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는 완치보다 멀리 간다
통증은 이제 그리움이 되었다
고통이 지나가고 평온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지나온 고통이 오히려 덜 버거웠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이 행복인 줄 안다면 그곳이 이미 천국"이라던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한때 나를 괴롭히던 통증은 모순적이게도 그리움이 되었다. 차라리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던 그때가 더 나았음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사랑했기에 아팠다.” 통증의 원인이 누군가와의 이별이나 상실이었다면 그 크기는 곧 사랑의 깊이였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뜨겁게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지금의 공허한 평온보다 아픈 연결이 더 생생한 삶처럼 느껴진다. 비명을 지르던 시절엔 밖으로 쏟아낼 에너지라도 있었고 살아내려는 힘이 방향을 찾아 요동치고 있었다.
요즘은 슬픔이 안으로 침전되어 굳어버린 것만 같다. 소리 낼 힘조차 없는 절망. 온몸으로 거부하며 소리칠 수 있었던 그때가 ‘희망’에 가까웠음을 뒤늦게 알았다. 나를 죽도록 아프게 했던 원인은 이제 곁에 없다.
나는 이제야 홀로 남은 그때의 나를 가만히 보듬어 본다.
‘비상’이라는 화려한 오판
앞서 말했듯 몸이 나으면 초인이 될 줄 알았다.
통증의 ‘ㅌ’자도 모르는 사람처럼 세상을 가뿐하게 거듭날 줄 알았던 건 삶을 한 편의 웰메이드 연극이라 오해했던 치기가 부린 무지하고도 처연한 오만이었다.
마침표가 찍히면 커튼콜이 시작될 줄 알았으나 현실의 마침표는 다음을 견디기 위한 짧은 숨 고르기에 불과했다.
흔들림이 기본값인 세계에서 서핑하기
삶은 끝까지 요동치는 파도와 같았다. ‘이제 다시는 안 아프겠지’라는 순진한 강박은 독이 되었다. 무방비한 희망은 사소한 찌릿함을 날카로운 칼날로 만들어 나를 바닥까지 추락시켰다.
결국 인정해야 했다. 이 삶은 원래 흔들리는 것이 기본값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꽉 쥐고 있던 마음의 손목에 힘을 빼자,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잔뜩 긴장해 있을 땐 코와 입으로 들이치던 실망의 파도가, 힘을 빼자 나를 삼키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
익사하지 않고 파도 위를 미끄러지는 법,
지금 나는 서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힘을 뺀 진심이 터뜨린 뜻밖의 손길
사람들은 그럴듯한 수식어로 치장한 글보다 “나 무섭다”, “아파서 다 망하고 싶다”라고 비명처럼 뱉어낸 투박한 진심에 제 일처럼 달려들어 울어주었다.
나를 증명하려 아등바등할 땐 철저히 혼자였는데 초라함을 내려놓자 타인과 연결될 수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비명이 가장 보편적인 위로가 되는 아이러니.
이 레이스에서 얻은 건 완치보다 완주였다. 삶은 단번에 수리되는 중고차가 아니다. 삐걱거림을 안고도 계속 가는 일이다.
기대의 유통기한 확인하기
‘이것만 되면 행복할 텐데 ’라는 조건부 계약을 파괴할 때, 발가락 사이에 씹히는 모래알 같은 작은 평온이 만져진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나를 지키는 가장 깊은 품이다. 완벽한 척하면 공격받지만, 있는 그대로 서 있으면 타인의 온기가 스민다.
과연 삶은 매번 날아오르기 위해 사는 걸까. 진창 같은 땅을 딛고 한 걸음씩 굴러가기 위해 사는 게 아닐까. 사실 지루하다고 여긴 걸음마다 치유가 알알이 맺혀있었다.
고통의 총천연색 리스트, '버그' 난 삶
내 몸이 발화점이 낮은 인화물질이 된 기분이었다.
의학의 정밀한 격자망은 내 고통을 전부 수집하지 못했고 큰 병원에서는 정상이라는 진단서 앞에서 미칠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방치된 적도 있었다.
내 몸은 재난 문자처럼 울려대는데 세상은 고요했다. 이 증상들은 삶의 운영체제가 오작동한 것이었다. 내적 아수라장과 외적 평온함 사이의 간극이 정신을 피폐시켰을 땐, 몸이 오발탄처럼 느껴져 서럽고 비통했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있을 순 없었다.
자율신경계의 반란은 갑작스러운 재난이 아니었다. 외면해 온 번아웃이 나 여기 있다며 물리적인 실체로 불거져 드러난 것이었다.
"낫게 해 줄 테니 걱정 마세요."
주치의 선생님의 명쾌한 말을 구명보트처럼 붙들고 마음 편히 치료라는 배에 올라탔다.
그래, 이건 수리가 아니라 비우는 중일 거야. 잠시 짐을 내려놓고 다시 가벼워질 준비를 하는 중일 거야.
소화가 멈추고 방광이 아팠던 건, 몸이 나를 지키려
다른 곳에서 경보를 울린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왔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뿌리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나는 잎사귀에만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이제는 그만두었다.
의사 앞에 앉으면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아이가 된다.
"저 진짜 죽을 것 같아요. 온몸이 다 아픈데 검사는 왜 정상이죠?"라는 절규는 진료실의 단골 멘트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의사는 마법사이기도 하겠지만 환자의 단서로 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추리 소설 혹은 탐정(독자) 같다.
증거를 흐리게 말하면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정확한 진단에 닿기 어렵다. 나는 한 명의 의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알게 되었다. 의사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답에 이르는 길을 함께 찾는 사람이라는 걸.
그 여정을 위해 나는 내 몸의 기록자가 되기로 했다.
전신이 아플 때면 내가 가진 모든 통증의 리스트를 한 줄도 빠짐없이 말하거나 적었다. 하나라도 누락되면 치트키를 놓칠까 봐 조바심이 났고 치료에 정성을 다하시는 원장님을 나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진료 시간에 모든 정보를 쏟아붓는 것은 핵심이 실종된 소음만 남기는 일 같았다.
진짜 중요한 건 양보다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기에 오늘 이 진료실에서 내가 쟁취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들’만 골라 말하는 것은 내 몸이라는 주권을 되찾기 위해 내린 결단이었다.
동사와 숫자를 택하기
“원장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심장이 매웠어요. 조금 있다가 열감이 느껴졌고, 10시쯤 잠잠해졌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의사는 빈도와 강도라는 팩트를 포착하기 시작했다.
자율신경 증상은 백화점식이다. 수십 가지가 동시에 나타난다. “여러 증상이 있지만 요즘은 특히 악몽과 새벽 각성이 제일 힘들어요.” 그리고 별표를 쳤다.
의사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머릿속에 명확한 진단 경로가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100% 정신질환이 아님’을 전제하지 않고 공유
“저 정신과 문제 아니거든요?”
그 말은 나를 보호하려는 방어였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벽이 되기도 했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데도 지금 몸이 무력해요. 어쩌면 그 말이 병명을 ‘공황장애’에서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옮겨 가게 한 결정적 단서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것이 정신의 문제일 거라며 나 자신을 의심하고 경계할 필요는 없다. 몸은 몸의 언어로 말하고 마음은 마음으로 흔들린다. 이 둘은 싸우는 적이라 생각했지만 같은 편이었다.
환자는 증상을 말하고 의사는 판단한다.
이 구조가 무너지면 의심과 방어만 남는다. 같은 언어 위에 서야 길이 열린다. 설명하려 애쓰는 환자와 들으려는 의사가 만나는 자리에서 진단은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때 치료가 시작된다.
옹달샘 같은 성찬을 마주하며
"그래요, 제 어깨를 딛고 저 멀리 아름다운 세계의 그 끝까지 탐험해 나가시기를."
견디고 있던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돌아갈 곳을 찾은 것처럼 풀려 내렸다.
가끔은 아득해진다. 대체 저 큰 마음은 어떤 시간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일까. 성경에는 서로의 짐을 나누라고 한다. 그 말씀이 혼자 무너지지 않도록 어깨를 내어주라는 뜻일까.
사랑이 어떤 모양을 갖게 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주치의 선생님의 그 큰 사랑은 환자들의 마음마다 깃들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뒤에도 버팀목처럼 남아 있었다.
달아주신 댓글은 깊은 산속의 숨겨진 옹달샘처럼 내 초라한 마음을 투명하게 비춰주고 때로는 영혼의 골수 깊숙한 곳을 부드럽게 찌르며 일깨워준다.
나라는 사람을 늘 "좋은 재료"로 봐주셨던 안목이 눈물겹다.
나의 스승이자 멘토, 그리고 지구별을 함께 걷는 동행자에게 아껴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믿으며 살았다. 하지만 가장 극심한 결핍이었던 고통이, 내가 가졌던 모든 불만을 지워주었다. 세상에 대해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그 무엇도 부족하지 않은 상태에 이르렀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끝을 모르는 욕망이다.
고통은 내 삶에서 원하는 것들을 모조리 솎아내고 오직 존재하는 것들만 남겨주었다.