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신경실조 회복 이후에야 알게 된 것들
회복이 가장 많이 됐다고 느낄 때 웃기게도 나는 가장 잘 무너졌다. 몸이 덜 아플 때, 거의 무통에 가까워졌을 때 그때마다 꼭 한 번씩 바닥을 다시 확인하러 내려갔다.
조건은 생각보다 아무 역할도 안 한다. 그걸 알고 나니 혀를 내두르게 된다. 완치에 가까워졌다는 건 일종의 방심권 같은 거라 비극은 꼭 그 틈을 타서 가장 화려한 드레스코드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건 추락할 때 가속도가 더 잘 붙는다는 뜻이 아닐까.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는 평안함과 함께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고도였다. 기어가는 수고로움을 끝내고 직립보행의 행복을 누리려는데 삶은 마치 장난기 심한 친구처럼 가끔 발을 걸어왔다. 내가 다시 씩씩하게 걸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하려는 듯이.
상태: 거의 무통, 컨디션 최상
사건: "어? 나 이제 좀 살 것 같은데?" 하는 생각
결과: 무중력 상태에서 중력의 존재를 재확인하듯 가장 우아한 자세로 바닥에 안착
분명한 회복에, 전진한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으면서도 마음은 조건이 좋아질 때마다 '자, 이제 마음껏 절망해 볼까?'라며 기지개를 켰다. 어쩌면 나는 회복과 동시에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질 자격을 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착실한 파괴: 0.1mm씩 나아진 건강을 10m의 수직 낙하로 치환하는 기술
조건의 무능: 햇살이 비치든 비가 오든, 내면의 '붕괴 버튼'은 언제나 풀충전 상태
이제 좀 살만해서 그동안 밀려있던 슬픔들이 한꺼번에 결재 서류를 들고 들이닥치는 것 같았다.
"너 이제 안 아프지? 그럼 이 절망 좀 처리해 줄래?" 하고 말이다.
작년 이맘때의 기록을 쓰고 있지만 현재의 나는 생각보다 좋지 않다. 치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은 다시 찾아왔다. 극심했다가, 잠깐씩 무통의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맛을 기억해 두기도 전에 몸은 다시 불편했고, 아팠다.
KTX든 SRT든 타면 1시간 40분이면 가는 대구.
치료를 받으러 잠깐 다녀올까,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며칠 앓고 나면 또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굳이 길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되새기게 된다.
몸이 보내는 신호와 치유의 속도를 존중하는 마음을.
자율신경은 힘들었던 기억을 예민하게 보관하는 것 같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신경계가 곧바로 완벽한 평형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몸은 나아지려고 노력하지만 오랫동안 앓아온 '통증의 길'로 되돌아가려는 관성이 있는 듯했다.
잠깐 보여준 무통은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져
작은 자극에도 익숙한 통증의 방어막을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는 치료의 끝을 '결승선'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치료 후 알게 된 점은 끝난 직후에는 긴장이 풀리며
면역의 공백기가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다 나았어야 해"라는 당위성은 작은 불편함을 '거대한 재발'로 인식하게 만들고 불안이 자율신경을 자극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옛날에는 아프면 '내 몸을 당장 의사에게 맡겨서라도 빨리 평온해지고 싶다'는 간절함만 있었다. 가지 않고 견디는 시간은 회복력으로 이겨보고 싶다는 또한 무의식적 저항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는 것은 좋지 않다. 더 큰 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내 몸의 패턴을 잘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요즘 나는 전보다 살만해져서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고 나름의 독학 중이다.
고통을 글로 옮기는 행위는 훌륭한 치유법이지만 당시의 느낌을 불러오는 과정이기도해서 묘사가 구체적일수록 과거의 통증을 현재의 실체로 착각하기도 해서 놀랐다.
지금 내가 겪는 통증은 글을 쓰며 과거의 나와 너무 깊게 공명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이 또한 감사한 나만의 명현현상일지도 모른다.
월간지옥
생존의 합격 수기
호르몬이 흔들릴 때 통증은 유난히 짙어진다. 몸 전체가 강제 재부팅되는 느낌은 대부분의 20–40대 여성들이라면, 특히 그 감각을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생리통이 나만큼 극심한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고작 일주일의 유예를 빼면 나머지는 전부 지옥이라고. 절절히 공감되었다. 호르몬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몸을 헤집어놓을 때 존재가 한 번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는 느낌을 견뎌내야 했으니까.
공감한다는 것이 어쩐지 씁쓸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시간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힘겨운 정기 구독형 고통을 매달 자동 결제하듯 감당하고 있는 여성들이여. 몸이 강제로 재부팅되는 시간, 온몸이 ‘아프다’는 세 글자로는 도저히 담기지 않는 그것을 나도 조금 안다. 그러나 지옥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매달 갱신해야 하는 아프면서도 화려한 생존 시험이라고.
우리는 매번 바닥을 찍고 다시 직립하는 법을 배웠다. 아무도 상을 주지 않는 고통의 시험장에서 수십 번, 수백 번 ‘합격’을 거머쥔 강인한 생존자들이다.
무너지면서도 출근했고, 아프면서도 아이들을 케어했고, 부모님을 케어했고, 약속을 지켰고, 울면서도 다음 달을 맞았다. 매달 흔들렸고, 매달 무너졌지만 매달 다시 살아냈다. 그것이 우리의 합격 수기다.
나는 생리통과 자율신경실조증이
서로 닮아 있다고 보았다.
생리 전 극심한 무기력,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지고 급 우울감이나 공황 같은 느낌, 피로,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통증, 두통과 편두통, 그리고 과민성대장 증상까지.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이 모든 증상이 매달 반복된다면 단순한 “기분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율신경의 균형 문제일 가능성도 있으니 너무 쉽게 나를 의지 부족으로 몰아붙이지 말고 한 번쯤은 병원을 방문해 보길 바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에는 반나절 이상을 그대로 누워 있다. 천장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기록이 위로가 되지 않는 구간이 있다. 그저 지나가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시간을 왜 이렇게 아픈지 굳이 따져 묻지 않으려 한다. 원인을 아는 일이 지금의 통증을 덜어주지는 않으니까.
에스트로겐 변동, 프로게스테론 저하, 세로토닌 변화 같은 의학용어들이 나를 대신 울어주진 않는다. 못 자고 자지러질 만큼의 통증만 아니면 오늘은 괜찮은 날이다.
행복의 정의가 이렇게까지 축소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날.
회복을 믿는 가장 좋은 근거는 경험이다
나의 경험으로 호르몬 변화는 통증 인지도를 높였다. 예민해지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감정 조절을 흔들었다.
그러나 유난도 아니고 의지 부족도 아니다. 몸의 화학 작용이 잠시 과장된 방송을 내보내는 중이었다.
통증은 절정이 있으면 반드시 감퇴도 있었다.
희망은 미래형이지만 기억은 과거 완료형이다. 나는 견뎌봤고, 지나왔고, 다시 일어났다. 그래서 경험은 막연한 낙관보다 덜 배신한다.
물을 조금 더 마신다.
통증 강도를 10점 만점으로 숫자로만 기록한다.
“오늘만"을 단위로 삼는다. 평생 견딤은 없다.
회복기의 나를 떠올린다.
회복 과정에는 "정지 화면"이 반드시 들어가고 몸은 조정 중일 수 있으며, 통증은 나를 정의하지 못한다. 이것이 내 전부라면 진즉 예전에 끝났을 것이다.
원인을 아는 것과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다르다.
아픔을 줄이는 첫 단계는 “과장된 자기 비난을 멈추는 것”이다.
회복을 믿는 가장 좋은 근거는 기대일까 경험일까. 나는 후자 편이다.
지금의 통증은 진짜지만 영구적이지는 않다. 몸은 생각보다 변덕스럽고 그래서 생각보다 회복도 빠르다. 우리는 증명했다.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완치는 없고, 배움만 있다
통증은 목표였고, 평온은 질문이었다
"이제 좀 살아도 되지 않나.' 이 생각이 생각보다 위험했다. 아플 때는 목표가 한 개라 삶이 단순했다.
이 통증만 없애자! 그런데 고통이 사라지자 전쟁 끝난 병사처럼 광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무통을 완성이라고 착각했지만 그것은 Zero였다.
나는 통증이 빠져나간 자리를 가치관이나 루틴으로 채우지 않으면 우울이나 무력감이 번개처럼 들어와 앉았다. 말이 좋아 루틴이지 사실은 내 삶이 우울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급으로 쳐두는 철조망이었다.
조건이 좋아졌을 때 무너졌던 이유는 내 중심 이어야 하는데 외부 상태에 삶을 맡겨두었기 때문이다.
비바람 속의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햇빛 쨍쨍한 날 갑자기 돌풍이 불면 그때 더 잘 뽑힌다.
조건이 나를 구원할 거라는 복음은 폐기했다. 견디지 못한 날 과거의 나를 향해 삿대질하는 촌스러운 짓도 이제는 그만두기로 한다. 통증은 나를 갉아먹을 수는 있어도 내 본질을 파괴할 화력은 없다.
넘어지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오류였을 뿐 내 과실이 아니었고 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것만이 유일하게 배당된 나의 지분이었다. 내일의 안녕을 끌어다 오늘의 절망을 메꾸는 식의 돌려막기 인생은 이제 간신히 졸업했다.
어제도 무너졌고, 실은 지금도 무너지는 중이다. 머릿속에 박힌 대못이 심장 박동에 맞춰 망치질을 해댈 때면, 몸이 거대한 형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취소 버튼이 실종된 고통의 정기 구독.
매달, 매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내 생명력이라는 계좌에서 가차 없이 잔고를 인출해 가지만 예전처럼 당황하며 은행 창구를 두드리지는 않는다.
“나 지금 배우고 있구나. ” 참 길게도 배운다.(웃음)
아픈 건 질색이다. 고통은 아무리 안면을 터도 적응 안 되는 무례한 불청객이니까. 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날의 웃음보다, 폭우 속에서 빗물을 뱉어내며 짓는 웃음이 더 고결하다는 것쯤은 안다.
“자, 다음은 어디를 걸어볼까? 내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구경이나 하라고.”
비정규직처럼 불안정하게 떠돌던 나의 행복도 제법 정규직의 포스를 풍기며 내 곁을 지킨다. 나 같은 사람도 이 정도의 마음 근육을 얻었으니 이 수업은 꽤 남는 장사였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완치라는 신기루
완성은 근사하게 포장된 ‘사기극’이다.
고통이라는 값비싼 입장료를 치렀으니 퇴장로 끝에선 응당 해방의 팡파르가 터질 줄 알았다. 이토록 짓물렀으면 우주는 공정하게도 통증을 영구 제명해 주어야 마땅했다. 그것이 내가 믿어온 삶의 사칙연산이었으니까.
오판이었다. 기어이 당도한 종착역은 간이역에 불과했다. 여행의 목적이 '도착'에만 있다면 그 모든 여정은 짐짝을 옮기는 노역에 불과할 것이다. 삶은 결승선이 있는 트랙이 아니었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책로였다.
어떤 정거장에 내리든 그곳은 늘 또 다른 출발점이 되어주었고 삶이 굽이쳤던 이유는 그 이유 자체가 삶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도착하기 위해 걷는 줄로만 알았던 삶은 걸음마다 도착하고 있었다.
이 길 위에서 만나는 고난들은 이 여정이 너무도 행복해서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유일한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철저히 계획한 여행이라도 우리 모두 길을 잃고, 갑작스러운 비를 맞게 된다. 계획에 없던 인연들과
뜻밖의 좋은 풍경을 만나며 능숙한 여행자가 안락한 호텔 방의 소유권에 집착하지 않듯,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은 지구별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은 단 1%의 오차도 없이 내 삶에 맞아떨어졌다. 허우적대던 날마다 지도 제작자를 조우했다. 더 이상 비좁은 자아 속에 고립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발등을 짓누르던 꽉 끼는 신발을 벗어 던졌다.
지금 갓 일궈낸 폭신한 흙 위에 맨발을 내딛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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