서 그런 건지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간호선생님은 내 얼굴이 더 빨개졌다고 하며 “원장님 진료 다시 보셔야겠어요. 대기 환자분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집에 가고 싶다가도 지금 이 고통을 당장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부딪히며 갈팡질팡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로 들어가자마자 목이 메어 버렸다.
“원장님, 저 그냥 정신과 약 먹을까요? 또 왔다 갔다 해서 죄송해요. 급으로 지금 너무 힘들어요. 진짜 오늘만큼은 죽을 것 같아요. 저 좀 살려주시면 안 돼요? 헉헉”
그러다 다시 정신을 붙잡으려는 듯, “아, 아니에요. 그냥 좋아질 거라고 믿어요”라며 횡설수설했다. 오랫동안 잘 버텨온 나보다 훨씬 무너진 내가, 진료실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원장님이 물으셨다.
“지난 화요일엔 힘든 정도가 5점이라고 하셨죠. 지금은 아까보다 더 힘들어 보이시는데 세 시간 전보다는 어때요?”
“새로운 버전으로 아픈 것 같아요.”
“다음 주 월요일에 서울 가신다고 하셨죠?”
“네, 서울 가서도 또 아플 것 같은데 저 어떡해요 불안해요”
“그럴 수도 있어요. 아직 안정된 상태는 아니라서... 지난번 서울 갔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더 힘든 건 사실이니까요 "
숨을 크게 몰아쉬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너무 힘들어서 짜증도 나고 대증치료받는 것 같고 머리가 너무 복잡해요. 어제는 진통제를 왕창 먹어버릴까,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자책감도 들었고 판단이 잘 안 돼요.”
“맞아요. 당연해요. 너무 힘들면 누구나 그럴 수 있어요. 지금은 어떤 판단도 하지 마세요. 특히 열날 때는 더 그래요. 그럴 때 결정하는 건 옳지 않아요.”
“근데 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 답답해요. 이 상태로 서울에 어떻게 가죠? 무서워요”
“힘들 때 방법을 찾으면 좋은 방법이 안 나옵니다. 몸이 힘들 때는 하던 대로만 하세요. 변화를 주지 않는 게 맞아요. 여유가 있을 때 판단해야 해요. 서울 가서 어떡하지! 걱정하며 ~해야겠다, 같은 결정을 내려버리면 더 어렵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 달 전과 비교해서 치료가 아무 변화도 없다고 느껴지세요?”
“아뇨, 무슨 말씀이세요, 변화 있어요! 분명히 있어요.”
그 말만큼은 확신을 갖고 말했다.
“그래요. 반복되니까 힘든 거죠. 너무 당연한 거니까 자책은 치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니 하지 마세요.”
“예전 치료는 다 빼버릴게요. 일단 지금 너무 힘들어서...”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는데 원장님은 이후에도 내 말을 끊지 않고, 눈물이 흐르는 동안도 아무 말 없이 차분히 기다려주셨다.
휴지를 쏙 뽑아 손에 쥐어주고 어깨를 토닥였을 때 더 크게 울고 말았다.
진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서.
버티던 시간들이 허물처럼 무너져서 쌓여 있던 감정들이 들려버렸다.
“너 힘들었지.”
“괜찮은 척 안 해도 돼.”
“여기 있어도 돼.”
말로 하지 않아도 들리는 메시지들이 담겨 있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묶어두었는데 작은 친절은 그 매듭을 스르륵 풀어버렸다. 그래서 더 울었다.
나의 눈물은 고통일 때보다 누군가에게 안전해졌다는 것을 확신할 때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원장님 정성에 비해 제가 따라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죄송하긴요. 미리나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더 잘 치료했어야 했는데요.”
버거운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려는 주치의 선생님의 책임감이 내 몸속에서 이어지던 발열보다 더 뜨겁게 전해졌다. 내가 겪어낸 시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려는 사람에게서만 나는 깊은 열감이었다.
평소엔 나에게 “자책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던 분이 정작 본인은 자신을 탓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는 어느 쪽으로도 손을 뻗지 못했다.
말리자니 주치의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깊이 알아버린 이상, 가벼운 위로로는 닦아낼 수 없을 것 같았고 붙잡자니 내가 그 무게에 기대는 것 같아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며 내 마음과 그분의 마음이 서로에게 기대지도 못한 채 같은 자리에 살며시 내려앉는 느낌뿐이었다.
“미리나님처럼 이만큼 해내는 사람 없습니다. 정말 대단하고, 정말 잘하고 계세요. 거의 매일 아픈데도 버티고 치료도 이렇게 열심히 받고... 발열 없는 날이 더 적은데 너무 잘 견디고 계신 거예요.”
“원장님도 해주실 만큼 해주셨고 정말 최선을 다하신 거 알아요. 저도 마음을 강하게 먹고 버티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잘하고 싶은데 죄송해요. 더 이상은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안 들고 참고 싶은데 안되고요"
“참아서 다 될 일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지난 4월부터 시작해서 지금이 가장 긴 신기록이에요.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면 ‘내일도 괜찮겠지!’ 하는 기대가 생기잖아요. 지금은 그 생각이 안 드는 게 너무도 당연합니다. 앞으로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 잘 안 들죠?” “... 네.”
“다 ‘생각’이에요. 안 좋아질 거라는 나의 생각!
생각이 사실을 규정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아까 들어올 때보다 표정이 더 좋아졌어요.
주사 안 맞고 물리치료실에서 좀 쉬셔도 되겠어요. 그때도 힘들면 그때 주사 맞으셔도 되고요. 조금 지켜봅시다. 정말 표정이 아까보다 낫다니까요?”
나는 고개를 재빨리 저으며 말했다.
“집에 가면 못 참을 것 같은데 주사 맞으면 안 될까요.”
“지금 불안하죠. 못 참을 것 같다는 것도 다 생각이에요. 이따 집 갈 때는 더 좋아지실 거예요. 좋아지게 해서 서울 보내야죠. 이대로 보내면 저도 큰일 나고 미리나님도 큰일 나고...^^”
원장님은 농담을 섞으며 웃으셨다. 아까보다 훨씬 괜찮아 보인다고 또 말하셨다.
그제야 나도 진료실 한편에 있는 전신거울을 바라봤다.
활짝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내 눈에도 정말로 아까보다는 나았다. 참 머쓱하게도.
"원장님, 얼른 진료 보세요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잔소리를 20분쯤 들었던 것 같다. 원장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떻게든 나를 진정시키려 애쓰던 그 얼굴... 혼란 중이었어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진료실을 나오자 대기 환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울다 나온 사람 특유의 기척이 남아 있으니 피할 수도 없었다. 그때 부부로 보이는 한 아버님이 어머님께 낮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무슨 병이길래 저러고 집에 갈 수나 있겠나.”
기우뚱한 마음이 다시 흔들렸고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에서는 그런 시선들까지 견뎌냈으니 오늘도 나 참 잘 버텼다고 그렇게 나 자신에게 말해주었다.
마음이 금 가기 시작하면 몸이 뒤늦게 따라오는지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참 오래도 버텼다. 두통처럼 번지는 그날의 불안은 어깨를 잔뜩 치켜세우게 했다.
치료가 끝나간다는 안도감을 겨우 주워 혀끝에 올려보려 했건만 발열은 매복해 있던 듯 치고 올라와 나를 단숨에 수면 아래로 끌어내렸다. 하늘이 일부러 타이밍을 맞춰 도망 못 간다고 시험지 한 장을 내던지는 기분이었다. 몇 달 동안 쌓아 올린 인내가 한방에 무너지는 소리가 뼈 안쪽에서 났다.
주치의 선생님은 이 긴 시간 동안 회복의 블랙박스를 돌려보듯 발굴해 기억해 내며 지지해 주셨다. 절벽 끝에서 손만 겨우 걸고 있는데 옆에서 매뉴얼을 읽어주며 괜찮다고, 아직 손 안 놓았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분의 인내는 나를 버티게 했다. 그 안정감이 때로는 구원 갔다가, 때로는 부담 같았다가, 때로는 도망치고 싶은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늘 똑같은 태도와 안전한 말을 하셨기 때문이다.
"이 지구별 여행! 함께 어디든 가 보아요"
동반등반 계약서 같은 그런 든든한 확신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멈추지도 못하고 쓰러지지도 못한 채 계속 걸어왔다.
가끔은 고마워서 버티고, 미안해서 버티고, 버틸 줄밖에 몰라서 버틴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고 또 한 번 시작선 근처로 돌아와 있다. 이번 시작이 지난 시작보다 나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멈출 권리도 딱히 주어진 적은 없다.
그러니까 또 간다. 어디든. 이번엔 진짜 내 발로 당당하게.
불안은 오지 않은 일에 먼저 말을 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게 미리 사과하고, 변명하고, 대비책을 세운다. 그러다 보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미래와만 독백한다.
불안은 기억의 변형이다. 과거의 작은 상처 하나가 확대복사되어 “이 일은 다시 벌어질 것”이라는 예언이 된다. 그리고 그 예언의 수신자가 된다.
불안은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커지는 권력이다. 없애려는 힘이 불안을 키운다. 수치심 옆에 서 있다가, 분노와 손을 잡았다가, 어느 날은 슬픔의 외투를 걸친다. 그래서 치료도 한 가지 길로는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안에게는 귀한 점이 있다. 가능성의 접지점이라는 것!!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의 윤곽을 보여주는 나침반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안과 동행하며 앞으로 끌지도, 뒤로 밀리지도 못한 채 같이 있는 법을 배운다.
불안을 오래 바라보니 그 근원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밀어내도 문 앞에 몰래 놓여 있는 낯선 선물처럼 잠든 나를 얼른 일어나라고 깨워주었다.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몸 어딘가에서는 다른 일이 진행 중이다.”
통증은 내 몸을 아프게 했지만 불안은 그 아픔을 말로 꺼내게 해 주었다. 피하고 싶던 감정이었지만 내가 성장의 문을 열도록 밀어준 감사하게 되는 선물이기도 했다.
나의 치료 여정이 끝났다는 말은 마치 종이로 그린 스위치 같았다. 손끝으로 톡 누르면 불이 켜질 것처럼 보여도 실은 아무 전류도 흐르지 않는 그려진 버튼일 뿐이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반짝하고 반전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그제야 본편이 막 펼쳐지는 끝을 가장한 시작선에 가까웠다. 고통은 사라졌지만 고통을 견디던 기억은 먼지처럼 남아 있었고 불안은 가끔 허공에서 내려와 발목을 잡았다.
치료의 끝자락에서 나를 다시 배우는 일을 시작해야겠다. 아프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 어색한 룸메이트처럼 하루 약속을 조율하고, 속도를 맞추고, 때로는 실랑이를 벌이며 조금씩 양보해 새로운 일상을 조립하는 작업 말이다.
설명서는 없고, 가끔은 남는 나사도 있지만 어쨌든 굴러가게 만들어야 한다. 치료 중에는 의사와 주사, 재활치료 등이 나를 붙들어줬지만 치료 후의 삶은 나 혼자 나를 꺼내 들어야 한다. 버티던 마음을 어디에 둘지, 무엇을 붙잡을지 진짜 과제가 시작될 테니까.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한 시작은 애초에 없으니까.
다만 내가 나를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덜 미안해하며, 앞으로 걸어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분명한 시작이다.
아직 완성된 그림은 아니어도 적어도 윤곽은 보인다. 불안과 통증이 그려 넣은 그림 위에 조금씩 다른 색을 칠해보는 과정.
그러니 오늘도 다시 시작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의 내일로.
어제의 나사가 남아 있든 말든, 일단 굴러가게, 또 굴러가게.
내가 견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그 시간을 존중해 준 마음이 따뜻함이 되었다. 그 따뜻함이 감사가 되었고 그 감사는 "내가 이걸 감히 받아도 될까" 싶은 벅참으로 차올랐다.
환자의 고통을 최대한 덜어주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의지가 온 마음의 포커싱이 되어있는 주치의 선생님.
환자를 웃게 하는 일도 치료의 한 과정이라고 여기신다.
본질이 서서히 드러나 견딜 힘의 근원이 얼굴을 내미는 자리.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마주했다.
의사와 환자는 보통 치료하는 사람과 치료받는 사람으로 나뉘지만 고통과 회복의 가장 깊은 지점에서는 한 사람의 ‘동료’가 된다. 그곳에서는 역할도, 높낮음도, 아픔과 도구의 위계도 사라지고 딱 살아내는 인간만 남는다.
그리고 그 연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진심과 진정성이 쌓아 올린 이 공간은 고통을 지나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로 변했고 그곳에는 고요한 힘이 깊이 내려앉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나를 ‘아쉽지 않게’ 치료하며 도와주시던 김정훈이라는 의사 선생님을 통해 배웠다. 그분의 태도와 시선 덕분에 투명해지는 법, 그리고 다시 견디는 힘을 알게 되었다.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병이 한 가지 참 좋은 이유는 삶을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다시 배우게 해 준다는 것이다.
아프다는 건 신호라는 것을, 몸이 하는 말을 흘려듣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을, 예전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스트레스인가 하고 넘어갔던 작은 증상들이 이제는 정확한 "말"처럼 들린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은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어떤 관계가 나를 따뜻하게 하고 어떤 환경이 나를 고단하게 하는지. 이 병은 억지로라도 본질을 바라보게 만든다.
고통이 찾아오면 내가 얼마나 다정해지는지도 알게 된다. 평범한 하루가 기적처럼 느껴지고 숨을 고르게 쉬는 일도 감사해지고, 그전에는 몰랐던 세계가 이제는 고통과 함께 색을 띤다. 몸이 휘청거리는데도 버티고, 다시 일어나고, 또 살아가는 나를 보며 “나는 생각보다 강하구나”라는 확신이 생긴다.
불안이 올 때마다 달래고, 두근거림이 올 때마다 호흡을 찾고, 어지러울 때 잠시 멈추는 것. 이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삶 전체를 바꾼다.
증상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반드시 빠져나올 구멍이 있고 몸은 아주 느리게라도 회복하고 마음은 더 유연해져서 예전처럼 무너지는 일을 더는 끝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실은 나를 다시 태워 올리는 이상한 화로 같다. 좀 뜨겁고, 좀 과격하고, 가끔은 불합리할 만큼이지만, 그 아래에 또 땅이 있다. 겉으로 보면 삶을 망치려 드는 병 같지만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고통을 통해 배우는 삶은 오래 남는다.
"이렇게까지 배워야 했나" 싶은데도 그래도 남는다.
지문처럼 지울 수 없고 따뜻하기도 하며 어쩐지 조금은 자랑스럽기까지 한 흔적으로 말이다. ❤️ ☕️
자율신경실조증: 몸의 '자동 기능'인 심장, 호흡, 소화, 체온 같은 기본 기능들이 제멋대로 속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균형이 흔들리는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