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라는 덫, 자율신경의 반란을 겪는 동지들에게
어떤 병이 닥치면, 우리는 습관처럼 묻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 나는 그렇게 잘못 살지 않았는데.”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 데에~~"
자율신경이 무너진 뒤에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아픈 경우도 많다는 것을요. 어쩌면 우리는 아파서 아픈 게 아니라 멈추지 못한 탓에 아픈 걸지도 몰라요. 모두가 자신을 꽤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며 사는 것 같아요.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라 믿고 무한한 하중을 버틸 수 있을 거라 확신하죠.
남들에게는 “그러다 병나요. 좀 쉬세요.” 쉽게 말하면서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일을 하고 '쉬어야 할' 집에 와서도 또다시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지요. 피곤하면 쉬면 되는데 끝까지 버텨요. 부모 노릇, 아내 노릇, 남편 노릇, 자식 노릇을 다 하느라 이 삶이 누구를 위한 건지는 묻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또 내일을 살아냅니다.
뭐,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니까.
우리 부모님도 그랬고, 그 위의 부모님도 그랬겠지.
그렇게 잘 살아내고 있다고 믿으면서요.
제 자율신경도 알고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불운이 아니었더라고요. 이전부터 몸이 보내던, 너무 익숙해져 버린 불편이었죠. 피곤하다는 말로 넘겼고, '이만하면 됐다'는 자만으로 외면했으며, '다음에'라는 무책임으로 오늘을 미뤘습니다.
몸은 매일 생존을 빌었으나, 나는 언제나 내일의 망령 속을 헤매는 자였어요.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 네가 없어도 세상은 굴러간다."
쉬는 것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나 자신에게 하는 아주 간절한 예의요.
자율신경실조증은 조절 체계가 어긋난 거지 심각한 병은 아니에요. 잠시 브레이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염증도 감염도 없는데 제 체온은 심할 땐 몇 번 40도, 평균 38도를 오르내리고(불명열), 위험 신호가 없는데도 심장은 가속 페달을 밟았습니다(심계항진). 제가 겪은 증상들은 가히 ‘백과사전’ 급이었지만요. ^^
병원 치료를 반복하다 보면 몸이 가장 먼저 배워버리는 것은 ‘회복’과 함께 ‘의존’이었습니다. 저에게 병원은 안전지대였는데(^^) 치료 마무리쯤 뇌는 기가 막히게 계산을 시작합니다. 참네
“이제 돌봄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혼자 다시 버텨야 하나?”
신기하게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때와 종료될 때의 감정은 전혀 다르더라고요? 전자는 내가 통제권을 되찾고 싶어 하는 투정 어린 상상이었다면, 후자는 나를 잡아주던 견고한 안전기지를 잃는 상실이기 때문입니다.
자율신경계는 참으로 영민하면서도 겁이 많습니다. 모르는 상황을 곧장 생존 위협으로 인식하거든요. 불안하면 통증이 펄떡대며 살아납니다. 온실을 벗어나 일상을 다시 홀로 감당해 내기 위해 재학습시키는 성장통인거지요.
4-1 어떤 의사를 만나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이런 의사를 만나나요”라는 질문이 종종 왔어요. 처음에는 조금 우스웠습니다. 의사를 만나는 일에 방법이 따로 있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얼마나 절박하면 그런 말을 꺼내게 될까 싶어 가슴이 저릿했어요.
4-2 통증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통증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래요. 우리는 남에게 상처 주는 말에는 유난히 조심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 함께 살아야 할 자기 자신에게는 가장 날 선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집니다. 아이들에게는 “예쁜 말 써야지.”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성인이 된 우리는 자기 몸과 마음을 향해 적군에게 하듯 말을 합니다.
이보다 더 은근하고 지속적인 폭력이 또 있을까요.
“죽겠다.”
“이럴 바에는 죽는 게 낫지.”
“미치겠다.”
“이러다 정말 끝나는 거 아니야?”
내가 나를 셀프로 고문시키는 거나 다름없지요.
과거의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안 아프고 배기겠어요? 문제는 뇌가 이 말을
관용구나 하소연 정도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뇌는 맥락을 무시하고 사실로 받아 적는 기관이니까요.ㅠㅠ
주치의 선생님께서 특히 자주 해주시던 말이 있는데요.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은 뇌에 남는 흔적처럼 콕 박혀 저장된대요. 저도 모른 척했을 뿐 이 정도는 왜 모르겠어요.
신경과 통증 재활을 다루는 의사라서였을까요. 그분의 시선은 수면 위가 아니었고 깊은 바다 아래를 향해 있었어요. 통증과 자율신경은 물론이고 사람이 닿기 어려운 마음까지 잠수해 들어가는 분이었죠. 그래서 저는 파도 대신 바다를 믿듯 점점 더 깊게 신뢰하게 되었어요.
뇌를 게 눈 감추듯 속이는 '언어의 마법' 제가 잘 써먹은 방법인데요.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해 보세요.
1)'나'를 타인처럼 대하기 소중한 친구가 아플 때 '너 그러다 바로 죽어'라고 하지 않듯, 나에게도 '고생 많았어, 조금만 더 힘내보자'라고 말해 주세요.
2) 부정어 대신 상태어 쓰기 죽겠다 말고 지금은 좀 '힘들다'라고 표현해 보세요. 죽음이라는 극단적 단어에서 오는 공포 반응을 줄일 수 있답니다.
3) 작은 감탄사부터 바꾸기 미치겠다를 '아이고'나 휴~우'같은 호흡으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뇌는 공격 모드를 해제해 줍니다. 진짜로요.
절규의 닻을 내린 듯 비관적인 언어를 멈출 수 없었던 건 구차한 핑계를 대서라도 "필연"이라는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차라리 비명을 지르며 제 목을 죄는 생존의 올가미였고 뒤틀린 채 격렬히 고동치는 회복의 역설이었다고 저는 헤아려봅니다.
지옥이라 믿어버렸던 고통은 단 한 번만이라도 왜곡되지 않은 온도로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싶었던 가장 순수한 호소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첫째, 비명이었습니다. 검사 결과는 정상인데 언어로라도 고통의 중량감을 증명하고 싶어 질 때는 제발 내가 위험하다는 걸 알아달라는 거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둘째, 통제권을 상실한 공포였어요. 자율신경이 고장 나면 몸은 내 편이 아닌 것 같거든요. 심장은 폭주하고 제 체온은 이유 없이 치솟고 내 몸의 운전석에서 강제로 끌려 내려온 느낌이랄까요. 그 상실감이 '이러다 정말 끝나는 거 아니야?'라는 극단적인 상상으로 이어져 무서웠어요.
셋째, 반복된 좌절 끝에 남은 방어기제였습니다. 내일은 나아질 거라 믿었다가, 이번 치료는 다를 거라 기대했다가 더 이상 속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미리 최악을 말해버립니다. 아싸리 기대하지 않으면 덜 아팠거든요.
비관은 그렇게 만들어진 단단하면서도 숨 막히는 각질 같은 보호막이었습니다. 뇌는 이 모든 사정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내가 뱉은 말을 지금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응급으로 오인하고, 몸을 더 긴장시키고, 통증의 볼륨을 더 키웁니다. 경보음은 덤으로요.
그래서 힘들수록 고통 속에 있는 나에게도 의식적으로 다정한 언어를 건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보 전달처럼요.
"아프긴 하지만 이건 가짜야, 지금 나는 안전한 장소에 있어, 몸은 느리지만 회복 중"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과잉 대응하지 않도록 정렬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나에게 던졌던 모진 말들은 그만큼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제 위협하는 말로 하지 않고 살리는 언어로 바꾸는 중이에요.
저는 제 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메모해 두고 통증이 올라올 때 그대로 읽습니다.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매일이 무너지지는 않게 되더군요. 언어는 아픈 몸과 협상할 수 있는 건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현실적인 도구라고 생각해요. 부끄럽지만 저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제 몸에게 너무 미안해요.
삶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결심은 못하니까 정말 사소한 것부터 바꾸기로 했습니다. 말부터요. 딱, 말만.
되도록이면 ‘아프다’보다 ‘불편하다’고 말하고 ‘도저히 못 견디겠다’보다 ‘못 참겠다,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말을 바꿨을 뿐인데 몸이 먼저 눈치를 챘습니다.
마치 화해의 악수라도 받은 듯 기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4-3 생존 모드는 사용자를 무시합니다
늘 그렇게 우아하진 않습니다. 통증이 선을 넘는 날에는 언어도, 다짐도, 태연한 척도 전부 무력해져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쏟아내어요.
언제까지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사람 몸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납게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 이러다 정말 제정신을 수습하지 못해 미친놈이 되는 건 아닌지. 약을 한 움큼 처방받아야 하는 건지, 매일같이 반복되던 시기도 있었어요.
이제는 못 참겠다고,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혼잣말을 거의 항의서처럼 늘어놓기도 했지요. 받는 사람 없는 민원서류를 혼자 낭독하듯이요.
그 시간은 늘 고립과 함께 옵니다. 세상에서 나만 작동을 멈춘 기계처럼 한쪽에 격리된 느낌. 모두는 정상 속도로 움직이는데 나만 업데이트에서 탈락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한 번 완전히 허물어지고 나면 몸이 알아서 일상생황을 영위하게 해 줍니다.
몸이라는 장비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사용자가 포기 선언을 해도 혼자서 생존 모드로 전환하는 고집 센 기계인 것만 같습니다. 눈물은 슬그머니 마르고, 속은 허해지고, 배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먹을 것을 요구합니다.
방금 전까지 인생의 부조리를 성토하던 사람이 냉장고 문 앞에서 뭐라도 먹을 게 없나. 하고 서 있는 장면, 상상이 되시나요? 배달 앱을 켜거나 주방을 서성이다가 그러다 또 웃습니다. 왜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은 어처구니없이 나옵니다. 고통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삶이 몰래 들어와 불을 켜놓고 간 것처럼요.
참 인간이라는 존재는 고결하기에는 지나치게 생활적이고 놀라울 만큼 질기네요. 이렇게 너절한 상태로도 다음 끼니를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가니까요.
아파서 기운도 없는데 거기다 나 스스로와 싸우기까지 하면 그건 너무 불공평해요. 싸울 힘도 없는데 저항까지 하면 몸은 그냥 파업해 버립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백기를 들고 옆에 앉아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말해주는 게 훨씬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동지들이 보내준 질문들
Q1. 정말 낫나요? 언제쯤 좋아질까요?
저는 2023년 9월부터 만성통증 및 자율신경 치료를 받았어요. 자율신경은 생각보다 빨리 안정되지만 통증과 발열은 꼬리가 깁니다. 직선이 아니고서야 회복은 지그재그로 올라간다는 것, 꼭 기억하세요.
Q2. 주사를 몇 번 맞으면 좋아지나요?
같은 진단명 아래 놓여 있어도 몸의 사정은 제각각입니다. 치료를 몇 회 받았는지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늘 의문이었어요. 횟수보다 어떤 치료를, 어떤 맥락에서 받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주사를 많이 맞았다고 해서 치료가 잘된 것도 아니고 적게 맞았다고 해서 부족한 것도 아닐 테니까요. 지금, 몸이 어떻게 달라졌나요?입니다. 제 주치의 선생님이 내내 통증의 양상을 물으셨던 것을 보면요. 원인을 함께 이해하고 회복의 방향을 조율해 가는 과정입니다.
Q3. 주변의 시선은 어떻게 견디나요?
단절도 필요한 것 같아요. 불안을 심어주는 말,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과의 거리는 정당한 방어입니다.
Q4. 갑자기 증상이 도지면 어떻게 하죠?
의지로 조절 가능한 유일한 자율신경이 호흡입니다. “나는 지금 안전하다”라고 뇌를 설득하세요. 당신의 몸은 1년 전보다 훨씬 똑똑해졌고 회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돌볼 줄 아는 나’와 함께입니다. 그 동행은 생각보다 든든하고 앞으로도 꽤 오래 이어질 거예요. 한 번 배운 몸은 쉽게 잊지 않습니다.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질환은 내가 나를 다 써버리기 전에 속도를 낮추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촉감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몸이 잔뜩 쫄아 겁이 나는지, 언제 마음이 느슨해지는지, 나는 몰랐지만 몸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 회복의 온기는 내 몸에서 시작됐지만 내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손길에서, 나와 비슷한 같은 아픔을 건너온 동지들에게 조금씩 옮겨와 지금의 나에게 머문 것이니까요.
이제 저는 이 씨앗을 당신에게 건넵니다. 당신의 몸은 결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잠시 비바람을 피해 지붕 아래 쉬고 있을 뿐입니다. 비가 그치면 당신은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설 것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당신의 회복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작년 3월,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열 명 남짓 받았다. 누군가는 그들을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 어둠 속을 나 역시 걸어보았기에 감히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고 말하고 싶다.
생각을 조절한다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을 아니, 나의 영혼을 송두리째 바꿔준 나의 치유자 은인이자, 지구별 여행자이자, 주치의 김정훈 원장님.
내가 받은 치유의 에너지를 타인에게 흘려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여정임을 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분이 내게 그러하셨듯, 절망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더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내가 받은 그 거대한 사랑과 헌신을 지금 이 순간 고통스러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되돌려주고 싶다.
원장님이 나에게 감정은 구름처럼 지나간다고 수없이 말해준 이유는 지금의 고통이 가볍다는 뜻도, 견디라는 훈계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기억하게 하려 했던 게 아닐까.
감정을 없앨 수는 없으니 감정에 날씨 이름을 붙여주려 했던 것 같다.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과 이 비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구분해서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통증이 몰려올 때 늘 그 감정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이 터질듯한 불안과 두근거림, 멍함이 앞으로의 모든 날을 덮어버릴 것 같아서 몸은 매번 태풍 경보라도 뜬 것처럼 최대 출력으로 긴장했다.
감정은 구름처럼 지나간다는 말은 이 감정이 지금의 하늘일 뿐 나의 기후는 아니라는 느릿한 조언이었다.
비록 고통을 느끼더라도 삶이 끝나지 않았음을 몸으로 한 번이라도 더 경험하길 바라셨을 것이다.
내 자율신경에게 건네는 예보.
지금은 흐림.
하지만 파란 하늘은 지금도 거기 있다.
자연이 나를 치유해 준 걸 보면 처음 왔던 자리로 돌아간다.
바람이 바람으로 돌아가듯
물방울이 바다로 돌아가듯
사람도 언젠가는 가장 자연스러웠던 곳으로 돌아간다.
치유라는 건 새로운 내가 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일인가 보다.
작년 11월 12일, 입원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원장님, 몇몇 환자분들과 함께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닥터행복한과 함께하는 치유여행’ 그 시간만큼은 환자모드가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가 되었다.
치료의 그 모든 시간들은 내게 생명줄이었다. 살기 위해 치료 내용을 영상으로 남겼고 집에 돌아오면 잊어버릴까 봐 강박처럼 메모를 하고 일기를 썼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치유를 놓칠까 두려워 기록이라는 안전벨트를 쉼 없이 채운 셈이었다. 통증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자율신경계에 써 내려간 일종의 생존 매뉴얼. (^_^) v
이 수많은 말 중 단 한마디라도 내 몸에 들어맞기를 바라면서.
시간이 흐른 뒤, 되감아보며 놀라고야 말았다. 내 몸과 삶 위에서 빈틈없이 맞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기다림 또한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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